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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노을 노래
  • 전체 기사 29
  • [김택근의 노을 노래]구걸 속의 폭력
    구걸 속의 폭력

    소시민들은 작은 것에도 눈물을 흘린다. 그런 약점을 윽박지르며 약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자들은 폭력배에 다름 아니다.꽤 밤이 깊었고 전동차 안이었다. 중년의 사내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연결통로의 문을 열고 전동차 칸을 넘어왔다. 사내는 한쪽 다리를 거의 끌다시피 절었다. 한눈에 봐도 걸인이었다. 밤이 늦어서 승객이 별로 없었다. 사내는 힘겹게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는 고통의 낯빛을 거두더니 이내 일그러진 표정으로 차 안을 훑어보았다.더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가 똑바로 서서 제대로 걸어 다녔다. 승객도 적고 거의가 취객들이라 ‘영업’에 흥미를 잃은 듯했다. 차 안을 오가더니 전동차가 멈추자 쏜살같이 뛰어내렸다. 그는 마침 정차해 있던 다른 전동차로 옮겨 탔다. 승객들은 한동안 그가 사라진 전동차 문을 바라봤다. 차 안의 공포도 빠져나갔다. 문득 옛일이 떠올랐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귀갓길이 우울했다.서울생활을 막 시작할 ...

    1334호2019.06.28 15:26

  • [김택근의 노을 노래]은행이 무서워졌다
    은행이 무서워졌다

    은행들에게 개인이 쌓은 신용은 하찮은 것이다. 개미들은 그저 개미일 뿐이다. 개미들과의 유대관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개미들만 믿은 만큼 실망할 뿐이다.서울 종로 새문안로에 있는 하나은행(합병 전에는 외환은행) 지점은 ‘나와 우리 가족의 은행’이었다. 월급이 그 은행 통장으로 들어왔고, 그 은행 신용카드를 썼고, 그 은행에서만 대출을 받았다. 그렇게 30년 넘도록 그 은행만을 들락거렸다. 멀리 간판만 보여도 반가웠다.퇴직을 하자(고정수입이 없어지자) 그런 은행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싹 바뀌었다. 얼마 전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마이너스통장 기간이 곧 만료되지만 더는 연장해 줄 수 없다는 통보였다. 이것저것을 따졌지만 직장이 없으니 규정상 연장이 어렵다고 했다. 30년 넘게 거래를 했고, 지금도 연금이 하나은행 통장으로 들어오고, 대출금을 꼬박꼬박 갚아나가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 해도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한 번도 연체를 한 적이 없었다 해도...

    1333호2019.06.21 15:14

  • [김택근의 노을 노래]‘예수의 말’에 종말이 오는가
    ‘예수의 말’에 종말이 오는가

    예수는 그토록 서로 사랑하라 이르셨지만 인간들의 싸움으로 예수의 말이 사라진다니 진정 슬픈 일이다. ‘사랑의 예수’도 슬퍼하실 것이다. 우리 사는 지구촌에서 아람어 기도는 정녕 끊길 것인가.멜 깁슨이 만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최후의 만찬에서부터 예수의 부활까지를 담았다. 영화 속 최후 12시간의 화면은 처절하다. 온통 신음과 피의 범벅이다. 영화는 흥행을 거뒀다. 하지만 평은 극과 극이었다. ‘예수의 고통을 바늘 한 땀까지 재현해 낸 리얼리즘의 극치’라는 찬사 건너편에 ‘광신도가 만든 예수가 없는 예수 영화’라는 혹평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논란에도 영화에 주목할 만한 것이 있었다. 바로 아람어(Aramaic)를 사용한 것이다.아람어는 예수와 제자들이 사용한 ‘신의 언어’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외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1331호2019.06.10 10:00

  • [김택근의 노을 노래]달려라, 코뿔소
    달려라, 코뿔소

    사라진 동물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구가 오직 인간들만의 것이라는 생각은 죄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식물들을 함부로 죽이며 너무도 태연하다.말레이시아에서 마지막 남은 수마트라 코뿔소 수컷이 폐사했다. 언론은 수마트라 코뿔소 ‘탐’이 신장 및 간 부전으로 치료를 받다가 동물보호소에서 죽었다고 보도했다. 이제 수마트라 코뿔소는 ‘이만’이라는 이름의 암컷 한 마리만 남았다. 암컷 역시 심한 자궁근종을 앓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죽음이 곁에 와 있다고 한다. 수마트라 코뿔소는 한때 동남아 전역에 서식했던 흔한 동물이었지만 이제 지구에 100마리도 남아있지 않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최근 수년간 야생 수마트라 코뿔소가 목격되지 않았다. 사실상 멸종이다.코뿔소는 수마트라 외에도 흰코뿔소, 검은코뿔소, 인도코뿔소, 자바코뿔소가 있다. 검은코뿔소 외에는 모두 멸종위기에 있다. 이러한 비극은 인간의 욕심에서 ...

    1330호2019.05.31 15:06

  • [김택근의 노을 노래]일어나라, 소나무야
    일어나라, 소나무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소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 거제부터 여수까지 뱃길 300리를 지나며 바라본 한려해상공원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소나무가 죽은 채 서 있는 풍경은 <경향신문>의 보도대로 ‘바리캉으로 머리숱을 파낸 것처럼, 염색약으로 물들인 것처럼’ 흉측하다. 소나무의 에이즈라는 재선충병에 감염되어 소나무 숲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1988년 부산에 상륙한 재선충병은 이 땅의 소나무를 잔인하게 죽였다. 날아다니며 소나무를 공격하는 해충을 막아내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30년 동안 해충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재선충병에 안전지대는 없다. 지난해 경기 포천시, 양평군 등 수도권에서 3만 그루가 넘게 고사했건만 올해 다시 남양주시 일대에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가 나타났다. 녹음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소나무의 ‘갈색 주검’을 보면 왠지 불길한 생각들이 밀려온다.소나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재...

    1329호2019.05.24 16:49

  • [김택근의 노을 노래]AI 등장과 바둑 삼국지
    AI 등장과 바둑 삼국지

    AI는 삽시간에 바둑계를 접수하고 인간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제는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인간들을 제쳐놓고 저희끼리 대회를 열고 있다.1989년 9월 싱가포르에서는 바둑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가 펼쳐졌다. 바둑 올림픽이라 불린 제1회 응씨배 결승국. 최후의 장수는 한국의 조훈현과 중국의 녜웨이핑이었다. 5번기 승부에서 2승2패, 마지막 한 판만이 남아있었다. 창은 날카롭고 방패는 견고하니 승부는 하늘만이 알고 있었다. 조훈현의 ‘부드러운 창’이 ‘철(鐵)의 수문장’을 베었다. 반도는 열광했고, 대륙은 탄식에 잠겼다.그 무렵 일본 바둑은 수직으로 추락했다. 일본은 기리(棋理)와 모양을 따지고 도와 예를 중시했던 바둑의 나라였다. 일본 최고수의 기보는 한국과 중국의 기사들에게는 교본이었다. 바둑에 관한 격언과 전설, 그리고 속설까지 모두 일제(日製)였다. 그러던 일본이 호흡이 거친 전투바둑에서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전투에 ...

    1328호2019.05.20 11:16

  • [김택근의 노을 노래]빛의 습격
    빛의 습격

    아무 빛도 섞이지 않은 절대의 어둠은 지구촌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 속의 싱싱한 야성의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빛은 열(熱)이다. 빛은 사라져도 자국을 남긴다.서울을 떠나온 지 3년이 넘었다. 이사 온 마을은 내 바람대로 고요했다. 서울 근교지만 자연의 건강한 소리가 남아있었고, 해가 지면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소음만 멈춘다고 고요한 것은 아니다. 어둠이 제때 내려와 새소리까지 덮으면 비로소 세상은 고요해진다.그런데 고요를 깨뜨리는 일이 일어났다. 어느날 갑자기 요상한 빛이 나타났다. 간이 야구장 불빛이었다. 밤에 느닷없이 조명탑에서 불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인근의 마을들은 야구장의 맹렬한 불빛에 밤의 평화가 깨져버렸다. “산천초목에 어둠이라는 이불을 돌려주라”는 주민들의 항의도 소용이 없다. 주민들은 지쳐버렸고, 오늘도 야구장 조명탑에서는 거대한 빛줄기가 쏟아지고 있다.빛이 넘친다. 우리가 이룬 문명도 빛 위에 떠 ...

    1327호2019.05.10 17:17

  • [김택근의 노을 노래]부처님이 오신 까닭
    부처님이 오신 까닭

    부처님은 모든 사람이 귀한 만큼 누구에게도 군림하지 말라고 이르셨다. 스스로 옷 입고, 밥 먹고, 발 씻고, 잠자는 것이 유혹을 멀리하며 진리를 받드는 것이다.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온다. 길가의 연등이 화사하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에는 세상이 기운차고 싱그럽다. 꽃보다 아름다운 새잎들을 보며 새삼 석가모니 부처님이 왜 오셨는지를 생각해본다.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스님은 1982년 부처님오신날에 이런 법어를 내렸다.“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불교사에 길이 남을 한글 법어이다. 우리 모두가 불성을 지녔고, 그렇기에 내 안의 탐욕과 분노를 없애면 부처가 될 수 있고, 또 그렇기에 부처님들이...

    1326호2019.05.03 15:24

  • [김택근의 노을 노래]백남준을 다시 춤추게 하라
    백남준을 다시 춤추게 하라

    모국에서는 그의 작품에 불이 꺼졌지만 외국에서는 그를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 곳곳을 뒤져 희귀한 브라운관 TV를 구입하여 백남준의 예술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서면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아트 작품 ‘다다익선’이 우뚝 서 있다. 하지만 불이 꺼져 있다. 밖은 꽃이 만발했는데 그의 작품에서는 기괴한 침묵이 흐른다. ‘많을수록 좋다’는 뜻의 거대한 작품은 ‘많을수록 흉하다’며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흡사 예술가의 혼과 열정이 굳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다익선’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1003개의 TV 브라운관 모니터로 만들었다. 1003은 개천절을 상징하는 숫자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비디오아트 작품으로 미술관의 상징이었다. 백남준은 음악가, 미술가, 과학자, 철학자였다. 달리 말하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경계...

    1325호2019.04.29 11:02

  • [김택근의 노을 노래]하늘엔 제비, 땅에는 제비꽃
    하늘엔 제비, 땅에는 제비꽃

    제비꽃을 보며 제비를 기다려 본다. 제비가 북상한다면 우리 세상이 맑아졌음 아니겠는가. 우리 심성도 맑아졌음 아니겠는가.제비꽃이 피었다.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있는 모습이 흡사 제비들의 지저귐 같다. 제비꽃이 피면 강남으로 갔던 제비들이 돌아왔다. 하늘에서 제비가 날면 땅에서 제비꽃이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봄이 완성되었다.제비들은 정말 ‘제비처럼’ 날렵했다. 제비에게는 날갯짓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제비에게는 비행이란 말이 제격이다.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는 비행은 경쾌하고도 시원했다. 멈춤 없이 날벌레를 낚아채는 광경은 경이로웠다.집집마다 제비집이 있었지만 함부로 허물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옛이야기 <흥부전>이 제비 보금자리를 지켜주었을 것이다. 고향 집에도 해마다 제비 한 쌍이 날아왔다.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이 자라서 비행연습을 마치면 함께 강남으로 날아갔다. 제비가 떠나가면 이내 삭풍이 불어...

    1324호2019.04.22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