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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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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겸의 풍경](19)진안 마조마을 ‘씨 없는 감’ 다듬다 가을이 묻었네
    (19)진안 마조마을 ‘씨 없는 감’ 다듬다 가을이 묻었네

    ‘무진장’이라 일컫는 한국의 오지가 있다. 전북의 무주, 진안, 장수의 앞글자를 따서 ‘무진장’이라 부르는데, 그중에서도 진안은 독특한 구석이 있다. 마이산은 다른 지역의 산과는 다른 묘한 형태를 띤다. 마이산의 탑사는 고드름이 거꾸로 자란다고 한다. 진안 여행을 하다 보면 ‘여기는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오묘한 기운이 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진안의 골짜기 안쪽 마조마을로 가면 이 생각이 한층 더 짙어진다. 이 동네 감나무는 씨 없는 감을 내놓는다. 희한하게도 다른 마을의 감나무를 옮겨심으면 씨가 없어지고, 이 마을의 감나무를 옆동네에 옮겨심으면 씨가 생긴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씨 없는 감은 달기는 또 얼마나 단지. 그 신비로운 마을에 지금 곶감 만들기가 한창이다. 지난 한 생이 고스란히 깃든 두툼한 손이 감 껍질을 벗기고, 그 감을 주렁주렁 매달아 말린다.

    1452호2021.11.05 14:49

  • [정태겸의 풍경](18) 영월 청령포숲-단종의 눈물이 서린 ‘육지 속 섬’
    (18) 영월 청령포숲-단종의 눈물이 서린 ‘육지 속 섬’

    배를 타고 서강을 건넜다. 들어서는 초입, 나무가 온통 누웠다. 이 광경을 단종도 보았을까. 1456년, 세조 2년이 되던 해였다. 성삼문, 박팽년 등의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의 복위를 꾀했지만 실패했다. 그 유명한 사육신 사건이다. 이 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됐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돼 지내던 육지 속의 섬이다. 뒤로는 가파른 절벽이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서강이 굽이쳐 흐른다. 왕위를 선양하고 불과 3년 만에 그는 세상을 등져야 했다.단종의 일화를 알고 이곳을 찾으면 한쪽으로 누워 있는 소나무의 형상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단종의 어가 쪽으로 90도 가까이 누워 있는 노송은 정말 단종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예를 다하는 모습이다. 굳이 선후를 따지자면 노송이 있었고, 한쪽으로 기운 채 자란 솔숲이 먼저 있었다. 그 자리에 단종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어가 위로 솟은 나무가 어가를 감싸 안은 듯한 모습은 자꾸만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1447호2021.10.01 15:22

  • [정태겸의 풍경](17)경북 성주 성밖숲
    (17)경북 성주 성밖숲

    경북 성주읍 바로 옆의 숲은 ‘기이하다’라는 표현이 걸맞은 곳이다. 보면 볼수록 오묘하다. 용이 용틀임하듯 뒤틀리며 자라난 나무, 제각각 개성대로 삶을 살아낸 듯한 모습이다. 이 숲의 주인공은 왕버들이다. 버드나무는 천성이 물을 좋아한다. 물가에 자리를 잡고 살지만, 그래서 오래 살기 어렵다. 쉬이 썩기 때문에 수명이 짧다. 그럼에도 이 숲의 왕버들은 이미 300년의 생을 살아왔다.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어 지금에 이르렀을지 감히 가늠키도 어렵다.이천천이 흘러가는 곁으로 숲이 만들어진 건 조선 중엽이다. 당시 서문 밖에서 아이들이 자꾸 죽었다. 이런 흉사를 막고자 숲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일종의 비보림인 셈이다. 처음에는 밤나무를 심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모두 베어내고 대신 버드나무를 심었다. 왕버들은 각자 저마다의 삶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오랜 시간 이렇게 사람이 쉴 수 있는 모두의 휴식처가 돼주고 있다.

    1444호2021.09.03 15:38

  • [정태겸의 풍경](17)남한산성 소나무숲-한그루마다 애틋하게, 마을이 함께 지켜낸 숲
    (17)남한산성 소나무숲-한그루마다 애틋하게, 마을이 함께 지켜낸 숲

    산의 능선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 같은 지형, 그곳에 번화가가 있다. 숲에 오르는 길은 이 번화가의 로터리에서 출발한다. 남한산성의 둘레길은 완연한 늦여름에 잠겼다.남한산성은 냉혹하고 처절한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이지만, 반대로 숲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성 아래의 마을은 자체적으로 ‘금림조합’을 만들어 숲을 지키고자 했다. 20세기 초, 곳곳이 민둥산이었던 다른 지역과 달리 이 일대는 푸른 숲을 유지했다. 덕분에 남한산성의 소나무숲은 90년 넘도록 울창한 수림을 자랑한다.산성의 숲길을 걸으며 저마다 개성 있는 모습으로 자라난 소나무를 유심히 살펴본다. 저 나무 하나하나가 함께 살고자 했던 이곳 마을 주민들의 노력이요, 결과물이다. 이 길을 걸을 땐 풍경을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저 숲을 이룬 소나무 한그루 한그루의 생김새를 마음에 새길 일이다. 우리 곁에 훌륭한 숲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1442호2021.08.20 14:41

  • [정태겸의 풍경](16)영양 주실마을 숲비로소 보았네 청록파의 숲을
    (16)영양 주실마을 숲비로소 보았네 청록파의 숲을

    “맴, 맴, 매에.”여름의 복판에 섰다. 경북 영양은 국내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다. 태백산맥에서부터 이어지는 산자락 깊은 곳의 마을. 주실마을이라 부르는 이곳에 커다란 마을숲이 있다. 수백년 넘은 노거수가 군락을 이룬 숲은 마을의 입구다. 조광조의 기묘사화를 계기로 전국에 흩어진 한양 조씨 집안 중 일부가 영양으로 흘러들어왔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 1629년(인조 7년)의 일이다.마을은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좌청룡이 약한 지형에 앉았다. 이를 보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 이 마을숲. 느티나무가 주를 이루고 참느릅나무, 검팽나무, 팽나무, 시무나무, 버드나무 등이 빼곡하다. 원시적이라는 표현이 더없이 어울린다. 영양에서 봉화로 나아가는 길목, 울창한 숲 아래에선 거센 땡볕도 맥을 못 춘다. 더없이 좋은 이런 천혜의 숲을 벗 삼아 컸기 때문일까. 현대 시의 거목이었던 청록파 조지훈의 고향이 이곳 주실마을이다. 그가 어찌 그리도 맑고 아름다운 시를 ...

    1439호2021.08.02 11:27

  • [정태겸의 풍경]한여름에도 15도, 근육질 나무의 숲
    한여름에도 15도, 근육질 나무의 숲

    전북 남원 행정마을의 서어나무숲을 찾아갈 적기는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한여름이다. 그 숲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한기가 느껴질 만큼 시원하다. 이곳은 지리산의 해발 500m에 자리한 분지 지형이다. 제법 고도가 높아 산 아래와 비교하면 기온이꽤 낮다. 거기에 더해 서어나무는 잎이 넓은 활엽수. 강렬한 태양을 막아줘 숲에 들어가 있으면 훨씬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서어나무 그늘은 여름 내내 평균 15도 정도로 온도가 유지된다는 이야기도 있다.서어나무 숲은 유독 이 마을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마치 평평한 대지 위에 불룩 솟아 있는 언덕을 보는 듯하다. 수령 200년 이상의 굵직한 서어나무 100그루가 모여 있으니 존재감 하나는 무엇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숲의 크기가 그렇게 큰 것은 아니다.면적은 1600㎡(약 500평) 남짓. 서어나무는 ‘근육질 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좀처럼 동의가 안 된다. 그것보다는 자작나무를 ...

    1437호2021.07.19 10:37

  • [정태겸의 풍경](14)낙동강 너머 술 빚는 마을
    (14)낙동강 너머 술 빚는 마을

    경북 안동에서 봉화 방면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달리면 낙동강 상류를 만난다. 급격하게 휘돌아가던 물길이 U자를 그리며 완만하게 속도를 늦추는 그곳. 강 건너 툭 튀어나온 그 자리에 마을이 있다. 퇴계 이황이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라는 평을 남길 만큼 아름다운 곳. 맹개마을이다. 이 마을로 들어가려면 낙동강의 물길을 이기고 도강해야 한다. 낙동강이 해자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강 곁의 외딴 이 자리는 어느 순간부터는 버려진 땅이 됐다. 이곳을 다시 되살린 건 정보통신(IT)사업을 하던 박성호씨. 그는 우연히 여행을 왔다 이곳을 발견하고 이내 남은 생을 의탁하기로 했다. 그 뒤로 15년, 그는 이곳에 집을 짓고 1㎞가 넘는 너른 밀밭을 일궜다. 하루 종일 햇살이 쏟아지는 이 마을에서 밀은 푸른 생기를 뽐낸다.마을에서는 직접 재배한 맹개밀로 술을 담근다. 고조리서인 <수운잡방>에 나온 기록을 토대로 오래전의 밀 소주를 되살려낸 것....

    1434호2021.06.25 16:21

  • [정태겸의 풍경](13)대청호 오백리길, 문짝의 변신
    (13)대청호 오백리길, 문짝의 변신

    호수 저편으로 해가 올라올 거라기에 이른 새벽부터 물가로 갔다. 기대가 무색하게도 하늘은 구름만 가득. 비록 반짝이는 일출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침의 대청호는 충분히 신비로운 기운 가득했다. 호수 둘레로 길이가 오백리. 그래서 오백리길이다. 과거에는 버려지다시피 했던 길이지만 이제는 근사한 트레킹코스. 물가 곁에는 쓰레기 더미에 놓여 있던 문짝이 들어와 짐짓 근엄한 척 서 있다. 문은 그곳에 서서 호수의 풍경을 담는 예술작품이 됐다.이 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단풍나무 군락지다. 이토록 고즈넉한 단풍나무 길이 또 있던가. 보면 볼수록 기품이 느껴지는 숲이다. 오백리길을 따라 잠시 산책을 즐기는 건 30~40분이면 족하다. 아침 햇살이 쏟아지기 전, 길을 걸으며 은은히 빛나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 호수에서 사람과 물과 산이 한데 만나고 있었다.

    1431호2021.06.04 15:42

  • [정태겸의 풍경](12)바다가 보이는 양떼목장의 늦봄
    (12)바다가 보이는 양떼목장의 늦봄

    꽃바람에 코끝이 간질거리던 늦봄날이었다. 바이러스를 피해 멀리 경남 남해군의 바닷가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양떼목장이 있다고 했다. 이 섬 어디에 그런 곳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지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핑곗김에 차를 몰아 설천면의 어느 산기슭을 따라 올랐더니 삐죽 솟아오른 산등성이에 너른 초원이 펼쳐졌다. 마치 스위스 어느 산골처럼 양 떼와 산양이 있었다.햇빛이 쏟아지는 푸른 초원은 따스해 보였다.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은 평화롭기만 했다. 아기 양은 엄마를 찾아 울고, 엄마 양은 아기를 부르며 “매에” 길게 우는 늦봄날의 풍경. 모처럼 눈이 시원해 신이 났다. 남해라는 섬이 커봐야 얼마나 크다고, 섬 속에 양떼목장이라니. 신선했다.목장에서 직접 개발했다는 단호박 카스텔라를 사 점심 삼아 우물거리다 커피 한모금을 홀짝 들이켰다. 테라스 바로 아래로 바다가 펼쳐지기에 섬이구나 싶었다. 마치 파란 물감을 푼 것처...

    1427호2021.05.07 11:19

  • [정태겸의 풍경](11)수선화가 물들인 봄
    (11)수선화가 물들인 봄

    저 멀리 노란 물결이 보였다. 충남 서산시로 들어가는 길 한쪽의 마을. 그 끝에 너른 수선화밭이 넘실거렸다. 먼 곳에서 보는 수선화 군락은 노란 아지랑이 같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법한 고택 주변은 온통 노란 빛이었다. 수선화 군락은 6600여㎡, 약 2000평에 달한다. 유기방 가옥의 주인인 류기방씨가 20년 전부터 하나하나 심어 가꾸었다고 했다. 군락은 고택 앞에서 시작해 뒷산 언덕을 따라 이어진다.혼자 시작한 일은 봄마다 장관을 이뤘고, 소문을 듣고 사람이 모여들었다. 덕분에 봄마다 마을은 축제다.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두니 이곳을 찾아온 이들이 여유롭게 봄을 만끽하는 자리가 됐다. 꽃과 꽃 사이로 배추흰나비가 하늘하늘 날아다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봄날의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바쁘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전이가 빠르다. 모두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자연스레 미소를 띠게 된다.

    1423호2021.04.09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