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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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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겸의 풍경](96) 전남 강진-장인의 손으로 빚은 선 고운 옹기
    (96) 전남 강진-장인의 손으로 빚은 선 고운 옹기

    몇 번이나 다녀왔지만, 갈 때마다 전남 강진은 숨어 있는 보석 같다. 먹을 것, 볼 것, 할 것이 생각보다 많음에도 가치에 비해 덜 알려진 여행지다. 원래 이곳은 청자로 유명세를 날리던 땅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진의 청자만 쳐다보다 이곳의 옹기가 못지않게 훌륭하다는 건 놓치고 있었다. 칠량 바닷가 옹기장인 정윤석씨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강진의 옹기를 알게 됐으니.칠량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옹기를 만들었다. 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을 뒷산의 흙이 옹기를 빚기에는 제격이다. 자연스레 그 역사가 길 수밖에 없는 배경을 가졌다.장인에게 옹기 빚는 과정을 들었다. 듣기만 하면 뭐하냐면서 물레 앞에 앉는다. 곱게 내린 흙을 치대어 만든 반죽이 물레 위에 오르고, 때리고 돌려 다듬으며 옹기 하나를 빚기 시작한다. 하나의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힘이 있다.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장인은 말 한마디 없이 옹기를 빚는 동안 물레...

    1647호2025.09.24 06:00

  • [정태겸의 풍경] (95) 충남 부여-백제의 마지막 지켜본 소나무산
    (95) 충남 부여-백제의 마지막 지켜본 소나무산

    충남 부여는 경주 못지않은 역사 도시다. 경주가 신라의 고도라면 백제의 마지막 수도는 부여였다. 경주에 비하면 부여에 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더구나 한여름이어서일까. 인적이 드물었다. 부여의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백마강, 그리고 그 곁에 솟아오른 언덕. 우리에게는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낙화암이 있는 곳. 그곳이 부소산성이다. ‘부소’는 백제의 고어로 소나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부소산은 곧 소나무산이다. 106m의 키 작은 이 산은 백제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저 나무가 그때의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 리 없겠지만,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만큼 산길을 오르는 내내 소나무가 길가를 지키고 섰다.성왕이 이곳으로 도읍을 옮긴 538년. 처음 토성을 쌓고 123년이 지난 후 백제는 마지막 빛을 잃었다. 낙화암까지 오르고 나니 백마강이 널리 휘돌아가는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자리에서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고? 믿기지 않는다. 낙화암 아...

    1645호2025.09.10 06:00

  • [정태겸의 풍경](93) 전남 광양 이순신대교-제철소 너머의 아름다운 여름 풍광
    (93) 전남 광양 이순신대교-제철소 너머의 아름다운 여름 풍광

    전남 광양은 그 유명한 불고기를 먹으러 다녀왔을 때를 제외하면 온전히 여행해본 적이 없다. 요즘에는 좀처럼 기회가 없던 도시나 지역에 관심을 두고 있던 터라, 이번에 제대로 광양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광양은 제철소의 도시이고, 해양공업도시의 이미지가 강하다. 여행지라는 인식은 많지 않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리 생각할 것이다.처음에는 여름의 꽃 해바라기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작열하는 태양과 여름 내내 이어진 폭염을 미처 생각 못 했다. 해바라기는 이미 시든 뒤였다. 헛헛한 마음을 풀러 광양에서 제법 경치가 좋다는 카페를 찾았다. 여수와 광양을 잇는 이순신대교가 보이는 곳이었는데, 커피를 마시다 눈에 들어온 풍경에 그대로 뛰쳐나갔다. 꽃밭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맞은편의 다리. 이런 경치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순신대교 바로 옆에는 광양제철소가 있고, 푸른 바다는 그 곁을 유유히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갔다.이제는 다르다. 광양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라 해도 ...

    1641호2025.08.13 06:00

  • [정태겸의 풍경](92) 전남 여수 거문도- 남 거문도, 북 녹산…풍경이 된 등대
    (92) 전남 여수 거문도- 남 거문도, 북 녹산…풍경이 된 등대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마치 섬에 들어오는 여행자를 두 팔 벌려 반기는 듯한 풍광. 두 시간 남짓 물 위를 달려 배는 거문도의 품에 안겼다.거문도를 여행하는 동안 가장 깊게 각인된 건 등대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거문도에는 꼭 찾아봐야 할 등대가 남쪽과 북쪽 두 군데 있다. 거문도 최남단에 자리한 거문도등대는 역사가 깊다. 120년 전인 1905년 4월에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의 등대인 인천 팔미도등대가 1903년 6월에 세워졌으니, 그로부터 딱 2년 후다. 한반도의 바다를 밝히는 세 번째 등대였다. 거문도등대로 가는 길은 온통 동백터널이다. 햇빛조차 스며들지 못할 만큼 어둡지만, 여름엔 그래서 시원하다. 그 끝에서 만난 거문도등대는 아직도 10.4m라는 최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반대로 거문도 입구를 지키고 선 녹산등대는 산의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양쪽으로 풀이 가슴까지 자랐고, 그 너머로 바다가 넘실댄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

    1639호2025.07.30 06:00

  • [정태겸의 풍경](91) 강원 태백 철암탄광역사촌-1970년대에 멈춰 선 골목 풍경
    (91) 강원 태백 철암탄광역사촌-1970년대에 멈춰 선 골목 풍경

    강원도 태백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길도 멀고 험해서 오지 중 오지였지만, 이 척박한 땅에서 나오는 석탄은 수없이 많은 사람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지금의 20~30대는 잘 모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태백의 철암지역은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다.서울의 명동이나 종로만큼 사람이 북적대던 태백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건 액화가스가 보편화하면서부터였다. 사람은 사라지고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랬던 철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번화가였던 건물이 통째로 전시장이 됐고, 백두대간협곡열차라고 부르는 관광열차가 철암까지 이어졌다. 철암의 변화는 입소문을 타고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있다.페리카나, 호남슈퍼, 진주성, 봉화식당 그리고 한양다방. 옛 시절 이곳에서 장사하던 가게의 이름이 그대로 전시장의 이름이 됐다. 어떤 곳은 예술가의 전시공간이 됐지만, 어떤 곳은 예전 태백의 기록사진이 상설전시돼 있다. 그중 눈길을 끈 건 탄광회사 사무실의 월급날 풍경이다. 남편들이...

    1637호2025.07.16 06:00

  • [정태겸의 풍경](90) 전남 여수 낭도-젖샘 막걸리가 그리워지는 여름밤
    (90) 전남 여수 낭도-젖샘 막걸리가 그리워지는 여름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남 여수의 낭도는 외떨어진 곳이었다. 한번 들어가려면 배를 타고 한참을 뱅 돌아야 간신히 닿았다. 그때만 해도 고요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에 포근함이 느껴지던 섬이었다. 다리가 놓여 육지에서 차로 들어가는 지금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아직 변하지 않은 하나가 이 섬에서 나오는 막걸리다.낭도는 장점이 많은데, 그중 제일은 물이다. ‘젖샘’이라는 샘물이 나온다. 젖샘은 바닷물과 섞이지 않아 철분이 많다는 게 이 섬 주민의 설명이다. 이 물을 마시면 젖이 잘 돌고, 그 젖을 먹으며 오랜 시간 사람이 살아왔다는 거다. 그 맛 좋다는 샘물로 막걸리를 만드는 술도가가 있다. 강창훈 사장은 낭도에서 얼굴이 가장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섬의 대소사를 챙긴다. 그래서 섬을 다녀간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다.이 섬을 찾았다면 그가 만든 막걸리를 마실 수밖에 없다. 여행이나 캠핑, 낭도에 와야만 마실 수 있기에 사람마다 두 손 가득히 막걸...

    1635호2025.07.02 06:00

  • [정태겸의 풍경](89) 경기 안성팜랜드-초록빛 ‘호밀 물결’
    (89) 경기 안성팜랜드-초록빛 ‘호밀 물결’

    경기 안성은 한국 현대 목축업이 태동한 곳이다. 이 도시를 알리기 위한 많은 수식어가 앞에 따라붙지만, 정작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팜랜드는 안성의 그런 과거를 대중에게 드러내는 관문 같은 장소다. 이름만 보면 농업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 같지만, 보면 볼수록 참 많은 걸 담고 있다.1960년대 한국은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를 보냈다. 독일은 대가로 한국에 낙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젖소도 함께 보냈다. 당시 젖소를 키우고 낙농업 기술을 익히던 목장이 바로 이곳 팜랜드 부지였다. 여기에서 한국 낙농업은 기초를 다지고, 이를 기반으로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처음 젖소를 들여와 키우던 그 자리에 호밀이 자란다. 지금이 잘 익은 호밀을 볼 수 있는 시기다.여기서 수확한 호밀은 제분을 해서 번식우의 사료로 쓴다. 전동차를 몰고 그 둘레를 따라다니며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호밀밭을 거닐고, 삼삼오오 사진을 찍어 추억을 기록하는 곳이다....

    1633호2025.06.18 06:00

  • [정태겸의 풍경](88) 전북 고창 삼태마을숲-탄성 자아내는 ‘나무의 얼굴’
    (88) 전북 고창 삼태마을숲-탄성 자아내는 ‘나무의 얼굴’

    도대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내비게이션은 이 근처라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숲다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여느 시골의 개울가 정도로만 보이는 풍경이 있을 뿐. 차에서 내려 물었다. “여기가 삼태마을이 맞나요?”, “여기가 삼태마을 맞습니다.” 경로당 앞에 앉아 있던 어르신 대답을 듣고 고개를 돌려 다시 둘러봤다. 그제야 개울가에 늘어선 왕버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도 오래된,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마냥 용틀임하는 듯한 몸체가 기가 막혔다.삼태마을숲은 지금까지 찾아다닌 여러 숲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중 하나였다. 이곳의 버드나무숲 역시 비보림이었다는 설이 있다. 홍수가 잦았고, 그래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또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 19세기 말 정휴탁이라는 군수가 어려운 이에게 소를 빌려줬고, 백중날마다 소를 빌려 간 사람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는 것. 그때 소를 매놓았던 말뚝이 자라 지금의 숲이 됐다는 입소문이다. 또 다른 일화도 있지만, ...

    1631호2025.06.04 06:00

  • [정태겸의 풍경](87) 경남 남해 화방사-붉은 꽃으로 채워진 미더운 절
    (87) 경남 남해 화방사-붉은 꽃으로 채워진 미더운 절

    경남 남해를 여행하면서 남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 사찰을 찾았다. 화방사. 남해 하면 보리암을 즐겨 찾고 용문사도 유명하다. 화방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당시에는 연죽사라 불렀다고 한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화방사는 남해를 대표하는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옛 명성에 비해 다소 초라한 면이 없지 않다.이 사실은 화방사에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의 승군이 주둔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에서 활약한 승군의 적잖은 수가 화방사에서 동원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란 이후 불이 나 전소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복원했지만, 화방사는 그 시대 남해안 일대를 지키는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던 셈이다. 승군의 흔적은 구시통(구유)으로 남아 있다. 원래 구시통은 말의 먹이를 주는 커다란 통나무 그릇이지만, 사람이 많이 머무는 시대에는 여기에 밥을 담아 여럿이 함께 먹었다고도 한다. 화방사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많은 절이어서 어릴 적부터 ...

    1629호2025.05.21 06:00

  • [정태겸의 풍경](86) 경남 의령 정암철교-영호남 길목이 돼준 추억의 옛다리
    (86) 경남 의령 정암철교-영호남 길목이 돼준 추억의 옛다리

    경남 창원에서 강연을 하고 지나가던 길에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의령’. 마음을 내지 않으면 좀처럼 갈 기회가 없는 그 땅으로 급히 방향을 틀었다. 때론 이런 식의 여행이 당길 때가 있다.진주까지 흘러가는 널찍한 남강을 다리로 건너면 비로소 의령이다. 강 건너에는 ‘의령관문’이라는 문이 세워져 있고, 그 곁으로 철교가 보인다. 의령은 바로 이곳부터 시작이다. 길이 45m, 높이 12m의 의령관문도 독특했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 곁의 정암철교였다. 요즘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트러스 구조의 다리. 1935년에 지어졌지만, 6·25전쟁으로 파괴된 다리를 1973년에 복원했다고 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레트로한 느낌. 이 다리가 시선을 끌었던 건 아마도 그런 옛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정암철교는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완공되기 전까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나드는 길목의 역할을 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호남으로 가자면...

    1627호2025.05.07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