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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다리] 형님 정치
    형님 정치

    “형사들한텐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 수습기자로서 경찰서를 돌며 사건을 캐는 교육을 받기 시작한 무렵 모 언론사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딱딱한 경찰들을 대하는 팁이라며 조언을 해준 것이었다.당연하게도 인생에 ‘형님’이라는 존재가 없는 나는 이 말이 좀처럼 입에 달라붙지 않았다. 무언의 단독기사 압박을 느껴서인지 이 호칭을 몇 번 입에 올려봤으나 이내 포기했다. 당직을 서는 형사들에게 다가가 “형님 간밤에 무슨 일 없었어요?” 묻는 수습기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남성 중심의 경직된 조직에서 네트워크를 쌓기 위한 일종의 위장술이자 의연해 보이려는 자기 주문과도 같았다.기업에서 일할 당시엔 연차가 꽤 나는 상사를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르는 남성 동료들을 적잖게 봤다. 이름에 ‘님’ 호칭을 붙여 서로를 부르는 게 이 기업의 문화로 공유됐지만 사실상 대외용이었다. 인사 시즌이면 몇몇 형이 가까운 아우들을 경쟁이 치열한 부서에 밀어준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1658호2025.12.12 14:44

  • [꼬다리] 2000년대 카페들
    2000년대 카페들

    요즘 우리 팀은 산업별 전문가를 인터뷰한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영화, 화장품, 라면, 조선업. 최근에는 15년 경력의 카페 사장을 만나 커피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커피 시장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카페는 시작하기 전이 제일 좋아요. 요트랑 똑같아요. 사기 전이 제일 좋아”라고 말했다. 그에게 ‘카페의 장점도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내가 여기서 커피 시장 좋다고 하면 악플이 달린다”고 말했다.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얼마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지 새삼 실감했다. 골목골목에 하도 많아서 ‘바퀴베네’라는 별명까지 있었던 카페베네, 24시간 영업해서 좋았던 탐앤탐스, 두툼한 허니브레드를 먹으러 갔던 엔제리너스도 예전만큼 보이지 않는다. 한때는 스타벅스에 대적했던 커피빈도 요즘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그 자리는 어느새 메가MGC커피, 컴포즈커피, 빽다방 같은 저가 커피 브랜드가 대체했다.그리고 ...

    1657호2025.12.05 14:49

  • [꼬다리] 이름에 대한 고민, 두 번째
    이름에 대한 고민, 두 번째

    국제 기사를 쓸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단어가 몇 있다. 러시아 정부·군대가 사용하는 ‘특별군사작전’이 그중 하나다. 침략 전쟁이라는 본질을 흐리는 말 같아 쓸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내 멋대로 바꿔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름 기준을 세웠다. 러시아 측 발언을 전할 때는 작은따옴표(‘’) 안에 넣어 적되, 기사 문장으로 풀어쓸 때는 침략, 침공, 전쟁 등 단어로 바꾸곤 한다.내가 러시아인이라면 이런 타협점을 찾기 어려웠을 것 같다.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의회는 군대 관련 ‘가짜정보’를 유포한 사람에 대해 최대 15년 징역형 선고가 가능하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이 법을 근거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 비판한 야당 정치인 등이 옥살이를 했다. 왜 이리 엄하게 구는가. 전쟁임을 공식 인정했다가 대외 책임 부담이 늘고 내부 비판 여론이 커질까 러시아 정부가 걱정해서란 분석을 나중에야 알았다.일본 기사를 쓸 땐 ‘처리수’와 ‘오염수’ 표현이 고민이다. 처리수는...

    1656호2025.11.28 14:44

  • [꼬다리] APEC, 그리고 경주
    APEC, 그리고 경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정상회의가 끝난 지 약 3주가 지났다. 10월 말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쉴 새 없이 일이 몰아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APEC 기간 미·중·일을 포함해 총 13개국 정상과 양자 회담을 했다. 곧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의 일이기도 했다. 11월 1일 밤 11시 무렵 경주역에서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 5년은 경주에 올 일이 없을 거다.’APEC 소회를 풀어볼까 하니 ‘경주’라는 공간만 기억에 남았다. 미국과의 관세협상 타결, 미·중·일 정상회담 등 굵직한 뉴스의 뒷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는데, 10여 년 만에 마주한 경주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이 또렷하다.울산에서 나고 자란 내게 경주는 낯선 도시가 아니다. 초·중·고교 시절, 경주는 영남권 청소년들의 수학여행·체험학습의 성지였다. 그래서 내심 경주에서 APEC이 열린다고 했을 때 반가웠다. 여러 우려가 혼재했지만, 경주가 ‘한국적인’ 도시라는 점...

    1655호2025.11.21 14:59

  • [꼬다리] 오래된 극장을 아끼는 마음
    오래된 극장을 아끼는 마음

    문화부에 와서는 부쩍 오래 살아남은 공간들에 눈길이 간다. 왜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지 않을까, 고민하고 걱정하는 이들을 숱하게 봐서일까. 땅값과 임대료가 분명 숨통을 조를 텐데도, 가치 있는 공간을 일궈보려는 노력에 마음이 간다.어느 술자리에서 “광주에 극장이 있는데, 내년에 100주년인가 그렇대…”라는 광주광역시 출신 지인의 말이 귀에 꽂힌 건 그래서다. 요즘 같은 시대에 100년이 다 돼가는 극장이 있어? 집에 가는 길에 ‘광주, 극장, 100년’을 검색했다. 어라, 100년은 아니고 올해가 90주년이란다. 지인은 “100주년을 준비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숫자를 착각한 모양이었지만, 뭐. 90년도 이미 귀하다. 극장에 대한 궁금증에 지난 10월 26일 출장을 떠났다. 광주 동구 충장로5가 광주극장으로.생각보다 좁은 골목에 예상보다 큰 건물이었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극장이자, 유일하게 남은 단관극장이라는 설명에 걸맞게도 4층짜리 건물은 회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

    1654호2025.11.14 14:51

  • [꼬다리] 한국베이글뮤지엄
    한국베이글뮤지엄

    오래전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의 콘셉트에 대한 누군가의 비판을 온라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런베뮤는 메뉴판을 영어로만 적고 영국 여왕 관련 상품을 팔 만큼 콘셉트에 ‘진심’인데 정확성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가령 런베뮤는 ‘팁 박스’를 놓지만, 정작 영국엔 팁 문화가 없다고 한다. 베이글은 유대인이 미국 뉴욕에서 유행시킨 음식이라 런던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고도 글쓴이는 덧붙였다. 조금 웃기긴 했지만, 그 자체로 큰 문제인가 싶었다.사망 직전 ‘주 80시간’ 수준의 과로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 20대 노동자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때 그 글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콘셉트가 어쨌든 런베뮤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뜨거운 ‘핫플’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저 겉만 번지르르했다.과로사 의혹 보도 이후 ‘쪼개기 계약’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직원들의 폭로로 불거졌다. 경쾌한 매장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과도한 감정노동을 강요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측이 산재를 신...

    1653호2025.11.07 15:28

  • [꼬다리] 가해자가 되지 않는 법
    가해자가 되지 않는 법

    “경민씨, 노조 사무실로 잠깐 와주실 수 있나요?”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혹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했나, 하고. 다행히 다른 일이었지만 그때 새삼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를 괴롭힌 적이 없다고 확신하기 어렵다.오래된 공포가 있다. 네이트판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서 고발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알지도 못한 사이 누군가를 괴롭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에 만난 애인들, 얼굴도 흐릿한 동창, 함께 일했던 사람, 취재원이 언제든 내 잘못을 들춰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나를 괴롭힌 사람들도 내가 괴로운 줄 모르고 그렇게 행동한 경우가 많았을 거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뉴스에는 주변인을 아주 적극적으로, 지속해서, 악의를 가지고 괴롭힌 이들이 등장한다.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려고 괴롭힌 사람들. 누군가 힘들 걸 알면서도 자기 욕심을 앞세운 사람들. 그러다 유명해져서, 혹은 더 높은 자리에 가려다 끝끝내 폭로를 당한 사람들.그러나 더 많은...

    1652호2025.10.31 14:50

  • [꼬다리] 아니면 말고
    아니면 말고

    요즘 국회에선 여야 할 것 없이 ‘아니면 말고’가 원칙처럼 통용된다. 엄밀히 말하면 ‘아니어도 맞고’다. 한계선을 넘어선, 음모론에 가까운 주장이 이어진다. 타깃을 잡아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고, 주장을 뒤집는 사실이 제시돼도 인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사실’ 여부가 아니라 ‘적’을 향한 분노다.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두고 중국인에 의한 범죄 행위와 전염병 확산 가능성에 유의하라는 주장이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나왔다. 국민의힘은 ‘중국인 3대 쇼핑(의료·선거·부동산) 방지법’ 당론 추진까지 공언했다. 코스피 상승의 배경으로 중국 자본 개입설을 제기하면서도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김민수 최고위원)라고 했다.이들은 보수진영 일각의 혐중 정서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에 타당한 우려점을 짚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있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가령 외국인 건강보험 부정수급자의 70.7%가 중국인이라는 국민의...

    1651호2025.10.24 15:11

  • [꼬다리] 카카오톡과 싸이월드
    카카오톡과 싸이월드

    “악, 내 카톡도 업데이트됐어.” 카카오톡이 원치 않게 업데이트가 됐다.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듣고, 업데이트를 누르지 않고 버티고 있던 참이었다. 가나다순으로 정렬됐던 전화번호부 대신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사진이 주르륵 떴다. 취재원이 러닝을 하는 사진,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동창의 아기 사진이 보였다. 알고 싶지 않았던 TMI(과도한 정보)들을 보다가 다른 사람 카톡에도 내가 이렇게 뜰까 싶어서 얼른 모든 사진을 비공개로 돌렸다.인스타그램을 따라 하려다 혹평만 듣고 있는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보며 싸이월드가 생각났다.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내게 첫 SNS는 싸이월드였다. 초등학생 때 계정을 만들어서 대학생 때 페이스북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미니홈피를 꾸미고 용돈으로 도토리를 사 모았다. 작년에는 싸이컴즈라는 회사가 싸이월드 부활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케팅 책임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와 싸이월드의 차별...

    1650호2025.10.17 14:53

  • [꼬다리] 댓글창은 공론장이 될 수 없을까
    댓글창은 공론장이 될 수 없을까

    국제부 생활도 어느덧 1년 5개월차, 업무상 매일 외신을 읽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각 언론사의 댓글 정책이다. 내 담당 지역인 일본의 유력 일간지 아사히신문은 일반 독자가 홈페이지에 댓글을 다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대신 ‘코멘트 플러스’라는 제도를 운용한다. 아사히가 선정한 전문가에 한해 ‘코멘테이터’로 활동할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이달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외국인 규제 강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가 달렸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들이 데이터도 보이지 않은 채 에피소드 중심으로 외국인에 의한 위협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일본 외무성 주임 분석관을 지낸 작가 사토 마사루의 지적이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보수파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상이 ‘나라 공원에서 사슴을 발로 걷어차는 외국인 관광객이 있더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이후다.아사히는 이 같은 댓글 가운데 기사에...

    1649호2025.10.10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