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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로 본 세상]풀-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삶
    풀-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삶

    2017년 8월 14일 나온 김금숙의 <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0년 미국에서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 부르는 ‘하비상(최고의 국제도서 부문)’을 수상하는 등 나라 바깥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이 호평받은 이유는 만화미학적 완성도와 함께 폭력과 피해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크다. 가령 작가는 이옥선이 ‘위안소’에서 겪은 첫 강간을 3쪽에 걸친 18칸의 어둠으로 채운다. 피해자가 당한 낱낱의 행위보다 피해자의 마음으로 눈을 돌리게 하려는 시도다.또한 ‘일본군에 의한 인권유린’으로만 피해자의 삶을 서사화하는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위안소’ 전과 후의 이옥선의 삶에 드리운 층층의 구조적 폭력을 섬세히 짚어낸다. 이옥선은 식민지 조선에서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났다. 감당할 설움이 많...

    1464호2022.02.04 15:48

  • [만화로 본 세상]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자식 낳고 키워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들 한다. 대체로 맞는 말일 테지만, 모두에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스웨덴 작가 오사 게렌발의 만화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이하 <그들의 등>)에서 제니가 자식을 낳고 키우며 경험한 건 아주 달랐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게 된 것은 맞지만, 부모 마음을 알게 되지는 않았다. 제니가 알고 깨달은 마음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아기가 태어나자 사람들이 조언이랍시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제니가 들었던 ‘터무니없는 소리’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부모님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해보지 그래요?” 육아로 잠을 못 자던 제니가 어린이건강검진센터에서 들은 말이다. 제니는 생각했다. ‘지금 뭐라는 거야? 부모님한테 뭘 어쩐다고?’제니 친구들은...

    1463호2022.01.21 15:14

  • [만화로 본 세상]아일랜드-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의 섬
    아일랜드-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의 섬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이 1위를 놓치지 않는 분야가 몇개 있다. 초고속 인터넷 품질과 속도, 정보통신 활용도나 조선산업 경쟁력, 선박 건조량 등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한국은 정상에 있었다. 디지털로 온 세상이 전환되면서 관련된 많은 산업과 서비스가 세계 1위에 올라 있기도 하다. 불명예스러운 1위도 있다. 그중 가장 외면하고 싶은 건 높은 자살률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은 OECD 평균의 2배가 훨씬 넘는 수치로 하루에 무려 36.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다 같이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다.한국과 더불어 일본도 자살률이 굉장히 높은 국가다. 지속적인 정부의 노력으로 지난 10년간 그 빈도를 줄이고 있는데, 10대와 20대의 자살률은 오히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사회문제는 대중문화에 그대로 반영된다. 고전이 된 소설 <인간 실격>을 지나 이에 영향을 받은 개그만화 <안녕 절망선생>이 떠오르고, 드라마 <언내추럴>과 <...

    1462호2022.01.14 15:04

  • [만화로 본 세상]발달장애인이 등장하는 만화들
    발달장애인이 등장하는 만화들

    타인의 삶을 듣고 쓴다.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거나 ‘소수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활동이 쌓이면서 그간 별러온 구술기록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될 때가 생겨났다. 강의를 반복하면서 어디에서도 통용될 인터뷰와 기록의 기본원칙이라 할 만한 것들이 정리됐다. 그 경험과 기술이 어느 날 부서지기 시작했다. 다른 언어와 다른 감각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다.가령, 이런 것이다. 인터뷰할 때는 구술자의 말 이외의 다른 표현에도 관심을 기울이라고 한다. 이것이 기본원칙일 수 없음을 깨달은 건 강의를 듣던 비장애인들 사이에 있던 한 시각장애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다. “아, 비장애인들에게는 그런 게 중요하군요.” 타인과 만날 때 그에게 예민해지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했다. 목소리의 질감과 높낮이, 말투와 단어 선택이 주는 정보를 시각에 의존하는 나보다 더 많이 받아들였을 것이다.언어장애나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비장...

    1461호2022.01.07 15:26

  • [만화로 본 세상]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
    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

    내가 속한 합정만화연구학회는 서울 합정 지역을 중심으로 한 만화연구자들의 모임이다. 몇년 전부터 모여 만화와 관련한 여러 프로젝트를 해오다가 지난해부터는 ‘합정만화상’을 만들었다. 한해 동안 연재/출간된 작품 가운데 유의미했던 것들을 꼽고, 추천사를 작성해 블로그에 게시한다. 상금을 주는 것도,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합정만화상’은 한해 동안 우리가 빚진 작품들을 기억하고 소소하게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다. 2021년 합정만화상으로는 국내 작품 5편과 국외 작품 1편을 선정했다. 국외 작품으로 꼽힌 작품은 <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시카와 유키 지음·김동욱 옮김·문학동네)다.<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그 제목처럼 죽지 않는 아이들인 마키와 파이가 주인공이다. 지구는 오염돼 사람이 더는 살 수 없는 별이 됐고, 떠날 수 있는 이들은 아주 오래전에 지구를 떠나버...

    1460호2022.01.03 13:34

  • [만화로 본 세상]그날 죽은 나는
    그날 죽은 나는

    성장이란 세계와 달리 마주할 ‘나’를 찾는 여정이다. 여정을 돕는 것은 타인이다. 타인의 형식은 책과 같은 매체를 제외한다면 늘 친구나 부모, 스승 혹은 연인이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가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다소 일방적인 정식화가 가능하다. 이 정식화는 “기숙학교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는 <그날 죽은 나는>에 그대로 적용된다. 주인공 이영은 어린 시절 관계에서 입은 상처로 타인을 너무 의식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서아는 어린 시절 경험한 폭력적 관계로 타인을 조종하는 것을 탐닉하는 사람이 됐다. 가해자를 그대로 흉내 내는 피해자가 서아라면, 향조는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해 침잠하는 인물이다. 만약 여기까지였다면 이 작품은 조금 무서운 인형놀이에 불과했을지 모른다.하지만 이것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완료되지 않은,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는 성장이다. 그 성장을, 작품은 이영과 향조를 만...

    1459호2021.12.24 15:24

  • [만화로 본 세상]술꾼도시처녀들 - 느릿하게 다가온 ‘그들의 한잔’
    술꾼도시처녀들 - 느릿하게 다가온 ‘그들의 한잔’

    가끔, 아니 굉장히 자주, 아니 거의 매 순간 세상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야가 그렇게 느끼게 만들지만, 최근의 방송 미디어 산업과 시장은 요동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것 같다. 업계는 물론 시청자와 소비자 역시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고, 고작 한해 뒤의 상황이 어떠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지상파로 시작해 케이블과 위성으로 확장한 방송은 오랫동안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시청자를 라디오 곁에, 그리고 텔레비전 앞에 모이게 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데이터가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고 통신속도가 증가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을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게 됐다. 이에 따라 웹서비스와 IPTV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송을 볼 수 있는 주문형 비디오(VOD)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자리 잡았다.다만 아직 주문형 비디오 콘텐츠의 대부분은 기존의 방송 분량과 개봉한 영화들의 2차 시장이었다. 소비 방식은 변화했지만, 콘텐츠와 제공자...

    1458호2021.12.17 13:22

  • [만화로 본 세상] 1·2
    <똥두> 1·2

    표지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이 이상하고 사랑스럽고 저항적이고도 유쾌한 데포르메라니. 한컷으로 아주 많은 걸 설명해내는 만화가는 흔치 않다. ‘국산 무농약 박재영’의 줄임말을 필명으로 쓰는 국무영 작가는 이름처럼 건조하고 때론 골치 아픈 세상을 유쾌하게 비틀어 능청스럽게 독자 앞에 내민다. 독자가 실실실 웃으며 책 속에 얼굴을 푹 담그고야 말게 한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날부터 12월을 기다렸다. 연말에 사람들이 ‘올해의 ○○’를 뽑기 한창일 때, 이 책을 꼭 올해의 만화로 추천하고 싶어서.‘똥두’라는, 한번 들으면 꼭 기억에 남고야 말 제목은 주인공의 별명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동두희, 열다섯 살 중학생이다.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놀려먹는 건 10대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같이 하하호호 웃어도 마음 한구석은 쓰린 일. 작가는 두희에게 왜 이런 어마무시한 별명을...

    1457호2021.12.10 14:34

  • [만화로 본 세상] 26년
    26년

    강풀 작가의 웹툰 <26년>은 2006년 연재작이다. 작품 제목인 ‘26년’을 2006년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이 된다. <26년>은 26년간 이어져온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다.웹툰 <26년>의 주요 인물은 7명이다. 이들 중 4명은 5·18 민주화운동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고, 2명은 그날 광주에서 총을 쏜 계엄군 출신이다. 나머지 1명은 1980년 5월 광주의 총책임자다. 그러나 익히 알려졌듯, 그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고,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정작 그런 이는 평탄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데, 1980년 5월 이후 나머지 6명의 삶은 크게 뒤흔들렸다. 시민을 향해 총을 쏜 계엄군도, 그 총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계속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수십년 전의 일이지만, 이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각자의 트라우마와 죄책감, 고통과 분노에 응답하기 위해 이들은 연희동...

    1456호2021.12.03 15:12

  • [만화로 본 세상]지옥-지금·여기라는 해석의 각축장
    지옥-지금·여기라는 해석의 각축장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지옥>은 인간이 벌이는 해석 행위에 대한 우화다.” 물론 이 말부터가 <지옥>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지만, 서사를 따라가면 동일한 사태에 대한 해석의 각축이 그려져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만화 <지옥>이든 드라마 <지옥>이든 마찬가지다.우선 명명부터가 해석이다. <지옥>에서 사람을 죽이는 미지의 존재 본래 이름은 따로 없다. 도심에서 벌어진 첫 사건 후, 경찰은 이를 “괴물 혹은 괴생물체에 의한 살인”으로 부른다. 하지만 해당 사건에 대해 오래전부터 정보를 수집해온 새진리회와 의장 정진수는 그것을 “지옥의 사자”에 의한 “지옥의 시연”으로 명명한다. ‘살인’이라면 경찰이 해결해야 할 범죄이지만, ‘시연’이라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그...

    1455호2021.11.26 2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