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정태겸의 풍경
  • 전체 기사 99
  • [정태겸의 풍경](68) 인천 주문도-강화에서 15㎞, 그 섬에 남기고 온 추억
    (68) 인천 주문도-강화에서 15㎞, 그 섬에 남기고 온 추억

    우연히 몇 년 전의 사진을 마주했다. 한창 캠핑하러 다니던 시절, 강화도에서 배 타고 들어간 섬에서 며칠 캠핑을 즐기던 순간의 기록이다. 그때만 해도 강화도에 딸린 섬을 잘 몰랐다. 주문도라는 이름은 더욱더 낯설었다. 한강이 임진강을 만나고 북에서 흘러나온 예성강과 합쳐져 흘러 들어가는 강화만은 북녘을 지척에 두고 있다. 강화만 가장 북쪽을 큼지막한 교동도가 막아섰고, 그 뒤 몇 개의 섬 중 하나가 주문도다. 강화도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15㎞.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그런 곳.주문도는 내세울 유적이나 명승지가 별반 없다. 서해에 별처럼 뜬 섬이 대체로 그렇다. 더구나 걸어서 반나절이면 충분히 한 바퀴를 돌 법한 이 작은 섬에서야 대단한 게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그 섬에서의 기억이 무척 좋았다. 대빈창이라 부르는 해변 곁 솔숲에 텐트를 치고 끼니마다 밥을 지어 먹으며 틈나는 대로 해변을 거닐던 시간은 평화로웠다. 문득 열어젖힌 사진첩에 남은 몇 장의 사...

    1583호2024.06.19 06:00

  • [정태겸의 풍경](67) 전북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숨 가쁜 일상 속 나를 보듬는 철로
    (67) 전북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숨 가쁜 일상 속 나를 보듬는 철로

    10년 만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세상에 막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다. 입소문을 따라 찾아온 사람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독특한 여기만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대형마트 건너편,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그 뒷골목은 이제 현란한 간판과 호객행위를 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예전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철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골목이 가득 찼다. ‘많이 변했구나’라는 생각에 실망감에 휩싸일 때쯤, 맞은편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아직 예전의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길을 건너 철길이 놓인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가 질릴 만큼 시끄러운 저쪽과 달리 이곳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아직도 골목 안 철길 양쪽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기차가 다니지 않지만 철로는 그대로다. 곁에 텃밭이 있고, 사람이 심은 꽃과 바람에 실려 날아온 꽃이 공존한다. 기차가 다니던 그 길을 따라 걷는데 마음이 짜르르 울렸다...

    1580호2024.05.24 16:00

  • [정태겸의 풍경](66) 경북 울릉도 독도-처절하게 지켜온 동쪽 끝 우리 땅
    (66) 경북 울릉도 독도-처절하게 지켜온 동쪽 끝 우리 땅

    정확히 네 번째다. 처음 독도행 배에 올랐던 게 2013년 여름이었다. 울릉도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잔잔하던 파도는 독도 인근에 이르자 꽤 출렁거렸고, 결국 상륙에 실패했다. 그 뒤로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도전했지만, 연달아 상륙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독도경비대를 위로 방문하는 팀에서 함께하자는 제안이 왔다.울릉도를 거쳐 아침 일찍 배에 올랐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독도 접안에 성공했다. 첫 입도에 일반인에게는 출입이 허락되지 않는 독도경비대 숙소 옥상에 올라갈 기회까지 주어졌다. 가파른 해안절벽을 따라 놓인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수많은 갈매기가 주변으로 날아다녔다. 경비대 건물 앞쪽 절벽 한쪽에 ‘한국령’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952년 전쟁을 틈타 독도 점유를 노리던 일본에 맞서 울릉도 주민이 모여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했고, 서도의 해식동굴에서 머물며 독도를 지켰다는 설명도 들었다. 그때 그들이 동도를 오가며 바위에 새긴 글자가...

    1578호2024.05.15 06:00

  • [정태겸의 풍경](65)경남 합천 대암산-운석 충돌구 위를 날아 ‘이카로스’가 된  봄날
    (65)경남 합천 대암산-운석 충돌구 위를 날아 ‘이카로스’가 된 봄날

    활공장에 섰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건 처음이었다. 경남 합천의 대암산 활공장. 세계적으로도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기에 최적의 지형을 갖췄다는 곳이다.“자, 이제 달리세요!”나를 앞에 태운 파일럿의 신호에 맞춰 있는 힘껏 땅을 굴렀다. 다리가 헛발질한다 싶은 그때였다. 하늘 위로 몸이 날아올랐다.대암산 활공장의 앞은 초계적중 분지다. 5만 년 전 운석이 떨어져 만들어진 것으로 공식 확인된 국내 최초의, 최대의 운석 충돌구다. 운석이 떨어져 충돌하는 과정에서 솟아오른 땅은 이 일대를 빙 에워쌌다. 그중 정면으로 우뚝 솟은 흙더미가 대암산이 됐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니 분지의 앞쪽은 상대적으로 평온하다. 대신 뜨거운 태양이 지표를 달궈서 상승기류를 만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에 올라타 하늘을 활공한다. 세계 각국의 패러글라이딩 파일럿이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다.짜릿하다. 낙하산에 의지해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분은 ...

    1575호2024.04.24 06:00

  • [정태겸의 풍경](64) 경북 청도 운문사-바람은 목련을 흔들고, 북소리는 봄을 부르고
    (64) 경북 청도 운문사-바람은 목련을 흔들고, 북소리는 봄을 부르고

    10여 년 만에 경북 청도 운문사를 찾았다. 생각보다 봄볕이 포근하고, 제법 따스한 날이었다. 숱하게 많은 사찰을 다녔는데, 운문사를 참 좋아한다. 이처럼 단정하고 잘 가꾼 정원이 돋보이는 곳은 드물다. 무엇보다 운문사의 새벽은 감동이다. 이 시대에 이처럼 간절한 소리가 전율이 일도록 하는 의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감동적이다. 오죽하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운문사의 새벽예불을 극찬했을까. 아직도 오래전의 그 새벽이 눈과 귀에 선하다.운문사 경내를 돌아다닐 때 북소리가 울렸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지만, 저녁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스님 둘이 나란히 서서 번갈아 가며 북을 쳤다. 꽃을 좇아 절 안으로 들어와 있던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북을 울리는 현란한 몸동작에 빠져들었다. 마침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목련 가지를 흔들었다. 그제야 하얀 꽃의 존재가 드러났다. 북소리의 장단에 맞추듯 목련의 우아한 꽃잎이 살랑거렸다. 마치 춤을 추는 듯, 이 봄날의 축제가 ...

    1573호2024.04.10 06:00

  • [정태겸의 풍경](63)전남 구례 화엄사 홍매화-이토록 성마른 봄이라니
    (63)전남 구례 화엄사 홍매화-이토록 성마른 봄이라니

    남쪽에서 길을 달려오는데 꽃이 쑥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 벌써?” 절로 튀어나오는 소리. 여느 해보다 1주 이상, 혹은 2주 가까이 빨라진 것 같았다. 3월이 훌쩍 넘어가야 보이던 꽃이 벌써. 전남 구례쯤 왔을 때 혹시나 해서 검색창을 열었다. 역시나. 화엄사 홍매화가 꽃잎을 열었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남쪽 섬에 머문 게 고작 일주일인데, 그사이 봄이 이만큼이나 서둘러 발걸음을 내디뎠다.빠른 꽃 소식에 세상은 ‘기상 이변’이라며 떠들썩하다. 요상한 이 봄을 길 위에서 눈으로, 몸으로 체감한다. 따사로운 햇볕도 계절이 달라졌다는 걸 어깨를 톡톡 두드려 알린다. 아, 화엄사의 꽃이 만개할 때가 됐구나. 묵직하게 틀고 앉은 각황전 곁, 붉은 그 자태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몸을 비틀어 하늘을 향해 봄의 춤을 추는 그 나무는 이맘때면 구례의 주인공이 된다. 홍매화가 꽃 소매를 활짝 펼치면 이내 꽃향도 만발한다. 산수유가 노란 안개처럼 피어나고, 동백은 빨간 꽃송이를 툭툭 길 ...

    1570호2024.03.20 06:00

  • [정태겸의 풍경](62)제주 신흥리 동백마을숲-거기 말고 길 건너편이요
    (62)제주 신흥리 동백마을숲-거기 말고 길 건너편이요

    12월만 되면 제주로 사람이 몰린다. 정확히는 서귀포 남원이다. 동백꽃이 만발하는 이곳의 숲이 3~4년 전부터 사진 스폿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 동백나무는 일본산 애기동백이다. 꽃이 분홍빛이다. 이 나무가 들어온 건 비교적 근간의 일이다. 제주는 원래 동백이 많았다. 워낙 바람이 세서 방풍림이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해준 게 동백나무였다. 지금은 동백꽃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동네가 있다. 애기동백으로 유명한 그 숲에서 도로를 건너면 나온다. 이 숲은 무려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이곳은 이름부터 ‘동백마을’이다. 기록에 따르면 무려 1706년(숙종 32)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동백숲이 이곳에 남아 있다. 당시 김명환이라는 인물이 이곳에 마을을 일구면서 조성했다고 전한다. 예전에 비하면 숲의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겨울이면 붉디붉은 꽃이 수도 없이 피어난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꽃송이째 툭툭 떨어져 숲 주변의 담벼락 근처를 ...

    1567호2024.02.28 06:00

  • [정태겸의 풍경](61)경남 통영 서호시장 대장간-골목 안쪽, 시간이 멈춘 공간
    (61)경남 통영 서호시장 대장간-골목 안쪽, 시간이 멈춘 공간

    경남 통영에 가면 늘 들르는 곳이 서호시장이다. 살아 있는 통영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기도 하고, 단골 시락국(시래깃국) 가게가 있어 매번 그곳으로 향한다. 막차를 타고 내려가 새벽 3시에 도착해도 제일 먼저 이 시장을 찾는다. 그 시간에도 시장은 이미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할머니가 귀퉁이에 앉아 생선을 다듬고, 할아버지는 소쿠리 가득히 담은 홍합을 손질한다. 할머니에게 학꽁치회를 부탁하면 두세 명이 너끈하게 먹을 양을 담아준다. 단돈 1만원. 그걸 들고 시락국을 먹으러 간다. 여행의 시작부터 마음이 뜨끈하게 달궈지는 기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통영의 시간.이번에도 서호시장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숱하게 지나다녔던 시장 안쪽 골목에서 그간 보지 못했던 가게를 발견했다.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에 사라졌을 법한 풍경. 쇳가루가 수북하고 오랫동안 사방에 쌓아둔 금속자재가 한 몸이 돼버린 노포다. 간판도 없다.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님은 좀처럼 말이...

    1564호2024.02.01 05:30

  • [정태겸의 풍경](60)강원 강릉 BTS 버스정류장 - 새날을 기다리는 정류장
    (60)강원 강릉 BTS 버스정류장 - 새날을 기다리는 정류장

    어딜 둘러봐도 온통 힘들다는 소리만 들리는 겨울이다. 불어오는 칼바람에 볼마저 부서질 듯 얼어버리는 계절의 복판을 지난다. 촬영 일정에 가족을 대동하고 다녀오는 길에 딸이 말했다. “아빠 이 근처에 BTS 버스정류장이 있대.” 평소 같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그곳인데 귀가 쫑긋했다. 오랜만에 여행을 나온 딸을 위해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향호해변으로 운전대를 틀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앞에 버스정류장 하나가 덩그러니 놓였다. 이곳이 BTS의 앨범 재킷을 찍었던 정류장이란다. 원래 세트를 지어서 찍고 허물었는데, BTS의 빌보드 음반차트 1위를 기념해 다시 만들어 놓았단다.줄이 늘어선 솔밭과는 달리 정류장은 인적이 드물었다. 사람들의 배려가 만든 풍경이다. 그 와중에도 눈부시게 파란 바다와 덩그러니 놓인 정류장이 묘한 대비를 이뤘다. 버스가 오지 않는 저 정류장이 사람들에게 웃음을 찾아주는 풍경도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BTS의 흔적을 찾아온 이곳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1561호2024.01.09 06:00

  • [정태겸의 풍경](59)대전 장태산 자연휴양림-‘노잼 도시’ 속 감탄 부르는 숲
    (59)대전 장태산 자연휴양림-‘노잼 도시’ 속 감탄 부르는 숲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조금 늦은 게 아닐까 걱정했다. 가을마다 가고 싶었던 숲이었지만 이미 겨울로 깊이 들어와 버린 시간대였다. 기회가 생겨 출발은 했으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대전의 외곽, 장태산으로 향했다.다녀온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이제는 세간에도 잘 알려진 숲이 장태산 자연휴양림이다. ‘노잼 도시(재미없는 도시)’라는 대전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숲이라는 칭찬이 자자한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멋진 풍광이 있다.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숲이 너른 부지에 가득 심겨 있다. 물론 한 가지 수종으로만 꾸며진 것은 아니다. 원래는 잡목 숲이었던 곳에 밤나무, 잣나무, 은행나무를 심었고, 유실수와 소나무 등을 더했다.메타세쿼이아가 입구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빽빽한 숲을 이룬다. 이미 계절은 겨울의 문턱을 넘었건만, 이 안쪽은 메타세쿼이아 덕에 가을 풍광이 남아 있다. 무...

    1558호2023.12.19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