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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다리] 글자 가리고 아웅
    글자 가리고 아웅

    평소처럼 인스타그램 ‘돋보기’를 뒤적이며 좀비처럼 도파민을 찾아헤매던 어느 날이었다. 카드뉴스로 가공된 재밌고 시시껄렁한 ‘썰’들을 보는 게 취미인데, 그날따라 특이한 현상이 새삼 눈에 띄었다.카드뉴스들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범죄나 죽음을 연상시키는 단어의 글자 일부를 특수문자로 바꾸거나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이다. ‘범○(범죄)’, ‘마○(마약)’, ‘살○(살인 또는 살해)’, ‘○살(자살)’…. 심지어 ‘죽었다’는 서술어도 ‘○었다’ 같은 식으로 쓰인다. 초성만으로 ‘ㅂ죄’ ‘ㅁ약’ 같이 쓰거나.신문이나 뉴스에서도 자주 쓰는 단어다. 그런데 언론보다 훨씬 자유롭게 언어를 쓸 수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왜 그 단어들이 가려질까? 찾아보니 가장 유력한 사유는 ‘자체검열’이었다. SNS 운영사나 알고리즘이 범죄·죽음 관련 단어를 기계적으로 차단(필터링)하기 때문에, 작성자가 애초에 알아서 단어를 가리는 것...

    1674호2026.04.10 14:46

  • [꼬다리] 종량제 봉투 너무 싸다
    종량제 봉투 너무 싸다

    “일반 쓰레기봉투 있어요?”, “다 떨어졌어요. 월요일에 들어와요.”지난 주말 동네 슈퍼에 갔다가 계산대 앞에서 손님과 직원이 나누는 말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집에 와서 종량제 봉투가 몇 장인지 세어봤다. 5ℓ짜리 일반 쓰레기봉투가 11장, 1ℓ짜리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15장 있다. ‘쓰봉 대란’ 전 사놓은 것이다. 우리 집은 이 정도면 한참 버틴다. 한숨 돌렸다.처음엔 대란이 왜 나는지 의아했다. 쓰레기봉투 가격은 단순 봉툿값이 아니라 내가 버린 쓰레기에 대해 내는 값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봉투를 만드는 데 드는 재룟값도 포함돼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종량제 봉투를 사면서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를 수거하고, 운반하고, 처리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전체 비용에 대해 일부를 지급하는 것이다. 많이 버리는 사람은 많이 내고, 적게 버리는 사람은 적게 낸다. 30여년 전 종량제 제도가 만들어진 핵심 원리다. 그러니 최저임금이 오르고 유류비가 출렁일 때도 ...

    1673호2026.04.03 14:40

  • [꼬다리] 한가한 이야기
    한가한 이야기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3월 10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6·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제안하자 “한가하게 개헌을 논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여당이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법 등 이른바 ‘검찰개혁’ 법안을 일방 처리하는 데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반응이었지만, 중요 의제를 ‘한가한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는 국회 풍경은 익숙해진 지 오래다.과반 의석을 점한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검찰과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 처리에 당력을 집중해왔다. 재판소원, 법왜곡죄, 대법관 증원 입법에 이어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소·공소 유지만 담당하는 공소청을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이 여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민주당은 검찰개혁 법안이 곧 ‘민생 입법’이라고 주장한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로 피해를 본 건 비단 정치인만이 아니라는 취지다. 문제는 여당이 일부 검사들의 권력 남용을 교정하는 데만 몰두해 대부분 시...

    1672호2026.03.27 13:39

  • [꼬다리]대통령의 ‘주유소 폭리’ 프레임이 놓친 것들
    대통령의 ‘주유소 폭리’ 프레임이 놓친 것들

    “유륫값 많이 안정돼가고 있나요? 바가지는 신고하세요.” 석유류 최고가격제가 도입된 지난 3월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글 아래엔 경기 시흥 지역 18개 주유소의 1ℓ당 휘발유 가격이 표기된 지도도 첨부돼 있었다. 이 글은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일부 주유소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지 여드레 만에 올라온 것이다. 당시에도, 이번에도 댓글 반응은 비슷했다. ‘주유소=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이었다.정부 부처는 이런 여론을 기름값 상승 억제에 활용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부터 “국가 위기에 무분별하게 가격을 올리는 파렴치한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며 주유소 폭리 프레임을 강화했다. 그래서일까. 시장 가격 개입 우려로 사문화된 최고가격제 도입도 큰 반발이 없었다.하지만 주유소가 일방적 비난을 받는 것이 온당한가는 의문이 남는다. 이들 발언 어디에서도 주유소들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던 이유를 살핀 흔적을...

    1671호2026.03.20 14:40

  • [꼬다리] 왜 ‘고소득’만 문제 삼을까
    왜 ‘고소득’만 문제 삼을까

    지난해 11월 10일 대학 동기들과의 술자리가 가끔 떠오른다. 왜 날짜를 기억하느냐면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 청약 디데이여서다. ‘당첨만 되면 30억원 로또’라는 둥 각종 희망적 전언이 여기저기 떠돌 때였다. 소문에 따르자면 신청 안 하는 사람이 바보 같았다. 하지만 정작 술자리에 청약 신청한 사람은 없었다. 친구는 “현금 20억원은 있어야 한다는데, 그 돈을 어디서 구하냐”고 했다.지난해 ‘6·27 대책’ 발표 이후 상황이 기억난다. 대책 요지는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묶는다는 것이었다. 이후 일부 언론에서 ‘고소득 흙수저 강남 입성 막혔다’는 유의 기사가 나왔고, 이에 ‘고소득이 어떻게 흙수저냐’, ‘언론이 부자 걱정해준다’는 등 비판이 제기됐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성토와 과욕이라는 비난이 서로를 겨냥하는 나날이었다.개념상 혼란부터 정리해야겠다. 소위 ‘수저 계급’은 소득이 아닌 세습 자산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나뉜다. 연봉 1억원 이상인 ...

    1670호2026.03.13 14:56

  • [꼬다리]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

    ‘※즉시 보도 가능 [이재명 대통령 X(엑스·구 트위터) 메시지]’ 요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밤낮으로 보는 알림이다. 대통령이 SNS에 글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리는 공지다. 진작에 이 대통령 SNS 계정을 팔로우하고 알람 설정까지 걸어둔 상태다. 취임 초반 국정 홍보에 집중됐던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올해 들어 업로드 횟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주제도 부동산, 민생 현안으로 확장됐다. 대통령의 공식 석상 발언뿐 아니라 SNS 메시지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바삐 좇아야 한다.지난 설 연휴를 앞두고 이 대통령의 엑스 글을 전수조사했다. 과거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시절부터 SNS 사랑이 남달랐던 이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본격 펼쳐보이는 SNS 정치에는 어떤 전략이 숨어져 있을지도 궁금했다. 기사 마감은 쉽지 않았다. 마감 당일(2월 13일)에도 이 대통령은 쉴새 없이 SNS에 글을 올렸다. 해병대 연평부대 방문 일정이 기상 상황으로 취소된 날이었다. 활동은 SNS로 ...

    1669호2026.03.06 14:59

  • [꼬다리] 리뷰의 선을 고민하는 일
    리뷰의 선을 고민하는 일

    나는 느린 관객이었다. 지인들로부터 “그 영화 봤어? 좋더라”는 얘기를 몇 번 들어야 ‘한번 봐볼까?’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건 내가 관대하지 못한 편이어서기도 했다. 캐릭터를 쌓다 말고 갑자기 감정선이 널을 뛰거나, 영화라 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반복되거나, 감독의 부적절한 여성관이 의심되는 장면이 거슬리거나. 갖가지 이유로 ‘못 만든’ 영화가 (내 기준에) 많았다. 정보 없이 갔다가 2시간 내내 고통받고 싶지 않았다. 평이 좋은 영화를 뒤늦게 골라보는 이유였다.문화부 영화 담당인 지금 나는 누구보다 빠른 관객이다. 언론 시사회는 대부분 영화를 일반에 처음 내놓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일로 영화를 본다는 건 대체로 호사지만, 좋은 것만을 쏙쏙 편식하던 내게는 그 자유를 잃는 일이기도 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여도 일단 봐야 하니까. ‘제발 의외로 잘 만들었기를.’ 암전되기 전 시사회장에서 남몰래 기도하게 됐다. 꼼짝없이 2시간을 묶여 있을 나를 위해.그런데 희한했다...

    1668호2026.02.27 13:11

  • [꼬다리] 몬주익 아저씨
    몬주익 아저씨

    신혼여행으로 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성. 9월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 우리 부부는 녹초가 된 채 잔디밭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지칠 만도 했다.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른 뒤 눈만 겨우 붙이고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탔으니. 몬주익 성에 오기 전에도 우리는 ‘한국인답게’ 숙제하듯 이곳저곳을 헐레벌떡 돌아다닌 참이었다. 피로에 젖은 우리는 눈앞에 서커스단 묘기가 펼쳐지는데도 자꾸 집중력을 잃었다.그 아저씨를 마주친 건 서커스를 다 보고 마지막으로 몬주익 성을 한 바퀴 돌던 때였다. 아마도 몬주익 성 관리직원이었을 그 아저씨는 형광 점퍼를 걸치고, 30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웅장한 고성의 성벽에 기대, 언덕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뒷배경 삼아, 멍때리고 있었다. 휴대전화도 없이 몸에 힘을 다 빼고 광합성하는 식물처럼 팔을 흐느적거렸다. 너무도 성실하고 장엄한 멍때림이었다.와, 저 아저씨 봐. 진짜 잘 쉰다. 역시 여유의 스페인인가 하며 웃던 우리는, 갑자기 그 모습...

    1667호2026.02.13 15:01

  • [꼬다리] 하우 아 유, 생큐 앤드 유
    하우 아 유, 생큐 앤드 유

    “모든 에너지는 장점과 단점이 있어요. 태양광은 친환경이고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굉장히 큰 장점을 갖고 있지만, 간헐성이라고 해서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어요. 원자력도 우리가 원할 때 전기를 뽑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주민들이 좀 불안해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같은 것을 조화롭게, 우리나라에 딱 적합하게 에너지를 잘 섞어서 써야 해요. 그걸 우리가 에너지믹스라고 합니다.”“태양열 에너지랑 원자력 에너지랑 의견이 분분한 거로 알고 있는데, 원자력 에너지도 저탄소라면 원자력 에너지가 더 좋은 거 아닌가요?”라는 가수 이창섭의 질문에 조형규 서울대 원자력핵공학과 교수가 답한 내용이다. 이 장면을 2년 전, 유튜브 예능 ‘전과자’에서 봤다. 원자력핵공학과 교수니까 원자력 편을 들지 않을까 예상하며 봤는데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하며 ‘잘 섞어 써야 한다’는 말이 의외였다. 오랜만에 보는 에너지에 대한 거리감과 균형감 있는 시선이라는 생...

    1666호2026.02.06 14:33

  • [꼬다리] 구려도 하는 것의 의미
    구려도 하는 것의 의미

    “구려도 하는 것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영화 <세계의 주인>의 윤가은 감독은 지난해 12월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가 주관한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친족 성폭력 문제를 영화에 담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들여다봐야 하는 것을 피하지 않고 들여다본다면, 하는 동안 배울 것 같았다”며 이렇게 답했다.돌이켜 보면 내가 붙잡아온 것 역시 ‘구려도 한다’는 마음이었다. 뭔가 구린 것이 될 것만 같지만 일단 하고, 내 품에서 떠나보내는 것. 인터뷰에 꽤 공을 들이고, 이것저것 신경 쓴 취재여도 기사를 쓰면서 ‘어떡하지. 구린 것 같아’ 불안이 엄습했다. 그래도 어쩌나. 마감은 다가오고, 기사는 내 손을 떠난다.어떤 글은 구린 무언가로서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고, 또 어떤 글은 나름의 의미를 남겼다. 가령 인터뷰이가 기사를 보고는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할 수 있어 좋았다고 연락을 준다거나, 기사가 던진 질문에 호응하며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독자의 반응을 접...

    1665호2026.01.30 1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