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김우재의 플라이룸
  • 전체 기사 71
  • [김우재의 플라이룸](61) 그림자 교향곡, 교세포와 보통 과학자
    (61) 그림자 교향곡, 교세포와 보통 과학자

    교세포(膠細胞·glia)는 한때 뇌의 단순한 ‘접착제’로 여겨졌다. 19세기 신경과학자들에게 교세포란 신경세포들을 접착시키는 수동적인 연결조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세포는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하고, 뇌의 면역을 담당하며, 심지어 기억과 학습에까지 관여하는 뇌의 중심으로 재탄생했다. 이는 과학사를 넘어 우리 사회가 내포한 역설적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진정한 변화의 요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접착제’에서 시작된 오해뇌과학의 역사는 신경세포 연구에 주로 집중돼 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뇌를 신경세포 중심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신경세포는 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종류의 조직이며, 실제로 다양한 외부환경의 정보를 취합하고 계산을 통해 해당 생명체가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동물의 뇌에는 신경세포와 동일하거나 더 많은 수의 교세포가 존재한...

    1627호2025.05.02 14:57

  • [김우재의 플라이룸](60) 엘리트 카르텔과 한국 과학의 미래
    (60) 엘리트 카르텔과 한국 과학의 미래

    과학의 본질은 자유로운 탐구와 실패를 통한 혁신이다. 그러나 한국의 관료주의는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엘리트 카르텔―학벌과 고시 합격자로 구성된 폐쇄적 네트워크―은 연구 자율성을 억압하고, 권력 유지를 위한 규제와 형식주의를 고수한다. 이들의 영향력은 정부 부처부터 대학 연구실까지 침투해 있으며, 과학계의 역동성을 말살하고 있다.윤석열 탄핵 사태는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구조적이며 뿌리 깊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과 한덕수 등 엘리트 관료들은 국정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국민의 고통을 외면했고 특정 정치집단의 이익을 수호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최고의 엘리트 관료라 불리는 이들은 국가적 위기보다 집단의 기득권 유지에 집중해왔다. 한국 엘리트 카르텔의 표본이 된 서울대 출신 공직자들이 주도하는 ‘모피아’ 집단은 재정 지원을 특정 분야에 편중시키고, 학연·지연을 통해 신진 연구자들을 배제하는 ...

    1624호2025.04.11 14:30

  • [김우재의 플라이룸](59) 과학혁명, 학술지 개혁에서 시작하라
    (59) 과학혁명, 학술지 개혁에서 시작하라

    윤석열 정부와 트럼프 정부가 보여주는 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대규모 연구개발비 삭감이다. 지나친 억측은 삼가야겠지만,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은 대부분 과학을 무시하거나 경멸하고, 따라서 과학에 대한 지원을 축소한다. 어쩌면 과학이야말로 이 처참한 비상식에 대한 유일한 구원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미국과 한국에서 과학은 유린당하고 있다.학술지 판타지의 붕괴와 한국연구재단 권력의 역설2023년 한 해 동안 한국 연구계는 단 한 곳의 해적 학술지에 1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출판료를 세금으로 지불했다. 한국건설연구원의 경우 전체 논문 43.5%가 부실 학술지에 게재되는 충격적 기록을 세웠다. 이는 단순한 예산 누수 이상의 문제다. 연구자들이 ‘학술지 유통마진’에 목을 매는 구조가 고착화됐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10년 전 가짜학회 스캔들이 재현된 이 현상은 연구계 내부의 자기검열 메커니즘마저 실패했음을 방증한다....

    1620호2025.03.14 15: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58) 과학기술자의 관세
    (58) 과학기술자의 관세

    세계는 정치적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수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과학자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건 과학자 주변의 일이게 마련이다. 미국 과학자들이 절규하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닥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신음모론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부 장관에 지명했고, 그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음모론을 언급했다.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 의생명과학을 지탱했던 미국립보건원 NIH의 미래가 위태롭다. 트럼프 정부는 며칠 전, NIH가 연구비와 함께 대학에 지급하던 간접비를 대폭 삭감한다고 밝혔다. 미국 과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평가도 많다. 간접비 삭감으로 미국 과학계의 역량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하버드대학 등이 지나치게 높은 간접비를 챙겨왔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던 보스턴 코리아 프로젝트 또한 간접비 문제로...

    1616호2025.02.14 15: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57) 생체시계 유전자와 검은 롱패딩
    (57) 생체시계 유전자와 검은 롱패딩

    초파리로 시작된 연구에 노벨상이 주어진 건 여섯 번뿐이다. 초파리에게 6번이나 노벨생리의학상이 주어졌느냐고 놀랄지 모르지만, 1933년 초파리를 이용한 유전법칙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토머스 헌트 모건의 초파리 유전학은 20세기 초 유럽과 비교해 과학기술 후진국이던 미국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와 더불어 몇 안 되는 자랑스러운 과학 분야 중 하나였다. 초파리 유전학은 이후에도 미국식 과학의 상징이자 대표주자로 20세기 중반 전성기를 구가했고, 여전히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등의 최첨단 연구소에서 주목받는 생물학의 대표적인 모델생물이다. 여섯 번의 초파리 노벨상 중 마지막은 2017년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를 연구한 초파리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초파리의 생체리듬과 유전자, 혁명의 시작1970년대 초반, 박테리오파지 연구로 이미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모어 벤저는 스승 델브뤽의 권유로 새로운 학문을 창시한다. 훗날 ‘행동유전학’이라 불리게 된 이 분야의 주인공은 초파리였고 벤저는 ...

    1613호2025.01.17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56) 계엄령 시대의 과학자
    (56) 계엄령 시대의 과학자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나는 이공계 대학원의 박사과정에 있었다. 전국이 들끓었고 이전까지 정치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던 과학기술인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시민으로서 당연한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었다.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던 실험실 동료들이 하나둘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한 재기발랄한 동료의 제안으로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모두가 지나다니는 계단 한복판에 ‘근조’라는 한자를 종이로 이어 붙여 크게 새겼다. 다음 날 아침 학교 게시판은 난리가 났고, 학교 당국은 바로 해당 글씨를 제거해버렸다. 학생은 정치에 관심을 두지 말고 학생의 본분을 다하라는 권유와 함께.정치의 노예가 된 한국 과학기술자연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추구하는 과학과 인류의 복지를 위한 기술발전을 추구하는 공학은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다. 중력의 법칙은 국적과 성별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작동하고,...

    1608호2024.12.13 15: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55)엔지니어 리더십, 동양사학 리더십
    (55)엔지니어 리더십, 동양사학 리더십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삼성전자를 위해 이 말을 변주하자면, 성공하는 첨단기술기업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난관을 겪는 기업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힘들어하는지 모른다. 저마다의 이유를 찾는 일은 어렵지만, 성공한 기업의 공통점을 추리는 일은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의 위기를 논하는 수많은 기사 속에서, 한국 언론은 현재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의 첨단기술기업이 보여주는 공통점을 자주 무시하고 국민의 시각을 왜곡한다. 삼성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 그 차이를 알고 있어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현실 인식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젠 말할 때가 됐다. 첨단기술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그는 동양사학을 전공했다.잘나가는 첨단기술기업의 리더십엔 공통점이 있다기술기업의 리더가 반드시 엔지니어 출신이...

    1603호2024.11.08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54) 과학은 라이프스타일
    (54) 과학은 라이프스타일

    며칠 전 행정안전부는 ‘지역특성 MBTI’로 맞춤형 정책 수립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진단도구로 마치 성격 유형처럼 지역 정체성 유형을 도출할 수 있단다. 심지어 우리나라 인구감소지역의 절반 이상이 INTP 유형으로 파악됐다는 황당한 분석까지 내놨다. MBTI 성격유형이 과학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국가의 대표적인 부처가, 그 나라의 존폐가 걸려 있는 인구감소 문제를 다루는 분석도구로 그저 국민 사이에 유행하는 일종의 밈을 차용했다는 데 이 사건의 심각함이 있다. 작가 한윤형은 한국을 상식이 독재하는 공간이라고 규정했다는데, 이쯤 되면 그 상식의 기반조차 무너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과학적이기 위해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모든 사람이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런 세상은 모든 사람이 운동선수가 되는 세상만큼이나 이상할 것이다. 과학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꼭 과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과학자 중에 황당무계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많다...

    1597호2024.09.27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53) 기초과학의 멸종
    (53) 기초과학의 멸종

    초등학생 시절, 막 대중화된 컬러텔레비전에는 그다지 많은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컬러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동물의 세계>라는 자연 다큐멘터리였다. 주로 아프리카 사바나지역의 동물들을 보여주던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물학자의 꿈을 키웠다. 생물학자가 되고 싶은것인지, 다큐멘터리 피디(PD)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던 그 시기를 지나 생물학과에 진학하고 나서야, 한국에서 자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동물을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은 생물학자가 됐고, 천직으로 삼아 살고 있지만, 더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다큐멘터리의 이상과 생물학의 현실자연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생명의 다양성과 위대함이 생물학의 본질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생물학의 한 축은 분명 찰스 다윈이 정교하게 이론화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화생태학...

    1591호2024.08.09 1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52) 초파리는 곤충이다
    (52) 초파리는 곤충이다

    초파리가 유전학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유전적 대물림의 비밀이 초파리 염색체를 통해 풀려왔기 때문이다. 염색체에 길게 배열된 띠의 집합이 유전자라는 사실도 초파리에서 밝혀졌고, 염색체 접합과 재조합의 비밀 또한 초파리에서 알려졌다. 미국 뉴욕주의 컬럼비아대학에서 탄생학 초파리 유전학은 실용주의라는 철학적 기반 위에서 탄생했고, 철저히 인간의 건강과 질병 연구에 적용돼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하에 발전해왔다.실용주의와 도브잔스키의 초파리토머스 헌트 모건에서 시작돼 그의 수제자인 스터티번트와 뮬러 등으로 계승된 고전유전학의 전통은 실험실에서 초파리를 인간생물학을 연구하는 도구로 만들어나갔다. 이런 전통에 반기를 든 건 모건의 또 다른 수제자였던 도브잔스키였다. 그는 멘델과 다윈의 이론을 의심하던 철저한 실험주의자 모건과 달리 숭고한 다윈주의의 사도였고, 훗날 그 유명한 진화론의 도그마인 ‘진화의 불빛에 비추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어떤 것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언명을 탄생시켰...

    1586호2024.07.05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