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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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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겸의 풍경] (118) 전북 정읍 서현사지-고즈넉한 돌담을 감싼, 이백 살 여름 나무의 붉은 꽃
    (118) 전북 정읍 서현사지-고즈넉한 돌담을 감싼, 이백 살 여름 나무의 붉은 꽃

    전북 김제에서 정읍으로 가는 길 중간, 이면도로로 빠져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현사지’라는 곳이 나온다. 옛 모습을 잘 간직한 마을이라면 하나쯤 있을 법한 사당이다.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는 자주 마주하는 그런. 번듯하게 건물이 서 있는데, 이정표에는 ‘사지’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여기는 옛터라는 의미인데 의아했다. 안내판을 보니, 아하! 이곳은 고종 5년(1868)에 서원 철폐령으로 헐려버려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단다. 지금 남아 있는 건 사당의 주인공이었던 박문효의 부인 송씨를 위해 세운 정려문과 유허비뿐이다.이 사당은 임진왜란 때 목숨을 바쳐 싸웠던 박문효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곳이었다. 그는 선조를 따라 의주까지 피란을 갔지만, 다음 해 한양으로 돌아오던 길에 개성에서 왜군을 만나 격렬하게 싸우다 전사한다. 부인 송씨는 어린 자식과 함께 이곳 정읍의 태인으로 내려와 있다 남편의 죽음을 전해듣고 뒤따라 목숨을 끊었다 전한다.대중적으로 알려진 곳도 아니...

    1691호2026.08.12 18:00

  • [정태겸의 풍경] (117) 경기 수원 경기사진센터-시선을 사로잡은 얼굴
    (117) 경기 수원 경기사진센터-시선을 사로잡은 얼굴

    우연히 마주한 것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다. 얼마 전 SNS에서 본 사진전 소식도 그랬다. 사진 속 인물은 법정 스님이었다. 수없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속 파도를 잠재워 주었던 책들을 쓴 인물. 입적한 지 몇년이 지났지만, 사진 속에서 스님은 살아 숨 쉬며 여전히 맑은 얼굴로 귀 기울일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았다.수원의 경기상상캠퍼스를 찾아간 건 그래서였다. 지난 3월에 개관했다는 경기사진센터가 상상캠퍼스 안에 있었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참 잘 지었다 싶었다. 마치 대학의 교정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건물들이 공원을 이웃해서 한데 모여 있는 곳이었다. 산책하기 좋은 곳이구나, 한 번씩 쉬러 와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경기사진센터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익숙한 또 하나의 얼굴이 보였다. 고 안성기 배우의 젊은 시절의 얼굴이었다. 마치 이 사진전에서도 그의 얼굴이 대표작인 듯, 한국 영화를 대표하던 그가 맑게 웃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세상과 작별하기 직전...

    1689호2026.07.29 06:00

  • [정태겸의 풍경] (116) 전북 군산 신시도-어쩌면, 희망의 눈
    (116) 전북 군산 신시도-어쩌면, 희망의 눈

    지난해 5월이었다. 동티베트를 여행 중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알프스에 비견할 만한 숨은 절경 리탕. 그리고 그곳에서 ‘거니에의 눈’을 찾아갔다. ‘거니에’는 리탕을 대표하는 해발 6204m 설산의 이름이다. 산의 안쪽에는 작은 못이 있다. 지름이 10m쯤 될까. 석회암 지대의 특성상 탄산칼슘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깔때기 모양의 움푹 파인 지형이다. 이를 ‘돌리네’라고 부른다. 흔한 웅덩이에 지나지 않은 것 같지만, 하늘 위에서 보면 왜 ‘눈’이라는 단어가 붙었는지 알게 된다. 고래의 눈을 보는 듯한, 설산의 눈을 마주한 듯한 신비로움에 휩싸인다.전북 군산 신시도의 돌리네를 드론으로 마주했을 때, 그때 보았던 ‘거니에의 눈’을 떠올렸다. 이곳의 돌리네는 이름만 돌리네다. 민간업체가 지표조사를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곳인데, 하늘 위에서 보니 영락없이 ‘신시도의 눈’이다. 이곳이 인상적이었던 건 ‘거니에의 눈’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받았기 때문이다...

    1687호2026.07.15 06:00

  • [정태겸의 풍경](115) 강원 양양 남애항-바다는 육지를 닮았다
    (115) 강원 양양 남애항-바다는 육지를 닮았다

    여름의 강원 양양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한때 서퍼들의 천국 같았던 양양에서 서핑 말고 다른 해양스포츠는 뭐가 있을까 궁금했던 차였다. 남애항에 가보라는 현지인의 말을 들었다. 양양이 스쿠버다이빙을 하기에 아주 좋은 여건이라는 것. 여기저기에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곳이 많단다. 안 가볼 수가 없었다.남애항에는 물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림잡아도 20명쯤. 전날 내려와 다이빙스쿨 숙소에서 파티를 즐기고 오늘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장비를 챙기고 배로 향하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해 함께 가보았다. 바다로 나아가는 길에 팀을 이끄는 이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그중 재미있는 대목이 있었다. 바다는 육지를 닮았다는 것. 강원도 고성부터 속초까지 이어지는 바다는 산자락의 지형이 그대로 물 아래로 이어져 있다고 했다. 그만큼 급격하게 물이 깊어진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양양은 아주 완만하다. 초보자가 체험하기에 좋은 수심 5m부터 30m까지...

    1685호2026.07.01 06:00

  • [정태겸의 풍경](114) 전북 남원 산내면-노려보는 듯 미소짓는 묘한 얼굴
    (114) 전북 남원 산내면-노려보는 듯 미소짓는 묘한 얼굴

    식문화 운동을 하는 분을 만나러 전북 남원에 간 길이었다. 몇번을 찾아뵙고 우리의 식문화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떤 것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게 좋을지 등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많은 생각을 했다. 식탁에서 ‘밥’의 의미를 곱씹곤 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은 늘 설렜다. 이번에는 일과 관련해서 그분을 만나러 갔다. 전처럼 깊은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손수 지은 밥과 반찬을 곁들여 함께 식사했다. 공장에서 맛의 밸런스를 잡고 예쁘게 포장해 내놓은 음식에선 좀처럼 느끼지 못한 쓰고 시고 짭짤한 식재료의 맛이 오롯이 살아 있었다. ‘살아 있는 밥상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근처에 있는 실상사에 들르기로 했다. 걸어가는 길, 절로 들어가는 길가에 늘어선 장승이 보였다. 아, 장승이라는 걸 본 게 얼마 만인가. 사라져가는 물건이 그곳에 툭툭 놓여 있는 게 그리도 반가웠다. 무심한 듯 깎아 만든 투박한 외양. 그 장승의 행렬 한쪽에는 돌로 만든 석장승도 있었다. 코...

    1683호2026.06.17 06:00

  • [정태겸의 풍경](113) 강원 강릉 안목해변-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113) 강원 강릉 안목해변-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오랜만의 강릉이었다. 촬영 스케줄에 맞춰 찾은 강릉, 그 안에서도 안목해변. 커피 향이 짙어질수록 그곳을 찾는 발길이 늘었지만, 정작 내 발길은 줄어들었다. 남들이 자주 가는 곳은 덜 가게 될 수밖에 없는 여행작가라는 직업의 아이러니다. 대신 남들이 잘 모르는 곳, 이제는 잊힌 곳을 찾아보는 게 이 직업이다. 이곳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 덕에 정말 오래간만에 찾아간 바닷가. 짙푸른 그 바다는 여전했고, 평일이어서 여행자는 적었다. 길게 멀리 뻗어나가는 저 백사장도 그대로였다. 크게 변하지 않아 반가웠다.한동안 잊고 있다가 마주했을 때 반가운 건 사람만이 아니다. 여행지도 그렇다. 이전에는 점점 빠르게 늘어가는 카페의 행렬을 앞에 두고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도리어 커피를 안 마시기로 했지만, 이제는 가고 싶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터키 커피 체즈베 전문점도 보였고, 전망 좋은 자리가 욕심이 나는 곳도 있었다.고소한 커피를 홀짝이다 ...

    1681호2026.06.03 06:00

  • [정태겸의 풍경](112) 전북 전주 팔복예술공장 곁의 철길-땀이 스민 자리, 이팝 꽃잎이 흩날린다
    (112) 전북 전주 팔복예술공장 곁의 철길-땀이 스민 자리, 이팝 꽃잎이 흩날린다

    올봄 내내 전북 전주의 철길 사진이 눈에 띄었다. 휴대전화를 열면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보였다. 전주의 팔복예술공장, 그 곁의 철길.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건 이팝나무 가로수였다. 철길 양쪽으로 늘어서서 하얀 꽃을 피워낸 풍경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고 발길을 이끌었다. 출장에서 올라오는 길에 전주의 팔복동으로 목적지를 찍었다. 오래전에 다녀왔던 곳이지만, 이제는 또 다른 느낌일 듯했다.철길도 철길이지만, 이곳의 중심은 팔복예술공장이다. 이 일대는 지금도 산업지대다. 마치 서울의 문래동이나 성수동 같은 레트로하고 힙한 느낌 가득한 도시재생공간. 이중 팔복예술공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공장이 있었다. 쏘렉스(옛 썬전자)가 있던 자리에서 이제 마르크 샤갈의 전시가 열린다. 알록달록한 공장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뛰놀며 커피향 은은하게 퍼지는 멋진 카페가 있다. 확실히 이전에 비해 시간이 더해지면서 공간의 완숙함이 더 진하게 익어가고 있었다.철길과 철길 옆...

    1679호2026.05.20 06:00

  • [정태겸의 풍경](111) 경북 포항 덕동마을 숲-자연에 기대어 사는 공동체의 삶
    (111) 경북 포항 덕동마을 숲-자연에 기대어 사는 공동체의 삶

    산강수약축사지(山强水弱築斯池) 산이 강하고 물은 적어서 못을 만드니동학풍광부유기(洞壑風光復有奇) 동리의 경치가 다시 또 기이하구나!적세경영성숙지(積歲經營成宿志) 오랜 세월 경영한 뜻을 이루니장래여경야응기(將來餘慶也應期) 장래 남은 경사를 또한 기약하리라경북 포항 기북면의 덕동마을은 3개의 숲을 품고 있다. 송계숲, 도송숲, 정계숲이 마을 어귀와 한가운데, 용계천이 휘돌아가는 물길 한쪽에 자리한다. 이중 용계천 곁의 도송숲은 이 마을숲의 백미다. 한폭의 그림 같다. 옛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풍류도 엿보인다.마을 입구 송계...

    1677호2026.05.06 06:00

  • [정태겸의 풍경](110) 전북 익산 황등석산 전망대-170년간 만들어낸 별천지
    (110) 전북 익산 황등석산 전망대-170년간 만들어낸 별천지

    전북 익산 황등으로 달리는 내내 벚꽃 이파리가 비처럼 흩날렸다. 차를 세우고 이걸 담을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오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다. 요즘 익산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모으는 곳, 황등석산이다. 이곳은 화강암 채석장이다. 그 역사가 1858년, 철종 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 사람이 처음 개발해 대를 이어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에게 운영권이 넘어갔고, 20세기 초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신식 근대건축물에 황등석산에서 나온 화강암을 가져다 썼다. 그 후 약 170년, 아직도 이곳에서는 화강암 채취가 이어지고 있다. 오랜 시간 채석을 이어간 끝에 만들어진 풍광은 기가 막힌다. 지하로 파고들어간 깊이만 80m. 화강암을 떼어낸 절벽은 그 자체로 독특한 문양이 되어 멋스러움을 풍긴다.한눈에 보아도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누군가가 이곳을 보곤 사람들에게 알렸고,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더니 익산시의 대표 명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1675호2026.04.22 06:00

  • [정태겸의 풍경](109)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쌉싸름하게 버무린 봄 잔치
    (109)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쌉싸름하게 버무린 봄 잔치

    햇살 좋은 봄날이었다. 전남 장성의 백양사 천진암 주변은 온통 봄꽃과 봄나물이었다. 사찰음식의 대가인 정관 스님을 뵈러 간 길이었다. 스님은 사람들과 함께 봄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눈을 돌리면 곳곳에 나물, 소쿠리를 들고 언덕에 오르면 전부 먹거리였다. 정관 스님이 빈 땅을 그냥 둘 리 없었다. 두릅도 키우고 밭을 일궈 새순이 올라온 녀석의 푸성귀를 따서 한 무더기 들고 내려오면 그만이었다.먹을 게 풍성하니 사람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마당 한쪽에 걸어둔 가마솥에 물을 끓여 나물을 데쳐냈다. 뜯어온 것이 하도 많아 스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데쳐서 꺼낸 건 찬물에 씻어 식히고 그대로 갖은양념을 더 해서 조물조물 무쳤다.“아~ 해 봐요.” 사진을 찍은 내 입에 갓 무친 걸 쏙 넣어주셨다. 지난날 손수 담가 만든 간장과 된장에 참기름과 깨소금만 더 했는데 쌉싸름한 맛이 확 살아났다. 우물우물 씹을수록 그 맛이 입맛을 돋웠다. 밥 한 공기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1673호2026.04.0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