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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플라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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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우재의 플라이룸] (81) 실험실의 코끼리
    (81) 실험실의 코끼리

    논문을 낼 때마다 나는 청구서를 받는다. 게재료라 부르는 그 돈이 결국 어디서 나오는지는 연구자라면 모두가 안다. 연구비는 세금이다.2025년 11월 스웨덴 왕립과학원에서 발표된 ‘스톡홀름 선언’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잠시 설렜다. 상업 출판사로부터 학술출판을 되찾아 학계의 손으로, 논문 편수가 아니라 질로 연구자를 평가하고 부정행위를 독립적으로 감시하자는 선언이었다. 노벨상의 도시에서 발표된 이 문서에는 게르트 기거렌처, 엘리자베스 빅 같은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나는 이 선언문을 읽으며 오래된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200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도 비슷한 선언이 있었다. 과학지식은 인류 모두가 완전히 자유롭고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가 돼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 우리는 그 도덕적 구호의 결말을 안다. 오픈액세스는 실현됐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공공재가 아니라 약탈적 저널 시장이었다....

    1687호2026.07.10 14:21

  • [김우재의 플라이룸](80) 돈이 안 돼도…기초과학은 국가의 품격이다
    (80) 돈이 안 돼도…기초과학은 국가의 품격이다

    나는 동물행동학자가 되고 싶었다. 콘라트 로렌츠가 갓 부화한 회색기러기 새끼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을 어미로 각인시키는 흑백 사진을 본 순간부터였다. 한 사내가 풀밭에 앉아 있고, 그 뒤를 새끼 거위들이 줄지어 따라가던 사진에는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어떻게 인식하고 따르게 되느냐는 거대한 질문이 통째로 들어 있었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그 질문을 던진 세 사람, 로렌츠와 니콜라스 틴베르헌, 카르 폰 프리슈에게 돌아갔다. 동물의 행동을 연구한 학자들이 의학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노벨상 위원회의 기초과학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폰 프리슈가 평생을 바쳐 해독한 것은 꿀벌의 춤이었다. 일벌이 꽃밭을 발견하고 돌아와 8자를 그리며 추는 춤, 그 각도가 태양에 대한 꽃밭의 방향을, 엉덩이를 흔드는 시간이 거리를 알려준다는 사실. 곤충이 동료에게 추상적 공간 정보를 상징으로 전달한다는 이 발견은 인간만이 언어를 가진다는 오래된 믿음에 처음으로 균열을 냈다...

    1685호2026.06.26 14:26

  • [김우재의 플라이룸 ](79) 논문 1편에 1700만원
    (79) 논문 1편에 1700만원

    나는 초파리를 연구한다. 몸길이 2~3㎜짜리 파리 한마리에서 유전자 하나의 기능을 알아내는 데 몇해가 걸리기도 한다. 그 지루하고 외로운 노동 끝에 겨우 논문 1편이 나오고, 그것은 다른 연구자의 실험 위에 벽돌처럼 한장 얹힌다. 뉴턴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고 했을 때, 그 거인은 앞서간 동료들이 정직하게 쌓아올린 벽돌의 더미였다. 과학이란 본래 그렇게 한장 한장 더디게 쌓아 올리는 탑이었다.오픈액세스-청구서의 수신인만 바뀐 가짜 혁명그런데 지난 2월, 그 어깨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음을 알리는 선언이 나왔다. 세계 최대 연구기관인 중국과학원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같은 일류 오픈액세스 저널 30여곳에 더는 논문 게재료를 대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난해 중국 학자들이 쏟아낸 오픈액세스 논문은 전 세계의 3분의 1, 그 게재료로만 1조원 넘는 돈이 빠져나갔다. 가장 권위 있다는 그 저널들에 등을 돌린 이유는 단 하나...

    1682호2026.06.05 14:56

  • [김우재의 플라이룸 ](78) 과학이 죽어가고 있다
    (78) 과학이 죽어가고 있다

    나는 초파리를 연구한다. 한마리의 작은 파리를 가지고 유전자 하나의 기능을 밝히는 데 몇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 지루하고 고독한 실험의 끝에 1편의 논문이 출판되고, 그 논문은 다른 연구자의 실험 위에 쌓인다. 과학은 이렇게 벽돌을 하나씩 올리며 지식의 탑을 쌓는 과정이다. 그 벽돌 하나하나가 진짜라는 신뢰, 그것이 과학의 작동 원리이자 토대다.그런데 지금, 그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아래 그림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올해 발표된 논문의 핵심 그림이다. 로그 스케일로 그려진 이 그래프에는 4개의 선이 있다. 맨 위의 검은 선은 전 세계 과학 논문의 총량이다. 그 아래 초록 선은 논문 검증 플랫폼 ‘펍피어(PubPeer)’에서 문제가 제기된 논문, 보라색 선은 철회된 논문이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으로 솟구치는 붉은 선이 논문공장 산출물이다. 이 붉은 선의 기울기는 나머지 모든 선을 압도한다. 2030년에는 이 붉은 선이 합법적 논문의 총량에 근접하거...

    1681호2026.05.29 14:45

  • [김우재의 플라이룸](77) 달을 향한 불꽃놀이
    (77) 달을 향한 불꽃놀이

    초파리를 다루는 유전학자에게 실험실은 하나의 우주다. 성공한 실험은 아름답고, 실패한 실험은 더 아름답다. 실패 속에 다음 질문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한국의 연구 현장을 돌아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땅의 과학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정부가 ‘K-문샷’을 선언했다. AI 3대 강국 도약, 12대 국가 난제 해결, 신약 개발 주기 10분의 1 단축. 구호는 장엄하다. 그런데 나는 이 장엄한 구호가 불안하다.DARPA 혁신 모델의 정수: 엘리트 유목민과 권한의 디테일혁신은 슬로건에서 오지 않는다. 혁신은 구조에서 온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60년 넘게 인터넷, GPS, 스텔스 기술, 음성인식을 잇달아 만들어낸 것은 예산이 많아서도, 구호가 거창해서도 아니었다. DARPA의 핵심은 놀랍도록 단순한 원칙 하나에 있다. 최고의 전문가에게 전권을 주고, 관료의 통제로부터 완전...

    1678호2026.05.08 14:36

  • [김우재의 플라이룸](76) 의학 논문은 왜 이렇게 많이 철회될까
    (76) 의학 논문은 왜 이렇게 많이 철회될까

    나는 초파리를 연구한다. 정확히는 초파리의 신경계와 행동의 유전적 기반을 탐구하는 기초과학자다. 임상 현장과는 거리가 멀고, 캐나다 의대에서도 근무해봤으며, 퇴행성신경질환 논문도 출판해봤지만, 여전히 내 정체성은 기초과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학 논문 생태계의 이상 징후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이유는, 언젠가부터 의학이 현대 생명과학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의학연구에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어떤 문제는 그 영역의 외부에 있을 때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논문 공장의 산업적 범죄로 사상 최대 철회 2023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1만건이 넘는 논문이 철회됐다. 과학계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이다.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철회 논문의 절반 이상이 의학 및 생명과학 분야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의학은 전체 과학 가운데 가장 많은 논문을 쏟아내는 동시에 가장 많이 철회당하는 분야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온라...

    1676호2026.04.24 15:05

  • [김우재의 플라이룸](75) 돈으로 쓴 논문들의 무덤
    (75) 돈으로 쓴 논문들의 무덤

    과학에도 거품이 있다. 주식시장처럼 과학의 거품 역시 처음엔 혁명처럼 보이다가 나중엔 낭비의 흔적만 남긴다. 2000년대 초 DNA 마이크로어레이(microarray·DNA 칩)가 그랬고, 지금은 단세포 RNA 시퀀싱(sequencing)이 그러하며, 인공지능(AI) 분야에서는 대형언어모델(LLM)이 그러하다. 이 세 가지 거품의 공통점이 있다. 엄청난 돈이 들어갔고, 화려한 데이터가 쏟아졌음에도 정작 우리가 알고 싶었던 인과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측정하는 능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이해하는 능력은 제자리를 맴도는 기묘한 시대에 살고 있다.2000년대 초반, 미국 유전체 분석기업 아피메트릭스(Affymetrix) 칩 하나면 수만개 유전자의 발현량을 한 번에 측정할 수 있었다. 당시 연구자들의 흥분은 이해할 만했다. 암 조직, 뇌, 간 심지어 통제가 부실한 샘플에도 앞다퉈 칩을 돌렸다. 학술지에는 “유전자 발현 서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논문...

    1674호2026.04.10 14:42

  • [김우재의 플라이룸] (74) 뇌와 면역계의 은밀한 대화
    (74) 뇌와 면역계의 은밀한 대화

    뇌는 오랫동안 면역계로부터 격리된 성역으로 여겨졌다. 혈뇌장벽이라는 물리적 방어선 뒤에 숨어 면역세포들의 침입을 원천봉쇄하는 요새. 그 개념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지만, 뇌와 면역계는 서로 완전히 격리된 2개의 독립 왕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상태를 점검하고, 때로는 서로를 파괴하기도 하는 복잡한 짝패로 진화했다. 그리고 이 관계가 무너질 때,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이 찾아온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뇌는 고독하지 않았다면역학 교과서를 처음 펼쳤을 때, 뇌가 ‘면역 특권 기관’이라는 표현을 배웠다. 마치 외교관처럼 면역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는 특별한 지위.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이었다. 뇌 안에는 이미 소교세포와 성상세포라는 이름의 면역 감시자들이 상주하고 있고, 이들은 신경세포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뇌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문제는 이 감시자들이 만성적으로 활성화되면,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1672호2026.03.27 13:38

  • [김우재의 플라이룸](73) 과학은 자동화되지 않는다
    (73) 과학은 자동화되지 않는다

    인공지능(AI)이 과학적 발견의 전 과정을 통째로 대체할 수 있다는 기술-자본주의적 환상이 학계와 산업계를 배회하고 있다.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설을 세우며, 심지어 논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련의 과정에 생성형 AI와 자율형 AI 에이전트가 도입되면서 ‘과학자의 역할이 과연 모두 자동화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의 이면에는 과학을 단순히 데이터를 투입해 정답(논문이나 특허)을 산출하는 기계적인 알고리즘으로 취급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업적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과학을 효율적인 논문 생산 자동화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 시선은, 과학이 지닌 사회적 노동으로서의 숭고함과 예측 불가능성을 간과한 지독한 기만이다.자동화의 신화와 과학이라는 본질천재적인 영웅 과학자의 신화를 걷어내고 나면, 과학의 진정한 얼굴은 매일 실험실에 출근해 실패한 데이터를 마주하고, 피페팅을 하며, 밤을 새워 코드를 디버깅하는 ‘보통 과학자’들의 고단한 육체적·...

    1670호2026.03.13 14:53

  • [김우재의 플라이룸](72) 아프리카 모기와 고독한 유전학자들
    (72) 아프리카 모기와 고독한 유전학자들

    우리는 종종 첨단 과학기술이 인류 모두의 고통을 평등하게 덜어줄 것이라 낭만적으로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의 과학은 자본과 권력의 지형도를 잔인하리만치 정확하게 반영한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는 여전히 5세 미만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장 치명적인 감염병이다. 매년 60만명 이상이 사망하지만, 이 질병은 ‘글로벌 북반구’라 불리는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에 종식된 과거의 질병으로 치부된다. 제약사와 주류 과학계의 투자 우선순위에서 철저히 소외돼온 것이다. 최근 ‘네이처’에는 이 끔찍한 무관심과 생물학적 한계라는 이중의 장벽을 맨몸으로 뚫고 나온 위대한 논문 1편이 실렸다. 영국의 유전학자들과 탄자니아의 현지 과학자들이 20년이 넘는 고독한 사투 끝에, 말라리아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 모기를 아프리카 현지에서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잊힌 질병과 싸우는 고독한 유전학자들, 그리고 아프리카...

    1668호2026.02.27 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