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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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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르물 전성시대]평범을 가장한 인간의 집착과 광기
    평범을 가장한 인간의 집착과 광기

    한 섬유회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화학자 데이비드 켈시에게는 한가지 비밀이 있다. 회사 근처 하숙집에서 숙식하는 그는 주말이면 늘 병환 중인 어머니를 돌보고자 요양원을 찾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시간을 보내는 곳은 평생의 반려로 점찍은 애나벨과 함께하고자 마련한 신혼집이다. 문제는 애나벨이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윌리엄 뉴마이스터라는 가짜 신분으로 장만한 집에 틀어박혀 주말 내내 애나벨과 함께 생활한다는 달콤한 공상에 젖어 있다. 그간 애나벨에게 몇 번이나 편지로 절절한 사랑을 고백했다. 답장이 오지 않는 건 아마도 교활한 그의 남편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60년작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평범을 가장한 인간이 집착과 광기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드러내는 감정의 파고를 무척이나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데이비드 역시 사이코패스 <...

    1494호2022.09.02 11:30

  • [장르물 전성시대]소모품으로 전락한 불멸의 존재
    소모품으로 전락한 불멸의 존재

    불멸의 삶을 가정한 대부분의 작품이 말하는 것은 결국 필멸하는 인간에 대한 제고다. 그래서 불로불사의 존재가 오히려 인간이 되길 바라기도 하며, 그 영원한 삶 역시 대개는 영원한 고통과 고독으로 점철됐거나 아예 무미·무취한 것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애초에 불사의 존재란 인간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조망하게 하는 효과적인 장치인 셈이다. 물론 처음엔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생물이라면 죽음은 누구든 두려워하는 것인데다 영원불멸에 대한 동경은 인류의 보편적인 욕망이기도 하니 말이다.SF소설 <미키7>이 상정한 불멸의 존재는 그래서 더 독특한 느낌으로 읽힌다. 인체를 복제하고 기억마저 그대로 이식해 만든 인간이라고 하니 곧 죽음을 초월한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질 법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죽어도 죽어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복제인간 ‘익스펜더블’은 소모품이란 뜻 그대로 늘 죽음에 앞장서야 하는 가장 보잘것없는 최하위 노동자에...

    1493호2022.08.26 15:05

  • [장르물 전성시대]과학소설과 경제의 연관성
    과학소설과 경제의 연관성

    지구촌 전역의 돈 풀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잿값이 폭등하면서 고물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이란 쌍둥이 후폭풍이 연일 우리 뒤통수를 후려친다. 수출주도경제에 목맨 한국경제로선 걱정이 태산이다.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고 SF 또한 문학의 한 갈래다. 그렇다면 SF는 경제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일까? ‘과학소설’이라 하면 선뜻 경제 관련 키워드가 떠오르는가? 우주선과 외계인 그리고 온갖 특수효과로 치장한 액션만 떠오른다면 당신이 과학소설을 별로 읽지 않는다는 반증이다.문학은 욕망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과학소설은 개인 대신 사회와 이해집단들(혹은 인류 전체)의 욕망을 다룬다. 개인의 감정변화보다 세상의 흐름과 변화 포착이 SF의 주된 관심사니까. 로벗 A. 하인라인의 중편 ‘달을 판 사나이’가 단적인 예다. 인류가 달에 진출하면 다양한 사업기회가 열리긴 하겠지만 누구나 당장은 뜬구름 잡는 먼 이야기라 여기던 20세...

    1492호2022.08.19 11:58

  • [장르물 전성시대]청춘과 미스터리 그 가운데
    청춘과 미스터리 그 가운데

    청춘 미스터리라고 하면 보통은 살인사건과는 무관한, 상대적으로 안온한 미스터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중고등학생 주인공을 내세워 학교를 배경 삼아 펼치는 미스터리라면 결국 ‘청춘’에 방점을 찍어야 고유의 매력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나 학생이라고 해서 살인과 무관하리란 법은 없다. 다만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학교와 친구라는 작고도 깊은 세계를 파헤치는 청춘 미스터리의 색채는 그만큼 옅어질 게 뻔하다.그런 면에서 아오사키 유고의 일명 ‘관 시리즈’는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여겨질 만하다. ‘관 시리즈’라고 하면 대개는 괴상한 건축물을 무대 이상의 주역으로 삼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아오사키 유고가 선택한 관은 차례로 체육관, 수족관, 도서관이다. 명백히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제목을 사용해놓고는 일상에 밀착한 공간과 ...

    1491호2022.08.12 13:32

  • [장르물 전성시대]자폐인을 존중한다면
    자폐인을 존중한다면

    최근 화제몰이 중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응원하는 시청자들이 많으리라. 하나 현실은 냉담하다. 바로 이달에 대한항공 국제선 여객기에서 자폐인이 강제하차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해가 될 만한 행동은 전혀 없었으나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안내의 손길을 뿌리치고 달아나 기내를 벗어나기까지 하니 적잖이 당혹스러웠으리라. 자폐인은 낯선 이가 자신을 만지려 할수록 신경이 곤두선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런 현실을 소위 ‘서번트 증후군’으로 분류되는 극소수의 자폐인을 내세워 우회한다. 실제로 일부 자폐인은 자신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악기연주와 회화 같은 예술을 비롯하여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솜씨를 발휘한다. 믿기 어렵다면 영화 <레인맨>에 나오는 자폐인(더스틴 호프만 분)의 실제 모델인 미국인 킴 픽이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암송하는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확인해보시라. 다만...

    1490호2022.08.05 14:37

  • [장르물 전성시대]킨 - 노예제 시대로 타임 슬립
    킨 - 노예제 시대로 타임 슬립

    1976년 <패턴마스터>로 데뷔한 옥타비아 버틀러는 당시 SF계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가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백인 남성 작가들이 백인 남성 캐릭터를 앞세우던 SF계에서 그는 흑인이면서 또 여성이었다. 이러한 ‘독특한’ 정체성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돼 독보적인 성취로 이어졌다. 그는 2006년 58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아프리카 문화와 미국 역사에 판타지를 덧대 인종과 젠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권력과 시스템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SF 장르의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 천착했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작가 개인의 배경 그대로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이를 부추겼던 낯설고도 익숙한 환경이 무척 이채롭게 그려졌다.1979년작 <킨>은 타임 슬립과 미국 노예제도를 결합한 그의 대표작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1800년대 초 미국 메릴랜드로 강제로 소환된 흑인 여성 다나는 느닷없이 엄혹한 노예제의 희...

    1489호2022.07.29 14:16

  • [장르물 전성시대]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기준은?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기준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신형 로봇들은 체조선수처럼 제자리에서 사람 키만큼 점프, 공중회전하며 깔끔하게 착지한다. 숙련된 곡예사나 할 수 있는 솜씨다. 자율형 자동차시장 선점을 위해 하드웨어뿐 아니라 고품위 인공지능이 필요한 현대그룹이 2021년 1조원에 가까운 투자금으로 이 회사를 인수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행동뿐 아니라 외모 흉내내기에도 열심이다. ‘엔지니어드 아츠’가 개발한 로봇은 표정 변화와 몸짓이 진짜 인간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를 두고 일찍이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란 표현을 썼다. 인간의 외양을 많이 닮은 로봇일수록 대면하는 사람의 불쾌감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톰 같은 만화캐릭터 로봇에게는 호감을 느끼나 인간의 외모를 빼닮았지만 어딘지 어색한 로봇 안드로이드에게는 섬뜩하고 불길한 인상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일론 머스크의 바이...

    1488호2022.07.22 11:15

  • [장르물 전성시대]코즈믹-밀실 아닌 밀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코즈믹-밀실 아닌 밀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밀실(密室)’이라 하면 문자 그대로 밀폐된 방을 의미한다. 추리소설에서 밀실은 오히려 그 반대 의미에 가깝다. 얼핏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곳처럼 보이지만 만약 시체라도 발견된다면 그 의미는 곧바로 역전된다. 우선 교묘한 물리적·심리적 장치를 이용해 밀실을 가장한다면 살인을 자살로 위장할 수 있다. 범인의 혐의가 분명해도 밀실의 트릭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범죄를 입증하고 기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추리소설에서 밀실이란 실제로는 열린 공간을 의미한다. 그것도 완전범죄를 목표로 만들어낸 수수께끼 그 자체를 현현한 공간이다. 그러니 만약 서두부터 무려 1200번의 밀실 살인을 예고하는 소설이라면 이는 장난이나 농담처럼 느껴질 일이다. 그도 아니라면 추리 장르에 대한 반발이거나. 세이료인 류스이의 데뷔작 <코즈믹>은 그런 크고 작은 야심을 그러모은 작품이다.1994년 1월 1일, 언론사와 경찰청 등에 일제히 범죄예고장이 전송...

    1487호2022.07.15 14:29

  • [장르물 전성시대]우주선 무적호-“모든 게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냐”
    우주선 무적호-“모든 게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냐”

    스타니스와프 렘의 <우주선 무적호>(1964)는 미지에 대한 불안과 회의로 가득한 장편소설이다. ‘무적호’라는 작명조차 반어적으로 읽힌다. 강력한 무장을 갖춘 인류 우주선 무적호가 외계행성 레기스 3에 착륙한다. 이 사막투성이 행성에 온 것은 전에 여기 왔다 실종된 또 다른 우주선의 행적 조사 차원이다. 무적호 승무원들은 마침내 우주선 잔해를 발견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러다 현지탐사에 나선 승무원 일부가 파리 떼 습격에 뇌가 초기화되면서(초강력 자기장 세례에 신생아 수준으로 지적 발육상태가 퇴행하면서) 실마리가 잡힌다. 상대방에 대한 무지 탓에 상당한 인명피해를 입으며 알게 된 사실은 파리 떼가 실은 곤충이 아니라 벌레 크기의 작은 로봇들로, 이 개체가 모여들어 자기장 네트워크를 이루며, 안개나 구름처럼 한덩어리가 되면 인간 뺨치게 뛰어난 지능을 지닌 존재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지능 있는 인공존재를 다룬 소설은 과학소설 역사에서...

    1486호2022.07.08 14:23

  • [장르물 전성시대] 절벽의 밤-한장의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
    절벽의 밤-한장의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2004년 데뷔한 이래 다양한 대중소설을 선보였다. 호러·미스터리였던 데뷔작 <등의 눈>부터 시작된 ‘영(靈) 현상 탐구가 마키비’ 시리즈를 비롯해 서스펜스 스릴러를 여러편 집필하는 등 다작가로도 이름이 높다. 이는 폭넓은 수상 경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섀도우>로 제7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까마귀의 엄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와 <광매화>로 각각 오야부 하루히코상과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품에 안았다. 2011년에는 <달과 게>로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대중소설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그럼에도 역시나 미치오 슈스케 하면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처럼 기묘한 분위기 속에 여러차례 비밀의 문을 여닫는 정통적인 미스터리가 먼저...

    1485호2022.07.01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