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미를 마친 암컷 초파리가 보여주는 변화는 극적이다. 알을 낳기 시작하고, 더 이상 다른 수컷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식성까지 변한다. 이 모든 과정이 수컷이 넘겨준 정액 단백질에 의해 조종된다는 사실은 20세기 유전학의 쾌거였다. 그에 비해 수컷은 그저 유전자를 배달하고 사라지는 소모품이자, 수컷 초파리의 교미 후 변화는 기껏해야 잠시 지쳐 쉬는 ‘불응기’ 정도로 치부돼왔다.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는 겨우 두 달 남짓 살아가는 초파리 수컷조차 교미 후 복잡한 생리학적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컷에게 교미는 끝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변신의 시작이다. 교미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수컷의 뇌와 몸은 생존과 다음 번식을 위해 완전히 재설계된다.틴베르헌의 위계와 행동의 재편동물행동학의 거두 니콜라스 틴베르헌은 동물의 행동이 위계적으로 조직돼 있다고 보았다. 배고픔, 성욕, 두려움 같은 본능이 서로 경쟁하며, 상황에 따라 하나의 행동이 선택되면 나머지는 억제된다...
1656호2025.11.28 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