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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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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겸의 풍경](105) 전남 완도수목원-겨울이어서 좋아
    (105) 전남 완도수목원-겨울이어서 좋아

    땅끝을 지나 섬으로 들어간다. 섬이라고 하지만 연륙교로 이어져서 누군가 얘기해주지 않으면 좀처럼 섬의 느낌을 받지 못한 곳. 전남 완도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섬에 사는 지인을 만나 물었다. “완도에서는 어딜 가는 게 좋아요?” 그가 말했다. “수목원을 가봐요. 완도의 수목원은 특별해요. 겨울에는 사람이 적어서 더 좋을 거예요.”그의 말을 따라 완도수목원으로 들어갔다. 안내판에 적힌 글을 쭉 읽어보니 그가 이 수목원을 추천해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은 국내 최대의 난대림 자생지이자 유일한 난대수목원이었다. 그러니까 제주도가 아닌 이상 난대수종의 숲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말이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겨울인데도 나무 위의 이파리가 꽤 무성하다. 지인의 말대로 겨울이어서 인적이 드물었다. 덕분에 나의 시간을 오롯이 이 숲에서 보낼 수 있겠다 싶었다. 곁으로 붉가시나무니, 구실잣밤나무니 익숙지 않은 이름들이 지나간다. 오래전 보릿고개마다 배를 곯던 사람들에게...

    1665호2026.02.04 06:00

  • [정태겸의 풍경](104) 경남 합천 황매산-굽이굽이 흘러가는 산맥의 바다
    (104) 경남 합천 황매산-굽이굽이 흘러가는 산맥의 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합천의 곳곳을 다 돌아야 했다. 아직 가야 할 곳이 많아서 황매산은 반드시 이날 올라야 했다. 차를 몰아 산 정상을 향해 달렸다. 해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겨울 해는 유독 달리기가 빨랐다. 해가 다 도망가기 전, 다행히 정상 바로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노을이 남아 있으니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은근하게 솟아오른 길을 달렸다. 마침내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석양은 대지 위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많이 늦었지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선물이라며 이 광경을 보여주려는 듯이.1113m의 정상엔 세찬 바람이 불었다. 몸이 날아갈 것만 같은 폭풍 같은 그 안에서 어렵사리 눈을 뜨고 바라보니 멀리에서 흘러 내려온 백두대간의 산맥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산과 산이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뻗어나가는 광경이라니.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던가. 낮과 밤이 엇갈리는 그 시간의 저 아래 풍경은 산맥의 바다였...

    1663호2026.01.21 06:00

  • [정태겸의 풍경] (103) 강원 춘천 소양강-쨍한 추위 속 고요한 그 새벽의 선물
    (103) 강원 춘천 소양강-쨍한 추위 속 고요한 그 새벽의 선물

    동이 트기 전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소양강이 흘러나가는 길목 어디쯤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겨울이면 피어날 하얀 상고대. 소양강댐 아래편의 강기슭은 상고대가 수시로 피어나기로 유명한 명소다. 새벽녘 댐이 흘려보내는 물은 차가운 공기와 만나서 하얗게 피어오른다. 댐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상대적으로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물이 흘러나오면서 찬 공기와 만나면 기온차로 인해 상고대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걸 보고 싶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겨울이 너무 따뜻했다.동이 틀 무렵 사위가 밝아오면서 하얀 겨울의 진면목은 보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쯤이면 이미 주변의 나뭇가지로 물의 입자가 들러붙어 얼어야 하지만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새벽의 소양강은 그것대로 충분히 멋있었다. 코를 얼얼하게 하는 쨍한 추위와 그 추위에 움츠러든 것처럼 고요히 움직이는 강물. 물 아래로 잠긴 나무며 바위가 수면 위로 솟아올라 그림을 그...

    1661호2026.01.07 06:00

  • [정태겸의 풍경] (102) 경기 안산 시화방조제-하늘에서 보았던, 그 세상
    (102) 경기 안산 시화방조제-하늘에서 보았던, 그 세상

    중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제주도 언저리 즈음부터 창밖으로 한반도가 보이길래 ‘여기는 어디쯤일까’ 생각하며 하늘 위에서 땅 위의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멀리 바다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도로가 보였다. ‘시화방조제구나!’ 직감했다. 그 뒤로 거북섬이 보였고, 내륙으로 흘러 들어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인천 송도가 보여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경기도 안산 대부도를 향해 가던 길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았던 시화방조제 위로 올라섰다. 오묘한 느낌에 휩싸였다. 하늘에서 본 그 길을, 바다를 가로지르는 이 방조제 위의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색다르게 다가왔다.시화방조제 위의 도로 중간에는 전망대도 있고, 휴게소도 있다. 오가며 보기만 했을 뿐 휴게소를 들러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구경도 할 겸 운전대를 틀었다. 마침 바람 부는 쌀쌀한 겨울 날씨의 영향인지 바다가 아주 맑았다. 이 휴게소가 좋은 건 방조제가 만든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

    1659호2025.12.24 06:00

  • [정태겸의 풍경](101) 전북 진안 메타세쿼이아길-가을의 미련을 만나는 길
    (101) 전북 진안 메타세쿼이아길-가을의 미련을 만나는 길

    겨울 한파는 언제쯤 오려나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겨울은 성격이 무던한 건지 게으른 건지 좀처럼 자기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구나 싶었다. 물론 그 생각을 한 직후부터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긴 했지만…. 전북 진안을 오랜만에 찾던 날도 낮에는 포근한 가을 같았다. 모래재 넘어 이정표가 ‘진안’을 알리면서 양옆으로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늘어선다. 언제나 이 고개를 넘어갈 때면 기분이 좋다. 진안의 환영 인사를 보는 것만 같다.주차장에 차를 놓고 카메라를 집어 들고 나갔다. 여길 올 때면 늘 인적도 드물고 차도 많지 않았는데, 이날만큼은 사람이 제법 보인다. 다들 내가 생각하는 그 모습을 보러 온 게 확실하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가을 단풍이 짙게 물들었을 때 이전에 보지 못한 풍모를 자아낸다. 브라운색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 같은 모습이랄까. 그 아래를 걸으며 생각했다. ‘아직 가을이라고 해야 하나?’ 나무의 길고 뾰족한 이파리는 눈처럼 떨어져 도로 위에 쌓였고...

    1657호2025.12.10 06:00

  • [정태겸의 풍경] (100) 경기 파주 보광사-따사로우면서도 알싸한, 산사의 겨울 시선
    (100) 경기 파주 보광사-따사로우면서도 알싸한, 산사의 겨울 시선

    계절은 하루아침에 서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눈 뜨니 겨울이 돼버렸다. 가을은 이대로 사그라지는 듯하더니 그래도 반짝 제빛을 뽐내고 빠르게 스러져버린다. 오래 아껴두고 있던 절을 찾아 올랐다. 이때쯤 가겠노라 꼭꼭 감춰뒀던 곳이다. 이곳에 가면 겨울이 주는 감정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도 파주의 보광사. 가깝지만,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던 곳이다.예상 그대로였다. 낙엽은 비처럼 산등성이에서 쏟아지고, 쨍하게 차가운 공기는 태양의 광선을 눈부시게 산란시키던 오전의 산사 풍경이다. 신라 진성여왕 8년(894) 어명으로 도선이 지었다는 이 절은 볼 게 많다. 범종이며 목어, 운판이 모두 문화재다. 시간이 손수 쓸어넘긴 곳마다 그 흔적이 가득하다. 마침 스님의 사시예불 소리가 경내에 가득하다. 이 계절에는 강렬한 겨울 시선이 짙은 그림자를 곳곳에 드리운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눈에 다가와 담긴다. 어실각 옆 영조가 어머니를 그리...

    1655호2025.11.26 06:00

  • [정태겸의 풍경] (99) 경기 평택 원평나루-가을은 억새를 흔들며 온다
    (99) 경기 평택 원평나루-가을은 억새를 흔들며 온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가 일어났다. 억새가 흔들리며 바람의 결이 드러났다. 멀뚱하게 키가 큰 이 풀은 멀리서 보면 하얗게, 가까이에서는 은빛으로 머리를 흔든다. 지금 경기 평택 원평동 군문교 바로 아래는 온통 억새로 가득 차 있다. 원평나루라고 부르는 이곳은 평택의 가을 명소.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입소문을 타고 인근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곁으로 안성천이 흘러 억새가 자라기에 참 좋은 조건을 갖췄다. 하마터면 우리는 이 억새밭을 잃어버릴 뻔했다. 평택시가 노을유원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군문교 주변 30만㎡에 캠프장, 야구장 등을 조성하려 했다. 다행히 이곳에서 수달의 배설물이 발견되며 사업은 백지화됐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일일지 모르겠으나, 이토록 멋진 자연을 곁에 두고 가을마다 억새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일이다.햇살 좋은 가을의 복판, 사람들은 이곳을 거닌다. 나도 그 가운데로 들어가 가을을 느낀다. 돌아 나오는 길, 멀리 ...

    1653호2025.11.12 06:00

  • [정태겸의 풍경] (98) 경기 시흥 관곡지-하늘도, 연밭도, 사람도 다정하다
    (98) 경기 시흥 관곡지-하늘도, 연밭도, 사람도 다정하다

    도로를 달리다가 눈에 띄는 이정표를 찾아 들어갔다.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곳 중 하나인지라 오늘은 어쩐지 이곳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기록에는 관곡지가 조선 세조 때 연못이라고 나온다. 사헌부 감찰이던 권만형의 집안에서 소유한 사유지였다고. 여기에 권만형의 장인인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연(蓮)의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그는 문신이자 농학자였고, 가져온 씨앗은 관곡지에서 시작해 널리 퍼져나갔다. 그래서 시흥에서는 이 마을을 연꽃의 마을이라며 ‘연성’이라 불렀다.가을마다 이곳이 생각난 건 몇 년 전 보았던 풍경 때문이었다. 한여름 우아한 자태를 뽐냈을 연꽃은 지고 이파리며 줄기는 이미 시들었지만, 촘촘히 모여앉은 가을의 연밭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볕 좋은 날 관곡지를 찾은 사람들은 고샅길을 따라 걷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며 가을을 즐기는 풍광. 이때쯤이면 어디든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겠지만, 이곳은 아직 남...

    1651호2025.10.29 06:00

  • [정태겸의 풍경](97) 강원 철원-꽃밭 위로 쏟아진 저무는 햇살에 잠겨
    (97) 강원 철원-꽃밭 위로 쏟아진 저무는 햇살에 잠겨

    경기 포천시에서 촬영 하나를 마치고 고민을 시작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가까운 강원 철원 고석정에서 가을 꽃축제가 열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일이 늦게 끝났다. 게으름이 짜르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마음은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몸은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 보채는 상황. 에라 모르겠다, 갈림길에서 운전대를 철원 방향으로 틀었다.한편으로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주차를 하고 걸어서 꽃밭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기대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내가 바라던 풍경이 눈앞에 드러났다. 마치 햇살이 고운 파우더를 공기 중에 뿌려놓은 듯 대지 위로 쏟아졌다. 종일 화사한 빛을 뽐내던 꽃들도 그 빛에 물들어갔다. 꽃 사이를 걸었다. 꽃만 보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절정의 순간이다. 도리어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에게는 꽃 사이의 사람까지 모두 다 꽃과 어우러지는 풍...

    1649호2025.10.08 06:00

  • [정태겸의 풍경](96) 전남 강진-장인의 손으로 빚은 선 고운 옹기
    (96) 전남 강진-장인의 손으로 빚은 선 고운 옹기

    몇 번이나 다녀왔지만, 갈 때마다 전남 강진은 숨어 있는 보석 같다. 먹을 것, 볼 것, 할 것이 생각보다 많음에도 가치에 비해 덜 알려진 여행지다. 원래 이곳은 청자로 유명세를 날리던 땅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진의 청자만 쳐다보다 이곳의 옹기가 못지않게 훌륭하다는 건 놓치고 있었다. 칠량 바닷가 옹기장인 정윤석씨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강진의 옹기를 알게 됐으니.칠량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옹기를 만들었다. 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을 뒷산의 흙이 옹기를 빚기에는 제격이다. 자연스레 그 역사가 길 수밖에 없는 배경을 가졌다.장인에게 옹기 빚는 과정을 들었다. 듣기만 하면 뭐하냐면서 물레 앞에 앉는다. 곱게 내린 흙을 치대어 만든 반죽이 물레 위에 오르고, 때리고 돌려 다듬으며 옹기 하나를 빚기 시작한다. 하나의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힘이 있다.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장인은 말 한마디 없이 옹기를 빚는 동안 물레...

    1647호2025.09.24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