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구석구석 과학사
  • 전체 기사 59
  • [구석구석 과학사](10) 칼륨은 틀리고 포타슘으로 써야 맞다?
    (10) 칼륨은 틀리고 포타슘으로 써야 맞다?

    대한화학회가 칼륨을 포타슘으로 바꿔 쓸 것을 제안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국립국어원에서 인정하는 표준어는 여전히 칼륨이고, 전국의 농민들은 여전히 ‘가리비료’를 쓰고 있다.옛 글월을 읽다 보면 낯선 낱말들에 시선이 턱 걸리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과학용어 같은 것들도 흥미롭다. 특히 일본식 용어가 광복 후에도 한동안 남아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는데, ‘초산’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초산’이라고 하면 대부분 식초의 원료인 아세트산, 즉 초산(醋酸)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문헌에서 초산은 아세트산 말고도 오늘날의 질산을 가리키기도 한다. 질산칼륨은 옛날부터 한자문화권에서 초석(硝石)이라고 불렀고, 그것을 원료로 만드는 질산도 초산(硝酸)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황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원료가 유황(硫黃)이므로 유산(硫酸)이라고도 불렸다. 이밖에도 만병에 즉효가 있는 ‘빨간 약’의 대명사 ‘옥도정기’는 요오드...

    1234호2017.07.03 17:05

  • [구석구석 과학사](9) 한국 과학을 키운 한국·일본·미국의 스승들
    (9) 한국 과학을 키운 한국·일본·미국의 스승들

    우리 과학의 역사에서 ‘스승’이 서양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식민지배의 각종 모순에도 불구하고 존경할 만한 일본인 스승도 있었고, 그들에게 배운 한국인 과학기술자는 다시 다음 세대의 한국인 학생들에게 스승이 되었다.일제강점기 식민권력은 근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한국인 고급인력의 양성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특히 조선총독부가 한국인 과학기술자 양성을 의도적으로 훼방 놓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했다.이태규 박사를 발탁한 일본 화학계 거목이런 여건에서 재능 있는 한국의 젊은이를 발견하여 과학자로 성장할 기회를 준 외국인 스승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 학위를 딴 이원철(1896~1963)은 연희전문 수물과(數物科) 시절의 은사 칼 루퍼스(1876~1946)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미국 유학의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백정의 아들이었던 박서양(1887~1940)이 의사로 입신할 수 있었던 데에는...

    1232호2017.06.19 18:21

  • [구석구석 과학사](8) 석학 이태규, 우장춘, 리승기 ‘세 갈래의 인생’
    (8) 석학 이태규, 우장춘, 리승기 ‘세 갈래의 인생’

    우장춘은 어려운 시절의 한국에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품종개량에 몰두했고, 이태규는 고국을 떠났지만 유타대학에서 많은 수의 한국인 유학생을 받아 지도하였다. 그리고 리승기는 더 나은 연구환경을 찾아 북한행을 결심했다화학자 이태규(1902∼1992)의 88세 생일 기념으로 제자들이 펴낸 (1990)에는 세 명의 한국인 과학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육종학자 우장춘(1898∼1959)이 교토제국대학에 재직하던 이태규를 방문하여 찍은 것이다. 사진에 이름이 적히지 않은 또 한 명의 참석자는 역시 교토에서 활동하던 화학공학자 리승기(1905∼1996)다. 리승기는 1931년 교토제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교토제대 부설 화학섬유연구소에서 일본 최초의 합성섬유 비닐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업적으로 1939년 교토제대 공업화학과의 교수 자리에 올랐다.세 명의 과학자가 함께 찍은 사진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이공학계 교수가 된 것은 이태규와 리...

    1230호2017.06.05 17:25

  • [구석구석 과학사](7)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만들었다?
    (7)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만들었다?

    아직도 우장춘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씨 없는 수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또한 “사실은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이 만든 것이 아니라더라”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지난 4월 27일, 과학의 달을 기념하는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 우표의 세 번째 묶음이 선을 보였다. 올해의 주인공은 ‘과학기술정책가 세종대왕’, ‘화약무기과학자 최무선’, 그리고 ‘유전육종학자 우장춘’이었다. 우표 낱장에는 각각 주인공의 업적을 요약한 작은 아이콘이 붙어 있는데, 세종대왕은 한글, 최무선은 불꽃, 우장춘은 배추 모양으로 되어 있다.즉 우장춘(1898~1959)의 대표 업적은 배추, 나아가 배추속(屬) 원예작물의 유전 연구와 품종 개량이다. 이제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만든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다. 그러나 ‘씨 없는 수박’ 속설 역시 완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을 떠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숲을 보아야 나무가 제대로 ...

    1228호2017.05.22 16:57

  • [구석구석 과학사](6) 해방된 한글, 어떻게 새롭게 쓸 것인가?
    (6) 해방된 한글, 어떻게 새롭게 쓸 것인가?

    한글운동가들은 새 시대의 한글은 한자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로마자를 쓰듯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로로 쓰고, 띄어 쓰고, 그리고 풀어 쓰자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다.최초의 한글 타자기는 세로로 쓰는 타자기였다. 가로로 쓰도록 만든 로마자 타자기를 구태여 개조하여, 구태여 옆으로 누운 한글 글씨를 찍은 뒤, 구태여 그것을 다시 돌려서 읽게끔 만든 것이다.어쩌자고 이렇게 많은 ‘구태여’를 무릅쓰고 세로쓰기 타자기를 만들었을까? 한글은 원래 세로로 쓰는 문자였기 때문이다. 돌돌 말려 있는 얇은 종이에 붓으로 글씨를 쓰던 동아시아에서는 두루마리를 왼쪽으로 펴면서 오른쪽부터 세로로 글씨를 쓰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훈민정음도 이 문화 안에서 생겨난 문자였으므로 당연히 오른쪽 위부터 세로로 썼다. 가로쓰기가 일상의 대세가 된 오늘날에도 서예는 세로쓰기가 보통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뒷날 ‘궁체’로 불리게 되는 한글 붓글씨가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되어 오면서, 모음의 세...

    1225호2017.05.02 15:02

  • [구석구석 과학사](5) 시카고에서 만든 1930년대 한글타자기
    (5) 시카고에서 만든 1930년대 한글타자기

    1934년, 동아일보는 재미교포 발명가 송기주(1900~ ?)가 한글타자기를 ‘완성’하여 귀국한다는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 송기주는 영문타자기를 개조하여 한글타자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골동품 타자기를 매개로 1930년대 식민지 경성과 현대 한국을 넘나드는 신기한 인연을 그린 드라마를 보았다. 직업병 때문인지, 1930년대에서 건너왔다는 저 타자기의 자판에는 어떤 것이 달려 있을까 문득 궁금해져서 들여다보았다. 오래된 타자기의 자판은 요즘 우리가 컴퓨터에서 쓰는 자판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오늘날 우리가 컴퓨터에서 쓰는 한글 자판은 1983년 국무총리 훈령에 따라 표준으로 제정되었다. 두벌식, 즉 자음 글쇠 한 벌과 모음 글쇠 한 벌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조다. 굳이 ‘단출하다’는 말을 쓰는 까닭은, 오래된 타자기들은 세 벌, 네 벌, 심지어 다섯 벌까지도 글쇠가 불어나기 때문이다. 한글은 자모를 모아 음절을 만들기 때문에 하나의 자모가 여러 가지...

    1223호2017.04.17 18:24

  • [구석구석 과학사](4) “이공계 위기”와 “문송합니다” 의 숨은 진실
    (4) “이공계 위기”와 “문송합니다” 의 숨은 진실

    이해당사자가 이렇게 많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묘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공계 위기든 인문학의 위기든, 거기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풀어내기 위해서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에 눈을 돌려야 한다.대략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최상위권 대학 또는 연구소에 소속된 과학기술자와 공학자들은 상당히 자부심이 높았다. 지속적인 호황 속에서 과학기술계 직종들은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인정받아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고 비교적 안정된 일자리가 꾸준히 공급되었다. 지금은 상당히 낯설게 들릴 테지만, 학력고사 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이과 수석은 진학 희망학과를 묻는 질문에 대체로 물리학과 또는 전자공학 계열의 학과라고 답하곤 했다. 정원 270명의 거대 학부였던 서울대 전기전자제어계측공학부(전전제)가 정원 190명인 의예과보다 커트라인이 높던 시절이었다.이 ‘좋았던 옛 시절’을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 만들어버린 것은 1997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외환위기였다. 국...

    1221호2017.04.03 17:55

  • [구석구석 과학사](3) ‘존경과 흠모’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나
    (3) ‘존경과 흠모’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나

    나라를 사랑해 명예와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과학자. 이런 영웅적인 과학자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는 한, 이휘소건 황우석이건 다음의 누구건 ‘존경과 흠모를 불러일으키는’ 영웅은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2005년 11월 황우석 연구팀의 줄기세포 연구 부정행위 논란으로 전국이 달아올랐을 무렵, 인터넷 여기저기에는 황우석을 재미 한인 물리학자 이휘소(Benjamin Whisoh Lee·1935~1977)와 비교하는 글이 올라왔다. 황우석의 지지자들은 이휘소가 자주국방을 위한 핵무기의 설계도를 완성해 한국에 전달하기 직전에 미국 정보기관에 의해 사고를 가장한 암살을 당했다는, 잘 알려진 소문의 구조를 그대로 빌려 와서 주인공만 황우석으로 바꾸었다. 황우석 연구팀이 한국을 세계 줄기세포 연구의 선두주자로 밀어올릴 연구를 완성하기 직전에 미국의 견제와 배신으로 누명을 쓰고 인격살인을 당했다는 주장들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 나갔다.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판명되고...

    1219호2017.03.21 15:03

  • [구석구석 과학사](2) 우표 속 과학자는 누구에게 말을 거는가
    (2) 우표 속 과학자는 누구에게 말을 거는가

    우표는 이제 편지를 부치기 위해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집가들의 취미생활에 가까운 지난 세기의 유물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과학자의 얼굴을 구태여 우표에 싣는 것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북한 과학기술자 중 가장 유명한 이를 꼽으라면 리승기(1905~1996)가 빠지지 않는다. 교토제국대학 유학 시절 합성섬유 ‘비날론’을 발명해 일본과 국제 과학계에 명성을 떨쳤고,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창설을 주도했으나 한국전쟁 중 월북해 북한 화학공업의 재건을 지휘하고 특히 합성섬유산업의 기틀을 닦았다. 어떤 이들은 1960년대 초반 비날론의 공업화가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이후 개발된 더 우수한 합성섬유들이 북한에 제대로 도입되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비날론과 그 개발자인 리승기는 북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권위가 확고해진 뒤에는 과학기술 연구에서도 ‘집체성’이 강조돼 과학자 개개인의 기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

    1217호2017.03.06 1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