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만화로 본 세상
  • 전체 기사 383
  • [만화로 본 세상]다른 위치에 선 이들의 삶을 바라보며
    다른 위치에 선 이들의 삶을 바라보며

    강원도를 여행하던 친구가 ‘망향의 동산’을 알려준 적이 있다. 횡성 망향의 동산은 횡성호 아래에 잠긴 마을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전시관에는 물레, 피아노, 텔레비전 등 마을의 한구석을 담당해왔을, 오래된 물건들이 적막하게 놓여 있다.횡성호를 담고 있는 횡성댐은 강원도 내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됐다. 서울을 위해 만든 건 팔당댐이다. 팔당호 아래에도 물에 잠긴 마을인 우천리가 있다. 팔당호도, 횡성호도 처음부터 호수는 아니었다. 이미 아는 내용인데도 물 아래에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만다. 물론 망각 역시 특권이다. 자신이 살던 생활 터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호수는 사무치는 장소다. 망향의 동산을 돌아보던 친구는 전시물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북받쳐 그만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처럼.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 내게 지역의 서사는 무지 속에 잠긴 이야기를 하나둘...

    1484호2022.06.24 17:04

  • [만화로 본 세상]두 번째 비극
    두 번째 비극

    “왠지 이 시체를 보면 안심이 돼.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언제나 헷갈리는데 이 시체를 보면 용기가 나.” 야마다는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학교 근처 덤불로 시체를 보러온다. 그의 ‘비밀 보물’이다. 동급생 하루나는 야마다의 비밀 보물을 소개받아 처음으로 진짜 시체를 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실감이 안 났다.” 둘은 한때 산 사람이었던 그 시체를, 한동안 바라본다.1993년 연재를 시작한 <리버스 에지>는 그 시대의 사회, 문화 풍경을 인물 속에 육화해 감각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 오카자키 쿄코는 1980~1990년대를 거쳐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여럿 남겼다. 특히 <리버스 에지>는 <핑크>, <헬터 스켈터>와 함께 오카자키 3대 명작으로 꼽힌다. 버블 붕괴 시기를 전후한 일본의 텅 빈 풍요 시대에 어떤 인간이 탄생했는지 증언하는 작품들이다. ...

    1483호2022.06.17 11:20

  • [만화로 본 세상]「베르세르크」 재연재를 기대하며
    「베르세르크」 재연재를 기대하며

    지난해 이맘때 작가 미우라 켄타로의 부고가 올라왔다. 많은 팬이 절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베르세르크>라는 대서사의 미완성 종결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며칠 전 작품을 연재하던 ‘영 애니멀’ 편집부에서 공식적으로 <베르세르크>의 연재 재개 소식을 알려왔다. 미우라 켄타로가 만들려 했던 것을 완벽히 그려내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가 가장 친한 동료 모리 코우지 작가에게 남긴 결말까지의 이야기와 편집부에 전했던 여러 조각을 모으고, 그의 어시스턴트들이 모인 스튜디오 가가의 손길로 작품을 다시 이어가겠다는 소식이었다.이전에도 작가의 사망 이후 계속 이어지는 만화가 있었다. 한국에서 <짱구는 못말려>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 애니메이션 <크레용 신짱>은 작가 우스이 요시토가 등산을 갔다가 갑작스레 사고를 당했는데, 그의 제자와 자녀들이 연재를 이어오고 있다. 캐릭터가 유명한 <도라에몽>은...

    1482호2022.06.10 14:05

  • [만화로 본 세상]국정홍보 만화에 대하여
    국정홍보 만화에 대하여

    정부의 정책과 활동을 알리는 데 만화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딱딱한 정보를 문자로만 구성했을 때보다 전달력이 더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만화는 쉽고 재미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러한 인식은 만화가들에게 자부심과 좌절감을 동시에 준다. 쉽고 재미있다는 건 만화라는 언어가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강점을 표현할 때는 아름다운 말이다. 이 말이 세간에서 쓰일 때는 만화에 대한 몰이해와 폄훼적 시선이 배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만화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만화를 ‘그림’이라 보는 인식이다. 사람들이 문자보다 그림을 더 쉽고 빠르게 받아들이므로 만화가 쉽다고 여긴다. 그림은 문자보다 직관적일 수 있지만, 그림으로도 독해하기 어려운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누가 봐도 나무로 인식될 그림을 나무로 읽어내는 건 쉽다. 이 그림을 ‘언어’로 쓰기 시작하면 이미 상당한 정보와 독해능력을 가진...

    1481호2022.06.03 11:22

  • [만화로 본 세상]도박중독자의 가족
    도박중독자의 가족

    요즘엔 누구를 만나든 주식이나 코인이 한 번쯤 화제에 오른다. 투자를 하든 안 하든 많은 이가 관심을 두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2일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주식시장에 개인 투자자가 부쩍 증가했다고 한다. 이들이 매수한 총금액은 무려 226조원에 달한다. 국내와 해외 주식을 합친 금액이다.피땀 흘려 모은 돈을 불확실성에 밀어넣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지금 벌이만으로는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어려워, 급전이 필요해, 주변에서 한다니 나도 한번, 경제 공부를 위해….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주식 투자를 그저 삿된 행위로 치부하긴 어렵다. 주식은 투자인 한편 도박 특성도 있다. 한번에 큰 수익을 올리는 쾌감으로 쉽게 중독될 수 있어서다. 투자와 도박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내가 어디쯤 발 딛고 서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주변인의 조언이 중요하지만, 때로 그들마저 함...

    1480호2022.05.27 13:52

  • [만화로 본 세상]하트스토퍼-차별금지법 이후의 사랑
    하트스토퍼-차별금지법 이후의 사랑

    “갑자기 게이를 데려와 놓고 우리보고 좋아해 달라니 말이 안 되잖아.” 닉은 찰리와 만나고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로 우선 소개부터 했다. 닉의 친구들은 찰리를 기껍게 여기지 않았다. 찰리는 일찍 자리를 떠났다. “말해봐. 찰리의 어디가 불만이야?” 화난 닉은 친구들에게 물었고, 저 말이 답변으로 돌아왔다. “찰리가 게이라 문제라는 거군.” 닉이 확인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게이 혐오 분위기를 주도하는 해리가 답한다. “이러지 마. 닉. 여기에 동성애 혐오자는 없어.”1994년생 영국 작가 앨리스 오스먼이 2016년 연재를 시작한 만화 <하트스토퍼>의 한장면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2010년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평등법이 발효됐으니, 작가도 찰리와 닉도 성소수자 차별을 금하는 사회 속에서 10대를 보냈다. 그런데도 저런 동성애 혐오를 왜 그렸을까? 차별금지...

    1479호2022.05.20 15:41

  • [만화로 본 세상]전쟁일기-연필로 그려낸 전쟁의 참혹함
    전쟁일기-연필로 그려낸 전쟁의 참혹함

    대학가에서 운영하는 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거기는 만화책이 많이 있는데, 한 대학생 손님이 책들을 구경하다가 왜 만화가 흑백이냐고 물어왔다. 잠시 당황했는데, 생각해보니 웹툰으로 만화라는 매체를 접하기 시작한 세대에게 ‘컬러’는 작품의 필수 구성요소였다. 게다가 우철(右綴)로 편집된 일본만화의 컷과 대사는 읽는 순서를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이 갑자기 과거의 유산이 돼버린 것 같아 잠시 울먹거렸다.최근 우크라이나 그림동화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를 구입했다. 우연히 소셜미디어의 광고를 통해 책을 발견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록이라는 사실이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의 출판사 수익금 일부와 번역료 전액을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한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전쟁의 피해자를 돕는다는 얄팍한 만족감을 얻으려고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구매했으면 한다).<전...

    1478호2022.05.13 14:17

  • [만화로 본 세상]소년의 마음, 나는 토토입니다
    소년의 마음, 나는 토토입니다

    1970년대는 만화 화형식의 시대였다. 글자 그대로 만화를 모아놓고 불태웠다. 만화를 불량한 사회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매년 광장에 수백권에서 수만권의 만화가 끌려나와 잿더미로 변했다. 한상정 만화연구자는 1967년 박정희가 만화를 ‘밀수, 탈세, 도박, 마약, 폭력’과 더불어 ‘사회 6대 악의 하나’로 지정했을 때부터 만화에 대한 사회적 폭력이 본격화됐다고 본다. 쿠데타로 잡은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박정희는 시민의 눈을 돌릴 희생양 또는 ‘사회가 더 나아졌다’는 감각이 필요했다.왜 만화였을까. 박정희가 지정한 사회 6대 악 중 만화를 제외하면 사회적으로 이미 ‘범죄’로 합의된 행위였다. 당시 만화가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건 ‘어린이의 문화’였기 때문이라는 강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지금은 만화가 모든 연령층이 즐기는 문화예술...

    1477호2022.05.06 14:51

  • [만화로 본 세상]여왕 쎄씨아의 반바지, 황제와 여기사
    여왕 쎄씨아의 반바지, 황제와 여기사

    ‘로맨스 판타지’라 하면 그저 귀족 영애가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는 작품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플랫폼마다 인기리에 연재되는 로맨스 판타지 작품들은 주로 주인공이 세계와 분투하는 내용을 그린다. 마블의 히어로처럼 세계를 거대한 폭력으로부터 구원해내는 건 아니다. 이들은 자기가 머무는 자리에서 손 닿는 곳의 평화를 위해 싸울 뿐이다. 예를 들어 웹툰 <여왕 쎄씨아의 반바지>의 주인공 ‘유리’는 여성들을 무거운 코르셋과 파팅게일(스커트를 부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속치마의 일종)로부터 해방시키려고 가볍고 저렴한 의상을 디자인해 판매한다.로맨스 판타지 작품의 주인공들이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장벽은 성별과 신분에 따른 차별이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여성 주인공은 “너는 여자여서 안 돼”라는 말을 한 번 이상 마주친다. 어떻게 여성이 위험하게 전쟁터, 병원, 상단(상인...

    1476호2022.04.29 15:34

  • [만화로 본 세상]집이 없어
    집이 없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치는 총명한 사람을 뜻하는 문일지십(聞一知十)에서 유래됐지만, 이상하게도 지나친 일반화, 잘못된 범주화, 고정관념 등을 자연화하는 말처럼 쓰인다. 사람의 됨됨이에 대해, 어떤 정체성 범주에 대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생각이 편견을 정견처럼 여기게 한다. 물론 틀렸다. 하나를 보면 하나를 겨우 알까 말까다. 이상한 속담 하나 있다고 모든 속담이 틀리지 않았듯, 하나를 미루어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집이 없어>의 두 주인공 고해준과 백은영은 저 말에 시달려온 청소년들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특히 될성싶은 나무와 될성부른 나무를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시선에 의해 재단당하며 살아왔다. 물론 늘 후자였다. 해준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는데 이제는 어머니마저 여읜 상황이다. 은영은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

    1475호2022.04.22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