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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노래
  • 전체 기사 214
  • [내 인생의 노래]이박사 ‘울트라 릴렉스’
    이박사 ‘울트라 릴렉스’

    듣기만 해도 방아쇠를 당긴 듯 저절로 기분 좋아지는 노래가 있다. 대놓고 “좋아 좋아 기분이 좋아”라는 소절로 시작하는 한대수의 ‘고무신’이나 퀸의 ‘You and I’ 같은 노래가 내게는 그렇다. 그런데 이 노래만큼 들으면 ‘뽕 맞은 듯’ 찌릿한 쾌감을 전해주는 노래도 없어 고심 끝에 이 노래를 골랐다. 이박사가 2001년 발매한 정규 2집에 실린 ‘울트라 릴렉스’다.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별다른 데 있는 건 아니다. 노래가 신나고 이박사의 목소리는 천상계를 오가며 고막을 흥분시킨다. 테크노 뽕짝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르를 개척하며 20년도 더 이전에 ‘원조 한류스타’ 자리에 오른 음악인답게 노래를 쥐락펴락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온 나라가 외환위기로 우울했던 시기에 박사의 추임새는 그래도 잘 될 수 있을 것이란 낙관을 갖게 했다.이...

    1405호2020.11.27 15:51

  • [내 인생의 노래]콜드플레이 ‘옐로’
    콜드플레이 ‘옐로’

    기억 속에 각인된 듯한 장면이 있다. 도서관에서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으면서 콜드플레이의 노래를 듣던 때가 그렇다. 벌써 10년이 넘은 옛일이다. 무늬만 고시생이던 시절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도서관을 찾았다. 그렇다고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오진 않았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평소 읽지 않던 소설책을 읽는 때가 많았다. 해야 할 일에서 도망칠 때는 이상한 해방감을 느꼈다.원서로 봤던 조지 오웰의 소설은 원래 그런지,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읽어선지 모르지만 몽환적이었다. 생각마저 감시당하는 것이 당연한 <1984>의 세상에서 사랑은 일종의 저항 운동이었다. 전체주의는 자신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지지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저항은 실패하고, 끝내 고통 속에서 철저한 결별이 이뤄진다. 세상을 바꾸려던 이들은 죽은 듯 사라지거나 백치 상태의 고독으로 돌아간다.이렇게 기억하는 내용을 읽어가는 동안 들었던 노래들을 지금에서야...

    1404호2020.11.20 14:24

  • [내 인생의 노래]조규찬 ‘해 지는 바닷가에서 스털링과 나는’
    조규찬 ‘해 지는 바닷가에서 스털링과 나는’

    퇴근길 기차에서 라디오를 듣는다. DJ는 정은임,그리고 신해철. 오래전 세상을 떠난 그들의 옛 방송분은 팟캐스트와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학창시절에는 생방송으로 <FM 영화음악>과 <FM 음악도시>를 들었다. 매일 머리맡 빨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그들의 목소리를 이제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듣는다. 벌써 세상이 몇번이나 바뀌었나. 그럼에도 ‘정든님’과 ‘시장님’은 여태껏 나를 위로한다.노래도 오래된 가수의 것을 듣는다. 누군가 “10대에 들었던 음악을 평생 듣는다”고 하던데 딱 그짝이다. 플레이 리스트에는 늘 조규찬의 노래가 있다. 조규찬의 ‘무지개’는 나를 단번에 러닝 바람의 소년으로 돌려놓는다. “한여름날/ 소나기를/ 흠뻑 맞은 아이들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띄어 보내고/ 뒷산 위에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

    1403호2020.11.13 15:08

  • [내 인생의 노래]선우정아 ‘그러려니’
    선우정아 ‘그러려니’

    음악을 이곳저곳에서 수집해 듣는 편이다. 카페나 식당에서 귀에 꽂히는 노래가 나오면 노래를 인식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켠다. 그때그때 확인한 뒤 노래를 스트리밍 목록에 수집해둔다. 어떤 뮤지션인지 자연스레 찾아보게 된다. 지금은 카페에서 문소문의 ‘내 유언은 썰렁한 농담’이 흘러나와 앱으로 확인한 뒤 저장했다. 처음 알게 된 가수다.잔잔한 재즈풍의 노래가 여럿 모였다. 재즈를 잘 모르는데 수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떤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을지도 궁금해졌다. 음악 스트리밍 앱을 켜 ‘감상 이력’을 찾아봤다. 정작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요가 수집한 노래를 제치고 재생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20~30대 남성이라면 언제쯤 집중적으로 들었을지 어림짐작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대부분 뒤늦은 후회를 호소하는 지질한 남성 화자의 노래라고 해야 하나.김동률의 ‘답장’(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네 앞에 선...

    1402호2020.11.06 15:24

  • 김광석 ‘일어나’

    1995년 봄, 생방송 프로그램에 가수 김광석을 섭외하라는 ‘명령’이 나에게 떨어졌다. 당시 나는 갓 개국한 케이블TV 방송국의 1년차 AD였다. 케이블TV 방송은 그해 봄, 처음 시작됐고, 나는 한 해 전 불교TV 공채시험에 합격해 입사했다.신문사에서 방송국으로 옮겨 두 번째 직장이었다. 직업이 방송국 PD로 바뀌었지만, 방송과 연예 분야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다. 첫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아주 큰 텔레비전을 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섭렵하겠다는, 당찬 의지였다. 그때까지 쇼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가수 김광석의 존재조차 잘 알지 못했다. 김광석에게 전화하니 대학로의 한 소극장으로 찾아오라고 했다.급하게 대학로를 찾아갔다. 사전에 파악한 지식은 거의 없었다. 그의 노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지하에 공연장이 있었다. 2층 사무실로 들어갔다. 누군가 한 명이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약간 어두웠다.“...

    1401호2020.10.30 15:39

  • DeWarp ‘You’re my hero’-아버지 손에 이끌려 야구에 빠지다

    난 두렵지 않아언제나 나에게 니가 있는데니 생각만으로도나는 충분히 강해지는 걸넌 나의 변치 않는 영웅이잖아You’re my hero x 4이젠 피하지 않아세상에 당당히 서는 거야망설임에 갇혔던내 모습을 이제 찾아준 너넌 나의 변치 않는 영웅이잖아You’re my hero x 4문학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인천에 연고를 둔 SK와이번스를 응원했다. “야구장 갈래?” 그는 이따금 가족을 꼬드겼다.“경기 보다 먹을 거 떨어지면 서운하잖아.” 과일을 깎고 주전부리를 잔뜩 쌌다. 우리는 항상 외야로 갔다. 아버지가 널찍한 시야로 경기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항상 한칸 떨어져 앉았다. 9회 말까지 조용히 야구만 보았다.나도 자연스레 와이번스 팬이 됐다. 친구들과 갈 때면 자리선정부터 달랐다. 응원석에 자리를 잡고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한번은 응...

    1400호2020.10.23 15:01

  • [내 인생의 노래]이연실 ‘소낙비’
    이연실 ‘소낙비’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나는 안개 낀 산속에서 방황했었다오시골의 황톳길을 걸어다녔다오어두운 숲 가운데 서 있었다오시퍼런 바다 위를 떠다녔었다오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끝없이 비가 내리네꽃들은 피고 지고, 계절은 시나브로 바뀐다. 그 사이사이에 수많은 노래가 숨어 있다. ‘내 인생의 노래’를 한 곡만 꼽아보라는 건 가혹하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한 가지만 골라 먹으라는 얘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그래야 한다면 이연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서도 ‘소낙비’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소낙비는 소나기의 전라도 방언이다.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치 무더운 여름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는 기분이 된다. 이연실의 청아한 목소리는 끈적끈적한 우울을 날려버린다. 사실 이 노래를 얘기하려면 먼저 두 사내를 호출해야 한다. 밥 딜런과 양병집이다. 노벨문학상...

    1399호2020.10.16 15:48

  • [내 인생의 노래]김광진 ‘편지’
    김광진 ‘편지’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이제 나는 돌아서겠소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괴롭히지는 않겠소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이대로 다 남겨두고서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 하오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두겠소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오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견뎌 왔음에 감사하오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날 잊고 사시오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이 맘만 가져가오처음과 끝이 선명하게 정해진 영화에서는 변화가 늘 천둥처럼 찾아왔다. 어느 날 마음을 바꾸는 계기를 만나더니 다음 날이면 그 결심대로 행동에 옮기는 이가 주인공이다. 현실이라면 가혹했을 변화의 시간이 어찌나 부드럽게 해결되던지, 노래 반 곡이 배경으로 깔리는 동안 몇 컷의 장면이면 끝이다. 그리 툭툭 털어 버리고 상큼한 도약을 하기에는 끈적하게 달라붙는 일상의 습관과 발목을 잡는 장애물들...

    1398호2020.10.12 14:11

  • [내 인생의 노래]‘Voi che sapete’ 인생의 동료이자 아내를 만나다
    ‘Voi che sapete’ 인생의 동료이자 아내를 만나다

    Voi che sapete che cosa e amor,Donne, vedete, s’io l’ho nel cor,Donne, vedete, s’io l’ho nel cor.Quello ch’io provo, vi ridiro,E per me nuovo capir nol so.Sento un affetto pien di desir,Ch’ora e diletto, ch’ora e martir.Gelo e poi sento l’alma avvampar,E in un momento torno a gelar.Ricerco un bene fuori di me,Non so chi il tiene, non so cos’e.Sospiro e gemo senza voler,Palpito e tremo senza saper,Non trovo pace notte...

    1397호2020.09.24 16:40

  • [내 인생의 노래]임재범 ‘살아야지’
    임재범 ‘살아야지’

    산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지지치고 지쳐서 걸을 수 없으니어디쯤인지 무엇을 찾는지헤매고 헤매다 어딜 가려는지꿈은 버리고, 두 발은 딱 붙이고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가끔씩 그리운 내 진짜 인생이아프고 아파서 참을 수가 없는 나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춥고 아프고 위태로운 거지꿈은 버리고, 두 발은 딱 붙이고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날개 못 펴고 접어진 내 인생이서럽고 서러워 자꾸 화가 나는 나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거지누구나 그렇듯이 사람은 평생 노래를 들으면서 살고, 노래를 부르면서 산다. 한 번쯤 노래방에 가서 목청껏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자나 음정, 그런 것 다 틀려도 내 흥에 겨워서, 아니면 내 설움에 취해서 불러대던 노래가 한둘쯤은 있지 않을까? 어느 분이 코로나19 때문에 노래방에 못 가니 한국인들 노래 실력이 줄 거라고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맞장구를...

    1396호2020.09.21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