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 전체 기사 120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악의 평범성’은 교활한 면죄부 아닐까
    ‘악의 평범성’은 교활한 면죄부 아닐까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김기춘 같은 사람들이 ‘범죄인 줄 몰랐다’거나 심지어 김문수는 ‘행정에서는 다 하는 일’이라고 하는, 질기고도 질긴 악의 상투적이고 진부한 역사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끔찍한 전율을 느낀다.1962년 5월 31일, 교수형에 처해진 사체가 화장돼 지중해의 이스라엘 수역 밖으로 뿌려졌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그렇다. ‘악의 평범성’으로 잘 알려진 인물,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이 나라 엘리트 공무원들을 향해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곧잘 쓰이고 있는 바로 그 용어의 주인공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은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처음 사용했다. 권력과 주권과 저항과 전체주의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바탕으로 해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 전체를 취재한 저서 의 끝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교수대 위에서 행한 마지막 발언을 정리한 후, 이렇게 쓴다.“이는 마치 이 마지막...

    1215호2017.02.21 10:56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노이만의 말러와 임헌정의 말러는 같을까
    노이만의 말러와 임헌정의 말러는 같을까

    하긴 말러 자신도 스스로의 역사적 경로, 문화적 기억, 복잡한 감수성을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2번’ 교향곡 같은 불가해한 비극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구약성서의 대표적인 인물로 다윗이 있다. 모세, 아브라함, 야곱 등 수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다윗은 유럽의 기독교 문화에 다양하고 복합적인, 때로는 이율배반적인 상상과 기도와 회개의 원천이 되는 인물이다.‘성 금요일’, 즉 예수가 혹독한 심판과 고난을 받고 십자가 위에서 거룩하지만 참담하게 죽어간 인류사적 순간을 기독교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깊은 참회와 거룩한 기도의 순간으로 삼아왔다. 그로부터 사흘 뒤의 부활절 미사도 엄수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예수의 죽음의 순간에 치르는 ‘성 금요일’의 전례야말로 가장 신실한 종교적 열망의 순간이다.이를 위해 수많은 음악가들이 거룩한 음악을 오랫동안 만들어왔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로마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음악을 익히고 로마의 거룩한 성당에서 평생 헌신한 알레...

    1214호2017.02.14 10:1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머릿속으로, 목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빗소리
    머릿속으로, 목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빗소리

    작가 최인훈 소설에 등장하는 ‘빗소리’는 자기 삶의 일그러지고 바스라진 기억의 무늬를 쓰다듬는, 무념인 듯하면서도 실은 자기 삶을 천천히 복기하는, 그런 생각의 골짜기에 흐르는 음악인 것이다.무슨 일로 오랜만에 최인훈의 을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만났다. 하면 분단문학, 지식인 문학, 고도의 사유가 응축된 문학으로 이미 학계를 넘어 고등학생 필독서에 수능 단골 출제 지문으로 된 책이려니와 나로서도 두세 번은 정독하고 열댓 번은 훑어본 책이지만, 역시 조건과 상황과 시간이 달라지면 또 다르게 읽혀지는 것이 명작이요 고전이 아닌가 한다.이번에 흥미를 느낀 부분은 소설의 앞부분, 주인공 이명준의 대학시절 풍경이다. 예전에는 전쟁 시기의 극심한 이념 혼란 및 남과 북, 그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던 지식인 이명준에 관심이 갔는데, 이번에 다시 살펴보면서 철학과 3학년생 이명준이 전쟁 직전의 남한 서울에서 겪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사회의 천박한 스노비즘이...

    1213호2017.02.06 17:45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신영복 추모식, 차마 다 못 부른 ‘시냇물’
    신영복 추모식, 차마 다 못 부른 ‘시냇물’

    누군가가 노래 하나씩 하자고 해서 신영복의 차례까지 오게 되는데 한사코 사양하다가 어쩔 수 없이 노래를 하게 된다. 감옥살이 20년간 만기 출소하는 사람을 위해 그가 부른 노래는 동요 ‘시냇물’이다.나는 노래를 잘 못한다. 이것이 일차적인 문제다. 인생의 걱정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낫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잘 못하면서 자꾸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분위기는 잘 띄운다. 안 가본 지 10년도 더 넘었지만, 옛날의 회식이나 음주 풍습에 따라 2차로 노래방에 가자면 못 이기는 척하고 일어나고, 에라 모르겠다, 메들리로 몇 곡씩 불렀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 중간에 끊었다.음악을 집중적으로 들으면서 산 지 어언 30여년이 넘는다. 그저 어디선가 들려오는 공기의 흔들림을 듣는 게 아니라, 집중적으로 찾아서 듣고, 모아서 듣고, 골라서 들은 지 30여년. 그러다보니 그동안 들은 음악들이 몸속에 배어 있어서 그 음악들이 스스로 새어나오는 수가 있다. 연구...

    1212호2017.01.24 15:26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즉흥! 재즈의 본령! 키스 자렛!
    즉흥! 재즈의 본령! 키스 자렛!

    우리는 연주가 불가능할 것 같은 뵈젠도르퍼에 앉아 공연을 한 키스 자렛과 이를 명반으로 녹음한 만드레드 아이허는 물론 어렵사리 피아노를 구하려다 실패한 소년 에릭에게도 감사를 드려야 한다.2017년도 대학수능시험 영어 문제에서 재즈팬으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지문이 출제되었다. 재즈는 몰라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은 맞힐 수 있는 그런 문제였다. 재즈 음반에 얽힌 예화를 순서를 뒤섞어 출제하고 이를 원래 순서대로 배열하라는 문제였다. 출제자들이 섞어 놓은 사례를 정답대로 배열하여 축약하면 이런 얘기다.1975년 독일 쾰른. 17세 소년 에릭 브란데스는 쾰른 오페라하우스의 공연기획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젊은 공연기획자는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단독공연을 준비하였고, 정통 클래식 전문 공연장인 오페라하우스는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공연 당일 오후, 이 젊은 기획자가 키스 자렛과 그의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에게 저녁에 연주할 피아노를 보여줬다. 두 사람은 ...

    1211호2017.01.16 18:08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대가와 거장들의 진정한 상상력과 독창성의 세계
    대가와 거장들의 진정한 상상력과 독창성의 세계

    특정한 학문 분야에서 놀라운 위업을 이룬 거장들은, 때로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한두 마디 쓰고는 하는데, 그런 문장을 만날 때는, 그 분야에 대해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읽어오고 생각해 온 궁리의 이력들을 새삼 돌이켜보게 만든다.책을 읽다 보면, 특히 대가들이나 거장들이 쓴 책 중에서도 그 대가와 거장들이 스스로의 삶을 정리한 책을 읽다 보면, 따로 주석이나 독후의 감정을 달 것도 없이 그냥 그 문장 그대로 옮겨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다. 홉스봄의 자서전이다. 그 중 이런 대목은 이 겨울을 광화문광장에서 보낸 사람들이라면 금세 공감할 것이다.“육체적 경험과 맹렬한 격정이 가장 깊이 맞물린 활동은 누가 뭐래도 섹스겠지만 그 다음 가는 것은 바로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대중 시위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결국 개별적으로 경험하는 섹스와는 달리 대중 시위는 집단적 성격을 가지며 적어도 남자의 경우에는 순간으로 끝...

    1210호2017.01.09 18:10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눈! 이렇게 말할 때마다 떠오르는 음반이 있다
    눈! 이렇게 말할 때마다 떠오르는 음반이 있다

    조지 윈스턴의 . 이 음반에는 ‘눈!’이라고 할 때처럼, 느낌표를 하나 붙여줘야 된다. , 이렇게 말이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동안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음반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연말의 어느 해 밤에 아주 조금 눈이 내렸다. 새벽 내내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간 덕분인지 아침에 운전을 하려고 보니 차창들마다 하얀 눈이 얇게나마 덮여 있었다. 굳이 뜨거운 물을 들이붓는 수고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바로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기에는 조금 불편했다. 마침 뒷좌석에 종이 쇼핑백이 하나 있어 그것을 반듯하게 펴서는 앞 유리창의 눈들을 치우려고 하는데, 꼬마 아이 두 명이 뛰어왔다.“아저씨, 그 눈 우리 주세요.”“……눈?”“예, 그 눈, 주세요.”눈을? 눈을 달라고? 아이들은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 눈이 들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차창의 눈을 종이 쇼핑백으로 곱게 쓸어서 아이들의 비닐봉지 안으로 밀...

    1209호2017.01.03 11:26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나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풍경 있었네
    나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풍경 있었네

    ‘산의 섬’ 강화도. 일렬종대로 늘어선 산에서, 갑자기 새떼들이 활개를 치면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일순간에 내려치는 교향악의 팀파니 주자 같은 힘을 느끼게 된다.한 해 동안, 이 귀한 지면을 통해 음악에 대하여 글을 썼지만, 이번에는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이 있는 풍경, 음악이 들리는 풍경, 그러니까 음악이 없어도 음악적 깊이가 저며드는 풍경에 대해 쓰고 싶다.그런 풍경들이 있다. 음악이 전혀 들리지 않아도 눈앞의 정경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풍경 말이다. 풍경들 속에 이미 음악이 깃들어 있다가 잠시 스쳐가는 바람이며 햇살 때문에 슬며시 풍경 속에서 빠져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음악 이전의 음악, 소리 이전의 소리를 들려주는 원초적인 상태의 풍경들이 있다.이 풍경들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음악을 자아내는 풍경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 밋밋한 들판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음악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슴을 쥐어뜯게...

    1208호2016.12.26 17:47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레게의 저항의식을 노래한 김반장
    레게의 저항의식을 노래한 김반장

    김반장은 ‘저항의 상품화’, 이를테면 티셔츠에 프린트된 체 게바라의 얼굴이 지닌 모순된 현실을 깊이 생각한다. ‘저항’이 음악적 표지가 되고 아이콘이 되고 급기야 내용 없는 상징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미국 팝 문화 이외의 비서구 사회 음악, 이른바 ‘월드 뮤직’으로 통칭되는 지역의 음악을 듣는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그 첫째는 미국 팝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 몸이 대단히 이채로운 리듬과 이질적인 선율에 휩싸이는 절묘한 감각 반응이다. 미국의 팝 문화, 그리고 그에 크게 영향을 받는 우리의 대중음악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묘하게 뒤틀리는 박자와 절묘하게 엇갈리는 선율들이 놀랍게도 우리 몸을 감싸안는 순간 몸과 마음이 오래전부터 그런 박자와 선율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듯, 미묘하게 일렁거린다. 쿠바의 쏜, 아르헨티나의 탱고, 브라질의 보사노바와 열대주의 등 라틴의 음악들이 특히 그러하다.피로 물든 선율이며 땀에 젖은 박자이 감각적 반응의 뿌리를 더듬다...

    1207호2016.12.19 15:4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김광석의 ‘거리에서’가 이명처럼 들려오는 까닭은?
    김광석의 ‘거리에서’가 이명처럼 들려오는 까닭은?

    이 노래는 여지없이 사랑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자의 청승맞은 소리이건만, 왜 이 지극히 사소한 실연의 노래가 자꾸 떠오른 것일까.올해 가을은 광장에서 다 보냈다. 딱 한 번, 11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무슨 일로 지방에 내려갔다 오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한 주를 건너뛰기는 했으나, 비록 몸은 군산에서 익산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광화문광장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열기는 잠시 광화문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이동해 있는 중이다. 아마도 이번 주말 역시 광화문광장은 어떤 의미로든 활활 타오르는 열기로 가득찰 것이다.꽤 오래전에 김광석의 노래 ‘거리에서’를 좋아했는데, 올해의 차가운 가을에 이 노래가 광화문광장에 어울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강렬한 집합적 열기가 사방에서 불꽃처럼 튀어 오르는 때이므로 김광석의 조금은 청승맞고 조금은 사적인 노래가 광장의 한복판에서 울려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둘씩 켜지...

    1206호2016.12.13 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