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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로 본 세상]「나의 살던 고향은」 연민의 함정에서 벗어나 쓴 자기 기록
    「나의 살던 고향은」 연민의 함정에서 벗어나 쓴 자기 기록

    나는 인터뷰를 해 타인의 삶에 대해 쓴다. 기록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만나 강의를 하게 될 때도 있다. 늘 첫 시간에는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묻는다. 기록의 주제는 다채롭다. 그중에 한두명은 엄마의 삶을 쓰고 싶어하는 딸일 때가 많다. 모든 기록이 어렵지만, 딸이 엄마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특히 더 어렵다고 말씀드린다. 대체로 친밀한 관계일수록 기록이 어렵다. 여러 감정과 사건이 얽혀 있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서로 대화를 시작하면 두 사람이 공유한 경험에 대해 기억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게 된다. 기억은 감정을 소환한다. 소화되지 못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들끓는다. 실은 그것이 기록을 간절히 원하게 된 이유다. 감정이 아니라 감정이 형성된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 그런 거리 두기는 타인과 나, 이 대화를 하는 두 사람 모두에게 존중을 가질 때 가능하다. 친밀한 관계는 그게 어렵다. 특히 엄마는 더 ‘만만하다’. 엄마라는...

    1403호2020.11.13 15:08

  • [만화로 본 세상]남남-감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 기억만이라도 해야
    남남-감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 기억만이라도 해야

    흠모하는 희극인의 부고를 접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의 동료들이 차마 방송에 나서지 못했듯 나도 마감을 어기고만 싶었다. 하지만 <남남>(정영롱, 다음웹툰)의 마지막 화를 서성이다, 이 얘기를 곱씹으며 애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스포일러 유의)조경숙 평론가가 짚었듯, <남남>은 “가족이란 유대감을 쌓아 온 각별한 ‘남남’”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작품의 중심 ‘남남’은 진희와 그의 엄마다. 고등학생 시절 진희를 임신했던 엄마는 이제 40대 중반, 진희는 20대 후반이 되었다. 둘은 자매 같고 친구 같다. 엄마에게 데이트 앱을 가르쳐주는 딸이고, 자위를 하다 딸에게 들키는 엄마다. 딸은 한동안 당황스러워하지만, 나중에는 엄마에게 자위 기구를 추천한다. 이렇듯 진희와 엄마의 관계는 개성이 넘치는 각별함이다.주변 인물도 만만치 않게 개별적으로 개성적이다. 진희의 첫사랑 겸 ...

    1402호2020.11.06 15:23

  • [만화로 본 세상]아이돌이 곧 상품, 우리는 뭘 사고 있는 걸까?
    아이돌이 곧 상품, 우리는 뭘 사고 있는 걸까?

    ‘아이돌 산업’은 곱씹을수록 이상한 말이다. 영화 산업을 영화배우 산업이라고, 만화 산업을 만화가 산업이라고 하지 않는 데에 비해 아이돌 산업은 ‘아이돌’ 산업이라 칭한다는 점이 그렇다. ‘아이돌 산업’이라는 건 아이돌 자체가 곧 상품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이돌은 춤과 노래를 잘해야 하는 건 물론 외양도 잘 가꾸어야 한다. 멤버들과 합숙하며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평소 인품과 과거 행실마저 발라야 한다. 다시 말해 아이돌은 그 사람 자체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상품이어야 하는 것이다.아이돌 산업의 영향력이 워낙 큰 탓인지, 아이돌을 다룬 만화 역시 다종다양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돌 팬덤을 다루는 만화도 있고(<우리가 사랑하는 방법>), 한 번 실패한 아이돌이 다시 ‘가내수공업’으로 스스로 기획해서 재기하는(<가내수공업 Ent&...

    1401호2020.10.30 15:38

  • [만화로 본 세상] 도쿄 1인 가구 여성이 집 구하는 과정과 사연
    <프린세스 메종> 도쿄 1인 가구 여성이 집 구하는 과정과 사연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든 게 부동산의 문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땅과 주거 문제는 심각하고 또 복잡하다. 누구나 집값이 내려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소유한 집에는 해당하지 않아야 하고,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모두가 서울에 살고 싶어한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거래가는 10억원을 넘겼다. 이는 한국의 평균임금 4500만원을 고스란히 20년을 넘게 넣어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최저임금 노동자라면 약 46년을 갚아야 하는 돈이다. 물론 이자는 포함하지 않았고, 우리가 햇빛만으로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막막해진다. 물론 그사이 집값이 임금보다 크게 오를지도 모른다.주거에 대한 불안은 결국 삶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겨우 잠만 자고 나오더라도, 우리는 그토록 내 집을 갈망한다. 일본 도쿄에 사는 이들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이케베 아오이의 만화 <프린세...

    1400호2020.10.23 15:01

  • [만화로 본 세상]곤(GONE)-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사회의 ‘낙태죄’
    곤(GONE)-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사회의 ‘낙태죄’

    ‘낙태죄’ 문제를 다루고 있는 수신지 작가의 <곤(GONE)>은 지난해 5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만화 속 대한민국은 ‘낙태죄’가 합헌 결정이 내려진 뒤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곤>이 시작한 시점에서 현실 세계의 대한민국은 ‘낙태죄’가 위헌 결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한 여성과 낙태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당시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고 보았다.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

    1399호2020.10.16 15:47

  • [만화로 본 세상]3월의 라이온-장기기사 이야기 책으로 엮어 외적 지평 넓혀
    3월의 라이온-장기기사 이야기 책으로 엮어 외적 지평 넓혀

    연재만화를 책으로 묶는다는 건 작품이 몸을 하나 더 갖는다는 뜻이다. 만화가와 편집자는 컷의 배치를 바꾸고 말풍선을 수정하고 독자에게 읽히는 순서를 정돈한다. 그렇게 다시 책으로 태어난 만화는 이전의 연재작과는 또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얼마 전 <3월의 라이온> 신간을 읽으며 이 얇은 만화책 한 권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담겨 있는지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 됐다. 책은 얇고 종이는 가벼웠지만, 만화책을 넘길 때마다 전달되는 무게는 묵직했다.<3월의 라이온>은 <허니와 클로버>로 유명한 만화가 우미노 치카가 2007년부터 연재 중인 만화다. <3월의 라이온>의 주인공은 중학교 때 프로 장기기사로 데뷔했던 고등학생 레이다. 레이는 어린 시절부터 쭉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해왔고, 초등학교 시절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레이에게 손을 내민 건 프로 장기기사인 코다다. 그의 길을 따라 레이는 장기 ...

    1398호2020.10.12 14:11

  • [만화로 본 세상]극한까지 치달은 학교 폭력에 대한 사유
    극한까지 치달은 학교 폭력에 대한 사유

    이 글은 1393호에 실린 내 칼럼(“학교 폭력으로 시작한 웹툰 두 편의 차이”)에 이어지는 보론이다. 지난 칼럼은 학교 폭력을 다루는 정도(正道)가 있는 것처럼 읽힐 여지가 있었다. 직접적 폭력 행위를 표현하지 않으며 피해자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 <연의 편지> 쪽을 그렇지 않은 <외모지상주의>보다 상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들은 각기 다른 길을 통해 답을 모색한다. 학교 폭력이란 무거운 주제를 안고서 답에 이르지 못할 길을 걷는 학원물도 더러 있지만, 이은재의 연작 <TEN>과 <ONE>의 길은 분명 답을 향해 있다.<외모지상주의>가 학교 폭력을 볼거리로 만들고, <연의 편지>가 그것을 주인공의 성장을 향한 아픈 계기로 배치했다면, 이은재의 연작은 학교 폭력을 서사의 중핵으로 하여 정면 승부한다. 폭력을 적나라하게 그림으로써 학교 폭력을 둘러싼 행위자들과 구조의 문제를 동시에 ...

    1397호2020.09.24 16:40

  • [만화로 본 세상]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응원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응원

    최근 서울과 경기도는 코로나19에 대응해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를 시행했다.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에 비하면 부족한 대처였을 수도 있고, 하루하루의 벌이가 달린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조치였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누구에게나 이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일상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경험이 됐을 테다. 매일 들리던 카페에 갈 수도 없었고, 야근을 마치고 식당에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불과 며칠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었다.무엇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잘 닦여진 인프라 덕분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스마트폰으로 주문해 다음 날 받을 수 있었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거나 업무를 보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것이 이전과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졌다. 네트워크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고...

    1396호2020.09.21 12:22

  • [만화로 본 세상]가족이라고 아이에게 함부로 해도 될까
    가족이라고 아이에게 함부로 해도 될까

    아이가 말을 시작한 뒤로 ‘엄마’라는 말을 하루에 수십 번씩 듣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 호명이 낯설다. 때때로 머릿속으로 되뇐다. ‘내가 엄마라니.’ 엄마가 된다는 게 너무 어렵다. 아이는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 양육자를 성가시게 하고, 때때로 화나게 하면서 자라난다. 물론 엄청난 기쁨도 준다. 문제는 그 두 가지 측면이 서로 상쇄돼서 0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해소되지 않은 피로가 누적되어 터질 때가 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잠을 못 자고 너무 힘들 때는 ‘내가 이러다 사회면에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부지기수다. 다행히 그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내 곁에 또 다른 양육자가 있고, 그가 애를 꽤 잘 돌보는 사람이어서라고 생각한다.자식 키우기의 고단함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 관계에서 아이가 가지는 취약성에 대한 이야기다. 올해도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보도됐다. &ls...

    1395호2020.09.11 14:30

  • [만화로 본 세상]봄이와-육아와 창작노동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봄이와-육아와 창작노동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본래 ‘독박’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 건 고스톱에서였다. 고스톱에서 한 사람이 다른 이들의 돈까지 다 내야 하는 것을 독박이라 한다. 그러나 최근에 독박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 육아 전선일 것이다. 부모 모두가 동등한 책임과 의무를 진다고 하더라도, 육아에 대한 노동은 정확히 반으로 나눠떨어지기 어렵다. 생산 노동과 재생산 노동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타협과 조율을 해야 하는데, 육아를 책임지는 공동 파트너와도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 와중에 누구 한 사람이 아프거나 출장이라도 가는 상황에 놓인다면, 상대방은 꼼짝없이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사실 ‘독박육아’라는 네 글자만으로는 홀로 육아에 내맡겨진 상황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올 초 나는 코로나19 상륙과 남편의 장기 출장으로 ‘독박육아’를 해야 했다. 아이의 삼시 세끼를 고민하고 씻기고 놀아주는 일들과 틈틈이 몰아치는 가사노동,...

    1394호2020.09.04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