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하루아침에 서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눈 뜨니 겨울이 돼버렸다. 가을은 이대로 사그라지는 듯하더니 그래도 반짝 제빛을 뽐내고 빠르게 스러져버린다. 오래 아껴두고 있던 절을 찾아 올랐다. 이때쯤 가겠노라 꼭꼭 감춰뒀던 곳이다. 이곳에 가면 겨울이 주는 감정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도 파주의 보광사. 가깝지만,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던 곳이다.예상 그대로였다. 낙엽은 비처럼 산등성이에서 쏟아지고, 쨍하게 차가운 공기는 태양의 광선을 눈부시게 산란시키던 오전의 산사 풍경이다. 신라 진성여왕 8년(894) 어명으로 도선이 지었다는 이 절은 볼 게 많다. 범종이며 목어, 운판이 모두 문화재다. 시간이 손수 쓸어넘긴 곳마다 그 흔적이 가득하다. 마침 스님의 사시예불 소리가 경내에 가득하다. 이 계절에는 강렬한 겨울 시선이 짙은 그림자를 곳곳에 드리운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눈에 다가와 담긴다. 어실각 옆 영조가 어머니를 그리...
1655호2025.11.26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