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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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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로 본 세상]초년의 맛-특별한 기억을 부르는 평범한 맛
    초년의 맛-특별한 기억을 부르는 평범한 맛

    나는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식사로 빵을 참 많이 먹었다. 간편하기도 했고, 맛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 이상하게 밥을 더 많이 찾게 됐다. 돌이켜 보면, 빵에 대한 나의 애정은 자라면서 수없이 들었던 ‘빵은 식사의 대용이 될 수 없다’는 한국식 전통의 계승과 ‘빵은 선진 서양인들의 음식’이라는 사대주의적 발상이 뒤섞여 만들어진 마음속 트라우마에 대한 짧은 반항이었을 뿐이다. 당시 워낙 많이 먹었던 탓인지 지금은 빵집에 들를 때마다 과연 이게 내가 정말 추구하는 것인지 자신을 의심하는 편이다.누구나 어떤 음식과 특별한 기억이 겹쳐지는 장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인생의 무언가를 처음 겪을 때, 나를 위로해준 음식은 더욱 잊기 힘들지 모르겠다. 앵두 작가의 <초년의 맛>은 그런 이야기를 스물넷이나 담았다. 누구나 처음은 서투르다. 첫 만남과 첫...

    1454호2021.11.22 13:40

  • [만화로 본 세상]데이빗-‘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다
    데이빗-‘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다

    데이빗은 이름 따위 없이 살 운명이었다. 적당한 크기로 자란 어느 날 도살장에서 고기가 될 수많은 돼지 중 하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작게 태어났다. 젖조차 물지 못하니 평소라면 저절로 폐기될 하자품에 불과했겠지만, 때마침 농장주의 아들이 생일을 맞았다. 농장주는 동물의 여러 쓸모 중 또 하나를 떠올렸다. 어린 돼지는 ‘조지의 친구 데이빗’이 됐다.얼마 뒤 이 동물의 운명은 또다시 크게 바뀐다. 보통의 돼지에게 허락되지 않은 특별한 능력이 생겨난 것이다. 데이빗이 인간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데이빗은 앵무새처럼 그저 몇마디 흉내만 낸 게 아니었다. 인간의 말로 그의 지성과 품위를 드러냈다. 성장해 대도시로 나간 데이빗은 단숨에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말하는 돼지’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인간들은 이내 둘로 갈라졌다. 데이빗이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쪽과 데이빗은 절대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쪽으로 나눠 서로 ...

    1453호2021.11.12 12:02

  • [만화로 본 세상]숲속의 담
    숲속의 담

    지구의 유효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20년 전 개봉한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멸망 이후의 세계가 그저 까마득한 미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포스트 아포칼립스(멸망 이후의 세계) 장르의 작품을 보면 어쩐지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 같아 두려워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서사 속 사람들은 기후위기나 핵전쟁 등의 이유로 한 번 멸망한 세계 속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 세계는 대체로 황폐하고 폭력이 난무한다.웹툰 <숲속의 담>(다홍·네이버웹툰)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엔 싱고늄, 바츠, 네리네 3개의 마을이 있다. 이 마을들은 본토와 다리 하나로 연결된 섬에 있는데, 다리가 끊겨 사람들은 본토의 상황을 거의 알지 못한다. 교류가 끊긴 이 섬에서 세계가 이미 멸망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지극히 소수다. 돈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이곳을 떠나 다른 행성에 자리 잡았고, 남은 이들은 성차별적이고 불합리한 마을의 규율 속에...

    1452호2021.11.05 14:49

  • [만화로 본 세상]닥터 프로스트-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걷는 일
    닥터 프로스트-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걷는 일

    “인간이란 자기 안의 그림자를 직시하며 양지를 향해 떠나는 여행자와 같다.” 스탠리 스킨과 천상원의 공저 <상담자의 마음>의 한 구절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책은 아니다. 저자들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닥터 프로스트>의 등장인물이다. 그중 천상원은 “모든 상담자는 자신의 그림자를 직시하며 걷는 사람들”이라며 어린 백남봉에게 심리학을 공부해 보라고 권유했고, 남봉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감정을 모르는 소년 남봉은 심리학 박사 프로스트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니 해당 구절은 프로스트와 <닥터 프로스트>의 원점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2013년에 연재된 시즌2에서 등장했던 이 구절은 수차례 되새겨진다. 프로스트에게 이 말은 트라우마 재현 치료의 마침표와 같다. 시즌3는 성인 프로스트가 트라우마 직후의 어린 남봉을 껴안으며 기억 일부를 되찾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끝난다. “자기 ...

    1451호2021.10.29 14:26

  • [만화로 본 세상] 등
    <오징어게임> 등

    현재 전 세계 대중문화시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당연 <오징어게임>이다. 넷플릭스에서 투자하고 배급하는 이 시리즈에 세계인이 열광하고 있는데, 이미 11억이 넘는 시청자와 1조원에 가까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한동안 기록은 경신될 것이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를 지켜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물론 나도 정주행을 완료했다.그런데 이 작품이 화제가 될수록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의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오징어게임>의 예고편을 보자마자 만화 <신이 말하는대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는 동안은 수시로 <도박묵시록 카이지>가 연상됐다. 일본만화를 어느 정도 챙겨보는 독자라면 아마도 똑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거 어디서 본 건데….물론 비슷한 설정과 일부의 디테일만으로 <오징어게임>이 이 작품들을 카피했다고 말할 순 없다. 두 만화도 거슬러 올라가면 계보가 있고, ...

    1450호2021.10.22 14:41

  • [만화로 본 세상]최애의 아이
    최애의 아이

    “언젠가 거짓말이 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노력하고 애쓰면서 전력으로 거짓말을 해왔어. 내게 있어서 거짓말은 사랑.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해온 거야.” 이 대사의 주인공은 만화 <최애의 아이>의 ‘호시노 아이’다. 그는 ‘B코마치’라는 걸그룹의 센터를 맡고 있다. B코마치는 작은 기획사에서 시작해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호시노 아이의 천부적인 재능과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눈에 띄게 성장한다.호시노 아이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쌍둥이를 낳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아이들마저 평범하지는 않다. 아이들은 전생에 호시노 아이의 팬이었는데, 각각 죽고 난 뒤 그들의 ‘최애’였던 호시노 아이의 아기로 환생했다. 쌍둥이의 아버지는 아직 작품에 드러나지 않았고, 호시노 아이가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연습과 무대, 방송 등 아이돌 활동으로 스케줄...

    1449호2021.10.15 13:51

  • [만화로 본 세상]쉼터에 살았다
    쉼터에 살았다

    <쉼터에 살았다>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생활툰’의 형식으로 전한다. ‘하람’은 22세에 청소년 단기 쉼터에 입소한다(19~24세의 후기청소년도 입소 가능). 하람은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학대당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도망쳤지만 하람은 삶을 잇기 쉽지 않다. 택할 수 있는 거주지는 몸 하나 누일 공간과 책상 하나만 허락되는 고시원. 이미 웹툰 한작품을 연재했을 정도로 실력 있는 만화가지만 당장의 생계비를 위해 최저시급의 일자리를 전전하다 보면 작업에 몰두할 힘도 시간도 내기 어렵다. 꾸준히 심리상담을 받지만 하람은 극한의 무기력에 잠긴다. 엉망으로 방치된 방에서 몸으로 바퀴벌레가 떨어지던 날 하람은 쉼터에 입소하기로 마음먹는다. 무기력에서 억지로라도 자신을 건져올릴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이 작품은 입소를 결심하게 된 때부터 퇴소 후의 짧...

    1448호2021.10.08 14:51

  • [만화로 본 세상]웹툰의 사라짐
    웹툰의 사라짐

    지난 8월 다음웹툰이 카카오웹툰으로 재출범했다. 그 소식을 처음 접했던 5월 어느 날, 나는 불안해졌다. 카카오웹툰의 시작보다 다음웹툰의 끝이 더 크게 느껴졌던 탓이다. 그렇게 떠올렸던 것은 야후와 파란 등의 플랫폼이 웹툰 서비스를 닫으며 함께 사라졌던 웹툰 작품들이다.기안84의 첫 작품 <노병가>는 야후 만화가 문을 닫은 후 꽤 오랫동안 보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2018년에야 네이버 시리즈를 통해 재공개됐지만, 야후의 <노병가>에 달렸던 댓글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파란의 대표작이던 양영순의 첫 웹툰 <1001>은 지금도 웹상에서 볼 수 없다. 그나마 <양영순의 천일야화>라는 제목의 단행본이 출간돼 만화책으로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책으로는 웹툰의 연출을 확인하기 어렵다. <1001>이 그러데이션으로 수직스크롤 연출을 구현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내 기억은, 이제 실물을 통해 검증할 수 없게 됐다.똑같...

    1447호2021.10.01 15:21

  • [만화로 본 세상]DP-개의 날, 개
    DP-개의 날, 개

    며칠 전, 최근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가 된 김보통 작가의 「DP- 개의 날」을 다시 펼쳐 보았고, 얼마 전에는 김금숙 작가의 <개>를 구매해 홀린 듯 단숨에 읽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최근에 읽은 두 만화의 제목에 ‘개’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 재미있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DP- 개의 날」은 김보통 작가가 군 복무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다. 작가는 군사경찰(구 헌병)에 속한 근무이탈체포전담조(Deserter Pursuit)로 탈영한 병사들을 찾는 임무를 맡았다. 마치 형사가 범인을 찾듯 그는 탈영한 병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만화가 수사물의 포맷을 갖추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유심히 봐야 할 지점은 탈영한 병사들의 사연과 군대 내부의 폭력에 대한 지적이다. 작가는 제목에 ‘개의 날’을 붙인 이유에 대해 몇가지 기록을 주며 탈영병을 잡아오라는 명령이 마치 사냥개에게 목표물의 냄새를 맡게 하는 것처럼...

    1446호2021.09.24 14:58

  • [만화로 본 세상]반달-현실 속 ‘송이들’을 향한 위로
    반달-현실 속 ‘송이들’을 향한 위로

    3층 건물 지하의 노래주점에는 반달 모양의 무대가 있었다. 술 취한 사람들이 밴드 음악에 맞춰 새벽 5시까지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쿵작쿵작 울리는 커다란 스피커 뒤로는 습기를 머금은 무겁고 어두운 벽이 버티고 있었다. 실은 거기 자그마한 문도 달려 있었지만, 흥에 겨운 붉은 얼굴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에 벽 따위를 찬찬히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비밀의 문을 열면 창도 없는 자그마한 창고가 나왔다. 계절이 세 번 바뀔 동안 그곳이 열세 살 송이의 방이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 손님들이 사라질 때까지 송이는 나오지 못했다. 그러니 그곳에 있는 것은 벽이 맞았다.송이의 삶에 닥친 비극은 지금은 사라진 연대보증이라는 잔혹한 제도 때문이다. 어느 날 아빠가 사라져버리고, 가난이 무엇인지 알아버린 송이는 또 다른 송이들의 삶에도 눈을 뜬다. 그 여름의 끝부터 한겨울의 시간이 <반달>에 담겼다. 서늘하고도 따뜻한 이 만화는...

    1445호2021.09.10 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