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시로 여는 한 주
  • 전체 기사 121
  • 그는 뒤에서

    신대철(1945~ )언제나 갑자기 뒤에서 부른다. 돌아보면 깊은 산, 싸락눈이 그쳐 있다. 오랑캐꽃 피는 쪽으로 머리를 돌려놓고 산짐승들은 꿈속같이 잠들어 있다. 키 큰 나무에 올라서서 두리번두리번 산소년이 물소리에 귀 트이고 있다.그,돌아보면 뒤에서 언제나 뒤에서 부르는.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고 할 일이 많다. 문득, 잊고 있던 누군가 부른다. 시인은 ‘언제나 갑자기 뒤에서 부른다’고 했다. 자연은 언제나 ‘돌아보면 뒤에서 언제나 뒤에서 부르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니 봄이다. 힘내서 계속 걸어야 한다.<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1219호2017.03.21 18:32

  • 마침표

    황인숙(1958~ )찍는 것이지요.그리는 게 아니구요.질질 끄는 게 아니어요.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잘못된 일은 끝내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1218호2017.03.14 18:10

  • 생일

    김소연(1967~ )흰쌀이 익어 밥이 되는 기적을 기다린다식기를 가지런히 엎어 두고물기가 마르길 기다리듯이푸릇한 것들의 꼭지를 따서 찬물에 헹군다비릿한 것들의 상처를 벌려 내장을 꺼낸다이 방은 대합실의 구조를 갖고 있다한 정거장 한 정거장 파리함과 피곤함을 지나쳐 온 사람이기다란 의자에 기다랗게 누워 구조를 완성한다슬픔을 슬퍼하는 사람이 오로지 슬퍼 보인다사람인 것에 지쳐가는 사람만이 오로지 사람다워 보인다안식과 평화를 냉장고에서 꺼내 아침상을 차린다나쁜 일들을 쓰다듬어주던크나큰 두 손이 지붕 위에서 퍼드덕거릴 때햇살이 집안을 만건곤하게 비출 때미역이 제 몸을 부풀려 국물을 만드는 기적을간장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돕고 있다살점을 떼어낸 듯한 묵상이눈물처럼 밥상에 뚝뚝 떨어진다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모은다간혹 자신의 생일을 떠들썩하게 알리는 사람이 있다. 선물을 바라거나 소소한 잔치를 바라기 때문은 아닐까. 시에서 화자는 자신의 생일밥상...

    1217호2017.03.07 11:18

  • 그 꽃

    고 은(1933~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올라갈’ 때는 무척 바쁘다. 무언가를 이루거나 얻기 위해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다. ‘내려올’ 때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비로소 ‘꽃’이 보인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다 내려온다. 부와 명성, 젊음을 내려놔야 한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올라가면, 내려올 때 더 많은 꽃을 볼 수 있다. 몸을 낮춰야 봄꽃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다.<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1216호2017.02.28 14:06

  • 해동 무렵대포 사랑

    김사인(1955~ )노루목 지나 심학산 넘어가면조강 나루겨우내 맨살로 버틴 교각 사이를허옇게 처내려오는얼음조각들전봉준처럼 도도하게 머리를 세우고그 우에 올라앉아죽기 아니면 살기로죽기 아니면 살기로 까맣게 떠내려가는청둥오리떼계절의 시간은 정확하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날이 확연히 달라졌다. 꽝꽝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고 나뭇가지에는 물이 올라온다. 강과 바다에는 얼음덩어리가 물살 따라 크기를 줄여가며 천천히 흐른다. 시인은 그 얼음조각들 ‘우에 올라앉’은 청둥오리떼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까맣게 떠내려’간다고 보았다. 겨우내 얼어붙은 곳들이 녹기 시작할 때다. 꽝꽝 얼어붙은 정국도 봄맞이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무엇보다 서민들의 마음이 봄볕을 받아 따뜻해지면 좋겠다.<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1215호2017.02.21 16:25

  • 김치찌개를 함께 먹는다는 것은

    한영희냄비 안에서 서로를 껴안는 소리들잘 익어간다는 것은적당한 온도와 양념이 버무려져야 한다숙성된 김치를 듬뿍 잘라넣고소박하게 끓여먹는 김치찌개 백반식구들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냄비 속으로 내려앉는다침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순간이다따뜻한 국물이 살 속으로 스며든다맛있는 냄새를 기억하고그 힘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식구들2017년 1월 현재 1인 가구 비율이 34.9%라고 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여행하는’ ‘혼밥, 혼술, 혼행’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 홀로 즐기고 집중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1인 가구의 급증은 가족해체와 초고령화 사회에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농촌과 도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삶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이 시는 2016년 시민공모작으로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 쓰여 있다. 시인은 ‘김치찌개를 함께 먹...

    1214호2017.02.14 16:49

  • 진흙발자국

    최창균(1960~ )드디어 진흙발자국이 꽝꽝 얼어붙었다진흙이 입 벌려 발자국 꽉 물고 있는 것처럼나는 아픈 발자국 진흙에 남겨놓고 걸어나왔다돌이켜보니 나는 저 족적으로부단히도 삶을 뒷걸음질쳐왔다지난봄 밭에다 씨앗 심을 때논배미 모 꽂을 때 모두 뒷걸음질쳐야 했으니초록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초록이 내 발자국 따라왔던 것이었으니저 꽝꽝 언 진흙발자국은 초록 데리고봄으로의 진흙 속으로 뒷걸음질치고 있으리라그때마다 나는 밭이나 논배미에 나가초록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놓곤 했었다그렇게 입 딱 벌린 언 진흙발자국에다내 아픈 발을 슬그머니 디밀어보았던 것,진흙의 슬픈 국자처럼내 꽝꽝 언 진흙발자국은지금 초록을 떠내고 있는 중이다모를 심을 때는 뒷걸음질친다. 사람들이 못줄에 맞추어 나란히 엎드렸다 섰다 하면서 너른 논을 채워나간다. 시인은 ‘논배미 모 꽂을 때’ ‘초록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초록이 내 발자국 따라왔던 것이었으니 ...

    1213호2017.02.07 14:22

  • 의자

    이정록(1964~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어머니께서한 소식 던지신다허리가 아프니까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꽃도 열매도, 그게 다의자에 앉아 있는 거여주말엔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그래도 큰애 네가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싸우지 말고 살아라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살면서 의자가 필요한 때가 어디 한두 번이랴. 나날이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있다면 또다시 힘을 낼 수 있다. 시에서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라고 말한다.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

    1212호2017.01.24 19:08

  • 치매환자 돌보기

    김광규(1941~ )어려운 세월 악착같이 견뎌내며여지껏 살아남아 병약해진 몸에지저분한 세상 찌꺼기 좀 묻었겠지요하지만 역겨운 냄새 풍긴다고귀여운 아들딸들이 코를 막고눈을 돌릴 수 있나요척박했던 그 시절의 흑백사진들 불태워버린다고지난날이 사라지나요그 고단한 어버이의 몸을 뚫고 태어나지금은 디지털 지능 시대 빛의 속도를누리는 자손들이 스스로 올라서 있는나무가 병들어 말라죽는다고그 밑동을 잘라버릴 수 있나요맨손으로 벽을 타고 기어들어와여태까지 함께 살아온방바닥을 뚫고 마침내 땅속으로돌아가려는 못생긴 뿌리의 고집을치매 걸렸다고 짜증내면서구박할 수 있나요뽑아버릴 수 있나요치매는 뇌의 병적인 증상으로 노년기에 많이 생긴다. 치매로 인해 서서히, 혹은 어느 날부터 부모 자식 간에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막막한가. 시인의 말대로 ‘지저분한 세상 찌꺼기 좀’ 묻히고 ‘역겨운 냄새’도 풍긴다면 상황은 ...

    1211호2017.01.17 15:07

  • 말린 고사리

    장석남(1965~ )말린 고사리 한 뭉치무게를 누군가 묻는다면하여튼 묻는다면내 봄날을 살아낸 보람 정도라답으로 준비한다곰곰이 생각하여도그러하였으니까말린 고사리 두어 뭉치 더 담아서이름난 백화점 봉지에 넣어서사랑스런 분에게 주었다 치자또 받았다 치자잘 받아서 집으로 돌아가며 그 무게가 궁금은 하겠지만우리들이 한 해 살아온 보람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할 거야그렇구 말구말린 고사리고사리는 좋은 흙에서 좋은 햇빛과 물을 먹고 자란다. 또 채취해서 바로 삶아 햇볕에서 말려야지, 하루라도 넘기면 딱딱하게 굳어져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정작 손이 많이 간 ‘말린 고사리’를 사와도 금방 먹을 수는 없다. 물에 불렸다가 다시 삶아서 무치거나 볶아야 먹을 수 있다. 서구식 입맛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무척 불편한 음식이다. 만약 ‘이름난 백화점 봉지에’ ‘두어 뭉치 더 담’긴 ‘말린 고사리&...

    1210호2017.01.10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