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김택근의 노을 노래
  • 전체 기사 29
  • [김택근의 노을 노래]독일마을, 전설을 위하여
    독일마을, 전설을 위하여

    세월이 흐르면 독일마을에서 독일 교포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들의 노고와 눈물을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전설이 된다면 독일마을은 영원할 것이다.벚꽃이 지고 있었다. 남도의 봄은 절정이었다. 남해 가는 길에 독일마을에 들렀다. 마을은 몇 년 전 모습과는 달랐다. 독일 색을 덧칠한 듯했다. 독일마을은 독일에 파견된 광부, 간호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조성한 이른바 ‘교포 정착촌’이다. 독일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전통적인 독일 양식의 주택을 지었다고 한다. 꿈에도 그리던 모국이었으면 한옥을 지어 살아야겠지만 모두 독일식 주택을 지었다. 아마도 독일은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기회의 나라이자 눈물의 땅이었기에 그 시절을 옮겨오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독일마을이 생겨났다.부국에서 운명을 바꿔보겠다며 광부들은 1963년에, 간호사들은 1966년에 독일 땅을 밟았다. 광부를 지원한 사람 중에는 대학 졸업자도...

    1323호2019.04.15 18:52

  • [김택근의 노을 노래]제암리의 푸른 눈, 광주의 푸른 눈
    제암리의 푸른 눈, 광주의 푸른 눈

    해방된 나라에서는 ‘외국인의 증언’은 당연히 필요 없어야 했다. 그러나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에서 다시 외국인의 증언으로 진실을 밝혀야 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나라를 잃었어도 봄은 찾아왔다. 남쪽에서 올라온 바람은 언 땅을 녹이고, 서울에서 내려온 3·1 만세 소리는 언 가슴을 녹였다. 100년 전 이 땅의 백성들은 민족의 앞날에도 봄이 올 것으로 믿었다. 그해 봄은 온누리가 만세 소리로 뒤덮였다.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 일본 군인과 헌병들이 나타났다. 저들은 마을을 돌며 주민들에게 교회로 모이라 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교회 문턱을 넘었다. 모두 평범한 농민들이었다. 교회는 회개하고 기도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의심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손을 잡았다.그때였다. 왜놈들이 갑자기 교회 문을 잠갔다. 저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출구는 없었다. 아기를 품은 엄마가 아기만은 ...

    1322호2019.04.08 15:21

  • [김택근의 노을 노래]제주, 숲 속의 오열
    제주, 숲 속의 오열

    삼나무 하나만을 베어 넘긴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저 나무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섬이라는 제주도의 명성과 신비감을 잘라버리는 것이다.남녘에서 가시 박힌 소식이 올라왔다. 제주도 비자림로에 서 있는 삼나무들이 다시 잘려나갈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도로 확장공사를 중단한 지 7개월 만이다. 전기톱을 들이댄 무리가 나타나자 이에 맞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달려가 숲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벌목의 현장에서 누구는 곧 잘려나갈 삼나무를 끌어안았고, 누구는 베어 넘겨진 나무에 절을 했고, 누구는 아예 전기톱을 껴안으며 오열했다고 한다.“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에요.”삼나무 숲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호소가 숲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이런 가슴 시린 장면들이 왜 생명의 섬이라는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의 계산에 따르면 비자림로 확장은 ‘20초 빨리 가려고 2000여 그루의 삼나무를 베어내는&rsquo...

    1321호2019.04.01 14:57

  • [김택근의 노을 노래]손의 자비
    손의 자비

    인간의 손은 서로 껴안기 좋도록 만들어졌다. 서로 맞잡기에, 쓰다듬기에, 손뼉치기에 좋게 생겼다. 달라이라마는 인간의 손에 자비가 스며 있다고 말한다.남녘에서 꽃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아지랑이처럼 고향 생각이 피어오른다. 이 산 저 산에서 새소리가 마을로 떨어지면 집마다 겨울 외투를 벗는다. 무채색 대지도 일어나 남녘에서 서성거리는 바람을 부른다. 농부들은 그 땅에 힘을 풀어놓는다. 대지와 교감하는 일손은 얼마나 위대한가.화사한 봄볕에 농부의 일손을 비춰보면 투박하고 못생겼다. 하지만 그 일손만이 봄을 끌어당길 수 있다. 부모의 거친 손을 잡아본 자식들은 가슴이 저렸을 것이다. 손바닥은 갈라져 손금이 보이지 않는다. 농부의 손은 아집이나 오만이 지워져서 지문마저 같아졌다. 모두 그 손이 그 손이다. 그 손으로 농사를 짓고, 그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자식들을 키웠다. 손이 거칠수록 최선을 다했음이다. 그 안에는 어떤 삿된 것도 들어 있지 않다.모든 것들은 ...

    1320호2019.03.25 15:29

  • [김택근의 노을 노래]세상을 바꾼 ‘제인 구달의 사랑’
    세상을 바꾼 ‘제인 구달의 사랑’

    “제인은 침팬지들이 나무에서 작은 가지들을 꺾어 잎을 떼어 낸 뒤 그 가지를 흰개미탑의 구멍에 밀어넣는 것을 목격했다. 도구를 만든 것이다. 1960년대 당시에 인간을 특정짓는 속성은 푸르른 지구의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도구를 만드는 인간’이라 불렀고, 도구를 만드는 기술이 나머지 모든 생물과 우리를 차별화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훗날 제인의 관찰 결과를 ‘20세기 학문의 위대한 성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캐런 카보 지음 <만만찮은 여자들>에서)제인 구달은 26살에 숲으로 들어갔다. 침팬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침팬지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제인은 실망하지 않고 침팬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것은 인간의 냄새를 지워야 가능했다.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그러던...

    1319호2019.03.18 14:10

  • [김택근의 노을 노래]검은 옷을 입는 백의민족
    검은 옷을 입는 백의민족

    사랑받던 흰옷은 왜 사라지고 있을까. 하얀 옷을 벗어던지고 유색 옷으로 갈아입으며 우리는 무엇을 버렸을까. 흰색이 사라진 곳에 넘실대는 저 원색들은 무엇일까. 우리 강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3·1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뜻깊은 행사들이 펼쳐졌다. 광화문과 종로, 탑골공원과 서대문형무소는 인파로 뒤덮였다. 오로지 ‘만세’ 하나만으로 일제에 맞선 맨손혁명은 세계사에 빛날 쾌거였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그날’을 재현하고 함성을 질렀다.100년 전의 그날을 오롯이 재현해내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얼추 닮은 여러 행사가 많았다. 하지만 도저히 답습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 100년 전 그날 탑골공원과 서울 거리는 온통 흰 물결이었다. 모두 흰옷을 입고 만세를 외쳤다. 그런데 100주년 행사장의 국민들은 거의가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다. 거대한 흑색의 물결이 광화문 일대...

    1318호2019.03.11 14:49

  • [김택근의 노을 노래]돌며 흘러야 붙박이별이다
    돌며 흘러야 붙박이별이다

    우리 마음속에도 북극성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한 자리에서 변함없이 빛나는 별, 변함없이 빛이 되어주는 사람. 가끔 아버지를 생각한다. 요즘처럼 봄볕이 기특하거나 가을볕이 고우면 ‘들녘의 아버지’가 떠오른다.‘북극성은 붙박이별이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그래서 떠돌아다니는(비록 정한 궤도를 따라서지만)뭇별에 견줄 때 북극성은 절대(絶對)가 된다. 북극성은절대로 자리를 움직이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북극성은 과연 절대한 붙박이별인가? 아니다! 만일 그것이 절대로 한 자리에붙박혀 있다면 자전에 공전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지구에서 볼 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북극성이 절대한 붙박이별인 까닭은 그것이 절대로한자리에 붙박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이아무개 지음 <길에서 주운 생각들>에서북극성은 지구인들에...

    1317호2019.03.04 14:41

  • [김택근의 노을 노래]GP, 야만의 시간
    GP, 야만의 시간

    요즘 남과 북이 서로 합의한 대로 전방의 GP들을 철거하고 있다. 이제 그 GP 안에 있었던 야만의 시간들도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다.“1969년 4월 5일 토요일 맑음.김 중사와 지뢰지대 인수인계를 했다. GP 일대와 골짜기를 둘러보고 그가 매복하다 매설한 지뢰지대에 들어섰다. 순간, 쾅쾅쾅, 김 중사가 허공에 떠올랐다 떨어지면서 지뢰가 연발로 터졌다. 김 중사는 지뢰밭 한가운데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흙덩이를 뒤집어쓰고 그대로 엎어져 있었다. 임시 GP장으로 따라왔던 박 소위가 시신을 수습하러 한 발 옮기는 순간 다시 지뢰가 터졌다. 박 소위를 몇 걸음 옮겨놓고 어깨로 부축한 채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워커 뒤축이 떨어져 나가고 발뒤꿈치가 뭉개져 있었다. 그는 담담하게 ‘여기서 끝이군요. 감각이 없네요’ 하며 하얗게 웃었다.그를 들것에 실어 보내고 나는 다시 지뢰밭으로 돌아왔다. 정신 차리려고 몇 번 심호흡...

    1316호2019.02.25 14:41

  • [김택근의 노을 노래]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지금도 광화문 광장은 약자들에게 주어진 최후의 공간이다. 권력을 향해 삿대질만 해도 잡아가던 암흑의 시대가 있었지만 국민들은 뭉친 힘으로 마침내 비원의 공간을 확보했다.광화문 광장에 섰다. 청와대 뒷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여전히 가슴팍을 파고든다. 모두가 촛불을 들어 나쁜 정권을 허물었지만 광장 구석에서는 오늘도 촛불을 켜는 사람들이 있다. 울고, 소리치고, 기도하고 있다. 먼 바다, 먼 땅에서 일어난 사건도 광화문 광장에서 최후의 의식을 치른다. 며칠 전에는 김용균 노동자의 영결식이 있었다. 세월호에서 숨진 학생들은 아직도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광화문은 조선시대 권력의 정문이었다. 권력을 지켜야 했기에 웅장했고, 권력의 위엄을 보여야 했기에 화려했다. 시국이 수상하면 광화문 앞에 백성들이 모였다. 왕들은 광화문 앞 민심이 궁금했다. 동학농민들의 함성이 누리를 덮을 때 무능한 군주 고종은 광화문이 무너지는 꿈을 꾸었다. 이에 놀라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겼다. 광화...

    1315호2019.02.18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