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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다리] 미워도 다시 한번
    미워도 다시 한번

    야당이 미워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이보다 희극이 있을까. 시민들의 희생과 민주화 운동으로 일궈낸 한국의 민주주의가 2024년 한밤중에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보다 비극이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12월 3일 발포된 포고령에는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 통제”, “처단” 등 섬뜩한 문구가 박혀 있었다. 군·경이 국회에 투입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밤 국회로 갔다. 경찰이 출입을 막아섰고, 상공에선 계엄군을 태운 헬기들이 굉음을 내며 연이어 국회 안으로 향했다. 덮쳐오는 어둠이 얼마나 길고 깊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윤 대통령은 ‘불통’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으레 국회를 찾아 여야 의원들을 만났다. 미우나 고우나 정국 안정을 위해 협치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국회 개원식, 지난 11월 예산안 시정연설 모두 불참했다. 야당은 ‘명태균 게이트’ 등 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갖은 의혹을 조사...

    1609호2024.12.20 15:00

  • [꼬다리] 욕해도 시간 지나면 다 찍어줄 거라고?
    욕해도 시간 지나면 다 찍어줄 거라고?

    12·3 비상계엄 속보를 봤을 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나에게 비상계엄이란 영화나 책에서나 보던 것이었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잘 안 됐다. 겁도 났다. 밤 11시 이후 통행이 금지될 것이라는 가짜뉴스에 속을 뻔했다. 그래도 국회 앞으로 가는 길에 취객들이 해롱해롱하는 여상한 지하철 풍경을 보면서 조금 안심했던 것 같다. 비상계엄 선포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로 155분 만에 사실상 끝났을 때는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었다.155분에 그쳤지만 난데없는 비상계엄에 주변 사람들 모두 조금씩 영향을 받았다.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친구는 비상계엄 바로 다음 날로 예정된 야외 촬영을 과연 할 수 있을지 걱정을 했고, 주식 투자를 하는 동생은 원화를 달러로 미리 바꿔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날 하필 해외에 있던 후배는 만나는 외국인마다 “한국,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받고 진땀을 뺐다고 했다.뉴스에는 계엄 블랙홀이 연말 ...

    1608호2024.12.13 15:00

  • [꼬다리] 비상계엄 위험사회
    비상계엄 위험사회

    지난 12월 3일 저녁 나는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 음식집에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있었다. 대화 주제는 감사원장·검사 탄핵, 채 상병·김건희 특검 등 정치 현안부터 의원 본인의 인생 철학까지 다양했다. 때로 비판이 오갔지만 대체로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나이 지긋한 여성 점원은 의원에게 “팬”이라며 “정치를 잘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10시 23분 가게 TV에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담화 화면이 떴다. 비상계엄 선포였다.“당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나.” 의원은 전혀 몰랐다며 분노했고, 곧 긴급회의가 열린다며 자리를 떴다. 점원은 화장실에 가는 나를 복도까지 따라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가족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를 겪었다며 몸을 떨었다. 나는 “지금은 그때와 다를 것”이라고 답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급히 찾은 국회 정문은 차단돼 있었다. ‘탱크가 간다’는 등 두려움 섞인 소문이 휴대전화를 울렸다. 계엄 해제까지 대략 6시간이 흘렀다.계엄 ...

    1607호2024.12.06 15:40

  • [꼬다리] 여성 전용
    여성 전용

    헬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풋살에 이어 운동을 본격적으로 배우는 건 두 번째다. 저녁 약속이 없을 때면 일터에서 헬스장으로 곧장 퇴근하는 게 일상이 됐다. 퍼스널트레이닝(PT)도 따로 받고 있다. “술을 줄이라”는 PT 선생님의 잔소리가 내심 반갑기도 하다. 직장인이 된 이후 내 밥상을 이토록 살펴봐 준 이가 있었나 싶다.헬스장 앞엔 ‘여성 전용’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집에서 도보로 7분 거리라는 점이 1순위 요인이었으나, 여성 전용이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헬스’ 하면 남성 보디빌더부터 떠올리는 사람에게 일반 헬스장의 장벽은 높다. 운동하는 모양새가 조금만 어색해도 튀어 보이지 않을까? 탈의·샤워 시설 이용에서도 좀더 안전하겠단 생각이 들었다.풋살을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상이 보인다. 헬스장을 찾는 여성의 연령대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했다. 15㎏도 힘든데 40㎏ 무게를 거뜬하게 치는 ‘언니’(멋있으면 다 언니)들도 수두룩했다. 헬스...

    1606호2024.11.29 15:50

  • [꼬다리]영화 기사에 달린 정치 댓글
    영화 기사에 달린 정치 댓글

    “정치 영역에는 여지가 필요한데,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하다. 너무 전방위적으로 모든 곳에 법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2년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 문제를 사법적 판단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지난 11월 15일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TV 방송 토론과 국정감사에서 ‘대장동·백현동 의혹’에 거짓말을 한 혐의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돼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일각에선 ‘유력 대선주자를 말 한마디로 처벌해 대권을 막는 것이 옳으냐’며 야단이다.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인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2022년 대선 당시 나는 사회부에서 검찰을 취재하고 있었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은 검찰청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온갖 사건으로 상대 후보를 고발했다. 자신들이 고발한 사건을 제대로 ...

    1605호2024.11.22 15:30

  • [꼬다리] 수능 듣기평가 시간에 모기가 날아다닌다면?
    수능 듣기평가 시간에 모기가 날아다닌다면?

    어젯밤 모기에 물린 종아리를 긁었다. 모기라니, 11월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진작 서랍에 들어갔어야 할 모기향 훈증기는 연일 맹활약 중이다.몇 년 전만 해도 이맘때 모기가 날아다닌다는 건 농담거리도 못 될 이야기였다. 지금은 진지한 다큐다. 질병관리청 자료를 보니 올해 10월 3주 모기 개체수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8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기후위기로 폭염이 길어지고 가을이 따뜻해지면서 모기 활동기가 늘어났기 때문이란다. 정작 7~8월에는 너무 더워서 모기가 날지 못했다고 한다.이 글이 게재될 때쯤이면 폭염과 모기는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질지도 모르겠다. 끔찍하게 더웠던 몇 달 전 우리는 친구끼리 가볍게 만난 자리에서도 불안한 목소리로 폭염을, 기후위기를 걱정했다. 그땐 정말 지구가 콘에 올려진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주쯤이면 찬 바람이 불 테고, 모기들은 사라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피부에 닿지 않는...

    1604호2024.11.15 15:30

  • [꼬다리] 언론은 계속 ‘질문’을 한다
    언론은 계속 ‘질문’을 한다

    “(해당 언론은)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야 정의를 세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을 반영해주지 않았습니다.”“(언론이) 약자 입장을 보도하는 것이 훨씬 자극적이고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어서 회사 입장을 보도해주지 않았다는 취지인가요?”“네. 그런 취지입니다.”SPC그룹의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 탈퇴 종용’ 재판의 한 장면이다. SPC그룹 홍보담당 전무가 증인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SPC 측 변호인단 질의에도 수긍했다. 수많은 진술 중 유난히 이 대목에 생각이 머문 까닭은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어서다.‘약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소수자’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소수자의 목소리에 주목할까? 내 생각은 이렇다. 소수자들도 목소리가 있음을 공론장으로 가져와 알리는 ‘스피커 역할’이 곧 언론의 책무여서다. 다수의 목소리는 다양한 창구로 곧잘 전달된다. 자본을 업은 기업이라면 더 그렇다. 회사 견해...

    1603호2024.11.08 16:00

  • [꼬다리] 선택적 청문회
    선택적 청문회

    “김범석 의장이 안 나오면 의미가 있을까요?” 최근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과의 식사 자리에서 노동계가 주문하는 ‘쿠팡 청문회’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의원이 말했다. 미국 쿠팡Inc를 통해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김범석 쿠팡 의장이 4년째 총수 지정을 피해 간 상황에서 청문회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노동 현안에 대한 해당 의원의 진의를 의심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딘지 뒷맛이 썼다.22대 국회 개원 후 쉴 새 없이 청문회 정국이 펼쳐졌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소추 조사 청문회가 열렸다. 탄핵소추 당사자인 검사를 비롯한 주요 증인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검찰의 편파 수사, 진술 회유 등 의혹을 드러내 여론을 환기한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가 있다고 자평했다. 같은 논리라면 김범석 의장의 불출석이 예상되는 쿠팡 청문회는 왜 열리지 않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안 하는 것일까. 민주당은 다른 검사 2명에 대한 청문회도 열지 검토 ...

    1602호2024.11.01 16:00

  • [꼬다리] 북극곰만 아니라 베토디도 문제였네
    북극곰만 아니라 베토디도 문제였네

    얼마 전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가 홈페이지에 심상치 않은 공지를 하나 올렸다. 당분간 상황에 따라 햄버거에서 토마토를 뺄 수도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올해 폭염 때문에 농사가 잘 안 돼서 토마토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이유였다. 비슷한 시기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 업체 써브웨이에도 샌드위치와 샐러드에 넣는 토마토 양을 제한한다는 공지가 붙었다.‘토마토 실종 사태’를 다룬 온라인 기사들의 댓글도 읽어봤다. “토마토 없는 베토디(맥도날드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는 베토디가 아니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번엔 토마토냐”며 체념한 듯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덜컥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맥도날드도 토마토 수급이 어렵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 어디서나 균일한 맛과 품질을 제공한다고 자부하던 그 맥도날드 아닌가? 성큼 다가온 기후위기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올해 3월에 사과값이 많이 올랐을 때 경남 함양에 있는...

    1601호2024.10.25 15:30

  • [꼬다리] 좋은 심판
    좋은 심판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심사위원 안성재 ‘모수’ 셰프의 평가 방식이었다. 그는 1차전 심사 전 경연 참가자들에게 자주 이런 취지의 질문을 던진다. “이 요리의 의도가 뭡니까?” 그의 음식 평가는 이 답을 토대로 이뤄진다. 의도에 맞게 요리를 해냈는지 보는 것이다.이 기준은 까다롭다. 의도라는 게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맛있으면 좋겠다’ 같은 느슨한 설정으로는 어림없다. 만들려는 요리가 뭔지, 보통은 어떻게 만드는지, 본인은 뭘 다르게 할 생각인지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하다. 요리 이론, 지식과 철학이 없다면 여기부터 막히는데, 수행 능력도 요구된다. 소금간, “채소의 익힘 정도” 같은 건 ‘기본기’다. ‘훈연향이 나는 방어 세비체’라고 설명을 했다면 훈연향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고기가 이븐(even·일정한)하게 익지 않았다”는 혹평과 “음식은 무궁무진하다. 생각을 열라”는 충고가 함께 나온 배경이다....

    1600호2024.10.18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