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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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권의 책
  • 전체 기사 130
  • [이 한 권의 책]
    <안중근 의사 자서전>

    한국 현대사에서 ‘10월 26일’은 총소리로 기억된다.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육군 중장 출신의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쏘았고, 그보다 꼭 70년 전에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일본제국주의의 설계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흔히 화약 냄새가 나는 사건들에는 정치적 상대주의가 작동한다. 한쪽의 영웅이 다른 쪽에서 역적으로 폄하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총리 스가는 장관 시절에 “안중근은 범죄자이고 테러리스트”라는 자국중심주의적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그렇지 않다. 당시 국제법에 따르면 일반인도 의용군, 즉 군인이 될 수 있고 거듭된 강제조약이나 고종의 퇴위는 침략 행위로 인정된다. 무엇보다 대한제국의 주권자인 고종은 물러나면서 수수방관하는 국민이 되지 말라는 조칙까지 발표했다. 따라서 하얼빈역에서 울린 총성은 정당한 교전 행위의 일환이며 의거가 아니라 대첩으로 정정되어야 한다. 안중근 의사가 아니라 안중근 장군이...

    1399호2020.10.16 15:47

  • [이 한 권의 책]
    <자기 앞의 생>

    한 작가에게 평생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공쿠르상을 두 번 수상한 전무후무한 작가로 프랑스문학사에 기록된 로맹 가리. 그렇지만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1956년 공쿠르상은 <하늘의 뿌리>의 작가 로맹 가리에게 주어졌지만, 1975년에는 <자기 앞의 생>의 작가 에밀 아자르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에밀 아자르가 실상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건 1980년에 그가 권총 자살을 한 이후다. 유서처럼 남긴 글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에밀 아자르에 얽힌 비밀을 모두 털어놓는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들의 저작권자임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그렇게 하여 에밀 아자르라는 가면이 제거된 것인가? 일견 그렇지만 작가로서 로맹 가리의 ‘일인다역’(그는 여러 개의 필명을 갖고 있었다)은 한편으로 작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

    1398호2020.10.12 14:11

  • [이 한 권의 책] 유머와 풍자, 상상을 자극하는 100편의 드라마
    <데카메론> 유머와 풍자, 상상을 자극하는 100편의 드라마

    비극은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하는 젖줄이 되곤 한다. 불행이라는 모루 위에서 단련될수록 재능은 정화되기 때문이다. 작가 보카치오가 그렇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 광풍 속에서 그는 근대 소설의 원조인 <데카메론>을 낳았다. 눈을 뜨면 가족과 친구가 하나씩 사라지는 공포스러운 현실은 거꾸로 유머와 풍자 그리고 상상을 자극했다. 작품에서는 영혼·신체, 고민·행동, 구원·쾌락의 이항 대립을 오락가락하는 남성과 여성이 연이어 출몰한다. 타산을 뛰어넘고 본능에 자유로운 인간들이 펼쳐내는 이야기의 낙원에서 죽음은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1001일의 야화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마음의 병을 앓는 임금의 살인 행각을 그치게 한 셰에라자드처럼 흑사병의 맹위도 끝없는 이야기 앞에서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열흘 동안의 이야기라는 말뜻처럼 <데카메론>에는 10명의 남녀가 열흘간 100편의 드라마를 늘어놓는다. 전염병을 피해 교...

    1397호2020.09.24 16:40

  • [이 한 권의 책]
    <오만과 편견>

    지난 2017년 사후 200주년을 맞아 제인 오스틴 소설전집이 국내에서도 출간되었다. 이후에도 그가 남긴 여섯 편의 장편소설은 계속 번역본으로 나오고 있어 동시대 작가처럼 여겨진다. 고전이 갖는 시대 초월성은 오스틴의 소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정작 작가의 생전에 그의 작품들은 초판이 매진되는 정도였다. 인기가 있었다고는 해도 제한적이었고, 그마저도 사후에는 잊혔다.오스틴의 복권과 부활은 19세기 말부터 이루어졌고, 20세기 중반에 저명한 비평가 리비스는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에서 오스틴을 일컬어 그 ‘위대한 전통’의 출발점으로 지목했다. 사실 오늘날 세계문학사에서 최초의 위대한 여성 소설가의 영예는 오스틴에게 돌려진다.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를 효시로 삼고 있지만, 근대소설의 발달이 주로 영국에서 이루어진 걸 감안다면 특별히 놀라운 사실은...

    1396호2020.09.21 12:21

  • [이 한 권의 책] 제대로 된 노력, 열정과 스승의 ‘삼위일체’
    <탤런트 코드> 제대로 된 노력, 열정과 스승의 ‘삼위일체’

    어린 시절 ‘IQ 200’을 시험하는 퍼즐 문제에 도전하고 예체능 학원 문을 두드린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묻은 흙을 닦아내자마자 빛을 발하는 진주처럼 숨겨진 재능이 ‘짠!’ 하고 튀어나오기를 누구나 기대한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인재를 취재하면서 능력의 정체를 밝힌 <탤런트 코드>에 따르면, 환망공상(幻妄空想)의 천재관을 하루빨리 벗어던져야 한다. 타고난 유전자가 아니라면 99%의 땀을 강조하는 에디슨류의 자기 계발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뇌과학에서는 글쓰기, 스포츠, 음악 등 재능이 폭발하는 어떤 분야에서든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패턴이 있다고 본다. 천부적 자질이나 엉덩이의 힘이 아니라 재주를 익힐 때 사용하는 보편적인 뇌의 메커니즘을 알면 되는 것이다.뇌가 내장한 암호의 정체는 바로 미엘린이다. 뇌신경회로라는 전선을 감싸는 피복 격인 미엘린은 정확히 목적에 맞는 노력을 할 때마다 두꺼워진다. ...

    1395호2020.09.11 14:30

  • [이 한 권의 책] 마침내 침몰한 피쿼드호는 어떤 국가일까
    <모비 딕> 마침내 침몰한 피쿼드호는 어떤 국가일까

    토머스 홉스가 국가라는 시민공동체를 거대한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멜빌이 <모비 딕>의 서두에 놓인 발췌록에서 홉스의 말을 인용한 것은 거대한 고래가 리바이어던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겠다. 그렇다고 흰고래 모비 딕이 ‘국가’를 상징하지는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작품에서는 에이하브 선장의 ‘피쿼드’호가 국가를 연상하게 한다. <모비 딕>이 고래와 포경업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고래학 책이면서 동시에 국가론으로 읽힐 수 있는 이유다.국가론이라면 으레 이상적인 국가체제를 탐색하지만 때로는 반면교사를 제시한다. 복수의 일념으로 모비 딕을 뒤쫓은 피쿼드호가 마침내 침몰하면서 끝나는 결말을 고려하면 이 경우는 반면교사에 해당한다. 피쿼드호는 어떤 국가였던가 따져보자. 먼저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에이하브 선장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으로는 ‘아합’이...

    1394호2020.09.04 16:27

  • [이 한 권의 책]춘추좌전-우회로를 거쳐 전달되는 역사의 가르침
    춘추좌전-우회로를 거쳐 전달되는 역사의 가르침

    공자가 편찬한 <춘추>는 동양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현실 정치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이상주의자의 귀결점은 교육이고 저술이다. 자신의 믿음과 가치가 흙 속의 진주로 묻히고 티끌처럼 흩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춘추>야말로 공자의 ‘다 걸기’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경고하고 미래를 제시한다. 공동체를 어지럽히고 윤리를 뒤흔드는 난신적자의 무리는 역사의 법정에서 붓으로 영원히 징치되고 있다. 그러나 미언대의(微言大義)로 제시된 원문은 워낙 간결하고 함축적이기에 상세한 해설을 통하지 않고는 서릿발처럼 엄정하고 칼날처럼 번쩍이는 준열함을 맛보기 힘들다. <춘추좌전>은 좌구명의 렌즈를 통해 짧은 원문에 담긴 맥락과 배경 그리고 의미까지 인간과 세계를 폭넓고 심도 있게 보여준다.흔히 춘추는 나이를 뜻하고 한 해를 일컫는 말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주나라가 도읍을 옮긴 때부터 진(晉)나라가 위·조·한 세 나...

    1393호2020.08.28 14:21

  • [이 한 권의 책]팬데믹 패닉-현재 재난 상황은 새 공산주의 발명 절호의 기회
    팬데믹 패닉-현재 재난 상황은 새 공산주의 발명 절호의 기회

    아직 가을의 문턱에 불과하지만 2020년은 단연코 코로나19가 세계를 뒤흔든 해로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팬데믹 상황은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에 미친 영향이 그만큼 크다. 아직 때 이른 관심이긴 하지만 과연 세계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견해가 갈리지만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쪽이 우세하다. 우리 시대의 대표 철학자 가운데 한명인 슬라보예 지젝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현재의 재난적 상황을 새로운 공산주의의 발명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난은 과연 어떻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몇 년 전 100주년을 맞았던 러시아혁명의 사례를 보자.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났지만, 볼셰비키를 주축으로 한 혁명세력은 러시아 전역을 장악할 만한 충분한 역량을 갖지 못했다. 당시 수도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손에 넣었음에도 곧바로 반혁명세력의 반격을 받게 되었다. 공산주의 유...

    1392호2020.08.21 15:20

  • [이 한 권의 책]예언자-인생사 보편적 주제에 대한 사색과 통찰
    예언자-인생사 보편적 주제에 대한 사색과 통찰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에서 핵폭탄급 폭발 사고가 터졌다. 내전으로 황폐해졌던 시가지가 이번엔 초토화된 것이다. 폭발로 형성된 버섯구름은 과거의 히로시마를 떠올리게 할 만큼 무시무시했다. 대부분의 참사가 그렇듯이 고질적 부정부패에 따른 인재(人災)라고 한다.대가를 치르는 것은 시민이다. 수많은 목숨이 스러지고 무수한 가옥이 허물어져 생존자들은 길바닥에 나앉을 지경이다. 아랍권에서 이슬람과 기독교가 그나마 절충점을 찾고 공존해온 레바논의 진로는 안개에 휩싸이게 됐다. 그럼에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베이루트 시민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무너진 건물을 재건하고 부서진 도로를 이을 것이다. 문제는 금이 간 마음이다. 무엇으로 참사가 안긴 트라우마를 극복할 것인가.레바논의 상처는 레바논의 정신으로 치유해야 한다. 20세기의 성자 칼릴 지브란이 바로 주인공이다. ‘영혼을 고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지브란은 애국자였다. 까마득한 ...

    1391호2020.08.14 14:22

  • [이 한 권의 책]사볼타 사건의 진실 - 바르셀로나의 근대화 과정과 그 결과
    사볼타 사건의 진실 - 바르셀로나의 근대화 과정과 그 결과

    근대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출간된 건 17세기 초다. 스페인 문학사에서 궁금한 대목은 그 이후 소설 장르의 발전이 어째서 스페인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이다. 세르반테스 이후 스페인 소설의 거장을 바로 떠올릴 수 없어서인데, 근대소설의 전성기라 할 19세기에도 소설의 발전과 혁신은 주로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의 작가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세르반테스의 뒤를 잇는 19세기 작가로 플로베르나 도스토옙스키에 견줄 만한 스페인 작가가 배출되지 않은 사실이 역설적으로 스페인 문학의 특징으로 보인다.그렇지만 거장의 부재와 같은 문학사의 특징적 양상을 작가적 역량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특히 소설은 근대사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정확히 대응해 탄생하고 진화해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세 로망스 문학(기사 로망스)이 마지막으로 유행한 나라가 스페인이고, 그런 배경에서<돈키호테>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후 스페인 소설의 빈곤...

    1390호2020.08.07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