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쓰기 딱 좋은 저녁이야밤새워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꼬깃꼬깃 구겨서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또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제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왜가리처럼길고도 지루한 유서를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평생 유서만 쓰다 죽는 자벌레처럼백일장에서 아이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이야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라 유서를 쓴다면, 시인의 생은 한 편 시가 되고 소설가의 생은 한 편의 소설이 될까. 자신에게 상을 주는 마지막 저녁일까. 된장찌개 냄새가 유난히 구수한 저녁.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시로 여는 한 주’를 마칩니다.
1299호2018.10.22 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