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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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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겸의 풍경](29)경북 안동 하회마을
    (29)경북 안동 하회마을

    경북 안동 하회마을이 북적거렸다. 2년 동안 모일 수 없었던 풍산 류씨의 후손이 한자리에 모였다. 음력 5월 6일(지난 6월 4일)은 풍산 류씨 집안의 어른인 서애 류성룡 선생의 기일.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다. 이틀 전부터 충효당에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 제사를 준비했다.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제사는 자정부터 시작한다. 수십명의 풍산 류씨 후손이 하얀 도포와 갓을 차려입고 도열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관이다. 제사상 위에 진설한 상차림을 눈여겨봐야 한다. 북어, 고등어, 상어, 방어, 가자미, 가오리, 문어를 켜켜이 쌓고 그 위에 다시 소고기와 닭을 올린 ‘도적’이 제사상의 중심이다. 5가지 탕을 한 번에 올리는 것도 특색이다. 이는 영의정의 제사상을 의미한다. 황제는 9탕, 임금은 7탕, 영의정은 5탕이다. 이날 제사에 참석한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장개’다. 서애 ...

    1485호2022.07.01 14:51

  • [정태겸의 풍경](28)파주 덕진산성
    (28)파주 덕진산성

    경기도 파주의 민간인 통제선을 넘었다. 이 길을 따라 마지막으로 북쪽을 향해 다녀온 게 어언 15년 전이다. 당시에는 개성 시내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지금은 철책을 넘어 북으로 향하는 것이 요원하기만 하다. 다만 먼 발치에 서서 북쪽을 바라볼 뿐이다.일반인에게는 아직도 쉬이 열리지 않는 민간인 통제구역이지만, 그 안에도 다녀올 만한 유적지가 꽤 많다. 경기도 파주 임진강변의 덕진산성이 대표적이다. 2014~2015년의 발굴조사 결과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랜 기간 주요 방어시설로서 역할을 해왔다.논두렁 곁에 차를 대고 일행과 산성에 올랐다. 대략 15분 정도. 덕진산성의 치에 닿았다. 치는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감시하는 망루와도 같은 기능을 한다. 발아래로 임진강이 굽이치며 남과 북을 가로지른다. 평온하기만 한 그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언제쯤...

    1479호2022.05.27 13:52

  • [정태겸의 풍경](27)경북 경주
    (27)경북 경주

    경북 경주의 봄은 화려하다. 벚꽃을 시작으로 온갖 꽃이 차례차례 만발하면, 꽃을 찾아오는 이들도 절정을 이룬다. 꽃이 지면 봄도 끝난 것 같지만, 실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황룡사지와 분황사의 사이, 푸른 청보리밭이 푸른 봄의 빛깔을 뽐낸다.황룡사는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었다. 크기가 무려 6만6000여㎡(약 2만평)에 이르렀다. 당대 가장 큰 규모였다. 황룡사가 신라의 왕을 비롯한 귀족의 사찰이었다면, 바로 곁에 선 분황사는 서민의 기도처였다. 모전석탑으로 유명한 이 절은 소박하지만 단단한 인상을 풍긴다. 과거에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만 되면 꼭 들렀다 가는 코스였다. 황룡사의 절터와 분황사의 모전석탑이 예전 사람들을 끌어들였다면 청보리밭은 상춘객을 불러 모은다.파란 하늘만큼이나 매혹적인 청보리의 행렬은 경주시가 새로운 관광요소를 위해 조성했다. 광활한 대지 위에 뿌리를 내린 보리가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물결친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들어...

    1477호2022.05.06 14:51

  • [정태겸의 풍경](26)인천 무의도-봄기운 만끽하는 바닷길
    (26)인천 무의도-봄기운 만끽하는 바닷길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 옆에 무의도가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섬이었지만, 이제는 잠진도와 무의도를 잇는 다리가 놓여 얼마든지 차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가 됐다.무의도의 여행지 중에서도 제일 시선을 끄는 곳은 실미도다. 실미도는 무의도의 서북쪽에 인접한 작은 섬. 예전 김일성 암살을 위해 조직한 684부대의 훈련지로 잘 알려진 바로 그 섬이다. 무의도 실미해수욕장을 가면 맞은편 몇백m 앞으로 실미도가 보인다. 두 섬 사이에는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면서 바닷길이 열린다. 이런 길은 보통 질퍽한 갯벌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모래로 덮여 있다. 잠시 실미도까지 다녀오기에 더없이 좋다.봄날은 이 바닷길을 걷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다. 실미도의 야트막한 언덕 위로 울긋불긋 봄꽃이 만발해 있고 따스한 바람이 불 때마다 아지랑이처럼 꽃가루가 하늘 위로 아스라이 흩날린다. 바다를 건너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봄을 만끽하는 그 순간을 사진...

    1474호2022.04.18 13:32

  • [정태겸의 풍경](25)전북 완주-하얀 봄의 선물
    (25)전북 완주-하얀 봄의 선물

    대둔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부른다. 한반도의 척추인 태백산맥에서 뻗어나온 노령산맥이 김제의 만경평야를 향해 뻗어나가다 금산 일대에서 독립적인 산군을 이룬다. 전라북도 완주, 충남 논산과 금산에 넓게 걸쳐져 있는 산이 대둔산이다. 이중 완주 운주면에서 보는 대둔산은 말 그대로 비경이다. 하늘을 향해 가파르게 솟아올라 하얀 암벽이 민낯을 내민다.가파른 산세는 보기에 멋져도 오르기엔 버겁다. 산을 따라 걷는 길에 가파르고 긴 철제계단을 놓은 이유다. ‘미친 계단’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다행인 건 이 산에 케이블카가 있다. 몇년 전 새로 단장한 케이블카를 타면 927m의 선로를 따라 5분 만에 정상부까지 오를 수 있다. 그 위로 오른 날, 아래의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봄의 선물을 만났다. 밤새 암봉 주변에 하얗게 내린 3월의 눈, 그 위를 뒤덮은 안개. 가히 신선이 머물 법한 풍광이었다. 뒤로는 봉우리와 봉우리가 모여 수놓...

    1472호2022.04.01 14:19

  • [정태겸의 풍경](24)전남 고흥 쑥섬
    (24)전남 고흥 쑥섬

    전남 고흥의 나로도항에서 배를 타면 불과 5분, 바다만 건너면 바로 쑥섬이다. 쑥이 많아서라기보다 질 좋은 쑥이 많이 나서 쑥섬이라 부른다. 쑥섬 전용인 배를 타고 선착장에 내리면 지붕 위에 꽃게의 집게를 단 펜션과 갈매기가 육지를 응시하는 카페부터 눈에 들어온다. 2만1000㎡(약 6350평)의 작은 섬, 주민 30명 남짓한 이 섬의 인상은 아기자기하다.쑥섬은 정상부의 꽃밭이 유명하다. 사시사철 온갖 꽃이 지지 않는다. 섬에서 눈여겨봐야 할 주인공은 그러나 따로 있다. 섬의 탐방로 시작점의 난대림이다. 이 작은 숲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다. 숲은 섬을 일주하는 탐방로가 관통하고 지나간다. 여행자들이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 이 짧은 공간에는 후박나무며 푸조나무, 붉가시나무 등 온갖 생명이 가득하다.그 안에서도 꼭 만나고 와야 하는 슈퍼스타가 존재한다. ‘해병대나무’, ‘국방부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육박나무다. 수...

    1470호2022.03.18 14:04

  • [정태겸의 풍경](23)경남 합천 옥전고분군 - 다라국의 아침
    (23)경남 합천 옥전고분군 - 다라국의 아침

    차갑게 얼어붙은 도로를 달렸다. 경남 합천의 동쪽, 황강이 느리게 흐르는 쌍책면의 합천박물관이 목적지다. 보고 싶은 풍광이 있어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이 곳에는 잊힌 나라 ‘다라국’ 흔적이 남아 있다. 다라국은 변한을 모태로 한 가야 세력 중 하나였다. 고령의 대가야는 널리 알려졌지만, 합천 역시 가야의 흔적이 제법 많다. 합천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 뒷산에서는 수십기의 고분군도 발견됐다. 고분 안에서 <양직공도(梁職貢圖)>와 <일본서기>에 기록으로만 전하던 다라국의 유물이 쏟아졌다. 현재까지 발굴이 이뤄진 것은 극히 일부. 이 일대에 약 1000기에 달하는 고분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옥전고분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분이 늘어선 언덕에 올랐다. 멀리서 동이 터왔다. 밝은 햇볕이 따스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밤새 얼어 있던 땅이 밝은 빛으로 뒤덮였다. 간밤의 한기가 증발한 자리에 말로...

    1468호2022.03.04 14:54

  • [정태겸의 풍경](22)서울 은평구 진관사
    (22)서울 은평구 진관사

    눈 내린 뒤 햇볕 따사로운 날, 북한산의 명찰 진관사로 향했다.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한 절이다. 서울 인근에 4대 명찰로 손꼽힌다. 조선시대에는 조종선령(祖宗仙靈)과 순국충열(殉國忠烈)을 위한 수륙대재를 지내던 왕실 원찰로 기능했다.수륙재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위로하고 부처의 세계인 도솔천에 들도록 기원하는, 불교의 가장 복잡하고 규모가 큰 의식이다. 25개의 불단을 쌓고 공양물을 풍성하게 차려 25가지 의식을 치러내는 종합예술에 가깝다. 큰 행사를 주도하던 절이기에 음식에 일가견이 있다. 특히 두부를 만들어 진상하는 조포소(造泡所)로 이름이 높았다. 지금도 진관사의 장맛은 일품이다.진관사는 고찰이지만 시간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전쟁 당시 한차례 잿더미가 된 탓이다. 재건 과정에서 쏟아부은 정성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옛 왕실 원찰의 위상은 사라졌지만, 눈 덮인 산세가 전각의 선과 선으로 이어진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1465호2022.02.11 17:55

  • [정태겸의 풍경](21) 강원 삼척 준경묘·영경묘와 금강소나무숲
    (21) 강원 삼척 준경묘·영경묘와 금강소나무숲

    강원도가 하얀 폭설로 뒤덮였다. 삼척의 산과 산 사이에 자리한 마을은 북유럽을 연상케 했다. 눈 돌려 보는 모든 풍광이 열두폭 병풍에 겨울의 풍경을 담은 수묵화 같았다. 이번 목적지는 왕가의 묘소다. 자료를 찾다가 발견했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준경묘, 영경묘. 태조의 5대조인 이양무와 그의 부인이 잠든 곳이라고 했다. 조선을 건국한 왕의 뿌리가 되는 조상의 묘임에도 그 실체가 밝혀진 건 대한제국을 세운 직후인 1899년이었다. 다시 말해 조선 왕실은 500년이 다 돼가도록 이 무덤을 비밀에 부쳤다. 눈 내린 날 구태여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묘소를 에워싼 금강소나무숲 때문이다.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쏟아진 눈은 소나무 가지마다 두껍게 앉았고, 하얀 눈밭 위에는 작아도 기품 있는 재각(齋閣)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삼척의 깊은 산골인지라 누구도 보지 못했을 설경이고 아무나 감상하기 어려운 자태다. 행운이었으리라. 한해의 시작이 좋다. 비밀의 숲에서 만난 이 기운이 모두...

    1462호2022.01.14 15:05

  • [정태겸의 풍경](20)합천 오도산 치유의 숲
    (20)합천 오도산 치유의 숲

    눈을 감으면 귓가로 숲의 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살갗을 스치는 찬바람에 손등 위로 슬쩍 소름이 돋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올해 나는 어떠했는가. 이른 아침 가슴을 청량하게 하는 공기 가득한 숲속에서 명상하며 한해를 정리해본다.경남 합천에서도 아주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오도산 계곡. 여기서 나에게 필요했던 시간을 맞이한다. 오도산 치유의 숲은 짧게나마 그런 시간을 갖기에 충분한 곳이다.신산한 해였다. 지난해부터 몰아친 감염병의 여파는 올해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지난하게 이어지며 많은 이의 삶을 멍들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긴 시간, 잘 버티고 있다. 우툴두툴 얼룩진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진다. ‘잘했어. 수고했어. 내년에는 조금 더 괜찮은 시간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1458호2021.12.17 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