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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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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겸의 풍경](109)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쌉싸름하게 버무린 봄 잔치
    (109)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쌉싸름하게 버무린 봄 잔치

    햇살 좋은 봄날이었다. 전남 장성의 백양사 천진암 주변은 온통 봄꽃과 봄나물이었다. 사찰음식의 대가인 정관 스님을 뵈러 간 길이었다. 스님은 사람들과 함께 봄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눈을 돌리면 곳곳에 나물, 소쿠리를 들고 언덕에 오르면 전부 먹거리였다. 정관 스님이 빈 땅을 그냥 둘 리 없었다. 두릅도 키우고 밭을 일궈 새순이 올라온 녀석의 푸성귀를 따서 한 무더기 들고 내려오면 그만이었다.먹을 게 풍성하니 사람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마당 한쪽에 걸어둔 가마솥에 물을 끓여 나물을 데쳐냈다. 뜯어온 것이 하도 많아 스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데쳐서 꺼낸 건 찬물에 씻어 식히고 그대로 갖은양념을 더 해서 조물조물 무쳤다.“아~ 해 봐요.” 사진을 찍은 내 입에 갓 무친 걸 쏙 넣어주셨다. 지난날 손수 담가 만든 간장과 된장에 참기름과 깨소금만 더 했는데 쌉싸름한 맛이 확 살아났다. 우물우물 씹을수록 그 맛이 입맛을 돋웠다. 밥 한 공기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1673호2026.04.08 06:00

  • [정태겸의 풍경](108) 전남 담양군 죽녹원-초봄의 푸르름 머금은 대숲
    (108) 전남 담양군 죽녹원-초봄의 푸르름 머금은 대숲

    파릇한 기운은 아직이다. 햇볕은 따스해졌지만, 겨우내 곳곳에 깃든 찬 기운이 은연중 느껴졌다. 담양천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넌다. 전라남도에서도 담양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죽녹원이 눈앞에 드러난다. 가지 위에 버들강아지가 채 터지지도 않았지만, 푸른 빛이 감돈다. 아니 저 푸른 빛은 진 적이 없다.이곳은 야산이었다고 한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대나무숲일 뿐이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이 숲은 2003년 5월에 공원이 됐다. 누군가에게는 이 야산이 자원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안목은 담양이 전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총 16만㎡의 넓고 울창한 대숲. 그 안쪽으로 2.2㎞의 산책로와 죽녹원 8길, 판소리 전수관, 송강 정철 유적지, 죽향 체험마을 등을 조성했다. 숲은 그 자체로 볼거리이자 마음에 안식을 주는 장소였지만, 또 다른 볼거리가 생기자 점점 사람이 몰렸다. 한낱 대나무숲에 지나지 않던 야산은 전국을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숲을 걷는 동안 바람...

    1671호2026.03.25 06:00

  • [정태겸의 풍경](107) 경기 안성시 칠장사-소원탑도 탑이다
    (107) 경기 안성시 칠장사-소원탑도 탑이다

    설 명절이 지나니, 바야흐로 봄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계절이 순환한다. 삭풍 몰아치던 시간이 끝나면 비로소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지게 마련. 이번에는 경기도 안성 칠장사로 향했다. 봄날의 기운을 느껴볼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생각 같지는 않았다. 안성의 산자락 안쪽에는 아직 동장군이 발끝을 디디고 서 있는 듯했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바람은 쌀쌀했다.그럼에도 햇볕이 들자, 이내 따스함이 경내로 깃든다. 그제야 절 마당을 거닐며 둘러볼 마음이 들었다. 대웅전과 맞은편 응향각 사이 한가운데에 안성죽림리삼층석탑이 섰다. 여기까지는 여느 사찰과 다름없는 풍경. 한데 그 바로 옆에 소원탑도 섰다. 겨우내 이 절을 찾았던 사람들이 각자의 소원을 긴 띠에 적고 매달아 쌓아 올린 탑인 듯했다. 색색의 띠가 한데 모여 이룬 탑은 그 자체로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석탑 곁에 서 있기에 더욱 그리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원탑도 탑이다. 주변을 돌며 수도 ...

    1669호2026.03.11 06:00

  • [정태겸의 풍경] (106) 전남 완도군 주도-잘 지켜낸 ‘섬 앞의 섬’에 봄이 온다
    (106) 전남 완도군 주도-잘 지켜낸 ‘섬 앞의 섬’에 봄이 온다

    새벽이 밝아왔다. 전남 완도에 사는 지인이 이른 아침부터 불러냈다. “가자.” 나보다 나이가 한참은 많은 그는 나를 친구라고 여겼다. 그는 완도의 새벽에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완도항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항구 앞에 떠 있는 섬을 가리켰다. “저게 주도라는 거야. 귀한 거니까 잘 살펴 봐봐.”섬은 섬인데,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그때는 몰랐다. 항구 뒤편 언덕에 올랐다. 그곳에서 비로소 주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구슬처럼 완벽한 동그라미. 그래서 주도(珠島)였다. 지인은 말했다. 저 안에만 약 137종의 상록수가 있다고. 모밀잣밤, 붉가시나무, 돈나무, 참식나무, 다정큼나무, 광나무, 감탕나무 등 익숙한 것과 처음 들어보는 것이 혼재해 있었다. 섬의 중앙에는 성황당도 있었다. 나무가 다치지 않도록 기도하는 곳이라 했다. 그래서 이 섬은 원시림 그대로 살아남은 거라고.그제야 지인이 무얼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알 것 같았다. 이 섬에서 태어나...

    1667호2026.02.18 06:00

  • [정태겸의 풍경](105) 전남 완도수목원-겨울이어서 좋아
    (105) 전남 완도수목원-겨울이어서 좋아

    땅끝을 지나 섬으로 들어간다. 섬이라고 하지만 연륙교로 이어져서 누군가 얘기해주지 않으면 좀처럼 섬의 느낌을 받지 못한 곳. 전남 완도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섬에 사는 지인을 만나 물었다. “완도에서는 어딜 가는 게 좋아요?” 그가 말했다. “수목원을 가봐요. 완도의 수목원은 특별해요. 겨울에는 사람이 적어서 더 좋을 거예요.”그의 말을 따라 완도수목원으로 들어갔다. 안내판에 적힌 글을 쭉 읽어보니 그가 이 수목원을 추천해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은 국내 최대의 난대림 자생지이자 유일한 난대수목원이었다. 그러니까 제주도가 아닌 이상 난대수종의 숲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말이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겨울인데도 나무 위의 이파리가 꽤 무성하다. 지인의 말대로 겨울이어서 인적이 드물었다. 덕분에 나의 시간을 오롯이 이 숲에서 보낼 수 있겠다 싶었다. 곁으로 붉가시나무니, 구실잣밤나무니 익숙지 않은 이름들이 지나간다. 오래전 보릿고개마다 배를 곯던 사람들에게...

    1665호2026.02.04 06:00

  • [정태겸의 풍경](104) 경남 합천 황매산-굽이굽이 흘러가는 산맥의 바다
    (104) 경남 합천 황매산-굽이굽이 흘러가는 산맥의 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합천의 곳곳을 다 돌아야 했다. 아직 가야 할 곳이 많아서 황매산은 반드시 이날 올라야 했다. 차를 몰아 산 정상을 향해 달렸다. 해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겨울 해는 유독 달리기가 빨랐다. 해가 다 도망가기 전, 다행히 정상 바로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노을이 남아 있으니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은근하게 솟아오른 길을 달렸다. 마침내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석양은 대지 위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많이 늦었지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선물이라며 이 광경을 보여주려는 듯이.1113m의 정상엔 세찬 바람이 불었다. 몸이 날아갈 것만 같은 폭풍 같은 그 안에서 어렵사리 눈을 뜨고 바라보니 멀리에서 흘러 내려온 백두대간의 산맥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산과 산이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뻗어나가는 광경이라니.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던가. 낮과 밤이 엇갈리는 그 시간의 저 아래 풍경은 산맥의 바다였...

    1663호2026.01.21 06:00

  • [정태겸의 풍경] (103) 강원 춘천 소양강-쨍한 추위 속 고요한 그 새벽의 선물
    (103) 강원 춘천 소양강-쨍한 추위 속 고요한 그 새벽의 선물

    동이 트기 전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소양강이 흘러나가는 길목 어디쯤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겨울이면 피어날 하얀 상고대. 소양강댐 아래편의 강기슭은 상고대가 수시로 피어나기로 유명한 명소다. 새벽녘 댐이 흘려보내는 물은 차가운 공기와 만나서 하얗게 피어오른다. 댐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상대적으로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물이 흘러나오면서 찬 공기와 만나면 기온차로 인해 상고대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걸 보고 싶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겨울이 너무 따뜻했다.동이 틀 무렵 사위가 밝아오면서 하얀 겨울의 진면목은 보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쯤이면 이미 주변의 나뭇가지로 물의 입자가 들러붙어 얼어야 하지만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새벽의 소양강은 그것대로 충분히 멋있었다. 코를 얼얼하게 하는 쨍한 추위와 그 추위에 움츠러든 것처럼 고요히 움직이는 강물. 물 아래로 잠긴 나무며 바위가 수면 위로 솟아올라 그림을 그...

    1661호2026.01.07 06:00

  • [정태겸의 풍경] (102) 경기 안산 시화방조제-하늘에서 보았던, 그 세상
    (102) 경기 안산 시화방조제-하늘에서 보았던, 그 세상

    중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제주도 언저리 즈음부터 창밖으로 한반도가 보이길래 ‘여기는 어디쯤일까’ 생각하며 하늘 위에서 땅 위의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멀리 바다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도로가 보였다. ‘시화방조제구나!’ 직감했다. 그 뒤로 거북섬이 보였고, 내륙으로 흘러 들어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인천 송도가 보여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경기도 안산 대부도를 향해 가던 길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았던 시화방조제 위로 올라섰다. 오묘한 느낌에 휩싸였다. 하늘에서 본 그 길을, 바다를 가로지르는 이 방조제 위의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색다르게 다가왔다.시화방조제 위의 도로 중간에는 전망대도 있고, 휴게소도 있다. 오가며 보기만 했을 뿐 휴게소를 들러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구경도 할 겸 운전대를 틀었다. 마침 바람 부는 쌀쌀한 겨울 날씨의 영향인지 바다가 아주 맑았다. 이 휴게소가 좋은 건 방조제가 만든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

    1659호2025.12.24 06:00

  • [정태겸의 풍경](101) 전북 진안 메타세쿼이아길-가을의 미련을 만나는 길
    (101) 전북 진안 메타세쿼이아길-가을의 미련을 만나는 길

    겨울 한파는 언제쯤 오려나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겨울은 성격이 무던한 건지 게으른 건지 좀처럼 자기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구나 싶었다. 물론 그 생각을 한 직후부터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긴 했지만…. 전북 진안을 오랜만에 찾던 날도 낮에는 포근한 가을 같았다. 모래재 넘어 이정표가 ‘진안’을 알리면서 양옆으로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늘어선다. 언제나 이 고개를 넘어갈 때면 기분이 좋다. 진안의 환영 인사를 보는 것만 같다.주차장에 차를 놓고 카메라를 집어 들고 나갔다. 여길 올 때면 늘 인적도 드물고 차도 많지 않았는데, 이날만큼은 사람이 제법 보인다. 다들 내가 생각하는 그 모습을 보러 온 게 확실하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가을 단풍이 짙게 물들었을 때 이전에 보지 못한 풍모를 자아낸다. 브라운색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 같은 모습이랄까. 그 아래를 걸으며 생각했다. ‘아직 가을이라고 해야 하나?’ 나무의 길고 뾰족한 이파리는 눈처럼 떨어져 도로 위에 쌓였고...

    1657호2025.12.10 06:00

  • [정태겸의 풍경] (100) 경기 파주 보광사-따사로우면서도 알싸한, 산사의 겨울 시선
    (100) 경기 파주 보광사-따사로우면서도 알싸한, 산사의 겨울 시선

    계절은 하루아침에 서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눈 뜨니 겨울이 돼버렸다. 가을은 이대로 사그라지는 듯하더니 그래도 반짝 제빛을 뽐내고 빠르게 스러져버린다. 오래 아껴두고 있던 절을 찾아 올랐다. 이때쯤 가겠노라 꼭꼭 감춰뒀던 곳이다. 이곳에 가면 겨울이 주는 감정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도 파주의 보광사. 가깝지만,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던 곳이다.예상 그대로였다. 낙엽은 비처럼 산등성이에서 쏟아지고, 쨍하게 차가운 공기는 태양의 광선을 눈부시게 산란시키던 오전의 산사 풍경이다. 신라 진성여왕 8년(894) 어명으로 도선이 지었다는 이 절은 볼 게 많다. 범종이며 목어, 운판이 모두 문화재다. 시간이 손수 쓸어넘긴 곳마다 그 흔적이 가득하다. 마침 스님의 사시예불 소리가 경내에 가득하다. 이 계절에는 강렬한 겨울 시선이 짙은 그림자를 곳곳에 드리운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눈에 다가와 담긴다. 어실각 옆 영조가 어머니를 그리...

    1655호2025.11.26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