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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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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겸의 풍경](78) 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한겨울 바닷바람 녹인 ‘엄마의 얼굴’
    (78) 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한겨울 바닷바람 녹인 ‘엄마의 얼굴’

    부산 영도의 겨울바람은 제법 매서웠다. 막아주는 것 없이 고스란히 몰아치는 바람의 끝에는 칼날이 매달린 것만 같았다. 때때로 큰 배가 지나갈 때면 다리가 열리는 도개교인 영도대교를 넘어서는데 부산의 겨울도 만만찮다는 걸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다리를 건너다니며 부산을 여행하는 사람은 영도가 섬인 것조차 모른다. 영도는 여의도의 3~5배 정도로 크다는 부산의 대표적인 섬이다. 그래서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다.다리를 건너오면 오른쪽으로 공장지대가 펼쳐진다. 초입에 놓인 ‘깡깡이예술마을’이라는 팻말.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부산을 먹여 살렸던, 국내 최초의 조선업이 시작된 마을이다. 지금은 울산과 거제도에 밀려 수리조선업을 주로 하고 있지만, 배에 들어가는 부품이라면 못 만드는 것이 없고, 못 고치는 게 없다는 만능 재주꾼들이 아직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골목골목에서 눈길을 끈 건 아파트 벽에 그려진 거대한 엄마의 초상화다. 추운 겨울 삭풍에도...

    1611호2025.01.08 06:00

  • [정태겸의 풍경] (77) 전남 강진 다산초당-고요한 숲속 다산의 거처
    (77) 전남 강진 다산초당-고요한 숲속 다산의 거처

    바람은 차가웠지만, 숲 안쪽은 견딜 만했다. 나무 사이를 걸어 만덕산 기슭을 넘어가자 먼발치에 집 하나가 놓였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보냈던 거처다. 그는 강진에서만 18년을 보냈는데, 그중 10년을 여기서 머물렀다. 긴 세월을 머물렀으니 남긴 것도 많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우리에게 낯익은 수많은 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무려 600여 권에 달하는 조선 후기 실학이 여기서 집대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산초당에 오르면 눈여겨봐야 할 게 또 있다. 현판이다. 이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지만, 추사만의 기품이 오롯이 배어 있다.이곳을 찾은 건 고요함에 머무르고 싶어서였다. 숲길 안쪽 깊숙한 이곳은 시끄러운 세상일에서 잠시 떠나 있기에 안성맞춤이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새소리만 가득하게 차올라온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그락거리는 나무의 소리도 반가웠다. 집 주위를 가득 메운 자연이 주는...

    1607호2024.12.11 06:00

  • [정태겸의 풍경] (76) 전북 장수 영월암-쉼이 필요했던 날의 아침 풍경
    (76) 전북 장수 영월암-쉼이 필요했던 날의 아침 풍경

    연말이 다가올수록 몸이든 마음이든 지쳐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하루쯤은 쉬고 싶다고, 마음 놓고 쉬고 싶다고 되뇌곤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게 느껴지는 어느 날이었다. 전북 장수는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던 곳이었다. 한국의 오지를 이야기할 때, 강원도를 빼면 의외의 지역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무진장’이다. 무주, 진안, 장수. 전주와 대전이 가까워 무슨 오지가 있나 싶겠지만, 의외로 한국 최고의 오지라고 불리는 곳들이다. 그중 장수의 영월암을 찾았다. 인연 있던 스님이 그곳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스님 내려갈게요.” 전화기 너머에서 스님은 흔쾌히, 언제든 내려오라고 하셨던 참이다.푹 쉬라면서 스님은 방의 한쪽을 내주셨다. 차를 마시는 동안 며칠 전 보았다는 절 아랫마을의 운무를 이야기해 주셨던 게 아른거려 늦잠을 잘 수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절의 위로 올랐다. 맞은편 산 아랫마을에는...

    1605호2024.11.27 06:00

  • [정태겸의 풍경](75) 전북 익산 교도소 세트장-그대를 향한 내 마음, 철컹철컹
    (75) 전북 익산 교도소 세트장-그대를 향한 내 마음, 철컹철컹

    예전에는 전북 익산을 여행지로 생각할 만했다. 충청도와 전라도로 뻗어 나가는 기찻길이 익산으로 모여들어 인구도 많았고, 여행하기 좋은 여건이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여행지 익산’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흐름을 바꿔놓은 게 있으니 익산 교도소 세트장이다. 폐교를 고쳐 교도소처럼 꾸민 곳인데, 온갖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이제는 여기를 찾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여기에 하나의 장치를 더 했다. 수갑이다. 언젠가부터 연인들은 온갖 여행지에 자물쇠를 걸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부질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연장선으로 떠올린 게 수갑이었다. 모든 건 관광두레 기획자의 아이디어. 교도소와 수갑의 원래 의미를 뒤집어 버린 생각의 전환이 전국의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의 발길을 불러 모았다. 세트장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지금 같은 호응은 없었을 거다.익산의 별칭도 만들었다. ‘고백의 도시’. 여러 의미를 담았다. 그만큼 갈 ...

    1603호2024.11.13 06:00

  • [정태겸의 풍경](74)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왕자 탯줄 묻어…태교 명소로 각광
    (74)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왕자 탯줄 묻어…태교 명소로 각광

    성주라는 동네는 참 낯설다. 참외 말고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나마 ‘언택트 성지’라는 수식어로, 찾는 이가 많지 않아 도리어 좋은 여행지로 포장돼 알려진 편이다. 처음 경북 성주를 찾았을 때 내 느낌은 그랬다. ‘이런 곳을 왜 몰랐을까.’세종대왕이 자손의 탯줄을 모아서 태실을 만들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조선 왕조가 왕가의 탯줄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으며, 구태여 스스로 찾아보는 이도 없다. 세종대왕자 태실을 찾은 후 알게 된 것이 일제의 또 다른 만행이다. 조선의 왕가는 전국의 길지 중 길지를 골라 54기의 태실을 만들었는데, 이걸 일제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한데 모아 버렸다는 것. 이제는 태봉산이니 태봉리 같은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세종대왕자 태실이 고스란히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게 반가운 건 그래서다.선석사라는 사찰 곁, 태봉의 정상부에 태실은 자리하고 있다. 주차하고 조금만 걸으면 금방이다. 온종일 햇살을 받을 수 있는 ...

    1599호2024.10.16 06:00

  • [정태겸의 풍경](73) 경북 영주 부석사-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서서
    (73) 경북 영주 부석사-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서서

    길가에는 어느덧 사과가 붉은빛을 뽐내고 있었다.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근처를 지날 때면 으레 들렀다 가게 되는 곳이 경북 영주의 부석사다. 소백산 끝자락 부석면에 앉은 부석사는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있었다. 타들어 갈 것만 같은 태양은 누그러지고 짙게 물들어가던 초록의 빛깔도 조금씩 너그러운 색채를 갖춰가고 있었다. 여름의 꽃 백일홍(배롱나무)은 마지막 꽃잎을 산들산들 흩날렸다.이 절의 이름인 부석은 ‘떠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나타나는 무량수전 곁에 있는 바위가 바로 그 떠 있는 돌이라고 한다. 의상을 흠모했던 여인 선묘가 용이 되어 이 자리에 사찰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상을 도왔다는 이야기. 의상을 막아섰던 무뢰배들을 선묘가 커다란 돌을 띄워(부석) 물리쳤다는 고사가 깃든 절이 부석사다. 그래서일까. 절이 참 예쁘다. 영주에 내려올 때면 잊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가는 이유다. 보물찾기하듯 모르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아는 사람만 볼 수...

    1597호2024.10.02 06:00

  • [정태겸의 풍경](72) 전남 진도 관매도 해송숲-섬에서 받은 숲의 선물
    (72) 전남 진도 관매도 해송숲-섬에서 받은 숲의 선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탄다. 거리로는 24㎞. 한 시간 반 정도, 바다를 가르며 유유히 나아가던 배가 관매도에 뱃머리를 이었다. 관매도는 진도의 관할 아래 독거도, 청승도, 신의도, 죽항도, 개의도, 슬도와 함께 독거군도를 이루는 섬이다. 오래전 선비 조씨가 귀양 가던 중 백사장을 따라 무성하게 핀 매화를 보고 관매도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제는 매화가 보이지 않는다. 멸종한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대신 지금 이 섬의 주인공은 곰솔(해송)이다. 세찬 바닷바람을 막아선 소나무가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섰다. 수백 그루가 폭 200m로 2㎞에 걸쳐 이어진다. 면적만 9만9000㎡(약 3만평)에 달한다.언젠가부터는 ‘백패킹’을 좋아하는 캠퍼들이 하나둘 관매도의 이 숲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해보니 알 것 같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의 소리. 텐트를 치고 곁에 의자를 펼쳐 앉는 순간부터 마음...

    1595호2024.09.11 06:00

  • [정태겸의 풍경](71) 전남 담양 명옥헌-여름이 분홍빛으로 일렁이거든
    (71) 전남 담양 명옥헌-여름이 분홍빛으로 일렁이거든

    분홍빛 구름이 일렁인다.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는 배롱나무꽃. 뙤약볕에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 여름날이었다. 전남 담양의 명옥헌 원림은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며 여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나무 위에 걸린 구름이 흔들리고, 다시 바람이 일면 후드득 꽃비가 쏟아졌다. 연못 뒤 숲속 그늘에 얌전히 앉은 누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더위도 썩 견딜 만했다.원림은 정원을 의미한다. 명옥헌은 1625년, 명곡 오희도의 넷째 아들 오이정이 아버지를 기리며 지었다. 오희도는 당대의 인재 중 인재였다. 인조가 왕위에 오를 때 인재를 찾는 과정에서 그를 발견했고, 세 번이나 찾아와 당신의 사람이 돼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끝내 오희도는 거절의 뜻을 밝혔다. 연로한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였다. 인조가 찾아오던 그때도 그는 이 자리에 머물렀다고 전한다.한국의 정원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풍경이라 했던가. 이곳은 그 말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의 ...

    1591호2024.08.14 06:00

  • [정태겸의 풍경](70) 경북 울릉도 현포-들판의 보랏빛 파도 ‘그림 같은 꽃밭’
    (70) 경북 울릉도 현포-들판의 보랏빛 파도 ‘그림 같은 꽃밭’

    차를 몰아 경북 울릉도를 일주할 때였다. 바다를 끼고 달리다 산길로 올라 오르락내리락. 코너를 돌아서 나가던 중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넓은 들판에 보랏빛 파도가 일렁였다. 평평한 땅이 드문 울릉도에서 보기 힘든 규모의 꽃밭이었다. 귀한 풍경에 차를 멈추었다.울릉도는 화산섬이다. 지형이 가파르고 평지가 드문 건 그래서다. 바위가 많고 척박하다. 야생화가 많고, 여름이면 나리꽃이 여기저기 만발하다. 이렇게 한 종류의 꽃을 무더기로 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심지어 보랏빛이라니. 한쪽에 누군가 꽃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 버들마편초. 본 이름은 숙근버베나라고 부르는 남미 원산의 식물이다. 사진을 찍고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다른 버베나에 비해 이 종은 키가 크고 줄기가 꼿꼿해 비바람에도 쉬이 꺾이지 않는다고 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람 많은 울릉도에는 안성맞춤이다.울릉어선안전국 현포중계소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면적은 3967㎡(약 1200평). 울릉군은 2022년 텅...

    1589호2024.07.31 06:00

  • [정태겸의 풍경](69) 강원 양양 남대천-우리가 몰랐던 ‘양양의 풍경’
    (69) 강원 양양 남대천-우리가 몰랐던 ‘양양의 풍경’

    강원도 양양이 뜨겁다. 적잖은 여행자의 시선이 양양으로 향한다. 대체로 인구해변과 바로 곁의 죽도를 말하지만, 변화 범위가 훨씬 넓고 크다. 위로는 속초에 가까운 곳부터 아래로는 주문진 바로 곁 남애리 일대까지 모든 해변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움직인 건 바닷가가 아닌 의외의 장소였다. 남대천이다.오해하면 안 된다. 이 하천은 강릉의 남대천이 아니라 양양의 남대천이다. 그러니까 강원도 동쪽의 남대천은 하나가 아닌 둘이다. 강릉 왕산면에서 발원하는 강릉의 것과 달리 양양의 이 물길은 양양 현북면에 가까운 오대산에서 시작한다. 영동지역의 하천 중에서 가장 맑고 길다고 알려져 있는데, 상류 쪽은 강원도에서 가장 물이 맑다는 법수치계곡을 이룬다. 길게 돌고 돌아 흘러 내려온 강은 양양읍 바로 옆에서 바다로 빠져나간다.보는 순간 가슴이 요동친 곳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제법 너른 강폭이 저 멀리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에 맞닿아 더없이...

    1586호2024.07.10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