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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플라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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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우재의 플라이룸] (57) 생체시계 유전자와 검은 롱패딩
    (57) 생체시계 유전자와 검은 롱패딩

    초파리로 시작된 연구에 노벨상이 주어진 건 여섯 번뿐이다. 초파리에게 6번이나 노벨생리의학상이 주어졌느냐고 놀랄지 모르지만, 1933년 초파리를 이용한 유전법칙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토머스 헌트 모건의 초파리 유전학은 20세기 초 유럽과 비교해 과학기술 후진국이던 미국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와 더불어 몇 안 되는 자랑스러운 과학 분야 중 하나였다. 초파리 유전학은 이후에도 미국식 과학의 상징이자 대표주자로 20세기 중반 전성기를 구가했고, 여전히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등의 최첨단 연구소에서 주목받는 생물학의 대표적인 모델생물이다. 여섯 번의 초파리 노벨상 중 마지막은 2017년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를 연구한 초파리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초파리의 생체리듬과 유전자, 혁명의 시작1970년대 초반, 박테리오파지 연구로 이미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모어 벤저는 스승 델브뤽의 권유로 새로운 학문을 창시한다. 훗날 ‘행동유전학’이라 불리게 된 이 분야의 주인공은 초파리였고 벤저는 ...

    1613호2025.01.17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56) 계엄령 시대의 과학자
    (56) 계엄령 시대의 과학자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나는 이공계 대학원의 박사과정에 있었다. 전국이 들끓었고 이전까지 정치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던 과학기술인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시민으로서 당연한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었다.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던 실험실 동료들이 하나둘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한 재기발랄한 동료의 제안으로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모두가 지나다니는 계단 한복판에 ‘근조’라는 한자를 종이로 이어 붙여 크게 새겼다. 다음 날 아침 학교 게시판은 난리가 났고, 학교 당국은 바로 해당 글씨를 제거해버렸다. 학생은 정치에 관심을 두지 말고 학생의 본분을 다하라는 권유와 함께.정치의 노예가 된 한국 과학기술자연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추구하는 과학과 인류의 복지를 위한 기술발전을 추구하는 공학은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다. 중력의 법칙은 국적과 성별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작동하고,...

    1608호2024.12.13 15: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55)엔지니어 리더십, 동양사학 리더십
    (55)엔지니어 리더십, 동양사학 리더십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삼성전자를 위해 이 말을 변주하자면, 성공하는 첨단기술기업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난관을 겪는 기업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힘들어하는지 모른다. 저마다의 이유를 찾는 일은 어렵지만, 성공한 기업의 공통점을 추리는 일은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의 위기를 논하는 수많은 기사 속에서, 한국 언론은 현재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의 첨단기술기업이 보여주는 공통점을 자주 무시하고 국민의 시각을 왜곡한다. 삼성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 그 차이를 알고 있어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현실 인식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젠 말할 때가 됐다. 첨단기술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그는 동양사학을 전공했다.잘나가는 첨단기술기업의 리더십엔 공통점이 있다기술기업의 리더가 반드시 엔지니어 출신이...

    1603호2024.11.08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54) 과학은 라이프스타일
    (54) 과학은 라이프스타일

    며칠 전 행정안전부는 ‘지역특성 MBTI’로 맞춤형 정책 수립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진단도구로 마치 성격 유형처럼 지역 정체성 유형을 도출할 수 있단다. 심지어 우리나라 인구감소지역의 절반 이상이 INTP 유형으로 파악됐다는 황당한 분석까지 내놨다. MBTI 성격유형이 과학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국가의 대표적인 부처가, 그 나라의 존폐가 걸려 있는 인구감소 문제를 다루는 분석도구로 그저 국민 사이에 유행하는 일종의 밈을 차용했다는 데 이 사건의 심각함이 있다. 작가 한윤형은 한국을 상식이 독재하는 공간이라고 규정했다는데, 이쯤 되면 그 상식의 기반조차 무너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과학적이기 위해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모든 사람이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런 세상은 모든 사람이 운동선수가 되는 세상만큼이나 이상할 것이다. 과학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꼭 과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과학자 중에 황당무계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많다...

    1597호2024.09.27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53) 기초과학의 멸종
    (53) 기초과학의 멸종

    초등학생 시절, 막 대중화된 컬러텔레비전에는 그다지 많은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컬러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동물의 세계>라는 자연 다큐멘터리였다. 주로 아프리카 사바나지역의 동물들을 보여주던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물학자의 꿈을 키웠다. 생물학자가 되고 싶은것인지, 다큐멘터리 피디(PD)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던 그 시기를 지나 생물학과에 진학하고 나서야, 한국에서 자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동물을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은 생물학자가 됐고, 천직으로 삼아 살고 있지만, 더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다큐멘터리의 이상과 생물학의 현실자연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생명의 다양성과 위대함이 생물학의 본질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생물학의 한 축은 분명 찰스 다윈이 정교하게 이론화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화생태학...

    1591호2024.08.09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52) 초파리는 곤충이다
    (52) 초파리는 곤충이다

    초파리가 유전학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유전적 대물림의 비밀이 초파리 염색체를 통해 풀려왔기 때문이다. 염색체에 길게 배열된 띠의 집합이 유전자라는 사실도 초파리에서 밝혀졌고, 염색체 접합과 재조합의 비밀 또한 초파리에서 알려졌다. 미국 뉴욕주의 컬럼비아대학에서 탄생학 초파리 유전학은 실용주의라는 철학적 기반 위에서 탄생했고, 철저히 인간의 건강과 질병 연구에 적용돼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하에 발전해왔다.실용주의와 도브잔스키의 초파리토머스 헌트 모건에서 시작돼 그의 수제자인 스터티번트와 뮬러 등으로 계승된 고전유전학의 전통은 실험실에서 초파리를 인간생물학을 연구하는 도구로 만들어나갔다. 이런 전통에 반기를 든 건 모건의 또 다른 수제자였던 도브잔스키였다. 그는 멘델과 다윈의 이론을 의심하던 철저한 실험주의자 모건과 달리 숭고한 다윈주의의 사도였고, 훗날 그 유명한 진화론의 도그마인 ‘진화의 불빛에 비추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어떤 것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언명을 탄생시켰...

    1586호2024.07.05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51) 시간의 재구성
    (51) 시간의 재구성

    사고실험을 해보자. 모든 감각, 즉 시각·후각·미각·청각·촉각 모두가 제거된 상황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시간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을까. 심리학의 ‘내부시계모델(internal clock model)’은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 두뇌에는 내부시계가 존재하고, 그 시계는 외부의 자극과 상관없이 어느 정도 일정하게 시간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엔 눈·코·혀·귀·피부처럼 따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시간은 따로 측정할 만큼 중요한 자극이 아니거나, 너무나 중요해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측정해야 하는 요소라는 뜻이다.시간의 종류시간에 대한 화두는 물리학이 독점해왔다. 고전역학에서 상대성이론을 거쳐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에서 시간은 하나의 변수이자 주인공이었다. 시간여행이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 것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인지되지 않는 시간은 무의미하다. 바로 그곳에서 시간은 심리학과 생물학의 주제가 ...

    1581호2024.05.31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50) 한국의 의사, 중국의 엔지니어
    (50) 한국의 의사, 중국의 엔지니어

    캐나다에서 살던 때의 일이다. 쇼핑몰에서 뛰던 아이가 넘어지면서 바닥에 튀어나와 있던 못에 무릎이 크게 찢어지는 일이 있었다. 오후 6시가 다 돼가던 시간이었고, 급하게 지혈을 하며 근처 병원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첫 번째 응급실 간호사는 아이의 무릎 상태를 자세히 보지도 않은 채 증상이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두어 시간을 기다리다 지쳐 더 큰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으나 마찬가지였다. 8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들어온 젊은 전공의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냐며 급하게 찢어진 상처를 꿰매는 수술을 진행했다. 그 후에야 캐나다에선 웬만큼 심각한 증상이 아니면 응급실이나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전 국민 무상 의료를 실시하고 있는 캐나다의 현실이다.완벽한 의료체계란 없다한국, 미국, 캐나다, 중국의 의료체계를 직접 경험하며 살았다. 미국은 잘 알려져 있듯이 의료비가 엄청나게 비싸다. 보험 없는 사람이 자칫 응급실이라도 실려 갔다간,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1577호2024.05.03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49)정치적 편 가르기의 장이 된 국제학회
    (49)정치적 편 가르기의 장이 된 국제학회

    지난해에는 의도치 않게 꽤 다양한 학회에 참석했다. 초파리 유전학자들이 모이는 학회는 생산적이었고, 실험실 프로젝트를 알리고 공동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공동연구들은 학회가 아니라 직접 발품을 팔아 이야기를 나누고 노력한 곳에서 나왔다. 즉 학회가 모든 네트워킹의 중심은 아니라는 뜻이다. 언젠가부터 초대받은 학회와 꼭 필요한 학회가 아니면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학회의 목적을 학생교육과 공동연구를 위한 전략으로 재조정하기로 했다.학회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동양에서도 공자와 노자가 제자들의 무리를 이끌고 다녔다. 현대적인 의미의 학회는 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60년 영국 왕립학회가 세계 최초의 과학 학회였고, 이후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학회가 속속 설립됐다. 학회의 시작은 과학자들의 모임이었던 셈이다. 학회의 역할은 ‘학문적 정보 공유’, ‘연구 결과 발표’, ‘학문적 교...

    1572호2024.03.29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48)선택의 유전학적 기원
    (48)선택의 유전학적 기원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한다. 식사 메뉴부터 전세 대출까지, 선택은 우리 삶의 핵심이다. 단세포 생명체도 선택을 한다.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무척추동물은 더 복잡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간단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자극에 반응하고 간단한 선택을 내리도록 신경회로가 구성돼 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복잡한 환경을 탐색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정교한 뇌 영역을 가지고 있다. 전두엽 피질은 감각 정보, 보상 신호, 과거 경험을 통합해 어떤 일의 계획과 결정, 진행을 주도한다.인간 역시 생물이므로 도파민,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보상 처리와 동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당연히 이 과정에서 다양한 유전자가 신경전달물질 시스템, 뇌 발달, 개인의 의사결정 스타일 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생명체가 복잡해질수록 정보 처리의 정교함과 의사결정에 고려되는 요소의 수는 극적으로 증가한다. 인간은 의식적인 인식을 통해 자신의 선택과 결과를 이...

    1567호2024.02.26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