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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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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바흐의 ‘마태수난곡’ 제대로 다시 듣기
    바흐의 ‘마태수난곡’ 제대로 다시 듣기

    서른이 넘어서야 을 제대로 다시 듣기 시작했다고 할까. 그것은 문자로 된 고전들을 30대에 이르러 다시 읽으면서 ‘아!’ 하고 격렬한 뉘우침에 빠져드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고대 그리스 도시 테베. 오이디푸스는 비운의 신탁을 받게 된다. ‘장차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를 범하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부모는 아이를 버리게 되는데, 코린토스의 왕가에서 자라게 된다. 훗날 오이디푸스는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공포의 괴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해결하여 테베를 구해내는 영웅이 되었으나, 바로 그 전후의 사건들에 의하여 결국 신탁이 예언한 비극의 길을 가게 된다. 황야에서 만난 자를 죽였는데 그가 아버지이고, 테베로 입성하여 권력에 착좌하였는데 이로써 어머니까지 취하게 된 것이다. 비극의 합창단이 이 자의 운명을 노래한다.“죽음의 수수께끼를 풀고 / 이를 데 없는 권세를 누린 사람 / 온 도시 사람들이 그 행운을 부러워했건만 아, 이제는 저토록 격렬한 풍파에 묻히고 말았도다....

    1185호2016.07.11 16:02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우리가 사는 도시 그곳의 고통을 노래하라
    우리가 사는 도시 그곳의 고통을 노래하라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히, 존 애덤스 같은 미국의 현대 음악가들 작품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어떤 불편함? 미묘한 아쉬움? 그런 것을 이번에 을 읽으며 떠올렸다.서푼어치 허명에 들뜨지 않고, 가급적 숨어 지내며, 읽고 싶은 책 듣고 싶은 음악에 사무쳐 사는 것을 언제나 바라건만, 바로 그 이유, 즉 읽거나 들은 것에 대하여 글을 쓰다 보니, 이따금 미디어에 몇 마디 하는 일도 있다. 녹음되어 들리는 제 목소리나 녹화되어 몇 발자국 앞에서 보이는 제 모습은 낯설다. 탁한 공기에 뒤섞여 들리듯 어색하고 큼직한 텔레비전 화면에 클로즈업된 얼굴이 서투른 자가 빚은 플라스틱 조형물 같다.더 난감한 것은 내가 일부러 강조하며 말한 부분 대신 제작자들이 다른 관점에서 내 말의 다른 부분을 선택하였을 때다. 내 말이 그 이전과 이후에 이어지는 다른 화면들과 겹쳐지면서 다소 맥락이 흔들리기 때문이다.아주 오래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벌써 20년 전쯤, 1996년에 ‘서태지와 ...

    1184호2016.07.04 17:0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참화의 드레스덴을 지킨 쉬츠의 음악
    참화의 드레스덴을 지킨 쉬츠의 음악

    30년전쟁이 시작하는 시기에 드레스덴 궁정음악과 교회음악을 맡았던 쉬츠는, 한 번 들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거룩하면서도 간절한 기도의 음악을 작곡하여 전쟁의 참화로 무덤이 되어버린 도시들을 위로했다.고개를 돌리자, 바로크 시대였다.2006년의 기억이다.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경기장은 프랑크푸르트. 그러나 숙소가 부족하여 내가 묵을 곳은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드레스덴이었다. 깊은 밤에 드레스덴에 도착하였으므로 그 도시는 흡사 구동독 시절의 획일적인 시설물들을 보여주었는데, 다음날 조금은 한가로운 시간이라서 도시를 둘러보는 동안 2만5000개의 마이센 자기 타일로 된 길이 102m, 높이 8m의 장대한 ‘군주들의 행렬’ 타일 벽화를 지나는 순간, 갑자기 드레스덴은 300여년 전의 바로크 시대로 회귀해 버렸다.사방에서 들려올 듯한 바로크 협주곡절대왕정 시기, 바로크식 도시 설계의 상징으로 꼽히는 츠빙거 궁전을 중심으로 해 마치 바로크 시대...

    1183호2016.06.27 15:23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내 사랑하는 거미는 왜 무릎을 꿇었나
    내 사랑하는 거미는 왜 무릎을 꿇었나

    가수 경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 상대를 이기기 위하여 ‘어른아이’와 ‘기억상실’을 불렀던 거미가 상투적인 의상에 진부한 몸놀림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씁쓸한 것이었다.거미가 무릎을 꿇었다. 지난 15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의 한 장면이다. 보다가 깜짝 놀랐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만화가 김성모의 유명한 선언. 즉 ‘내가 무릎을 꿇는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지’ 하는 절묘한 반전이 아니고서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행동이다.물론 거미가 무릎을 꿇은 것은 어떤 굴복도 모욕도 아니고, 그야말로 ‘신의 목소리’ 수준에 도달한 가수들이 이른바 ‘가창력’을 경연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날 출연한 가수 윤도현의 표현대로 ‘미국 록’을 소화하기 위한 퍼포먼스의 일환이었다.거미는 왜 무릎을 꿇었던가. 노래 잘하는 32세의 아마추어 김혜란과 ‘경쟁’을 펼치는 과정에서 한 선택이었다. 한때 가수로도 활동했던 김혜란은 거미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1182호2016.06.20 16:5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박찬욱의 와 바흐의 푸가 양식
    박찬욱의 <아가씨>와 바흐의 푸가 양식

    4분도 채 안 되는 소품에서도 바흐는 4개의 길을 엇갈리며 서로 닮아가는 푸가의 비범한 변주를 보여주는데, 박찬욱 감독의 를 음악에 오버랩한다면 푸가의 진행이라고 할 만하다.박찬욱 감독의 영화 를 봤다. 같이 본 사람이 말했다. “이젠 좀 정상적인 사람들이 나오는, 정상적인 영화를 보고 싶다.” 그 순간은 동의했다. 새봄에 본 새 영화들은 다 일그러지고 파탄 나는 영화들이었다.나는 박찬욱 감독이 흩뿌려놓은 이미지와 대사들 중에서 그가 여러 편의 자기 영화에서 반복하는 말, 즉 ‘이야기’에 관한 단서를 찾고자 했다. 는, 이제야 아 그런가 하고 깨닫게 된 독자도 있겠지만, 늙은 ‘제니’가 이제는 죽어버린 자기 엄마 ‘이금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조다. 이야기! 그렇다. 그래서 이야기가 파편적이고 플래시백의 연속이고 툭 툭 끊어진다.그 영화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성우 김세원의 목소리다. 이에 대하여 영화평론가 정성일과 대담을 하면서 박찬욱 감독은 “금자...

    1181호2016.06.14 10:31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인디언수니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인디언수니

    부르되, 낮고 느리게 부른다. 팔을 힘주어 내뻗기보다는 가만히, 가만히, 가만히 부른다. 듣다 보면, 기필코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르겠다는 힘이 거부할 수 없는 밀물의 힘으로 스며든다.1995년에 결혼을 하고 신혼의 작은 집을 서울 강북의 북한산 아래에 장만하여 살았는데, 그 무렵에는 동네마다 작은 서점들이 있었다. 한 그루 나무 같은 곳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우이동 깊숙한 골짜기에 있던 글목서점이다.동네의 작은 서점이 그렇듯이 참고서도 팔고 인기 있는 책들도 파는 곳이었는데, 문학과 사회과학 책들도 많아서 일부러 찾아가곤 했다. 실은 그 서점의 여주인이 오목도 잘 두고 바둑도 잘 둬서 한 수 배우러 가기도 했고, 또 사실은 지금은 문단과 거리를 멀리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손경목 선배가 있어서 함께 문학?은 아니고, 그 무렵부터 서서히 유입되기 시작한 저 서유럽의 강력한 문화, 즉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축구경기를 함께 보고 함께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 때문...

    1180호2016.06.07 17:06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한강과 브람스의 작품은 닮아 있다
    한강과 브람스의 작품은 닮아 있다

    만약 ‘채식주의자’가 영화로 제작된다면, 과연 그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기존의 음악들 중에서 내 임의로 한 곡을 정해본다면 단언컨대 브람스의 유서 같은 작품, ‘클라리넷 5중주’다.솔직히 말하여, 세 편으로 구성된 가 10여년 전에 연재될 때는 다 찾아 읽지는 못하였고, 그 중 두 번째 이야기인 ‘몽고반점’이 그 무렵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게 돼 일독을 하였으나 이번에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하자 다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만약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면, 과연 그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생각해 보았다.지난번 칼럼에 쓴 영화 의 음악감독 ‘장영규/달파란’이라면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하는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19쪽) 같은 문장을 그로테스크한 울음소리로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 등의 영화음악을 맡은 원일도 같은 맥락에서 떠올릴 수 있다.둘이 같이 있어도 외롭기만 한 고독...

    1179호2016.05.30 17:5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영화 ‘곡성’을 심연으로 몰아넣는 음악
    영화 ‘곡성’을 심연으로 몰아넣는 음악

    이 모든 무속의 음악들을 정돈하되 과감히 흔들리게 하면서 그 앞과 뒤로 둔중하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영규/달파란’의 음악이 스크린의 나약한 인간들을 한없는 심연 속으로 몰아넣는다.영화 을 봤다. 다들 너무 무섭다고, 잔인하다고, 두 눈 질끈 감게 된다고 해서 나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봤는데, 더러 잔인하고 구역질 나는 장면이 있는 정도였고, 그저 마음만 단단히 먹는 정도로도 충분히 볼 만한 영화였다.그렇다고, 잔인하지 않고 무섭지 않으니 기대 이하라는 얘기인가. 그렇지는 않다. 영화는 다른 장르의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그렇듯이 열린 텍스트다. 감독이 어떤 장면을 특히 강조하여 찍었다 해서 관람객 모두가 바로 그 시간에 몸을 움찔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이 일종의 브리지 숏으로 이 시퀀스와 저 시퀀스를 부드럽게 잇기 위하여 살짝 집어넣은 기술적인 짧은 한 커트에서도 어떤 관객의 심장은 잠시 강직될 수도 있다.남도의 여러 곳을 나름대로 돌아다니면서, 곡성 ...

    1178호2016.05.23 16:07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깊은 밤 물금에서 듣는 송대관의 ‘네박자’
    깊은 밤 물금에서 듣는 송대관의 ‘네박자’

    아마도 매정하게 인연을 끊을 정도는 아니고, 낮에 뭔가 오해가 있어 서로 마음을 조금만 풀면 또 하염없이 동반하여 살아갈 듯한 관계인 듯, 그는 송대관의 ‘네박자’를 핸드폰에 입을 대고 열심히 불렀다.물금!깊은 밤에 큰 도시 양산으로 가기 위하여 물금에서 내렸다. 역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살펴보니 10분 후에 한 대가 도착할 예정이라고 첨단의 정보시스템이 일러준다. 10분이면 적절한 시간이다. 3분이거나 30분이면 마음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질 텐데, 10분이면 담배 한 대 피면서 잠시 어둠 속의 물금을 응시할 만한 시간이다. 그런 마음으로 버스정류장에서 조금 벗어났는데, 깊은 밤이라 아무도 없음에도 정류장 근처는 금연구역이라는 작금의 사태에 어느덧 몸이 적응된 것이리라.물금이라, 한자로 勿禁이라고 쓴다. 낙동강이 펑퍼짐하게 넓어지는 곳이라 옛날에는 포구의 기능도 하였고, 때로 홍수로 범람하면 생계의 지장도 많아서 ‘물이 지겨워서 물금’이라는 유래도 있지만,...

    1177호2016.05.16 15:41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굴드의 바흐를 들으면, 굴드만 들린다
    굴드의 바흐를 들으면, 굴드만 들린다

    바흐는 냉정하게 말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선지 위의 음표만 남겼다. 베토벤도 직접 녹음을 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렇다면 ‘바흐처럼, 베토벤에 가깝게, 쇼팽이 연주하듯이’라는 말은 공허한 상상일지 모른다.며칠 전, 같은 동네에 사는 ‘페친’이자 이따금 책과 관련된 일로 만나기도 하는 실력파 번역가 노승영씨가 영화 의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글렌 굴드는 괴팍하다”는 대사를 특히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그 글에 여러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굴드는 괴팍하다’는 말이 단서가 되어 저마다의 단평이 이어졌는데, 대체로 ‘굴드의 바흐를 들으면 바흐를 듣기보다 굴드를 듣는 느낌이다’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소감은 노승영씨가 인용한 영화의 대사이기도 하다.나도 댓글을 달았다. “김우창 선생님도 굴드는 쫌 ‘이상하게 친다’고 하셨죠.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드는 ‘바로 그 점이 굴드다!’ 하면서 모든 것이 소외되고 인간도 소외되고 따라서 예술도 소외되는 시대에 스...

    1176호2016.05.10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