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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 전성시대
  • 전체 기사 229
  • [장르물 전성시대]두 유형의 소인 이야기
    두 유형의 소인 이야기

    가난뱅이 잭은 하늘까지 닿는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구름나라 부자 거인의 재물을 훔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를 죽여버린다. 안데르센의 <엄지공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진정한 행복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동물사회에 빗대 야유한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구두 굽을 얼마나 높이면 좋을지 핏대를 세우는 소인국 귀족들을 통해 사소한 문제로 소모적 정쟁을 일삼는 당대의 영국 정계를 비꼰다. 예로부터 소인 이야기는 세태비판 의도가 다분했다. 이런 경향이 현대 과학소설에서도 눈에 띈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건 없다. 유형은 크게 두가지다. 종래의 소인 이야기들처럼 사회풍자가 목적이거나 아니면 소인들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 그리고 과연 그들이 세상과 공존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다.첫 번째 유형으로 리처드 매드슨의 장편 <줄어드는 남자>(1956)와 영화 <다운사이징>(2017)이 있다. <줄어드는 남자>...

    1484호2022.06.24 17:05

  • [장르물 전성시대]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사실 미스터리소설은 완벽한 살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완전범죄란 불가능함을 다시금 각인시키는 이야기에 가깝다. 미스터리 비평 선집인 <죽이는 책>이 “인간 최악의 본성이 아무런 저항 없이 승리를 거두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은 선한 남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며 추리소설의 본질을 적시한 그대로다. 미스터리소설이 마치 범죄를 옹호한다거나 부추긴다는 식의 비난은 순전히 잘 모르는 외부인의 겉핥기에서 기인한다. 소설 속의 온갖 기상천외한 범죄는 현실을 정확히 모사한다. 처음부터 극단에 치우친 인간의 파멸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니 이 모든 혼돈을 이성으로 정돈해내는 미스터리소설의 서사는 독자에겐 극진한 오락인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을 응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즉 ‘독서’ 행위의 가장 기본과 정확히 맞닿는 셈이다.<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잘 알려진 피터 스완슨의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g...

    1483호2022.06.17 11:20

  • [장르물 전성시대]「공각기동대」에 담긴 거대 정치담론
    「공각기동대」에 담긴 거대 정치담론

    넷플릭스가 2020년부터 독점방영한 <공각기동대 SAC 2045>는 일견 하드보일드 액션물이다. 하지만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만화는 물론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들과도 확연히 다르다. 카미야마 켄지가 총괄 제작한 이번 TV시리즈는 원작자의 사이버펑크 세계관에 바탕을 두되 오시이 마모루처럼 의체(기계나 합성소재 몸체) 속에 담긴 고스트(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을 지닌 영혼)의 의미를 관념적으로 되뇌는 빤한 플롯은 사양한다. 대신 의체화된 특수부대원들이 소속된 일본과 이 나라를 국제정치에서 배후조종해온 미국과의 애증 어린 유착관계, 그리고 미국이 내세운 세계경찰국가란 허울 이면에 도사린 제국주의적 탐욕을 해부한다. SF는 과학기술이 인류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서사 콘텐츠답게 정치적 관점과 맞닿을수록 논조가 신랄해진다.2개 시즌 총 24부작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허구의 음모론과 기존의 미일관계를 유기적으로 얽어매 거대담론을 완성한다. ‘공안9과&r...

    1482호2022.06.10 14:05

  • [장르물 전성시대]사형에 이르는 병
    사형에 이르는 병

    아동 학대가 끔찍한 것은 가장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라서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이를 향해 은밀하게 벌어진 폭력인 탓에 뒤늦게 알려진 참상은 때때로 인간의 상상력과 도덕성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동 학대의 제일 비극적인 지점은 결국 폭력의 대물림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가정 폭력 가해자의 절반 이상이 유년기에 같은 피해를 경험했다고 한다. 스스로 그 가혹하고 무력했던 상황을 겪었으면서도 다시금 자신의 아이를 학대한다니. 마치 인간의 선한 자유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폭력의 굴레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는 듯해 참혹한 기분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아동 학대는 연쇄살인범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적인 연쇄살인범의 성장 환경을 보면 하나같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그런 면에서 <사형에 이르는 병>은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미스터리이기 이전에 작중 연쇄살인마인 하이무라 야마토에 대한 면밀한...

    1481호2022.06.03 11:22

  • [장르물 전성시대]블랙미러 단편시리즈 스미더린
    블랙미러 단편시리즈 스미더린

    승용차 뒷좌석의 인질이 운전석 납치범의 총을 빼앗으려 덤벼든다. 멀리서 관망하던 경찰 저격수들이 이때다 싶어 조준 사격을 한다. 차 유리창에 구멍이 나건 말건 인질은 권총 손잡이를 놓을 생각이 없다. 이 청년은 차 트렁크에 갇히자마자 폐소공포증 운운하며 실성하기 직전이었고, 할 수 없이 뒷좌석에 태워 머리에 천으로 만든 자루를 씌웠더니 겁에 질린 나머지 토악질하던 겁쟁이가 맞나 싶다. 멀찌감치 지켜보던 경찰로서는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으니 중재자와의 대화를 단칼에 물리고 ‘빌리 바우어’와 직접 통화하게 해주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납치범과 인질의 몸싸움에 개입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넷플릭스의 SF드라마 시리즈 <블랙미러> ‘스미더린’편의 키워드는 바로 ‘빌리 바우어’다. 그는 페이스북의 창업자 같은 인물이다. 사람들은 빌리가 개발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lsqu...

    1480호2022.05.27 13:52

  • [장르물 전성시대]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유독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장르에 엄밀한 잣대를 들이민다. 전 세계 거의 유일무이한 <스타워즈> 불모지이면서 ‘<스타워즈>가 SF이긴 하냐’는 해묵은 논쟁을 일삼는 게 대표적이다. SF로서 가져야 할 조건이나 소양을 따지고 들면서 광선검이 가당키나 하냐, 왜 우주에서 폭발음이 들리냐는, 과학적이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비판한다. 이에 창조자인 조지 루카스 감독은 아주 당연한 말로 현명하게 응한 바 있다. “내 우주에서는 그렇다”고. 이미 서구권에서는 SF나 판타지, 호러 장르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뒤섞인 장르소설을 가리켜 사변소설(SF·Speculative Fiction)로 통칭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오늘날 장르란 경계이기보다 특성이니, 장르의 구체성보다는 장르 요소들의 결합이 가리키는 지점에 집중해야 옳다. 이 역시 당연한 말이겠지만.심너울 작가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1479호2022.05.20 15:41

  • [장르물 전성시대]단절 - SF, 비유인가 현실의 공포인가
    단절 - SF, 비유인가 현실의 공포인가

    “과거를 지배하는 이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이가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이 유명한 명제가 새삼 떠올랐다. 2022년 애플TV에서 방영돼 호평받은 드라마 <단절(Severance)>을 보던 중의 일이다. 개인적으로 <1984년>에서 유달리 끔찍했던 건 집안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쌍방향 TV 겸 감시모니터나 사상경찰이 아니라 어휘사전 편집과 언론보도 조작을 통한 논쟁적 어휘들의 사회성 상실이었다. 대형(大兄)은 불온한 사상을 연상시키는 단어 자체를 아예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게 발본색원한다. 대신 체제를 찬미하는 개념에 충실한 신어들을 꾸준히 쏟아내 사전의 비워진 공간을 바로바로 채운다. 일찍이 구조주의 언어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어휘에 대한 지식이 사고의 폭을 제약하고 세계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lsq...

    1478호2022.05.13 14:17

  • [장르물 전성시대]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현실에선 누군가의 선명한 악의를 마주하기 쉽지 않다. 디지털 세상은 다르다. 자유로이 의견을 개진한답시고 인터넷 너머 상대에 대한 험담과 욕설도 서슴지 않는 ‘악플’이 단적인 예다. 익명 뒤에 숨어 온갖 추악한 말을 쏟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을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인 양 선동하는 일도 다반사다. 연예인들은 입을 모아 악플로 말미암은 만성적인 고통을 토로하는가 하면 때로는 이로 인해 허망하게 스러지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대단한 악의를 가지고 벌인 행동이 아니라 할지라도 여지없이 상처를 낸다는 점이다. 날카로운 말로 상대를 찌르는 건 그만큼 쉽다. 동시에 무감하게 이뤄지기에 죄책감이 적은 반면 파급력은 크다. 디지털 세계가 삶에 깊숙이 침투했다. 그로 인한 공포 또한 훨씬 핍진하고 구체적인 형상을 띤다. 일견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두 명의 인물이 중심이 돼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악의를 주고받는 순...

    1477호2022.05.06 14:51

  • [장르물 전성시대]죽은 등산가의 호텔
    죽은 등산가의 호텔

    환상소설과 공포소설 그리고 심지어 로맨스소설에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추리소설에는 앞의 장르들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까다로운 규칙이 훨씬 더 많다. 개중에는 규칙을 넘어 금기에 가까운 것도 있다. S. S. 밴 다인의 ‘추리소설 작법 20원칙’의 일부를 보자.첫째, 범죄의 수수께끼는 엄격한 자연법칙에 따라 풀어야 한다. 점을 치거나 심령술(또는 최면술)을 사용하면 곤란하다. 둘째, 살인사건은 사고나 자살로 매듭지으면 안 된다. 끝까지 완주한 독자들에게 대체 무슨 짓인가. 셋째, 배후에 비밀결사나 대규모 범죄조직이 있다는 설정은 사절이다. 아무리 신출귀몰한 범행 같아도 배후에 큰 ‘빽’이 있다면 어려울 것도 없지 않겠는가. 이런 범인이 도주했다고 한들 가슴이 쫄깃쫄깃해지겠는가.그런데 범인을 밝히는 이야기에 SF의 해법을 적용하면 어찌 될까. 위의 금기를 준수하되 추리소설답고 SF다울 수 있을까.외딴 산장호...

    1476호2022.04.29 15:34

  • [장르물 전성시대]왕과 서커스
    왕과 서커스

    요네자와 호노부의 <왕과 서커스>는 2001년 실제 일어난 네팔 왕실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네팔의 황태자가 왕과 왕비를 포함해 국왕 일가 8명을 사살한 사건이 벌어진다. 부모를 살해했다고 알려진 황태자 또한 현재 위중한 상황인데, 그가 깨어날 경우 왕위를 계승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왕궁 앞은 존경받는 왕을 잃은 시민의 슬픔과 분노로 소용돌이친다. 마침 여행 아이템 취재차 네팔 카트만두에 체류 중이던 프리랜서 기자 다치아라이가 사건의 내막 기사화에 나선다. 그는 당시 왕실 현장에 있었던 군인과 어렵사리 접촉한다. 하지만 군인은 자청한 자리임에도 지나치게 말을 아끼고, 뜻밖에도 다음날 골목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다치아라이가 우연히 목격한 그의 등에는 ‘INFORMER(밀고자)’라는 문구가 칼로 새겨져 있었다.요네자와 호노부는 <빙과>로 데뷔한 이래 청춘과 미스터리를 엮어낸 작품으로 입지를 다진 작가다. <...

    1475호2022.04.22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