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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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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겸의 풍경](58)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사-‘청량산인’ 퇴계가 사랑한 가을 산
    (58)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사-‘청량산인’ 퇴계가 사랑한 가을 산

    가을이면 꼭 가보고 싶었던 산이 있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 대한민국에서 오지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어서 쉽사리 발걸음을 옮길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좀처럼 마음 내기 어려운 먼 곳이어도 한번 다녀오면 자꾸만 갈 일이 생긴다. 그토록 가을마다 가고 싶었던 그곳에 다녀올 일이 종종 만들어졌다. 시기도 딱 좋았다. 단풍이 절정에 달하는 때. 그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이틀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청량산은 퇴계 이황이 사랑했던 봉화의 절경이다. 오죽하면 퇴계는 도산서원에서 15㎞를 걸어 청량산에 올랐다. 스스로를 ‘청량산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가 도산서원에서 출발해 청량산을 오르던 길은 이제 ‘예던길’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가 됐다.청량산에서도 청량사는 절정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다. 첩첩이 늘어선 산자락 가운데에 쏙 박혀 있는데, 절의 가람 배치가 매우 묘하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부처의 세계...

    1556호2023.12.07 07:00

  • [정태겸의 풍경](57)충남 아산 곡교천 - 노랗게 물든 행복의 길
    (57)충남 아산 곡교천 - 노랗게 물든 행복의 길

    마지막 축제다. 올해는 유독 단풍이 늦게 올라오는 듯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절정에 달한 빛깔이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충남 아산의 곡교천. 이곳은 단풍이 낙엽이 되기 직전 거리가 온통 노랗게 물들었고, 이 노란 빛을 찾아 사람이 모인다. 곡교천 은행나무 길은 아산시가 가을마다 자신 있게 추천하는 여행지다.곡교천 은행나무길은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2.1㎞ 구간에 조성돼 있다. 산책로를 따라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모습이다. 이곳에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된 건 1973년의 일. 당시 수령 10년생의 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인간의 나이로는 얼추 환갑에 가깝다. 그사이에 나무들은 가지를 길게 뻗어 멋들어진 광경을 자아내고 있다. 평소에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가을만큼은 다르다. 매년 11월 초가 되면 모든 잎이 노랗게 물들고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은행잎 비가 내린다.천천히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들어오는 사람들의 ...

    1553호2023.11.16 07:00

  • [정태겸의 풍경](56)전남 화순 야사리 느티나무 - 400년 된 나무의 가을
    (56)전남 화순 야사리 느티나무 - 400년 된 나무의 가을

    전남 화순은 무등산을 사이에 두고 광주광역시와 이웃해 있다. 무등산은 단풍으로도 이름이 높은 곳. 화순의 국도를 따라 무등산의 북쪽을 향해 차를 몰고 있었다. 멀리 학교 운동장 안쪽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것 같았다. 아무리 바빠도 잠시 들러서 구경하자 마음먹었다. 그 결정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어쩐지, 기념물 제235호. 이름은 ‘화순 야사리 느티나무’. 야사리라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의 자랑거리였다. 몸체가 하나인 줄 알았더니 2그루란다. 높이만 25m, 둘레가 최대 5.3m에 달한다. 수령은 약 370~400년. 세간의 풍파를 오래 견디고 살아남은 이의 풍채가 당당하다. 나무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윽하고 아름답다. 머리 위로 곱게 단풍이 들어서 더 멋스럽다. 물론 새순이 막 돋아나는 계절에는 다른 느낌으로 존재감을 뽐낼 테지. 이 마을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이 나무는 계절...

    1551호2023.10.27 11:20

  • [정태겸의 풍경](55)경남 양산 통도사 무풍한송길 - 숲의 가풍
    (55)경남 양산 통도사 무풍한송길 - 숲의 가풍

    여기에 이런 숲이 있었다는 걸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기이할 만큼 제멋대로 자라난 소나무가 길 위에 한가득하다. 어느 한 그루가 그랬다면 그 녀석이 이상하게 보였겠지만, 전체가 다 그러하니 이건 이 숲의 가풍이라고 할밖에. 경남 양산 통도사로 오르는 길, 누구도 좀처럼 눈여겨보지 않는 이 길은 어느 숲과 비교해도 독특한 풍광으로 가득 차 있다.몇 번을 다녔음에도 이 길을 걷는 건 처음이다. 당연히 이 길에 늘어선 소나무를 본 것도 처음이다. 늘 차를 몰아 절 아래까지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 이 기이한 경치를 볼 기회가 없었던 게 당연하다. 소나무가 늘어선 길은 고작 해봐야 1㎞ 남짓. 그리 길지 않아 타박타박 걸어 오르기 좋다. 20분 남짓이면 충분히 통도사에 닿는다.바람이 춤을 춘다. 누가 붙인 것인지 모르겠으나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작명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소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이 절로 머리에 그려진다. 걷는 내내 ‘무풍한송길’이...

    1549호2023.10.13 11:06

  • [정태겸의 풍경](54)충남 공주 정안천 메타세쿼이아 꽃길 - 연꽃향 대신 청량한 숲의 향기
    (54)충남 공주 정안천 메타세쿼이아 꽃길 - 연꽃향 대신 청량한 숲의 향기

    햇볕이 제법 온화하다. 비로소 가을이 제자리를 찾아온 느낌. 충남 공주 여행을 떠난 길에 입소문 자자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찾았다. 메타세쿼이아가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히는 곳은 단연 전남 담양일 테다. 하지만 공주 정안천 곁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정안천은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 그러니까 금강수계에 해당하는 지방하천이다. 이 물길을 따라 곳곳에 충적평야가 만들어진다. 정안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보물앞들, 새보들, 백보들, 오인들, 수촌들처럼 ‘들’이 붙은 지명이 유난히 많다. 물길이 만들어진 평야임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풍광이 오밀조밀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정안천 생태공원 일대는 그런 면모의 정점을 이루는 곳이다.과거 이 주변은 방치돼 있던 곳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자연생태의 가치가 부각하면서 2010년대에 이 일대를 공원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은 ...

    1546호2023.09.15 10:58

  • [정태겸의 풍경](53)경기도 안성 석남사 - 산사에서 맞이한 아침
    (53)경기도 안성 석남사 - 산사에서 맞이한 아침

    새벽 공기는 제법 서늘해졌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샛별이 보이는 시간부터 차를 몰아 찾아간 목적지는 경기도 안성 석남사다. 680년(신라 문무왕 20)에 창건했다고 전하는 천년고찰이다. 한때는 이곳에 수백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도 전한다. 지금은 절이 그리 크지도 않고 머무는 이도 많지 않은 고요한 산사로 남았다. 안성과 충북 진천의 경계에 선 해발 540m 높이의 서운산 자락, 그곳에 석남사가 앉았다.석남사를 유명하게 만든 건 계곡이다.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 곁으로 물길이 흐른다. 그 계곡의 시작점이 석남사의 자리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거대한 마애여래입상이 왼쪽에 숨어 있다. 산사답게 가파른 산의 비탈을 따라서 가람이 배치돼 있다. 산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다란 계단. 그 끝에 대웅전이 있고, 열린 문 안쪽으로 부처님이 보인다. 대웅전 앞에 서니 어느새 날이 하얗게 밝았다. 아침 햇살이 산과 산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 따스한 그 빛에 눈물이 ...

    1544호2023.09.01 10:56

  • [정태겸의 풍경](52)전남 장흥 풀로만목장 - 목장의 여름나기
    (52)전남 장흥 풀로만목장 - 목장의 여름나기

    입소문만으로 유명세를 탄 목장이 있다. 전라남도의 끝 장흥에 있는 이 목장은 10여 년 전부터 조금씩 이름을 알리더니,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곳이 돼버렸다. 여름의 한복판, 이 목장도 찌는 듯한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아무리 짐승이라고 하지만 소 역시 행복해야 한다. 이 목장을 운영하는 조영현 대표의 지론이다.쏟아지는 햇살을 자동으로 가려줄 가림막을 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지치지 않도록 연신 몸을 움직여 여물을 먹인다. 이 목장의 핵심은 여물이다. 알팔파와 라이그래스라는 국내에서는 잘 나지 않지만, 소에는 가장 좋은 사료를 컨테이너 규모로 수입해 먹인다. 그 덕일까. 여느 목장과는 다르게 코를 쥐게 하는 분뇨 냄새가 거의 없다. 한눈에 봐도 모든 소의 등판에 윤기가 흐른다. 신기할 만큼 건강하다.그럼에도 올해 여름을 나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물가는 뛰고, 환율은 점점 오르고 있다. 해가 갈수록 목장을 유지하는 일이 점점 버겁다. 행복하고 건강...

    1541호2023.08.11 14:58

  • [정태겸의 풍경](51)강원 인제 금성여인숙 - 여인숙의 노부부
    (51)강원 인제 금성여인숙 - 여인숙의 노부부

    “홍콩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함께 있던 일행이 말했다. 강원도 인제읍의 금성여인숙. 허름한 뒷골목의 오래된 이 여인숙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을 보고 한 얘기였다. 건물의 한가운데에 수돗가가 있다. 마치 이 공간의 중심축인 듯. 그리고 그 주변으로 방이 둘러서 있고, 수돗가 곁으로 빙 돌아서 올라가는 계단이 놓였다. 그 위에는 다시 방. 천장이 뻥 뚫려 있어 햇살이 수돗가까지 떨어진다. 아침이면 그 빛이 찬란하다.이 여인숙은 1964년 강북섭 할머니가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시작했다. 그 시절 대체로 그랬듯 처음에는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영업이었다. 영업허가를 정식으로 받은 건 1972년이었다. 처음에는 흙벽으로 지은 건물로 시작했는데, 1990년에 지금의 건물을 올렸다. 주로 송이 캐는 사람, 약장수, 방물장수, 소금장수 등이 이 공간에 모여들었다. 군 면회를 오는 가족도 주된 손님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을 보...

    1539호2023.07.31 14:37

  • [정태겸의 풍경](50)충남 보령 삽시도 - 안개 걷힌 섬의 보랏빛 노을
    (50)충남 보령 삽시도 - 안개 걷힌 섬의 보랏빛 노을

    며칠 동안 바다는 뿌연 안개에 덮여 있었다. 충남 보령의 섬, 삽시도로 떠나기로 한 날 아침. 여객터미널에서는 배가 뜰지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해무가 삽시간에 걷히기 시작했다. 어렵게 배는 바다로 나아갔다. 섬은 그렇게 한여름 여행자의 방문을 허락해 주었다.한반도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섬 중에서 삽시도는 잘 알려진 편이 아니다. 눈을 현란하게 하는 풍경이나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비경을 숨겨둔 섬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은 섬은 그 대신 여유를 선사한다. 인적 없는 해안가에 텐트를 치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던 오후. 멀리서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보랏빛 노을이 눈앞에 드러났다. 오직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이 섬의 선물. 이 정도면 삽시도의 오로라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아름답다. 낮에는 해변에서 동죽을 캐고, 저녁에는 자줏빛 하늘에 취하는 섬. 언제고 쉬고 ...

    1537호2023.07.14 11:19

  • [정태겸의 풍경](49)제주 난산리 메밀밭 - 여름, 섬에 피어난 하얀 눈송이
    (49)제주 난산리 메밀밭 - 여름, 섬에 피어난 하얀 눈송이

    한창 제주의 숲을 찾아 떠도는 길이었다. 성산읍에 도착하니 문득 지인이 생각났다. 오래된 차를 끌고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제주에 자리 잡은 사진작가다. 그가 난산리 마을 안쪽에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었다. 서울과 제주에 떨어져 있어 쉽사리 얼굴도 보기 힘든 사이기에 마음을 내서 잠시 얼굴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는 수십년 된 구옥을 얻어 손수 하나부터 열까지 고된 공사 일을 해내며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내와 몇몇 지인이 힘을 합쳐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갈수록 입소문을 타고 찾는 이가 늘어가던 참. 보기 좋았다.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한참을 웃다 돌아오는 길, 현무암 돌담 너머로 하얗게 눈이 내린 듯 피어난 메밀밭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는 메밀이 잘 자라는 섬이다. 늘 그렇듯 눈여겨보지 않으면 좀처럼 알아채기 어려운 아름다움. 그 하얀 빛깔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1년에 단 한 번, 이맘때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장관이다...

    1534호2023.06.23 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