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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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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존 다우어의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

    섬광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동료 출판사에 새 사업을 제안했다. 영어 회화책이었다. 천황이 패전의 방송을 하던 그날 떠올린 회화책 <미일회화수첩>은 불과 32쪽짜리였지만 그해 말까지 무려 350만부가 팔렸다.1945년 3월 10일, 무려 10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미군의 도쿄 대공습에 이어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하여 일본의 패전이 확실시된 상황. 1945년 8월 14일 저녁 9시와 다음날 아침 7시21분에는 천황의 ‘옥음’이 정오에 방송될 것이라는 예고가 나갔다. 전시상황이라 제한송전을 하였으나 각 지방의 임시방송소 14곳까지 특별송전이 이뤄졌다. 천황의 ‘옥음’은 일본 열도의 모든 곳에서 반드시 들려야만 했다.아나운서가 먼저 말을 한다.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그냥 앉아서 들을 수는 없는 목소리다. ‘옥음&rsq...

    1304호2018.11.26 15:46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얀 카이에르스의
    얀 카이에르스의 <베토벤>

    쉰들러가 임의로 주물러댄 베토벤이 유일 정본처럼 남아버렸고 여기에 19세기 천재주의 신화가 덧붙여지면서 베토벤은 청각장애에 고집불통이거나 인류애의 화신이라는 기이한 음악가가 되고 만 것이다.수능도 끝났으니 편한 마음으로 다음의 문제를 풀어보자. 프랑스의 음악가 드뷔시의 대표작으로 교향시 <바다>가 있다. 이 작품은 어떻게 작곡된 것인지, 아래 보기에서 골라라.보기 1. 어느 날 드뷔시가 햇빛 찬란한 남프랑스 해변에서 산책을 하다가 지중해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그 순간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한 곡이다.보기 2. 동시대의 ‘인상주의’ 미술가들이 서구 중심주의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서구 세계의 미술과 시각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처럼, 드뷔시 역시 비서구 세계의 재현방식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분석하던 중 일본 목판화의 독특한 바다 묘사를 보고, 음악예술 또한 대상의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그것을...

    1303호2018.11.19 14:17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에리히 레마르크의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그들은 강제동원 상황에서 학교 선생님과 심지어 부모님의 추천과 권유를 받고 전투화를 신었다. 그리하여 스무 살도 채 안된 이 독일의 병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참호로, 거기서 야전병원으로, 또 거기서 묘지로 실려 나갔다.어쩌면 진실은 전쟁보다 전투에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사상 최대의 작전>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9000척의 선박, 100만이 넘는 군인들, 17만대의 차량, 702척의 전함, 200여척의 소해정이 집중되었다. 스펙터클 전쟁영화는 이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강렬한 구경거리’로 재현해낸다. 그러나 본격적인 작전이 전개된 1944년 6월 6일, 단 하루의 ‘전투’에서만 무려 연합군 2500여명이 사망했다.정작 프랑스 사람들은, 특히 노르망디 주민들은 국가적으로 기념하지는 않는다. 전쟁의 참상과 독일군의 만행을 기억하는 기념관이 있긴 하지만,...

    1302호2018.11.12 14:30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김윤식의
    김윤식의 <황홀경의 사상>

    “인생이 짧은 마당에 예술이 길 이치가 없다. 설사 길더라도 대단치 않을 것이다. 다만 환각이 남을 따름이리라. 황홀경의 환각만이 남을 뿐이리라. 그것을 나는 사랑하였다.”김윤식은 1973년에 발간한, 김현과 함께 쓴 <한국문학사>의 초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문학에 대한 경멸과 白手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져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 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자기 각성의 몸부림이다. 문학이 없는 시대는 정신이 죽은 시대이다.”그로부터 45년가량이 흘렀고, 공저자 중 한 사람은 21세기를 보기도 전에 타계하였고 다른 공저자, 즉 김윤식이 며칠 전에 타계했다. 두 사람의 부재로 “문학이 없는 시대는 정신이 죽은 시대”라고 성급히 말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인간 정신의 가...

    1301호2018.11.05 14:25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후지타 쇼오조오의
    후지타 쇼오조오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전후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 파시즘의 본질을 파헤친 이 사상가는 그와 동시에 줄줄이 행렬을 이뤄 어떤 방향으로 성찰 없이 몰려가는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는데, 그래서 정치사상의 측면에서나 사회적 행위와 교류에 있어서나 늘 ‘단독자’로 살았다.30만㎞를 넘게 달린 차를 팔고 새 차를 샀다. 차를 새로 사야겠구나 하고 결심하고 나서 1년 2개월쯤 걸렸다. 처음 관심 있게 봤던 차는 통 큰 결단을 내릴 쯤에는 구형 차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차를 눈여겨봤고 이번에는 석 달 만에 결정을 내렸다.나는 사소한 usb 메모리나 지갑조차 한 달을 넘길 때도 있으니, 새 차 석 달은 ‘신속한 결단’이다.그러는 중에 그 물건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와 사용후기를 다 찾아본다. 선풍기 같은 계절상품은 온갖 사용후기를 다 읽고 나서도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한여름이 지나서야 살 때도 있다. 바람직한 ‘인성’은...

    1300호2018.10.29 15:25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수전 팔루디의
    수전 팔루디의 <백 래시>

    수전 팔루디의 1991년 작 <백 래시>는 사회적 활동과 직업, 사랑과 결혼, 그리고 육아와 모성이라는 프레임으로 여성 및 여성주의 운동을 강력하게 제압하는 남성 권력의 반격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지성의 부재! 우리 문학계에 오래 드리워진 먹구름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날카롭게 다듬어진 지성의 칼날이다!이렇게 말한다면 대뜸 반론이 여기저기서 들려올 것이다. 우선, 내 자신조차 지성이라는 단어가 진부하다. 그러나 일단 달리 대체할 만한 용어가 없다. 다음, 문학이란 상상의 소산이라고 주장하는 소리가 들린다. 상상? 어떤 상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허하고 막연한 헛생각들? 그저 독특한 단어들이 연상시키는 미묘한 감각들? 그도 아니면 세상의 변화나 자연만물의 형상에 대한 기발한 표현? 그런 것이 다 문학을 구성하거나 작품의 껍질이지만, 글쎄, 그런 것을 문학이라고 한다면 문학의 위엄과 자존심에 침을 뱉는 일이다.세상만사나 자연 변화에 ...

    1299호2018.10.22 14:15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와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와 <공존의 기술>

    우리의 긴급한 필요에 의하여 프랑스의 주된 정서 중 하나, 즉 톨레랑스를 공수하여 여러 모로 중요하게 활용하였으나, 실은 이 나라의 주도적인 이념은 톨레랑스가 아니라 라이시테다.문화의 나라 프랑스, 예술의 도시 파리! 이렇게들 말하지만, 동시에 그 나라와 도시는 제국의 심장이었고 혁명의 피가 흘러넘친 곳이었다. 이 예술의 나라의 수많은 미술품들 또한 혁명과 반혁명, 급격한 도시 변화와 신경증이 뒤엉켜 있는 작품들이다.프랑스의 근대화 과정, 곧 정치혁명과 산업혁명의 이중 혁명의 전개과정에서 크게 발달한 사회사상으로 흔히 ‘톨레랑스’(tolerance)를 꼽는다.풍등을 날린 스리랑카 노동자‘감수한다’, ‘지탱한다’는 의미의 라틴어 ‘tolerare’에서 유래한 것으로, 흔히 ‘관용’으로 번역된다. 이 번역어는 너그러운 마음이나 자선행위 같은 느낌...

    1298호2018.10.15 14:18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이보 안드리치의 소설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

    <드리나 강의 다리>는 이 강과 다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400여년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 이후에도 드리나 강의 다리는 희망과 비극이 교차했다. 드리나 강물을 따라 1993년의 보스니아 사태, 1998년의 코소보 사태가 벌어졌다.나는 산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강을 더 좋아한다. 강변에 앉아서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을 하루 종일 보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강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산에 대하여 한마디도 할 수 없듯이, 강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할 만한 심미적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랭스턴 휴즈의 시 ‘니그로 강에 대해 말하다’를 의식하며 이렇게 자백하는 중이다. 그 첫 시작을 읽어보자.나는, 강을 안다.태고적부터, 인간 혈맥에 피가 흐르기 전부터이미 흐르고 있었던 강을 나는 안다.나의 영혼은 강처럼 깊게 자라왔다.나는 이렇게 쓸 수가 없다. 나는 강을 모르며 유...

    1297호2018.10.08 15:06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움베르토 에코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그는 이른바 명작이요 걸작이라는 것을 수십 권 번역하였는데, 이 <장미의 이름>에서는 뼈아픈 실책을 하고 말았다. 결국 2000년 철학자 강유원의 첨삭에 따른 2차 개정판, 2009년 일부 오역을 고친 3차 개정판이 나왔다.버스가 알프스 북부의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빈에서 잘츠부르크로 한참을 달리다가 잠시 휴게소에 멈췄을 때, 나는 A1 고속도로 북쪽으로 펼쳐진 작은 도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웠다. 명확하게 실내로 구분되는 공간이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유럽의 ‘선진문물’에도 불구하고 사람 없는 곳을 찾아 구석진 곳으로 가서 몰래 피우다시피하는 주눅 든 버릇 덕분에 나는 평화롭게 펼쳐진 작은 도시가 멜크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멜크는 바로 그 멜크 수도원, 멜크 시를 굽어보는 절벽 위에 장엄하게 자리 잡은 채 로마 가톨릭의 이념적 근거지로 1000년 가까이 버텨온 수도원이 있는 곳, 그 위세가...

    1296호2018.10.01 14:15

  •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
    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 <마일스 데이비스>

    책의 상당 부분은 욕설과 비난과 신경질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진짜 마일스 데이비스가 내 앞에서 ‘뭐가 또 궁금한데?’ 하는 표정으로 ‘정 그렇다면 몇 마디 안 할 수 없지’ 하고는 시종 자기 멋대로 중얼거리는 듯 생생하다.“우리는 부시 대통령과 그의 아내를 만났는데, 그녀의 손에는 키스하지 않았다. 시슬리가 나에게 왜 바버라 부시의 손에는 키스하지 않았냐고 묻기에 나는 조지의 어머니인 줄 알았다고 그랬다. (중략) 빌어먹을, 여기 이 사람들은 레이 찰스에게 평생공로상을 주고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 <마일스 데이비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1987년 워싱턴의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레이 찰스의 평생공로상 수상식장의 에피소드다. 마일스는 “레이는 오랫동안 친구였고 나는 그의 음악이 좋았다. 내가 간 이유는 바로 그것뿐이었다. 또 그...

    1295호2018.09.17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