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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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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8) 피해자의 치유와 일상의 회복
    (8) 피해자의 치유와 일상의 회복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생전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시민이나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즉각 “일본 정부의 사죄”라는 답이 나온다. 물론이다.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명분으로 반인권 제도를 창출하고 시행한 공권력은 스스로 피해실태를 규명하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그 진심이란 국가폭력의 근절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들을 통해서 나올 테다.그런데 나의 질문은 그보다 앞선 소원을 묻는 것이다. 피해 여성들이 생전에 정말로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위안부’로 끌려가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된 후에야 자신의 피해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던 여성들은 ‘평범한 삶’에 대한 결핍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 석 자를 가진 평범한 여인으로서의 삶. 이는 삶의 과정에서 겪어보지 못한 결혼이나 임신·출산 등으로 구체화되기도 했다.삶의 과정에서 박...

    1354호2019.11.25 14:01

  •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7) 위안부 피해 역사를 쓰는 방법
    (7) 위안부 피해 역사를 쓰는 방법

    신뢰할 만한 문서자료가 뒷받침되어 입증된 역사일수록 ‘진짜’에 가깝다는 믿음이 있다. 물론 역사 쓰기의 첫 출발은 관련 자료수집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위안부’, ‘위안소’라는 검색 키워드에 딱 맞는 자료 발굴에 큰 박수를 보내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피해자 중심의 위안부 역사 쓰기에 ‘독’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우익세력이 내세우는 무기는 일본의 공권력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직접 가담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대응세력은 여기에 반응했고, 해당 문서의 발견 여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쟁점이 되어버렸다.기록에서 찾은 수많은 범죄의 증거그러나 공권력의 ‘공인과 은폐’라는 이중전략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속성이다. 일본군이 공공연하게 위안소를 이용하되, 전쟁터에 위안소가 있다거나 여성들을 속여서 끌고 간다는 풍문은 육군 형...

    1353호2019.11.18 14:56

  •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6) 12년 만에 세상에 나온 ‘고백’
    (6) 12년 만에 세상에 나온 ‘고백’

    1993년 3월, 전남 광양군 진월면사무소. 이 마을에 사는 일흔살 남짓의 한 여성이 면장을 찾아왔다. 여성은 면장의 면담을 요청했다. 김문호 면장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생활보호대상자로 면에서 지원하고 있는 정도인 할머니였다. 단둘이 되었을 때, 정도인은 막상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메인 목소리로 겨우 “좋은 데 취직한다는 말에 속아 정신대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면장은 바로 그가 위안부 피해자임을 알아차렸다. 정도인은 가족들이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면장은 지금 얘기하는 것을 글로 적어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정도인은 3일 만에 진술서를 가지고 왔다. 뜯은 공책에 꾹꾹 글씨를 눌러쓴 것이었다. 면장이 보관하다 조카 통해 접수한국 정부는 1993년 6월 일제강점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공포하고 그해 8월부터 피해 등록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이...

    1352호2019.11.08 15:44

  •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5) 지독한 고독, 그러나 회복은 가능하다
    (5) 지독한 고독, 그러나 회복은 가능하다

    2018년 8월 14일,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가 열리는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있었다. 먼저 입장한 대통령 부부가 나중에 들어온 피해생존자 세 분을 반갑게 맞았다. 환영의 박수가 쏟아지고 서로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중에 곽예남이 대통령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예전에 전남 함평에서 만난 곽복례가 떠올랐다. 당시 그는 몹시 고독했으며,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경계하는 82세의 여성이었다. 곽복례는 곽예남과 같이 1925년생 소띠에, 전남 출신에, 만주 봉천에 끌려갔던 위안부 피해자다. 곽복례가 살아 있었다면, 그래서 고운 옷을 입고 국가 행사에 초청되고 대통령 얼굴도 쓰다듬을 수 있었다면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을까. 그 순간 곽복례가 보고 싶었다.이장이 대신 신고한 ‘가엾은 곽복례’2006년 3월 22일, 나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강동위)에 피해신고를 한 곽...

    1351호2019.11.01 15:53

  •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4) 엄마여서 미안해,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4) 엄마여서 미안해,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100년도 더 전에 신분제도는 무너졌지만, 여전히 부모 스펙이 자녀의 스펙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위안부를 겪어야 했던 엄마를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15년 8월 15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엄마여서 미안해’라는 제목으로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방송에는 위안부 피해자 김경순의 딸과 박옥련의 딸이 나온다. 딸들은 엄마가 한국정부에 피해신고를 하고 난 뒤 엄마의 이야기를 알았다고 했다. 김경순의 딸은 “엄마는 이상하게 불안증이 많았어요”라고 했다. 눈물부터 쏟아내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말문이 막혀온다.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기에 말과 글은 너무나 앙상하다.“엄마를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김경순과 박옥련은 1993년에 발간된 증언 1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에도 등장한다. 당시는 가명을 사용했다. 김경순은 ...

    1350호2019.10.25 17:53

  •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2) 보고 싶다, 문옥주와 모리카와 마치코
    (2) 보고 싶다, 문옥주와 모리카와 마치코

    드라마 <대장금>에는 억울하게 한상궁을 잃은 장금이가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끊임없이 탈출하는 모습이 나온다. 잡혀 돌아갈 때마다 되뇌는 말은 “마마님, 보고 싶습니다”이다. 마지막회에서 최고상궁이 된 장금이는 수라간 비서(秘書)에 어머니와 한상궁의 이야기를 적는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기록 없이 권력으로 자신들을 정당화하려 했던 가해자 측은 스스로의 한계로 몰락한다.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등 ‘할머니’를 기억하는 공간에서 우리가 만난 할머니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가 마련될 때가 있다. 참석자들은 할머니의 다양한 얼굴을 떠올리고 ‘보고 싶다’는 마음에 빠진다. 우리의 최선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거듭하고 기록으로 남겨 ‘진실’을 전하는 것뿐이다.군사우편저금 되찾으려 일본 방문2019년 10월 ...

    1348호2019.10.14 16:30

  •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피해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피해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고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최초로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와 피해사실이 적지 않습니다.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 위안부 연구위원은 오랫동안 많은 피해자들을 만나왔습니다. 그가 전하는 위안부들의 상처와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등을 8회에 걸쳐 매주 연재합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허스토리>와 <아이 캔 스피크>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주인공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알고 난 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1992년부터 시작한 시모노세키 재판이 배경인 <허스토리>에서는 주인공들이 과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홀대한다. 반면 2007년 미국 하원의원의 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배경으로 한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1347호2019.10.07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