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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석구석 과학사](20)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20)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빛과 어둠이라는 근원적인 이분법을 뉴턴이 허물어버린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들 가운데는 독일의 문호 괴테도 있었다. 괴테는 1810년 을 펴내 빛과 색에 대한 옛 이론의 복권을 시도하였다.가을 옷을 미처 꺼낼 새도 없이 겨울이 왔다. 사방을 물들였던 색색의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흰 눈과 검은 어둠이 연출하는 무채색의 세상이 가까이 왔다. 가을의 색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색이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현대인들은 이 싱거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갯빛 스펙트럼으로 갈라지는 그림을 어릴 때부터 봐왔고, 색깔 있는 빛살 하나하나가 모이면 우리 눈에 흰 빛으로 보인다는 설명을 어릴 때부터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프리즘의 모습뿐 아니라 그것을 들고 있는 뉴턴의 모습을 함께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교육을 통해 거듭 배워오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설명은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을까? 옛날 사...

    1254호2017.11.27 17:11

  • [구석구석 과학사](19) 계몽주의 ‘불변의 척도’ 미터법 탄생과 진화
    (19) 계몽주의 ‘불변의 척도’ 미터법 탄생과 진화

    프랑스가 만든 미터법은 그 합리성과 일관성 덕에 금세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영국이나 미국 등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고유의 단위를 고집하는 나라들도 남아있지만, 과학기술에서는 미터법과 그에 바탕을 둔 국제단위계(SI)가 표준이 되었다.프랑스 파리 교외의 국제도량형국 지하에는 저울추 하나가 세 겹의 유리용기 안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백금과 이리듐을 섞어 대략 골프공 크기의 원통 모양으로 만든 이 저울추의 질량은 1.000000kg이다. 바로 세계 모든 저울의 기준이 되는 ‘킬로그램 원기(原器)’다.그런데 이 저울추는 내년이면 퇴역하여 역사의 유물이 된다.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0.0000001kg(또는 100㎍) 정도의 오차가 생겨나면서 일곱 자리로 유효숫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제도량형국은 공기와 접촉을 막고자 밀폐용기 안에 모셔 두고, 다른 저울추를 조정할 때에도 공인된 복사본을 이용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

    1252호2017.11.14 14:58

  • [구석구석 과학사](18)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김양하를 아십니까
    (18)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김양하를 아십니까

    김양하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남한에서는 이태규를, 북한에서는 리승기를 화학계의 원조로 기리고 있지만, 김양하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가을이 되면 과학담당 기자들은 바빠진다.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매년 10월 스웨덴 왕립한림원이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면 매체들은 앞다퉈 그들의 업적을 소개하고 ‘왜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는가’ 같은 토론회를 연다(행여 수상자 가운데 일본인이 있으면 토론회의 분위기는 한층 더 비장해진다).어떤 이들은 한국에 이처럼 노벨상에 한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고도성장기 개발주의의 잔재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타당한 분석이지만, 노벨상에 대한 집착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한국인 ‘노벨상 후보’에 대해 한국의 언론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일제강점기에도 하루가 다르게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던 해외의 과학계 소식이 보도되었고, 노벨상은 그 변화의 ...

    1250호2017.10.31 15:04

  • [구석구석 과학사](17) 많은 과학자들이 남한을 떠난 까닭은
    (17) 많은 과학자들이 남한을 떠난 까닭은

    미 군정은 1946년 7월 ‘국립종합대학 설치계획안’(일명 국대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다. 국대안은 발표 즉시 각계의 강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대안 파동이 남긴 상처는 작지 않았다.사진은 1946년 7월에 열린 경성대학 이공학부의 처음이자 마지막 졸업식을 찍은 것이다. 일제 패망 직후 경성제국대학의 일본인 교수와 학생들이 떠나가자, 한국인 교수와 학생들은 학교를 접수하고 경성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한국인 학생들도 대부분 귀국해 합류하였다.그러나 사진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함께 하고 있는 교수와 학생들은 현실에서는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 무렵 새로운 대학의 미래상을 둘러싸고 대학 구성원들 사이의 의견 대립이 한껏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대학 발전에 대한 서로 다른 상상들경성대학의 운영을 주도한 한국인 교수들 가운데는 사회주의 성향의 지식인들이 많았다. 이공계에서는 이공학부장 대리였던 이론물리학자 도상록(190...

    1248호2017.10.16 19:25

  • [구석구석 과학사](16) 음력과 양력을 절충한 과학적인 옛달력
    (16) 음력과 양력을 절충한 과학적인 옛달력

    나라의 공식적인 달력이 1896년 양력으로 바뀌고 나서 약 90년 동안, 설과 추석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명절이 되었다.우리에게 옛 달력은 거의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옛 달력을 들춰보는 것은 설과 추석의 연휴 계획을 세우거나 조상 제삿날을 확인하기 위해서 정도일 것이다. 이밖에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요소가 있다면 24절기일 것이다. 날씨예보에서도 여전히 절기를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요즘처럼 계절이 바뀔 때는 절기가 바뀔 때마다 피부로 느끼는 감각이 달라지는 것을 실감한다.그런데 이것을 두고 “절기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면 음력에도 다 이치가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되는데, 사실 이것은 옛 달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말이다.동북아시아의 옛 달력은 태음태양력동북아시아의 옛 달력은 이슬람 문화권의 ‘순태음력’과는 달리, 음력(태음력)에 양력의 요소를 가미한 ‘태음태양력’이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음력을 바탕으로 하면...

    1246호2017.09.25 17:41

  • [구석구석 과학사](15) 서양인이 진작 왔다면 근대화도 빨라졌을까
    (15) 서양인이 진작 왔다면 근대화도 빨라졌을까

    일본처럼 서양과의 만남이 좋은 결과를 불러온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일찍 유럽과 만났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 식민지로 전락하여 가혹한 수탈을 감내해야 했다.네덜란드 덴하그(헤이그)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각종 문서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어서 해양 강국으로 큰 부를 쌓아올렸던 네덜란드의 호시절을 엿볼 수 있다. 17∼18세기의 항해용 해도들 가운데 대부분은 인도양을 그리고 있다. 북서유럽에서 남아프리카를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항로에 대한 정보가 네덜란드 무역활동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아쉬움의 근원은 무엇인가해도들이 다루는 지역은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 해당하는 수천 개의 섬들을 지나 남중국해를 거쳐 중국의 남부해안 도시들과 일본의 규슈 지역까지 뻗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 좀 더 북쪽, 즉 한반도와 중국 북부, 일본 혼슈 지역 등은 좀처럼 네덜란드 사람들의 해도에 등장하지 않는다. 네...

    1244호2017.09.11 17:11

  • [구석구석 과학사](14) 그 많던 ‘포마토’는 누가 다 먹었을까
    (14) 그 많던 ‘포마토’는 누가 다 먹었을까

    국가가 목표를 제시하고 자원을 집중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기본 틀은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구체적인 목표와 그것을 상징하는 이미지들만 바뀌어 왔을 뿐이다.세대마다 공유하는 경험이 있고, 그 경험들을 대표하는 지배적인 이미지가 있다.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이미지도 시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사실 1960년대까지는 뚜렷하게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미국이 주도한 원자력 관련 기술원조 덕에 ‘제3의 불’이라는 별명이나 원자 모형의 그림 등이 대중에게 알려지기는 했다. 그러나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는 1979년에야 운전을 시작했으므로 1960년대의 원자력에 대한 이미지는 막연한 이야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밖에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소식도 큰 뉴스가 되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1980년대를 지배한 키워드들과학기술의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

    1242호2017.08.28 17:08

  • [구석구석 과학사](13) 자연의 시간과 정치적인 인간의 시간
    (13) 자연의 시간과 정치적인 인간의 시간

    시간은 우주의 운행 이치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읽어내는 인간의 사정에 따라 해석되고 전달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시간이라는 제도는 일정한 시공간을 차지하고 사는 인간이 주변 세계와 관계를 맺기 위한 하나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2015년 8월 15일, 북한 정부는 기존의 동경(東經) 135도 표준시를 버리고 그보다 30분 늦은 ‘평양표준시’를 채택한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의 시계로 8월 15일 0시30분, 평양의 시계는 30분을 되감아 자정으로 돌아갔고, 이때부터 북한은 한국보다 30분 늦은 시간대를 쓰고 있다.세계의 표준시간대는 대부분 정시 단위로 구분되어 있다. 대양에 외따로 떨어진 작은 섬들이 30분 차이 나는 시간대를 쓰기도 하지만, 구태여 30분 또는 45분 차이로 시간대를 나누는 것은 대부분 정치적인 선택이다. 여러 이웃 나라들과 국경선을 맞대고 지내면서도 자기 나라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크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은 인접국과 30분 차...

    1240호2017.08.14 15:48

  • [구석구석 과학사](12) 시곗바늘은 늘 시계 방향으로 도는가?
    (12) 시곗바늘은 늘 시계 방향으로 도는가?

    북반구에서 만든 기계식 시계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바늘을 달게 되었고, 그것을 사람들은 ‘시계 방향(clockwise)’이라고 부르게 되었다.해는 동쪽에서 떠서 남쪽 하늘을 지나 서쪽으로 진다. 매일 조금씩 위치가 바뀌기는 하지만, 별들도 동에서 서로 뜨고 진다. 남쪽 상공을 보고 앉으면 왼쪽에서 나와 눈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마치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방향과 같다.시곗바늘이 도는 방향과 천체가 움직이는 방향이 같다니 일관성이 있어서 이해하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쉬워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시계 방향’은 해시계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방향, 즉 해가 움직이는 방향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시계 방향은 천체의 운행 방향해시계는 인간이 하루라는 단위로 시간을 인식하고 만든 최초의 시계다. 물시계나 기계식 시계처럼 복잡한 부속을 갖춘 시계보다 간단해 보이기 때문에 흔히 원시적인 시계일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천체의 움직임을 그대...

    1238호2017.07.31 16:39

  • [구석구석 과학사](11) 삼수갑산, ‘초신 퓨’, 그리고 주체섬유
    (11) 삼수갑산, ‘초신 퓨’, 그리고 주체섬유

    북한은 흥남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흥남은 일본 재벌의 수탈을 위해 태어났던 도시라는 과거에서 벗어나 북한 인민이 지켜내고 복구한 산업도시로 포장될 수 있었다.1961년 5월 6일 흥남비료공장의 기존 설비를 활용해 지은 2.8 비날론 공장 기공식에서 김일성이 테이프를 끊고 있다. 북한은 일본과 미국의 파괴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흥남의 공장을 ‘우리 것’으로 새롭게 규정할 수 있었다.지난 6월 28일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첫 공식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았다. 미군은 1950년 겨울 극심한 추위 속에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한국전쟁을 통틀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여기서 살아남은 이들은 스스로 장진에서 살아남은 소수, 즉 ‘초신 퓨(the Chosin Few)’라고 부르며 생사를 함께 한 기억을 간직하였다. 문 대통령은 흥남철수작전으로 아버지가 월남한 자신의 개인사를 여기에 결부시킴으로써 방미의 첫걸음부터 강한 ...

    1236호2017.07.18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