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이 한권의 책
  • 전체 기사 130
  • [이 한권의 책]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약한 자의 이름은 여자가 아니라 어린이다. 가정에서의 폭력과 학대로 아이들이 다치고 숨지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이상향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체로 개구쟁이 시절의 마을을 떠올린다. 의식주를 장만해야 하는 노역과 근심에서 벗어나 호기심과 천진함으로 점철된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집 밖이나 집 안 다 위험하다. 타인의 위해뿐만 아니라 가족의 괴롭힘도 만만찮다. 가장 근본적인 권리의 하나인 신체의 자유가 위협받는 현실에서 유년기를 꿈과 희망으로만 묘사하는 작품들은 참으로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짐승 같고 끔찍하다고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꿈과 현실을 매개하는 문학의 역할이 한층 필요한 때다.<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가난과 고통의 연속에서도 상상력을 잃지 않는 꼬마 제제의 이야기다. ‘철들기 전의 세계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으로 압축되는 작품이지만 겨우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구두닦이에 나설 만큼 가혹한...

    1419호2021.03.12 16:03

  • [이 한권의 책] 인생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톨스토이는 일찌감치 한국에 소개돼 가장 널리 읽힌 문호에 속하지만, 특이하게도 작가로서보다는 사상가나 설교자로서 수용됐다. 소설이라 하더라도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전성기 대표작 대신에 설교적인 말년작 <부활>이 애독됐다.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한 뒤 정신적 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예술창작에 대한 과격한 부정으로 나아가는 톨스토이를 보통 ‘후기 톨스토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의 톨스토이는 후기 톨스토이에 치우친 면이 있다. <인생에 대하여>도 바로 후기 톨스토이를 대표하는 저작 가운데 하나다.<인생에 대하여>는 통상 <참회록>과 같이 묶여 <인생론>이라고 번역돼왔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무난하지만, 톨스토이는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부터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때문에 그의 인생론은 내용상 인간생명론에 ...

    1418호2021.03.05 13:54

  • [이 한권의 책]노화의 종말-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
    노화의 종말-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

    가뭄에 단비처럼 고대하던 코로나19 백신을 맞게 됐다. 하지만 65세 이상 어르신은 좀 기다려야 한다. 수입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이 고령자에 대한 임상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늙기도 설워라커늘’ 접종조차 늦어지니 새삼 노화가 원망스럽다. 낙원에서 추방된 이래 불로장수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최고(最古)의 서사시 ‘길가메시’에서 주인공은 죽지 않고 늙지 않는 비법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 실패한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불사를 꿈꾸며 재물을 뿌렸지만, 지천명의 고개도 넘지 못했다. 과학의 시대를 맞아 생명과 젊음을 연장하는 욕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바이오 벤처 열풍이 불고 항노화 산업이 대목이다. 수명이 연장되면서 건강수명, 즉 노화에 대한 거부와 도전은 마치 시대정신으로까지 올라서고 있다.<노화의 종말>은 노화의 개념부터 시작해 원인과 극복 방안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

    1417호2021.02.26 14:19

  • [이 한권의 책]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리어왕의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리어왕의 주변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못했지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의 저자라면 자격이 있겠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특이한 힘들’에 관해 다루면서 그는 우리가 가진 잘못된 자아감을 교정하고자 한다. 통상 우리 몸을 구성하는 유전자가 하나의 청사진으로서 많은 것을 결정하고, 또 조종한다는 사실까지는 상식이 됐다. 그럼에도 유전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으며 우리의 자아는 각자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견해도 상식에 가깝다. 책에서는 이러한 상식을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을 바탕으로 보강하거나 전복한다.저자는 유전자 외에도 후성유전학과 미생물군유전체라 불리는 미생물 침입자들이 우리의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실험결과를 토대로 밝힌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것에 의해 자아가 형성되고 행동...

    1416호2021.02.19 14:41

  • [이 한권의 책]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것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것

    무심코 넘기지만 정색하고 물어보면 잘 모르는 우리말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어처구니 혹은 어이다. 영화 <베테랑>으로 유행어에 오른 ‘어이가 없네’는 뜻밖의 일을 당해 기가 막힐 때 쓰는 표현이다.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 즉 어이가 없으면 얼마나 황당한가. 그런데 우리말글을 지키는 작가 장승욱에 따르면 악역의 대사는 그른 듯하다. 오히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는 성석제 소설에 담긴 의미가 사전적 설명에 잘 들어맞는다. 국어사전은 맷돌 손잡이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로 정의하고 있다. 지붕에 얹어진 동물상이라는 어원설도 제기되지만, 대부분의 낱말이 그렇듯이 확실하고 명백한 부모는 알아내기 힘든 듯하다. 오히려 ‘어이’와 같이 유래와 기원이 다양한 토박이말일수록 생명력이 끈질길지 모르겠다.순우리말의 어원과 의미를 살피면서 풍부하게 활용하는 일은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1415호2021.02.05 14:52

  • [이 한권의 책]천하대혼돈-세계적인 포퓰리즘의 진단과 해석
    천하대혼돈-세계적인 포퓰리즘의 진단과 해석

    제목에서 저자 슬라보예 지젝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여러 차례 방한한 적이 있는 지젝 말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그와 직접 마주할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예년과 다르지 않게 <팬데믹 패닉>을 포함해 5권의 책이 번역돼 나왔고, <천하대혼돈>은 그 가운데 하나다. 제목이 낯선 것은 마오쩌둥의 말에서 가져왔기 때문인데, 전체 문구는 “천하대란, 형세대호”다. 천하가 대혼란이지만 기운은 상서롭다는 것.지젝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의 제목이 ‘천하대혼돈’인 것은 어디까지 저자의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가지 의미로 읽힌다. ‘형세대호’까지 포함한 것과 포함하지 않은 것. 만약에 ‘형세대호’가 ‘천하대란’에 자연스레 뒤따르는 것이라면 천하대란은 그 자체로 형세대호를 포함한다. 하지만 그 둘이 분리돼 있다면 ...

    1414호2021.01.29 17:06

  • [이 한권의 책]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타락한 사회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타락한 사회

    벼락부자 대신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아파트가격이 몇 달 새 갑절로 뛰고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돌파하면서 순식간에 자산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가난보다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는 유학의 가르침처럼 상대적 박탈감은 나만 소외되고 있다는 한스러움을 일으킨다. 앉은 자리에서 절로 횡재를 만난 사람들도 ‘운빨’이 다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마음에 숨어 있다. 부자나 빈자나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된 것이다. 인간에게 최고의 하인이거나 최악의 주인이 되는 돈을 위대한 작가들은 어떻게 파악해왔을까.<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는 단편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서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재물욕이 어떻게 삶을 파괴하는지 생생하게 제시하고 있다. 평소 부를 자랑하는 친구의 집을 방문한 주인공은 무엇...

    1413호2021.01.22 15:39

  • [이 한권의 책]사랑의 기술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었다. 저자의 메시지는 변함이 없을 테지만 독자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책이 갖는 의미도 자연스레 변화하게 된다. 아마도 20대 독자라면 어떤 ‘기술’을 책에서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제목 때문에 연애의 기술이나 비법을 가르쳐주는 책으로 오해돼온 면도 없지 않다. 프롬이 제목에 기술(art)이란 말을 붙인 것은 통념과 달리 사랑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사랑의 핵심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데 있기 때문에 능력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당연하지만 훈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사랑에 대한 희귀한 이론적 검토를 포함하고 있는 이 책에서 프롬은 어떤 능력을 말하고 또 어디까지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마지막 장에서 ‘사랑의 실천’을 다루고 있지만 <사랑의 기술>의 절반 이상은 &...

    1412호2021.01.18 10:53

  • 3가지 원리-다가올 미래를 대처하는 행동 지침서

    역사의 기관차를 움직이는 엔진은 무엇일까. 도전에 대한 응전, 계급투쟁, 혁신, 과학기술 등 다양한 답변이 제출됐지만 뭔가 미진하다. 인류를 멈추게 한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문명의 존망을 우려하는 단계에서는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역사 인식이 요청된다. 빅 히스토리(Big History)나 미래학에서 가능성을 볼 수 있지만, 인간의 정신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런 아쉬움을 채워주는 것이 문명비평가 로렌스 토브의 <3가지 원리>다. 비즈니스나 사회적 트렌드에 치중하면서 지나치기 쉬운 종교나 정신성이 미래사회를 구성하는 원리가 될 것이라고 독특한 시각을 선보인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빅 픽처(Big Picture)다.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리해서 보지 말고 종합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역사를 이해하는 일종의 ‘삼각측량법’인 빅 픽처의 도구는 무엇인가. 바로 성, 연령, 카스트(사회집단)다. 인류의 시작부터 종말까...

    1411호2021.01.08 15:39

  • [이 한권의 책]파계-백정 집안 출신이라는 비밀 밝힐까
    파계-백정 집안 출신이라는 비밀 밝힐까

    <파계>는 시마자키 도손의 첫 소설이다. 메이지학원을 졸업하고 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처음에는 시인으로 활동했다. 4권의 시집을 펴낸 뒤 집필했다가 1906년에 자비로 출간한 소설이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도 평가되는 <파계>다. 그보다 한 해 앞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잡지에 연재하면서 소설가로서 데뷔한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후세에 남겨야 할 명작”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도손의 문학적 역량을 높이 산 소세키는 도손의 두 번째 소설 <봄>을 아사히신문에 연재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소세키와의 인연을 적은 것은 모리 오가이와 마찬가지로 도손의 문학 역시 소세키와의 비교를 통해 잘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06년에 발표된 소세키의 <도련님>은 <파계>의 좋은 짝이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이 시골학교 교사로서 불의한 환경에 맞서 고투한다. 다만 장르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l...

    1410호2021.01.04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