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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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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캠퍼스에서 떠오른 송창식의 ‘날이 갈수록’
    캠퍼스에서 떠오른 송창식의 ‘날이 갈수록’

    하길종 감독의 걸작 에 수록된 곡으로 더 애틋하다. 영화의 막바지는 그 무렵의 청년들이 극단의 허무와 고립과 좌절을 다소 낭만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비극성으로 그려낸다.중간고사 기간이다. 비좁은 강의실에 학생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평소 수업 때는 빈 자리가 그래도 열댓 정도는 보였는데, 거의 꽉 차서 아직 봄인데도 젊은 친구들이 뿜어내는 훈기가 강렬하다. 그래도 시험이라고, 아니 토플이나 토익은 두 번 세 번 다시 쳐서 점수를 올릴 수 있지만, 한 번 매겨지면 평생 따라다니는 학점 걱정 때문에 남은 자리를 다 채운 녀석들마저도 반갑다.아이들은 칠판에 제시된 문제를 궁리하여 쓰느라 여념이 없고, 나는 머리를 책상에 콱 처박고 뭐라도 한 글자 더 쓰려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마음으로는 지긋이 정성껏 바라보는 것인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커닝이라도 하지 않나 하고 감시하는 그런 시선으로 여겨질 것이다. 아이들의 글씨 쓰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그러나 상당한 리듬감을 갖고 들려오는...

    1175호2016.05.03 11:4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재즈는 흑인들의 한이 서린 음악이라고?
    재즈는 흑인들의 한이 서린 음악이라고?

    가난하였으나 다들 못 배운 것은 아니고, 정통 클래식 화성에 개별 악기 연주의 극한까지 섭렵한 자들이 그 무기로 차별과 억압의 한복판에서 보편의 예술적 경지와 진정한 자유의 세계를 추구한 것이 재즈다.재즈에 대한 통속적인 오해의 하나는 격렬한 육체성의 음악을 토해내는 재즈 뮤지션들이 음악 이론에는 다소 무지하고 대체로 흑인 특유의 리듬 감각을 바탕으로 그들의 인종적 울분을 원시적인 에너지로 토해낸다는 식의 거친 인식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좀 더 확대해 보면, 재즈 뮤지션들은 가난하게 태어나고 결손가정에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성장하여 거리 또는 교도소에서 우연히 악기를 익히게 되어 그 길로 곧장 야생적인 힘으로 음악의 길을 걷다가 술과 마약에 휘말려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식의 상투적인 연상이 이어진다.물론 루이 암스트롱은 1901년 뉴올리언스의 홍등가에서 태어났고 유년 시절부터 술집에서 일을 하면서 음악을 익혔다. 아버지는 루이 암스트롱이 아주 어렸을 때 제대...

    1174호2016.04.25 18:08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무겁고 힘겨웠던 세월호 ‘약속 콘서트’
    무겁고 힘겨웠던 세월호 ‘약속 콘서트’

    노래를 잘 부른다고 열렬히 환호를 하는 무대도 아니고 환호가 없다 해서 더 열창을 하는 퍼포먼스를 할 수도 없는, 노래하는 이나 이를 듣는 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볼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선거 다음날, 마침 그 도시에 일이 있어 약속된 일을 다한 후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곳을 다시 가보았다. 세 번쯤 그곳에 갔었고, 또 이렇게 걸음을 하게 되어 서너 차례 가게 되었는데, 갈 때마다 그곳을 내리누르는 무거운 공기를 좀처럼 이겨내기 힘들었다.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평일의 한낮이라 찾는 이가 많지는 않아서 흐린 날씨의 공기는 더욱 무거웠다. 분향소에 이르는 입구를 들어서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설치 조형물이 먼저 보였다. 경기도미술관이 참사 2주기를 맞아 준비한 ‘사월의 동행전’의 일환으로 설치된 최정화 작가의 ‘숨 쉬는 꽃’이다. 이를 비롯하여 많은 작가들이 이 전시회에 참여한다. ‘동행하다’, ‘기억하다’, ‘기록하다’는 주제 아래 22명의...

    1173호2016.04.18 15:46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동백꽃 앞에서 떠오른 ‘님은 먼 곳에’
    동백꽃 앞에서 떠오른 ‘님은 먼 곳에’

    첫 순간에 귀를 번쩍 뜨이게 한 노래는 박정현과 거미의 노래였다.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목소리로 두 가수는 노래의 첫 소절부터 사랑한다는 말 그 한마디를 못하고 아득하게 멀어져간 별리의 애틋함을 들려준다.친구가 제주도에 왔으니 유채꽃을 보고 가라고 해서 바다 쪽으로 향하던 차를 잠시 돌려 큰 항공사가 대대적으로 조성했다는 중산간의 유채꽃길로 달려가 보았는데, 너무 장관이라서 되돌아 내려왔다. 무려 9㎞. 흐드러진 꽃과 수많은 인파들, 물끄러미 보다가 내려왔다. 너무 큰 것, 너무 많은 것, 너무 압도적인 것은 감당하기가 어렵다.강의 차 내려왔다가 오전의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그래도 제주도에 왔으니 한숨은 돌리고 올라가자는 생각으로 서귀포의 남쪽 강정마을 쪽으로 선회해 보았다. 이미 완공 단계로 접어든 해군기지와 크루즈 터미널 공사 현장으로 나 있는 작은 길들마다 몇 해 동안 이 마을 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힘겨운 나날의 상흔들이 남아 있었다. 강력하게 조성된 ...

    1172호2016.04.11 17:20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서서히 종막을 고하는 LP 문화·CD 문화
    서서히 종막을 고하는 LP 문화·CD 문화

    1960년대 고졸한 음악감상실의 바흐, 1980년대 열혈 수집광들의 베토벤, 1990년대 세기말의 말러 열풍 등은 모두 우리의 문화 현상이다. 그러나 LP나 CD를 이용하는 음악 듣기는 점점 사멸하고 있다.며칠 전, 아직 본격적인 황사는 밀려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야를 잔뜩 흐리게 한 미세먼지들이 분분한 가운데 잠시 틈이 나서 내 사는 도시의 큼직한 ‘중고책방’에 가보았다. 어느 인터넷서점이 신규사업으로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이 책방의 이름이 ‘헌책방’이 아니라 ‘중고책방’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헌책’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오래된, 먼지 묻은, 퇴락한, 비좁은’ 등의 이미지 대신 ‘중고’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얼마든지 읽을 수 있고 장식도 할 수 있는, 새 책에 가까운 그런 책들을 집산했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내 사는 도시의 ‘중고책방’은 이 인터넷서점이 운영하는 전국의 ‘중고책방’ 중에서도 가장 크고, 실내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흡사 어느...

    1171호2016.04.05 14:55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브람스 대신 벨라 바르톡을 듣는 이유
    브람스 대신 벨라 바르톡을 듣는 이유

    브람스의 후세대 음악가인 벨라 바르톡은 동유럽 일대를 샅샅이 돌아다녔고, 채집했고, 그를 바탕으로 작곡을 하였으니, 그 결실은 주류 음악 문화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충격적인, 신선한 음악이 되었다.이렇게 시작하면 젊은 독자들은 “아, 이 양반 ‘개저씨’에 ‘꼰대’구나”라고 할지 모르나, 내 삶의 작은 축복은 소백산 깊은 산중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려서 마음만 먹으면 아침 먹고 갔다가 점심 때 올라올 수 있을 정도지만, 나 태어나던 때의 풍기읍 순흥면 태장리는 산촌이었다. 이 마을에 슬레이트 지붕이나 전기가 들어온 게 초등학교 2학년 때였고, 이듬해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 한 줌의 유년의 기억 속에 책보, 호롱불, 초가, 깡보리밥 같은 고색창연한 흔적이 묻어 있다. 성장하여 서울 도회지를 배회하며 살게 되었고, 도시의 인연에 따라 더러 사람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어 그런 자리에서 한가로운 정담을 나누다 보면 의외로 이 같은 장소적 기억이나 ...

    1170호2016.03.29 11:43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라이브 공연’을 신봉했던 클라이버
    ‘라이브 공연’을 신봉했던 클라이버

    실황 연주, ‘라이브 공연’이 갖는 일회적인 엄숙성, 음악당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연주에 집중했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자들까지도 존경하는 지휘자’로 추앙받는 이유다.먼저 원곡을 들려준다. 조지 거쉰의 오페라 , 이 아름다운 연가의 백미인 ‘섬머타임’을 클래식 음반으로 들려준다. 학생들은 19세기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와는 조금 다른 빛깔의 이 노래를 조금은 의아한 표정으로 듣는다.다음, 이 곡들의 변주들을 들려준다. 미국 횡단철도의 소음을 자기 음악의 원재료로 삼았던 조지 거쉰, 그의 시대를 장식했던 스윙재즈, 이 넘실대는 스타일 하면 곧장 떠오르는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피츠제럴드의 ‘섬머타임’이다. 고단한 노동, 슬픈 삶. 그러나 이를 서로 위로하며 견디는 가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었고 어머니는 더없이 아름답고 강물 위로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목화는 풍성하게 자라나는, 한여름밤의 꿈. 안타깝게도 현실은 쓰디쓴 고통이다. 다음으로 이...

    1169호2016.03.21 18:25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드뷔시의 ‘바다’를 들으면 멀미가 난다
    드뷔시의 ‘바다’를 들으면 멀미가 난다

    이 곡을 그는 어떻게 쓰게 되었는가. 아름다운 프랑스 해변, 일렁거리는 파도, 따스하게 비치는 햇살. 이런 풍경을 직접 보고 그 ‘인상’을 오선지로 옮긴 것인가. 천만에, 그렇지 않다.‘명색이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살면서도 나는 피아노를 제대로 치지 못한다. 아니, 동네 피아노 학원의 조무래기 아이들보다도 못 친다. 뭘 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나이가 들어 손이 너무 굳어버렸고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피아노 학원에 가야 하는 아이들보다는 일상이 분주하고 복잡하다, 고 변명을 해보기는 하는데, 사실은 수학적 사고와 응용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음악은 수학이다. 음악은 고도의 감각예술이지만 동시에 엄밀성의 수학적 체계다.조금 얘기를 확대해 보자. 예술가들, 특히 음악가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즉흥적이고 감각적이고 흥분 잘하고 감정에 치우치는 모습이다.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갑자기 격렬하게 연주를 하거나 오선지에 휘...

    1168호2016.03.15 13:41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소름’ 돋는 곡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소름’ 돋는 곡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교황청에서 이 곡만큼은 널리 유포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시스티나 성당에만 한정해야 한다고 했고, 훗날에 모차르트가 이곳을 방문하였다가 잠깐 한 번 듣고는 그대로 암기하여 나중에 악보로 옮겼다.종교음악을 ‘종교음악’으로만 들어서는 곤란하다. 오늘날의 일상 문화로 정착한 것에 한정하여 말한다면, 인류의 수많은 종교음악 중에서 ‘도시일상 음악문화’로 정착한 것은 서양의 기독교 음악인데, 이를 ‘교회음악’으로 한정하여 듣게 되면 인류의 문화유산 절반을 좁은 항아리 안에 넣어두는 격이다. 개인의 신앙 여부와 상관없이 서양의 클래식 문화, 그 역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종교음악은 ‘기독교 음악’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제의와 열망 속에 담긴 당대 사람들의 집합적 의지와 내면의 풍경이라고 봐야 한다. 지극한 슬픔으로 가득차 있는 페르콜레지의 ‘슬픔의 성모(Stabat Mater)’ 같은 곡은 특정 종교 여부를 떠나서, 심지어 무신론자조차도 죽음의 참담함과 삶의 엄숙함을 느끼게 된다. 예술의...

    1167호2016.03.08 11:3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차마 끝까지 듣지 못한  ‘세월호 추모곡’
    차마 끝까지 듣지 못한 ‘세월호 추모곡’

    비극 직후에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제주도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추모하는 연주회를 했다. 그 영상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성악가 147명이 추모곡 ‘내 영혼 바람되어’를 부른 영상도, 먹먹하다.그곳에 이르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인터넷의 지도 서비스로 살펴보니 어지간하면 금세 도착할 듯싶었다. 늘 길 위에서 살았고, 나름 길 찾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터였으므로, 해 저물기 전에는 찾지 않을까 싶었는데, 진짜 해가 떨어질 무렵에야 찾았다.성수대교참사희생자위령탑!이 장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위치상으로는 ‘성수대교 북단’이다. 그런데 이 성수대교 북단은 곧바로 질주하게 되는 고산자로와 비스듬히 끼어 들어와 질주하게 되는 동부간선도로,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북강변도로와 서울숲을 스치면서 용비교로 넘어가는 도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이 장소가 추모의 장소로 정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추측컨대, 비록 접근하기 어렵다 ...

    1166호2016.02.29 1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