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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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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겸의 풍경](85) 대전 엑스포아파트-이 시대의 마을숲
    (85) 대전 엑스포아파트-이 시대의 마을숲

    몇 년 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료를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2012년 특별상까지 받았다는 아파트숲. 대체 어떤 모습일까. 우리에게 익숙한 아파트와는 어떤 면이 다를까.차량의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릴 때,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유심히 살펴봤다. 겉보기에 보통의 아파트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유독 눈에 띄었던 건 나무의 키였다. 아파트의 담장 대신 솟아오른 메타세쿼이아와 전나무가 남달랐다. 아파트 안으로 걸어들어가 산책하듯 걸으며 주위를 살펴보니 알 것 같았다. 51개동 4000세대가 사는 아파트단지이고, 1994년에 지어진 걸 감안하면 나무가 많았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을 생각하면 이런 형태의 숲이 아주 잘 설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무도 종류가 다양하다. 튤립나무, 느티나무, 고욤나무, 엄나무, 벚나무 등. 봄이어서...

    1625호2025.04.23 06:00

  • [정태겸의 풍경](84) 경북 영천 만불사-이 시대에 전통이란 무엇인가?
    (84) 경북 영천 만불사-이 시대에 전통이란 무엇인가?

    절 안으로 들어서서야 깨달았다. 한 달 뒤가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걸. 한 달이나 남았지만, 절집은 분주했다. 머리 위로 빼곡하게 색색의 연등이 줄을 맞춰 달려 있고, 겨우내 움츠렸던 경내를 정리하고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경북 영천의 만불사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 방문은 처음이었다. 절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이곳이 다른 사찰과 매우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통의 방식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이곳만의 미감으로 지어 올렸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손뼉을 쳐주고 싶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런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전통 사찰은 전통 사찰대로 오래 이어온 풍모를 가꿔야 하지만, 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어쩌면 ‘전통’이라는 단어에 갇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림도, 건축도, 조형물도 ‘옛’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꼼짝을 못 하는 것처럼. 굴레에 갇힌...

    1623호2025.04.09 06:00

  • [정태겸의 풍경](83) 인천 강화도 외포리 곶창굿-사라져가는 봄날의 마을잔치
    (83) 인천 강화도 외포리 곶창굿-사라져가는 봄날의 마을잔치

    석모도를 마주하고 있는 강화도 외포리가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몇 년 만에 마을의 풍요를 비는 곶창굿이 열리던 날. 외포리는 주로 어업을 생업으로 삼는 정포마을과 농사를 짓는 대정마을 주민이 모여 예부터 마을굿을 함께 열어왔다고 전한다. 곶창굿은 임경업 장군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서해안의 풍어제다. 임경업 장군은 친명반청을 주장하며 우국충정을 표했지만 안타깝게 옥사한 인물. 그러나 민중은 그를 무속의 신을 되살려 풍어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그 흔적이 서해안의 풍어제에서 드러난다.외포리의 곶창굿이 독특한 것은 다른 해안마을과 달리 풍어제에 그치지 않고 모두의 풍요를 기원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1997년에 인천광역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마을굿은 오랫동안 그 자체로 잔치였을 테다. 온 동네 사람이 모여 굿을 지켜보고 떡이며 과일을 나눠먹는 풍경이 펼쳐졌겠지만, 이날의 곶창굿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했다. 그만큼 외포리에 젊은 사람은 줄어들고 몸이 불편해 집 밖을...

    1621호2025.03.26 06:00

  • [정태겸의 풍경](82) 강원 삼척 산수유 설경-노란 꽃잎 위에 하얀 눈…봄은 그렇게 온다
    (82) 강원 삼척 산수유 설경-노란 꽃잎 위에 하얀 눈…봄은 그렇게 온다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스라한 노란 꽃 위로 쌓인 하얀 눈덩이. 3월의 시작부터 폭설이 온다기에 강원도 삼척의 깊은 산속을 찾아 내려온 길이었다. 하필 습설이었고 나무 위로, 지붕 위로 두텁게 내려앉았다. 산길을 올라가던 중에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몸통째 쓰러져 자꾸만 앞을 막았다. 그래서 산속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한 뒤였다. 미끄러지는 차를 달래며 산에서 내려오던 중 길가의 한옥 카페 곁에 피어난 산수유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이미 봄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토록 다소곳하게 피어난 작은 꽃뭉치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마음은 겨울에 머물러 있었을 터였다.그런 연유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풍광이었다. 봄이구나. 이 네 글자가 감탄으로 터져나왔다. 산수유는 비로소 이 봄을 선언하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피었다 져버렸는지도 몰랐던, 우리 집 뒷산의 노란 안개 같은 그 무엇에 불과했던 꽃이었다. 아니, 이게 꽃이었는지도 몰랐다. 진한 노란빛으로 물...

    1619호2025.03.12 06:00

  • [정태겸의 풍경] (81)충남 서천 장항스카이워크-하늘을 걸어 봄바다를 맞이하다
    (81)충남 서천 장항스카이워크-하늘을 걸어 봄바다를 맞이하다

    충남 서천의 바다 한쪽에 자리 잡은 장항 솔바람 곰솔숲은 여러 번 찾았다. 처음에는 솔숲 아래 피어나는 보랏빛 카펫(맥문동꽃)을 보려고, 그 다음에는 숲의 곁에서 캠핑을 하러. 그리고 한 번은 이전에 걷지 못했던 길을 걸으러. 국내 여행은 트렌드에 많이 민감하다. 어느 한 곳에서 주목을 받은 아이템은 이내 다른 지자체에도 등장한다. 출렁다리가 그랬고, 벽화마을이 그랬다. 근래 몇 년 동안은 스카이워크가 유행이었다. 장항의 곰솔숲 끝자락에도 스카이워크가 놓였다. 물론 여행자의 발길을 성공적으로 끌어당긴 다른 곳의 사례를 참고했겠지만, 이곳은 하늘 위를 걸어 바다로 나아간다는 면에서 독특했다. 그래서 올라가 보기로 했다.계단 위를 올라 스카이워크에 섰다. 높은 곳을 걸어서 관광을 즐기는 시설인 스카이워크는 주변 경관에 따라 꽤나 다른 감상을 자아낸다. 이곳에서는 높게 솟아오른 숲 위로 시선을 두고 걸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길의 한쪽으로는 숲을 두고 다른 쪽으로 바다를 ...

    1617호2025.02.26 06:00

  • [정태겸의 풍경](80) 경남 창원 마산어시장-마산은 아직 살아 있다
    (80) 경남 창원 마산어시장-마산은 아직 살아 있다

    마산이라는 이름은 이제 행정구역 명칭에만 남았다. 창원·진해·마산이 통합하면서 과거 부산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마산은 창원이라는 명칭 뒤로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입에 붙은 ‘마산’이라는 단어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그 도시를 찾아 내려간 길에서도 내내 ‘창원’ 대신 ‘마산’이라는 말만 되뇌고 있었다.이름이 바뀌었어도 풍광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눈에 익은 골목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새벽 공판장의 경매 모습을 보고자 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찾아간 그 자리는 비록 규모가 크지 않아도 30명 남짓한 경매인과 물건을 내놓고 빼가는 분주한 모습이 남아 있었다. 짧고 간결하게 접어든 공판장 뒷골목. 깜짝 놀랐다. 늘 걸어 다니던 그 골목은 이른 아침마다 어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이런 진풍경을 어디서 봤던가. 1990년대 초중반에 마지막으로 봤던 대도시의 어시장이 살아 있었다. 하얀 입김이 풀풀 나오는 싸늘한 아침에도 사람...

    1615호2025.02.12 06:00

  • [정태겸의 풍경](79) 경남 진주 촉석루-엄혹한 계절이 가면…머잖아 봄
    (79) 경남 진주 촉석루-엄혹한 계절이 가면…머잖아 봄

    연초부터 한반도의 남쪽을 이리저리 떠다니던 중이었다. 갈 곳은 정해져 있었지만 시간은 촉박했고, 몸은 무거웠다. 고속도로 이정표에 ‘진주’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그대로 운전대를 돌려 서진주나들목으로 나갔다. 진즉 다시 가고 싶었던 곳, 진주의 얼굴과도 같은 촉석루가 보고 싶었다.마지막으로 촉석루를 왔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진주성의 안쪽, 남강을 곁에 둔 아름다운 강기슭에 촉석루가 있다. 바로 아래에는 논개가 몸을 던졌다는 ‘의암(義巖)’이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바위 옆면에는 ‘의암’이라는 한자가 선명하다. 기러기인지 오리인지 모를 철새가 강 위를 노닐고,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롭다.겨울의 강과 스산한 시절의 누각은 나름의 감성을 자아낸다. 댓돌 아래에서 신발을 벗고, 촉석루 위에 올랐다. 여기저기 돌아보다 보니 발이 시렸다. 더 두툼한 양말을 신을걸. 아침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런데도 이 한기는 견딜 만했다. ...

    1613호2025.01.22 06:00

  • [정태겸의 풍경](78) 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한겨울 바닷바람 녹인 ‘엄마의 얼굴’
    (78) 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한겨울 바닷바람 녹인 ‘엄마의 얼굴’

    부산 영도의 겨울바람은 제법 매서웠다. 막아주는 것 없이 고스란히 몰아치는 바람의 끝에는 칼날이 매달린 것만 같았다. 때때로 큰 배가 지나갈 때면 다리가 열리는 도개교인 영도대교를 넘어서는데 부산의 겨울도 만만찮다는 걸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다리를 건너다니며 부산을 여행하는 사람은 영도가 섬인 것조차 모른다. 영도는 여의도의 3~5배 정도로 크다는 부산의 대표적인 섬이다. 그래서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다.다리를 건너오면 오른쪽으로 공장지대가 펼쳐진다. 초입에 놓인 ‘깡깡이예술마을’이라는 팻말.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부산을 먹여 살렸던, 국내 최초의 조선업이 시작된 마을이다. 지금은 울산과 거제도에 밀려 수리조선업을 주로 하고 있지만, 배에 들어가는 부품이라면 못 만드는 것이 없고, 못 고치는 게 없다는 만능 재주꾼들이 아직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골목골목에서 눈길을 끈 건 아파트 벽에 그려진 거대한 엄마의 초상화다. 추운 겨울 삭풍에도...

    1611호2025.01.08 06:00

  • [정태겸의 풍경] (77) 전남 강진 다산초당-고요한 숲속 다산의 거처
    (77) 전남 강진 다산초당-고요한 숲속 다산의 거처

    바람은 차가웠지만, 숲 안쪽은 견딜 만했다. 나무 사이를 걸어 만덕산 기슭을 넘어가자 먼발치에 집 하나가 놓였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보냈던 거처다. 그는 강진에서만 18년을 보냈는데, 그중 10년을 여기서 머물렀다. 긴 세월을 머물렀으니 남긴 것도 많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우리에게 낯익은 수많은 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무려 600여 권에 달하는 조선 후기 실학이 여기서 집대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산초당에 오르면 눈여겨봐야 할 게 또 있다. 현판이다. 이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지만, 추사만의 기품이 오롯이 배어 있다.이곳을 찾은 건 고요함에 머무르고 싶어서였다. 숲길 안쪽 깊숙한 이곳은 시끄러운 세상일에서 잠시 떠나 있기에 안성맞춤이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새소리만 가득하게 차올라온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그락거리는 나무의 소리도 반가웠다. 집 주위를 가득 메운 자연이 주는...

    1607호2024.12.11 06:00

  • [정태겸의 풍경] (76) 전북 장수 영월암-쉼이 필요했던 날의 아침 풍경
    (76) 전북 장수 영월암-쉼이 필요했던 날의 아침 풍경

    연말이 다가올수록 몸이든 마음이든 지쳐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하루쯤은 쉬고 싶다고, 마음 놓고 쉬고 싶다고 되뇌곤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게 느껴지는 어느 날이었다. 전북 장수는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던 곳이었다. 한국의 오지를 이야기할 때, 강원도를 빼면 의외의 지역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무진장’이다. 무주, 진안, 장수. 전주와 대전이 가까워 무슨 오지가 있나 싶겠지만, 의외로 한국 최고의 오지라고 불리는 곳들이다. 그중 장수의 영월암을 찾았다. 인연 있던 스님이 그곳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스님 내려갈게요.” 전화기 너머에서 스님은 흔쾌히, 언제든 내려오라고 하셨던 참이다.푹 쉬라면서 스님은 방의 한쪽을 내주셨다. 차를 마시는 동안 며칠 전 보았다는 절 아랫마을의 운무를 이야기해 주셨던 게 아른거려 늦잠을 잘 수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절의 위로 올랐다. 맞은편 산 아랫마을에는...

    1605호2024.11.27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