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정태겸의 풍경
  • 전체 기사 99
  • [정태겸의 풍경](48)몽골 초원을 연상케 하는 곳
    (48)몽골 초원을 연상케 하는 곳

    충남 태안은 알면 알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고장이다. 무려 530㎞에 달하는 국내에서 가장 긴 해안선부터 그렇다. 복잡하게 들고나는 그 해안선을 한 줄로 쭉 펴면 무려 서울에서 부산을 가고도 한참이나 남는다. 더불어 자연이 빚어낸 또 하나의 장관은 신두리 해안사구다. 해안사구는 모래언덕을 뜻한다. 신두리 해안사구의 역사는 빙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땅은 바다와 땅의 움직임을 따라 침식과 퇴적을 반복했다. 허물어진 모래가 쌓이고 내린 비가 고여 바다와는 전혀 다른 습지를 만들어냈다. 어찌하여 모래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시간의 힘 덕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그렇게 형성된 사구는 한국 해안사구의 모든 지형을 관찰할 수 있는 땅이 됐고,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치는 곳이 됐다. 해변을 따라, 그 뒤로 펼쳐지는 규모도 대단하다. 3.4㎞의 해안을 따라 좁게는 50m, 넓게는 1.3㎞에 걸쳐 사구가 형성돼 있다. 이 땅의 진면모는 수치...

    1531호2023.06.02 11:29

  • [정태겸의 풍경](47)대전 도솔생태숲 - 150만 대전의 허파
    (47)대전 도솔생태숲 - 150만 대전의 허파

    도솔산을 일컬어 ‘대전의 허파’라고 부른다. 시내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데다 습지 보전지역인 갑천이 곁에 있어 많은 생명이 깃들어 사는 까닭이다. 도솔산의 면적은 400만㎡(약 121만평) 규모다. 마을이 가까운 데다 고도가 높거나 너무 넓지 않아 하루 날을 잡아 휘적휘적 다녀오기에 좋다. 숲길은 대체로 완만한 편이다. 급격하게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구간이 드물다. 조금만 올라가면 이내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숲 안쪽에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도 보인다. 가로수가 아닌 숲속에서 자생하는 건 처음 본다. 군락이 크지는 않다. 몇 그루에 불과하지만 이런 모습이 이 숲의 다양한 생태환경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산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오솔길의 머리 위에서 하얀 별이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꽃이 영락없이 별을 닮았다. 봄의 끝자락, 초여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때죽나무꽃이다. 태양을 등지고 서자 가지 위에 만발한 꽃이 ...

    1528호2023.05.12 14:30

  • [정태겸의 풍경](46)충북 청주 무심천 튤립공원 - 강변의 화무십일홍
    (46)충북 청주 무심천 튤립공원 - 강변의 화무십일홍

    충북 청주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무심천 이야기를 들었다. 시내를 관통하는 무심천 변에 튤립이 한창이라는 현지인의 정보였다. 4월이면 곳곳에 튤립 꽃밭이 만들어진다. 충청도 일대만 해도 튤립으로 이름을 알린 곳이 여럿이다. 하지만 청주 무심천은 처음이었다. 궁금하면 가봐야 하는 게 직업이다. 다행히 출장지에서 5㎞ 남짓 떨어진 곳이었다. 무심천체육공원 바로 곁. 벚꽃 가로수로 유명한 그 천변의 한쪽에 1만 송이의 튤립이 피어 있다고 했다.벚꽃은 이미 흔적을 지우고 없었다. 자줏빛 꽃받침만 남아 툭툭 떨어지던 날. 무심천 근처로 내려가는 길에는 운동하러 나온 학생들과 봄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튤립밭은 저쪽 한편으로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당초 들었던 것만큼 꽃밭의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1983㎡(약 600평) 정도. 탁 트인 천변이어서 그 규모가 얼핏 더 작아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크기라고 결코 작은 건 아니다. 더구나 그 안에 1만 송이의 튤립이 색색으...

    1526호2023.04.28 10:55

  • [정태겸의 풍경](45)경남 남해 설리스카이워크 - 푸른 바다를 향한 비행
    (45)경남 남해 설리스카이워크 - 푸른 바다를 향한 비행

    겨울이 지나자 섬으로 여행객이 몰려들었다. 경남 남해의 주말은 삼삼오오 찾아든 사람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근 몇 년 사이에 남해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전에 없던 시설이 생기고 새로운 먹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조용했던 섬은 이제 여수와 함께 남해안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피부로 느껴진다. 마치 제주도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하던 2008년경을 보는 듯하다.포근한 날씨에는 실내보다 실외가 정답이다. 미조면 설리에 만들어진 스카이워크는 이런 시기에 안성맞춤이다. 높이 38m의 스카이워크는 절벽 위에 만들어져 있다. 그 덕에 속이 뻥 뚫리는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이는 무려 79.4m에 달한다. 이중 한쪽만 고정된 채 공중에 떠 있는 캔틸레버 구간만 43m다. 국내에서 가장 길다고 알려져 있다.스카이워크 끝에는 그네가 달려 있다. 말 그대로 바다를 향해 날아오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하네스를 비롯한 안전장비가 튼튼하게 준비돼 있으니 걱정...

    1523호2023.04.07 11:45

  • [정태겸의 풍경](44)충남 논산 돈암서원 - 봄햇살 가득한 예학의 산실
    (44)충남 논산 돈암서원 - 봄햇살 가득한 예학의 산실

    충남 논산에는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돈암서원이다. 서원은 유생이 공부하는 인재양성소를 떠올리면 되겠다. 서원에 뭐가 있냐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돈암서원은 2019년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등 8개 서원과 함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돈암이라는 명칭은 연산면 임리에 있는 바위를 일컫는다. 워낙 유명해 인근에 사원을 세우고 추후 왕이 사액하면서 ‘돈암’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634년(인조 12년) 기호학파의 거두 사계 김장생 선생을 배향해 건립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훼철령을 내릴 때도 돈암서원은 살아남았다. 그만큼 인재를 많이 양성했고, 서원의 본보기라 할 만큼 예학의 산실로 여겨진 덕이었다.서원은 입지부터가 범상치 않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담장 밖 산앙루는 찾는 이를 압도한다. 담장 밖의 백미가 산앙루라면, 담장 안의 백미는 응도당이다. 이곳은 유생을 위한 강당이다. 마루가 넓어 십수명...

    1521호2023.03.24 12:50

  • [정태겸의 풍경](43)전남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 - 남도에 봄이 스미는 풍경
    (43)전남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 - 남도에 봄이 스미는 풍경

    3월에 접어들면 남도의 동백도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선명한 붉은빛으로 겨울과 봄 사이에 화려한 춤을 춘다. 동백은 가지 끝에서 한 번, 땅 위에서 또 한 번 핀다고 했다. 꽃잎이 아닌 봉오리째 떨어진 꽃은 백련사 동백숲에 선명한 꽃봉오리 카펫을 깐다.강진 백련사의 동백나무숲은 오래전부터 이름을 떨쳤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넘어가는 길목, 5만2000㎡(약 1만평) 대지에 15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한다. 나무 한 그루당 키가 7m에 달할 정도니, 수령도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규모의 동백나무숲은 전국 어디를 뒤져도 견줄 곳을 찾기 어렵다. 서남해안과 제주도 일대에 동백숲이 꽤 많다. 어느 곳도 그 크기와 역사를 강진 백련사의 동백나무숲과 견줄 수 없다. 조선시대 문인인 성임(1421~1484)과 임억령(1496~1568)은 시에 “백련사 동백나무숲의 뛰어난 경치를 직접 보지 못해 한스럽다”라고 적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적게 ...

    1518호2023.03.03 11:28

  • [정태겸의 풍경](42)강원도 평창 칠족령 - 동강이 숨겨둔 천하절경
    (42)강원도 평창 칠족령 - 동강이 숨겨둔 천하절경

    문희마을은 평창의 보물 같은 곳이다. 굽이굽이 한참을 들어가야 비로소 만나게 된다. 강원도 평창과 정선의 경계에 서 있는 오지다. 호랑이가 나온다고 해도 믿을 법하다. 그 문희마을 뒤로 백운산이 거대한 병풍처럼 둘러쳐 어깨를 펴고 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정선 덕천리의 제장마을이다. 예전부터 두 마을은 사이에 높다랗게 솟은 칠족령을 넘어 다니며 교류를 했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여기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이 고개에 ‘칠족령’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전하는 설화가 있다. 문희마을의 선비가 낮잠을 자고 나니 키우던 개가 사라졌다. 가구에 칠하려고 모아둔 옻 진액 그릇이 넘어져 있고, 개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발자국을 따라서 가다가 숲길의 끄트머리에서 기가 막힌 풍경을 만난다. 동강의 감입곡류 구간이다. 산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 칠족령의 이름을 알린 게 이 동강의 풍경이다. 가히 천하의 절경이라고 할 만한 거대한 협...

    1516호2023.02.17 11:04

  • [정태겸의 풍경](41)전남 목포 보리마당 - 다시 피어난 그 시절 골목 풍경
    (41)전남 목포 보리마당 - 다시 피어난 그 시절 골목 풍경

    전남 목포가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남도의 겨울, 봄보다 먼저 피어나는 동백처럼 그렇게 오래된 골목에서부터 목포가 살아나고 있었다.목포항이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기슭에 요즘 핫하다는 ‘보리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전형적인 해안가 마을 모습이다. 가파른 골목은 보리마당이라 부르는 언덕 정점에서부터 서산동 해안가로 이어진다. 카페를 하는 사장은 아주 예전 그 언덕에 보리밭이 있었다고 했다. 다른 이는 이 자리가 보리를 패던 곳이라 보리마당이라 부른다고 했지만, 왠지 카페 사장의 말에 좀더 마음이 갔다.좁은 골목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알록달록 색칠한 담벼락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 지역 시인과 화가가 치장한 흔적이다. 도시재생사업은 그렇게 마을을 되살리고 목포를 살아나게 한다. 보리마당에 올라 바라본 아래로 지붕과 지붕이 어깨를 걸고 내려갔다. 멀리 새벽부터 바다로 나선 배가 들어오고 따스한 남녘의 햇살이 쏟아졌다. 희망은 그렇게 꽃피고 있었다....

    1514호2023.02.03 11:25

  • [정태겸의 풍경](40)제주 선흘리 동백동산 - 겨울, 원시림의 침묵
    (40)제주 선흘리 동백동산 - 겨울, 원시림의 침묵

    곶자왈은 제주의 속살이다. 흘러내린 용암 위에서 자라난 숲이기도 하다. 지역 방언인 곶자왈은 두 개의 단어를 합친 말이다. ‘곶’은 산 아래 숲이 우거진 곳,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진 곳을 의미한다. ‘밀림’의 순수 제주어라고 봐도 되겠다.동백동산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에는 동백나무가 많았다. 이제는 울창하게 뻗은 난대 수종의 가지가 경쟁하는 사이 동백나무가 볕을 덜 쬐게 됐다. 그 결과 동백꽃을 보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숲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드문드문 동백꽃이 눈에 띈다.이 숲에 아픈 기억도 남았다. 1948년 4월 3일의 대규모 학살. 미 군정과 극우 무장단체인 서북청년단은 ‘빨갱이 사냥’을 명목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봉기에 관여한 무장대는 무장대대로, 토벌대는 토벌대대로. 칼부림은 1만명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때 그 죽음의 파도를 피해 사람들이 ...

    1512호2023.01.13 11:36

  • [정태겸의 풍경](39)경북 영양 두들마을 - 차가운 겨울 따스한 한옥
    (39)경북 영양 두들마을 - 차가운 겨울 따스한 한옥

    겨울의 한옥은 다른 계절에 느낄 수 없는 감성이 있다. 앙상한 가지를 흔드는 활엽수와 스산한 날씨에도 여전히 푸른 기운을 간직한 침엽수를 모두 곁에 뒀다면 더 좋겠다. 경북 영양의 두들마을은 지금 이 계절에 그런 한옥의 느낌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국내에서도 가장 오지라고 불리는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두들’은 ‘둔덕’, 그러니까 언덕배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정확히 그 뜻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고, 마을의 지형이 언덕 위에 올라 있는 형국이라 그런 의미인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1640년 병자호란을 피해 석계 이시명 선생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터를 일궜다. 그의 후손인 재령 이씨 일가가 집성촌을 이뤘다. 지금도 석계 선생이 살던 석계고택이 잘 보존돼 있다. 그가 후학을 가르치던 석천서당도 번듯하다. 거북 형상의 반석 위에 올라앉은 유우당은 이 마을의 백미다.차가운 바람에 뺨이 얼얼할 때쯤 나긋...

    1510호2022.12.30 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