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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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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산간 오지에서 듣는 ‘슬프디 슬픈 소리’
    산간 오지에서 듣는 ‘슬프디 슬픈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슬픈 소리, 무슨 까닭인지 이 궂은 날에, 엄청난 비가 이틀에서 사흘씩 쉬지 않고 쏟아지는 날에 슬프디슬픈 소리가 하염없이 이어지는 굿하는 소리를 나는 그때 듣고 있었다.큰 눈이 내렸다. 지난 3일, 새벽같이 일찍 나섰는데, 큰 눈 때문에 힘들었다. 일산에서 서울의 동쪽까지는 그런 대로 직진의 행렬이었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바뀔 무렵, 7시 즈음부터 북부간선도로에서 외곽순환도로의 구리 일대를 선회해 중부고속도로로 직행하는데, 꽉 막혔다. 대설! 큰 눈이 도로를 장악하여 아침 출근길이 뒤엉키기 시작했다.그래도 엉금엉금, 그 병목들을 빠져나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을 지난 후 오히려 상황은 악화됐다. 거기서부터 호법까지 차들은 서행했고, 그 틈에 끼어 있던 나의 차도 뻑뻑거리는 소리가 날 만큼 와이퍼를 뒤흔들면서 주춤주춤거렸다.상황은 영동고속도로를 버리고 중부내륙으로 갈아탄 후 더 악화되었다. 충주 부근에 이르러 마침내 차...

    1155호2015.12.07 17:03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키예프 협곡의  비극을 묘사한 ‘바비 야르’
    키예프 협곡의 비극을 묘사한 ‘바비 야르’

    쇼스타코비치는 예프투센코의 시를 교향곡으로 만들었다. 13번 ‘바비 야르’가 그 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히틀러의 만행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러시아의 오만, 위선, 거짓을 그대로 묘사한다.1850년대, 한양의 청계천변 거지소굴에서 한 소년이 거지패들에게 얻어맞고 있다. 지나가던 선비가 구해준다. 말을 들어보니 그림 때문에 벌어진 패악이란다. 그렇게 하여 소년의 그림 솜씨가 알려지게 된다. 조선이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한 세도정치에 굴하지 않고 개화의 새 세상을 꿈꾸던 지식인들이 이 소년, 아니 어엿한 청년이 되어 손 가는 대로 그려도 일필의 휘지가 되는 화가를 후원한다.그러나 기구하다. 두어 번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 세도가를 비판한 지식인들은 밀려드는 외세와 급변하는 정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화가는 말이 없다. 대신 그림으로써 말을 한다. 아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자식이라도 하나 얻어보려 하지만 들판의 야합조차 실패한다. 그의 사랑의 물방울은 여인의...

    1154호2015.12.01 14:25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미니멀’이라 불리는 스티브 라이히 음악
    ‘미니멀’이라 불리는 스티브 라이히 음악

    고속도로 위에서 쉼 없이 들었던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들, 특히 는 매우 건조한,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그러나 그 반복의 사이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결국 그 균열이 파탄으로 확장되는 경우였다.그로테스크! 서양 예술을 이해하는 주요 코드 중 하나다. 미하일 바흐친이나 볼프강 카이저 같은 사람이 기괴하고 공포스런 이미지의 전복성과 민중성을 논했다.이 코드, 즉 그로테스크는 중세 때는 물고기 몸통 위의 사람 머리처럼 현실에서는 전혀 볼 수 없고 상상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흉측한 형상으로 나타났으며(예컨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지옥도처럼), 근대에는 끔찍한 전쟁이나 재난을 은유하는 형상으로 나타났으나(예컨대 고야의 거인들처럼) 20세기 이후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안에 끔찍한 공포와 불안이 스며들어 있음을 증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예컨대 21세기의 한국 작가들이 일상성의 의미 혹은 그 안에 내재된 두려움을 간파하는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이들 참조했다는 레이먼드 카버나 ...

    1153호2015.11.24 11:29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정상’을 강요할 때 토해내는 ‘비정상 노래’
    ‘정상’을 강요할 때 토해내는 ‘비정상 노래’

    히틀러 시대의 알반 베르크는 오페라 ‘보체크’를 통해 강요된 정상성으로 인하여 파괴되는 인간의 비정상적인 진실을 그렸다. 스탈린 시대의 쇼스타코비치는 강력한 억압 아래에서 파괴되는 므젠스크의 멕베스 부인, 즉 카타리나의 일그러진 비탄을 들려준다.2001년 4월 25일. 30여명의 수사관들이 용산구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를 급습한다. 10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국방부와 검·경의 수사망을 피해 도피를 해온 병역비리의 주범 박노항을 검거하기 위해서다. 원사 박노항은 병역면제, 카투사 선발, 보직 조정 등 100여건의 각종 병역비리에 직접 관여한 혐의를 받자 1998년 5월부터 군·검 합동 병역비리 수사단을 피해 도주했다. 10여일 동안 잠복근무를 해온 국방부 검찰단 수사관들은 마침내 박노항이 은신해온 아파트를 급습하면서 외쳤다.“박노항!”그러자 진한 회색 잠옷 차림에 마사지용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머드팩까지 한, 아마도 필사의 도주를 벌이기 위해 위장과 변장을 해온 ...

    1152호2015.11.17 11:32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낯선 곳, 불안한 곳에서 동경하는 음악
    낯선 곳, 불안한 곳에서 동경하는 음악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흥분되고 알 수 없는 불안감”. 혹시 그런 순간에 자네는 어떤 음악을 동경하는가. 토마스 만의 소생이니 바그너와 말러가 우선 떠오르는데, 그 무대가 알프스였지.이보게 한스, 오랜만이군. 한스, 한스 카스토르프. 아주 오래전에 자네를 본 적 있지. 중학교 3학년 때였나, 아니면 고교 1학년 때인지도 모르겠군. 그때 고전을 읽어 보겠다고 자네를 불멸의 이름으로 만든 자, 곧 토마스 만이라는 기묘하고 모순된 인물의 을 펼쳤는데, 그 장대한 소설 속에서 한스, 자네를 봤지. 한스, 한스 카스토르프.그 무렵의 내 나이는 소설 속의 한스, 자네보다 한참이나 어렸지. 그래서 어린 소년은 한스 카스토르프의 여정과 고뇌를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어. 만약 그때 편지라는 걸 써야 했다면, 그러니까 그 무슨 독후감이나 아니면 백일장에라도 나가서 편지를 써야 했다면 지금처럼 쓰지는 못했을 거야. 한스 아저씨, 어떻게 지내시나요? 더는 아프지 않으신가요? 이렇게...

    1151호2015.11.09 18:3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조성진은 무대 뒤에서 무슨 책을 읽을까
    조성진은 무대 뒤에서 무슨 책을 읽을까

    왜 읽는지, 뭘 읽는지, 그 다음에는 뭘 또 읽을 것인지도 끝없이 사유해야 한다. 그저 예술가의 장식으로 책 몇 권 읽으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되었어요’ 같은 공허한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 21살이다. 티라미수를 좋아한다. 콩쿠르 우승 직후 폴란드 매체 ‘폴스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인터뷰에서 조성진은 ‘음악 말고 다른 취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파리에 살고 있는데, 그곳엔 끝내주는 크로와상과 디저트 케이크을 파는 식당과 베이커리가 정말 많아요. 저는 맛있는 디저트 가게를 인터넷으로 찾곤 해요. 그리고 그곳에 가서 다른 종류의 케이크를 사 와서 비교해 보죠. 이게 제 취미예요. 저는 이탈리안 음식을 제일 좋아하고요. 티라미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랍니다.”그렇다면 ‘이제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슴이 먹먹하여 도저히 잊히지 않는 책은 무엇이 있는가’ 라고 나는 묻고 싶다. 그런 질문은 없어 보인다. 하긴, ...

    1150호2015.11.03 15:41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음악은 모름지기 혼자서 듣는 것이다
    음악은 모름지기 혼자서 듣는 것이다

    누군가와 같이 들으면, 그가 이 음악에 집중하는지 신경 쓰느라 불편하다. 정성껏 고른 음악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이 사람이 제대로 듣고나 있나 하고 슬쩍슬쩍 훔쳐보는 일도 고역이다. 그래서 혼자서 듣는다.요즘 ‘혼밥’이니 ‘혼술’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술을 마시는 세태의 풍속을 말한다. 나는 술을 즐기지 못하여 혼술은 해본 적 없지만, 자주 혼밥을 먹는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렴한 분식집에서 혼밥을 먹는다. 그럴 때마다 외롭다기보다는 아주 편안하고 고즈넉하다는 생각을 한다. 여럿이 먹으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건만, 혼자서 밥을 먹는 일도 세간의 감상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것만은 결코 아니다.서울 대학로에는 ‘독일주택(?一酒?)’이라는, 재미있게 작명을 한 집이 있는데 ‘홀로 한 잔의 술을 마신다’는 뜻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1인 가구 급증의 시대에 이러한 풍경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혼자 오는 사람을 위한...

    1149호2015.10.26 17:21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악상 기호로 가득찬 말러의 오선지
    악상 기호로 가득찬 말러의 오선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수많은 음악가들이 왜 얼굴을 찡그리며 바이올린 활을 긋고, 아기를 어루만지듯이 건반을 쓰다듬고, 포효하듯이 양팔을 허공으로 쫙쫙 펼치며 지휘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만약 당신이 노래를 한 곡 부른다고 치자. 음악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몇 마디 얻어들은 것이 있어서 오선지에 특정한 기호나 글자가 있으면 ‘이게 뭘까?’ 한 번은 생각해보고, 모르면 물어보고 검색도 해볼 것이다. 통칭하여 악상 기호라고 하는데, 그 종류로 줄임표, 쉼표, 꾸밈음, 셈여림표, 빠르기말, 나타냄말 등이 있다.줄임표는 말 그대로 반복되는 구간을 표시하여 제한된 악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도돌이표나 다 카포(맨 처음으로)가 해당된다. 셈여림표는 해당 음표의 강약을 표시하는 것으로, 낮거나 높은 소리가 아니라 그 음정의 세기를 ‘강하게’(f, 포르테) 혹은 ‘약하게’(p, 피아노) 연주하라는 표시다. 이 ‘f’와 ‘p’의 사이, 그리고 그 양편으로 ‘fff’(매우 강...

    1148호2015.10.19 18:21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텅 빈 곡’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
    ‘텅 빈 곡’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

    50대 후반의 브람스는 병고에 시달리는 클라라에 대한 연민과 그 자신의 삶에 대한 지독한 복기에 의하여, 병적이라고 할 만큼 그 음악적 색채가 우울하게 드리워지곤 했다.아, 가을이라, 텅 빈 곳을 보고 싶다.텅 빈 곳? 그런 곳이 있는가? ‘찰~칵’ 하는 그 셔터 시간을 몇 시간씩 확장해버리는 사진작가 김아타의 과감한 실험작처럼, 이 대도시의 모든 생명체가 그 ‘찰’과 ‘칵’ 사이의 시간으로 들어왔다가 모두들 사라져버리고, ‘찰’과 ‘칵’의 그 긴 시간 동안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아스팔트, 가로등, 콘크리트 빌딩만 남겨 버리는 김아타의 의도된 왜곡이 아니라 실제로 텅 빈 곳 말이다. 이를테면 화천의 파로호가 그렇다.파로호는 1943년 일제강점기 화천수력발전소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원래 이름은 화천호였다. 화천 지역의 호수이므로 화천호로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 즉 중국 군인 3만여...

    1147호2015.10.12 17:05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비 내리는 날 정동길 ‘광화문 연가’
    비 내리는 날 정동길 ‘광화문 연가’

    종로, 대학로, 신촌. 이러한 지명들이 즉각적으로 환기시켜 주는 기억들을 어루만져 보면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회한’에 잠기게 된다. 1970~80년대를 서울에서 보낸 사람들의 집합적인 정서다.비가 내리고, 또 찬바람이 부는 날, 정동길을 걸었다. 뉴스를 보다가 날씨 예보가 나오면 다른 채널로 돌리기까지 하는 사람이라 일부러 비바람 부는 날을 택해 덕수궁 쪽으로 나간 것은 아니다. 우산도 안 들고 회의를 하러 시내에 나갔다가 잠시 비를 피해야 했고, 비싼 주차요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외진 곳에 차를 세워두는 바람에 세찬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렇게 시월의 첫날, 정동길을 걸었다. 추석 연휴 직후의 쌀쌀한 날씨, 비에 젖은 정동길, 그 아래로 오래된 교회가 보였다.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이문세가 부른, 이영훈의 아름다운 노래 가 생각났다. 아닌 게 아니라 정동길의 돌고 도는 로터리에는 이영훈의 노래비도 세워져 있다.이제 모두 세월 따라흔적도 없이 변하였...

    1146호2015.10.05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