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를 다루는 유전학자에게 실험실은 하나의 우주다. 성공한 실험은 아름답고, 실패한 실험은 더 아름답다. 실패 속에 다음 질문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한국의 연구 현장을 돌아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땅의 과학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정부가 ‘K-문샷’을 선언했다. AI 3대 강국 도약, 12대 국가 난제 해결, 신약 개발 주기 10분의 1 단축. 구호는 장엄하다. 그런데 나는 이 장엄한 구호가 불안하다.DARPA 혁신 모델의 정수: 엘리트 유목민과 권한의 디테일혁신은 슬로건에서 오지 않는다. 혁신은 구조에서 온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60년 넘게 인터넷, GPS, 스텔스 기술, 음성인식을 잇달아 만들어낸 것은 예산이 많아서도, 구호가 거창해서도 아니었다. DARPA의 핵심은 놀랍도록 단순한 원칙 하나에 있다. 최고의 전문가에게 전권을 주고, 관료의 통제로부터 완전...
1678호2026.05.08 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