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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
  • 전체 기사 76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아리에스의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

    아리에스는 유럽의 기나긴 역사를 방대한 사례와 치밀한 문헌 분석을 통하여 설명하고, 특히 근대로 이행하면서 ‘어린이’가 어떻게 발명되고 왜 새로운 가족주의 이념이 탄생하였는가를 살피고 있다.네덜란드가 정치적으로는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근대적 국민국가의 기초를 닦고, 경제적으로는 동인도 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식민지 무역을 강화해 나가던 무렵에 이런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여자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 때,남자아이들은 더 큰 기백을 보여준다.여자아이들이 요람으로 갈 때,남자아이들은 나팔을 분다.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던 시기에 네덜란드에서도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남자아이들은 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은 무엇인가. 노래의 후반부를 더 들어보자.여자아이들이 부엌에서나 쓸 작은 물건들을 가지고 놀 때, 남자아이들은 강인한 사나이들을 흉내낸다.노래의 마지막은 “무기를 ...

    1294호2018.09.10 15:23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곰브리치의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쉽고 친절한 지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쉽고 친절한 지도

    “나는 전문용어나 얄팍한 감상의 나열이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평생을 통해서 미술책은 모두 그럴 것이라고 백안시하게 만드는 악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평이한 말을 사용하려고 성심껏 노력했다.”쉽게 쓰는 게 제일 어렵다. 어렵게, 혹은 어려운 글처럼 보이게 쓰는 것은 아주 쉽다. 개념어를 적절히 탑재하고, 잔뜩 각주를 달고, 잊을 만하면 거장이나 대가를 거론하면서, 본인조차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긴 문장을 써내려가는 것은 시각적으로는 어려워 보여도 기술적으로는 매우 쉽다. 그 반대가 어렵다. 쉽게 쓰는 게 진짜로 어렵다.물론 이 연재의 클리포드 기어츠 편에서 말했듯이, 쉽게 쓴다는 것은 복잡한 세계 구조나 뒤엉켜 있는 현상을 단순하게 묘사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무엇이며 그 현상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본질적으로 작용하고 있는가를 쉽게 쓴다는 것일 뿐, 복잡한 세계를...

    1293호2018.09.03 14:29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막스 베버의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인류사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 거작은 신학, 경제학, 역사학, 문헌학, 철학, 윤리학, 미학, 음악 등을 총망라하여 유럽의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과 그 정신세계를 분석하였다.밤의 하이델베르크는 그제야 하이델베르크다웠다. 글쎄, 이 말조차 서푼어치 감상자가 ‘상상한 하이델베르크’이겠지만, 어쨌거나 뜨거운 여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관광 시즌이기에 하이델베르크 곳곳이 사람으로 넘쳐났고 나 역시 그 인파에 섞여 칼 테오도르 다리를 혼잡하게 만들고 산정까지 올라가는 산악철도의 대기시간을 한참이나 늘렸으며 고즈넉한 고성을 테마파크인 듯 돌아다녔다. ‘관광객(tourist)’이란 구경꾼(sightseeing)이기에 나는 다국적의 인파에 섞여 하이델베르크를 구경하느라 저녁에는 지치고 말았다.저녁이라고는 해도 서머타임에 약하나마 백야 현상이 있어 밤 9시가 ...

    1292호2018.08.27 14:49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서순 , 브라운 , 피터 게이
    서순 <유럽문화사>, 브라운 <낭만주의>, 피터 게이 <모더니즘>

    1800년에서 2000년까지, 근대의 유럽이 오늘의 유럽에 이르는 200여년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상상하던 거의 모든 문화가 펼쳐진다. 19세기는 정치적 열망과 문화적 욕망이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었다.문화사를 공부하다 보면, 쓰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책들이 있다. 얼핏 생각나는 대로 꼽아보면 우선 도널드 서순의 <유럽문화사>가 있다. 전 5권으로 한국어판의 쪽수를 다 더하면 무려 2790쪽이다. 가히 평생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문헌을 분석했다고 할 만하다. 1800년에서 2000년까지, 근대의 유럽이 오늘의 유럽에 이르는 200여년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상상하고 창작하고 유통하여 소비한 거의 모든 문화가 펼쳐진다.월터 스콧을 시작으로 하여 21세기의 블록버스터 해리 포터까지, 거의 최초로 근대적 시민의 ‘감정’을 다룬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시작으로 하여 요즘의 대중적인 작품들까지, 아 물론 초기 오페라나 하...

    1291호2018.08.20 14:37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김원영의 과 마사 너스바움의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과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의 수치심>

    김원영이 소망한 바와 같이 너스바움도 ‘서문’에서 분명하게 다른 사회를 갈망한다. “자신의 인간성을 인정하고, 인간성을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는 사회다.”모처럼 좋은 책, 귀한 책,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돌아볼 수 있을 만한 책을 읽었다.‘1급 지체장애인으로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과정을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로스쿨로 진학하여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하는 김원영의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다. 나는 방금 저자의 약력을 쓰면서 일부러 따옴표를 달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장애인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했다는 우리 사회의 익숙한 시선을 비판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다.물론 당연히 저자 김원영은 이 ‘성공신화’를 거부한다. 이러한 시선은 자주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뒤집어진 거울이 된다. 열심히 공부하여 ...

    1290호2018.08.13 14:50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테리 이글턴의
    테리 이글턴의 <반대자의 초상>

    그가 이만하면 이 세상도 살 만큼 안정되었다고 여기는 작자들이나 문학예술을 우아한 생활세계의 데코레이션으로 삼아 이른바 ‘교양문화’의 품격을 운운하는 자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내 작은 소망이 있다면, 서평을 쓰되 테리 이글턴처럼 써보는 것이다. 세 가지 점에서 이 소망은 이뤄지기 어려운데, 그 첫째는 내가 이글턴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글턴만큼 읽거나 보거나 실천하여 왔는가 하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입을 열기 어렵다. 이 점이 결정적이고 이제 언급하게 될 요소는 부차적이다.그래도 말을 꺼냈으니 몇 마디 해보면, 그 둘째는 우리의 서평문화가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리 날카로운 유머와 애정을 쉽사리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중하게 논평하고 따스하게 감상하는 문화가 반세기 이상 대세라서 날카롭게 찌르되 뼈와 살을 완전히 도려내는 것은 결코 삼가는 서평은 우리 문화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현상이다. 아, 물론 장정일 같은 분들의...

    1289호2018.08.06 15:02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이기호의
    이기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늘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는데, 아차 그만 얼떨결에 음험한 자들의 몰윤리에 발목이 잡혀, 저항도 하고 부정도 하고 끝내 괴로워하다가 그 반대편으로, 노회찬 의원은 진실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생을 마감했다.소설가 이청준에게 평생 드리워진 문학적 트라우마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6·25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낯선 사람들이 전짓불을 들이대며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끔찍했던 유년기의 기억이며, 다른 하나는 지독히도 가난했기에 그것에 부끄러워하면서도 또한 그것이 문학의 길이었고 고향일 수밖에 없었던 배고픔의 기억이다.“너는 어느 편이냐?”며 갑작스레 들이닥쳐 묻는 질문은 전쟁기의 잔상으로 끝나지 않고 훗날의 독재시대에나 그 밖의 사소한 일상에서도 그 세대 지식인들에게 자주 변용되었거니와 가난의 기억 또한 ‘먹고살 만한’ 형편이 된...

    1288호2018.07.30 15:01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기어츠
    기어츠 <문화의 해석>

    오늘날 축구장과 야구장, 골프장과 포커판, 그리고 발리의 닭싸움장에서 숱한 문화적 경쟁이 벌어지는데, “거기서 싸우는 것은 표면적으로만 수탉일 뿐, 실제로는 인간”이다.월드컵이 끝났다. 우승은 프랑스. 그리고 크로아티아가 전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경기장 안의 열광과 그 밖의 사회 상황까지 다 합쳐서 평가한다면 글쎄, 이번 월드컵의 진정한 챔피언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아닐까.푸틴은 1999년에 러시아의 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이듬해 권좌에 올랐으니 20년 가까이 러시아를, 그리고 세계를 휘어잡고 있다. 그 나라 헌법의 빈 틈을 슬쩍 활용하여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는 총리로 한 단계 물러앉았으나 그 시기에 대통령 자리를 지킨 메드베데프를 실권자라고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이번 월드컵의 시상식은 역대 시상식과 달리 ‘귀빈’들이 잔디로 내려왔다. 고대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처럼 피땀을 흘린 선수들...

    1287호2018.07.23 14:35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콘래드의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

    제국의 식민지 시대, 벨기에는 콩고에 무자비한 악행을 저질렀다. 1884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콩고를 장악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상아 무역과 고무 채취의 거점인 콩고를 폭정, 고문, 학살로 붉게 물들였다.벨기에로 돌아간 루카쿠는 어떻게 되었을까? 8강전에서 브라질을 꺾은 벨기에. 그 정교한 패스워크와 촘촘한 조직력의 핵심에 로멜루 루카쿠가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역부족이었다. 4강전에서 루카쿠는 프랑스의 콘크리트 수비벽에 막혀버렸다.유소년 때부터 뛰어난 기량으로 각종 프로팀과 대표팀에서 타점 높은 공격수로 활약한 루카쿠는 10대 후반에 벨기에 리그를 평정한 후 잉글랜드로 건너가서 첼시, 에버턴을 거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다.그러는 과정에서 루카쿠는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가난과 차별 속에서 루카쿠는 공을 찼다. 12살 때 소년 루카쿠는 유소년리그에서 34경기 76골을 넣고는 외할아버지에게 자랑하려고 전화를 했다. 외할아버지...

    1286호2018.07.16 16:31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엘리아스와 스콧슨의
    엘리아스와 스콧슨의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상호간의 두려움의 정도를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집단적 차원에서 낮출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인간 집단들 내부에서 또 그들 간의 평등을 이룰 수 있다”세기말과 세기초에, 그러니까 십수 년 전에 벤처 바람이 크게 불었다. 문화판에도 불어 닥쳤다. 문화란 게 요상해서, 단일 제조업과 달리 여러 장르의 전문가들이 한데 모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첨단 IT 전문가, 마케팅 전문가, 경영 전문가들도 규합해야 한다. 나는 일련의 문화 기획자 그룹에 속하여 강남 신사동 간장게장 골목의 어느 허름한 빌딩 3층으로 가서 나름 장안의 고수로 통하는 사람들과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무슨 시드머니(종잣돈)인가 하는 돈이 들어와서 종로의 큰 빌딩으로 일단 옮기게 되었다.가보니, 기술과 마케팅 전문의 작은 회사들도 들어와 있었다. 이내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들어온 그룹과 나중에 합류한 그룹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서...

    1285호2018.07.10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