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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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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기차에서 듣는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
    기차에서 듣는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

    크게 상심한 자가 한밤중에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급하게 써내려간 일기와 다를 바 없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그런 음악은 울어야만 하는 곡이고, 부다페스트 현악사중주단의 현들은, 특히 바이얼린은, 눈물로 젖어 있는 소리를 냈다.잠결에 바이얼린 소리를 듣는다. 여러 일로 잠이 부족했던 까닭에 더하여 봄볕이 차창을 쓰다듬는 탓에 나주행 KTX에 앉자마자 자주 잠에 빠져들었다.흔들리는 기차에서의 토막잠, 비몽과 사몽의 희미한 틈 사이로 바이얼린 소리가, 또 비올라 소리가, 이윽고 첼로 소리가 스며든다. 기차의 미세한 흔들림에 맞춰 적절히 잇따르는 일렁거리는 현악 소리, 그리고 따스한 봄볕이 잠결을 어루만지고 있었으니 피곤한 몸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중간의 몇 번, 공주라든가 정읍이라든가 익산 등의 정차 안내 방송조차 일정한 리듬을 타기 시작하여, 이윽고 조는 듯 마는 듯 한 끝에 나주역에 내렸다. 그러기를 4월의 목요일마다 네 번을 하면서, 시간으로는 짧지만 거리...

    1225호2017.05.02 14:47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연주하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곡 ‘벡사시옹’
    연주하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곡 ‘벡사시옹’

    에릭 사티의 . 우리말로 ‘짜증’이라는 뜻이다. 듣는 사람은 짜증을 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같은 멜로디를 무려 840번이나 반복하여 14시간 가까이 연주하는 곡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거추장스러운 현대문명의 지나친 장식과 버튼과 기능을 거부하면서 놀랍도록 단순한 기계 미학의 절정을 이룬 스티브 잡스. 아이폰을 설계할 때는 ‘잠금해제’ 버튼마저도 다 없애버리고 살짝 흔들거나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최첨단 기능의 구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다고 한다.그런 잡스도 한때는 애플사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맞춰 입도록 한 적이 있다. 소니사를 방문했다가 그 회사의 직원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애플사에도 이를 적용하려 했는데 자유분방한 사내 분위기를 선호하는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포기했다고 한다. 그 대신 잡스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게 된다. 유니폼 디자인을 두고 그가 상의했던 디자이너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일본 패션을 세계적 수준으로...

    1224호2017.04.25 11:50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천수만 미궁 속에서 듣는 베토벤의 ‘열정’
    천수만 미궁 속에서 듣는 베토벤의 ‘열정’

    차 안 가득히 베토벤의 소나타가 울려 퍼졌다. 광막한 서해안, 바다 안개가 몰려든 천수만, 그 깊고 아득한 곳에서 나는 켐프의 연주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지난주 이 지면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에 대해 썼는데, 음악을 좀 들으면서 살아왔다는 사람들에게 베토벤은 어떤 식으로든 저마다의 감수성 밑바닥에 한웅큼의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내게 그 첫 기억은 베토벤의 초상화다. 그것은 독자들도 이미 여러 곳에서, 여러 삶의 편린에서 몇 번은 보았을 요세프 칼 슈틸러가 그린 것이다. 슈틸러는 독일 마인츠 출신으로 베토벤 전성기에 빈에서 활동한 초상화가다. 루트비히 1세 치하의 바이에른 궁정에서 명암 대비가 뚜렷하고 인물의 내면세계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현존하는 베토벤의 초상화들이 대개 그의 실제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슈틸러의 초상화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 그리고 왕정복고라는 질...

    1223호2017.04.17 18:0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과 ‘템페스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과 ‘템페스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과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안드라스 쉬프의 언급을 단초로 삼아 이해하자면, 무엇보다 19세기 초의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묘사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부제로 ‘템페스트’라고 불린다.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가. 제자 안톤 쉰틀러가 이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자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라”고 했다고 쉰틀러는 베토벤 사후에 기록했다. 이것은 믿을 만한 이야기인가.“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라”베토벤과 연관된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대체로 쉰틀러가 기록한 것인데, 그 대부분이 쉰틀러가 작은 사실을 부풀렸거나 기억을 왜곡했거나 심지어 없는 얘기를 가공하여 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은기의 연구에 따르면 쉰틀러는 베토벤이 죽은 후에 그의 자필 악보, 스케치, 대화 수첩, 편지 등의 유품을 정리한 후 그것을 자신의 재산으로 정리하여 상당...

    1222호2017.04.10 17:32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프로파간다의 소음으로 들려오는 군가
    프로파간다의 소음으로 들려오는 군가

    헌재로부터 탄핵 받고 역시 검찰의 직접수사를 받았으며 결국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구속까지 되었음에도 텔레비전 생중계로는 악에 받친 듯 프로파간다의 소음으로 군가들이 들려온다. 그것이 실로 우울한 것이다.지금은 외부 활동이 뜸하지만 한때는 정통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날카로운 시선과 특유의 일그러진 냉소로 번득이는 비평을 썼던 이재현이 오래 전에 쓴 글이 생각난다. 문화는, 특히 음악, 그 중에서도 노래는 귀로 들려오는 게 아니라 몸으로 스며든다는 것이다.이재현은 이렇게 썼다. 무슨 모임을 끝내고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그 당시 풍습대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아직 술기운이 번지기 전이므로 안치환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가 노래방이라도 가게 되면 술기운에다 노래방 특유의 분위기에 의해 저마다 마음속에 저장해둔 노래를 부르게 된다. 송창식이나 양희은이나 김광석의 노래가 아마도 선택될 것이다. 그렇게 어울려 노래하고 마시고 돌아오다 보면...

    1221호2017.04.03 17:19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내가 음악을 듣는 건지 오디오를 듣는 건지
    내가 음악을 듣는 건지 오디오를 듣는 건지

    “그동안 들어오고 나간 오디오가 집 한 채 값이다, 고급 승용차 값이다 하는 물량 투입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물량 투입으로 반드시 천상의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하며 ‘옆그레이드’를 해온, 일종의 비겁한 변명자에 가깝죠.”“생각보다는 어둡네요”질문자는 그렇게 물었다. 생각보다? 무슨 뜻일까? 나는 손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티팟의 찻물을 작은 잔에 따르다가 잠깐 멈추었다. 생각보다 어둡다니?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낮잠이라도 자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긴 밖은 초봄의 햇살이 운동장을 적시고 있었다.“밝은 거보다는 그저 뭐, 조금은 어두운 게 좋지요.”수천 만원대의 앰프에 스피커는 다섯 개건성으로 대답하며 나는 질문자와 마주앉았다. 비좁은 연구실, 절반을 뚝 잘라서 출입문 쪽으로 작업 테이블을 놓고, 그 나머지를 오디오 세팅을 위한 최소한의 영역으로 남겨 두었다. 질문자는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공간이 좁...

    1220호2017.03.28 14:42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어려서부터 클래식을 들어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들어야 한다고?

    ‘클래식하게 예의를 차리라’는 말은 근세 초기의 집합적 열망을 응축한 바흐나 북구의 한숨 섞인 민족주의를 웅혼히 다룬 시벨리우스가 들었다면 코웃음칠 망언이다. 모든 권위를 거부한 쇤베르크가 들었다면 당장 혼찌검을 내줬을 것이다.“교육이 문제예요. 교육이.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듣고 자라야 되는데, 애들이 게임이다, 만화다, 또 가요나 들으면서 크니까, 인성교육도 안 되고 성정도 거칠어지고, 참 문제예요. 문제.”나는 또 그런 얘긴가 싶으면서도 한편 여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나, 하며 일부러 한숨을 쉬었다. 얘기를 하던 사람은 나의 한숨이 그의 한탄에 대한 응답인 줄 알고 몇 마디를 덧붙였다.“클래식을 듣고 오페라를 감상하고 가곡 하나쯤은 부를 줄 알아야 되죠. 교양 있게 자라야지,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모양인 건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듣지 않아서 그래요.”이런 수준의 얘기를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초면에 어느 정도는 ‘교양’ 있게,...

    1219호2017.03.21 14:44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결정적인 순간에 듣는 ‘페스티나 렌테’
    결정적인 순간에 듣는 ‘페스티나 렌테’

    아보 패르트의 작품 중에 ‘페스티나 렌테’가 있다. 나는 이 곡을 며칠 내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차디찬 겨울을 온전히 광장에 바친 우리가, 이 한반도가, 바야흐로 ‘페스티나 렌테’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달해 있지 아니한가.‘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라는 말이 있다. 라틴어다. 널리 알려진 번역으로는 ‘급할수록 돌아가라’가 있다. 회피하거나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 맞서 초심을 지키면서 이제껏 해온 방식을 찬찬히 살피라는 뜻이다.이보다 더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뜻으로 옮기면 ‘신중한 서두름’이 된다. 삶의 본질적인 물음과 근원적인 통찰을 하는 종교와 철학의 뜻이라고 했지만, 서구의 현실정치에서도 곧잘 쓰일 정도로 범용화된 말이다. 미국의 내전 시기,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저 19세기 중엽의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승리를 하게 되는데, 그 전쟁의 단초와 명분이 됐던 노예 해방의 문제를 언제 어떻게 결행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링컨이 고대의 철인...

    1218호2017.03.14 14:09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콘트라베이스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콘트라베이스

    수십 명의 악단이 동시에 연주를 할 때면 콘트라베이스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몇몇의 악기와 앙상블을 해도 콘트라베이스는 그저 음들의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듯하다.지휘자 임헌정의 손끝이 떨리자마자 무대 오른쪽에서는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순간, 나는 안도했다.교향곡의 실연을 볼 때는, 특히 말러 교향곡을 볼 때는 가급적 공연장의 2층을 선택하곤 했는데 이번 만큼은 가까이 밀착해 여러 악기들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무대에 가까운 자리로 예매를 했다. 중앙은 빈 곳이 없어 우측으로 치우친 쪽을 선택했다. 그런데 막상 예술의전당 음악홀에 들어서고 보니 내 좌석은 지극히 우편향이라 연주자들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음은 물론 무대 앞쪽에 위치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주자들 때문에 말러 교향곡의 꽃봉오리가 되는 관악기 주자들을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아, 이거 참 낭패구나 하는 심정으로 어찌됐든 80분가량 앉아서 듣고는 가야겠다 했는데, ...

    1217호2017.03.06 16:31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실제 공연을 통해 들어야 진가를 안다
    실제 공연을 통해 들어야 진가를 안다

    호소카와의 작품 ‘꽃이 피는 순간’. 2011년 내한한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하머니는 10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곡을 연주하면서, 예술의전당 전체를 한순간에 연꽃이 피어오르는 산사의 연못으로 만들어버렸다.황인숙의 시집 는 시집들이 일제히 기립해 있는 내 서가에서 일찌감치 밖으로 나와 티테이블 위에 무심코 펼쳐 보기 좋은 위치에 한겨울 내내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이 시집 안에 “내가 멍하니 있으면 / 누군가 묻는다 /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 누군가 묻는다 /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라는 ‘알 수 없어’라는 시가 있는데, 시인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종종 그런 순간들에 포박되어 있을 때 틈틈이 펼쳐 있는 티테이블 위의 시집들, 허연이나 손택수나 김혜순이나 문태준 등의 시집들과 더불어 황인숙의 시집도 놓여 있는데, 시집 속의 시 ‘흐린 날’이 며칠 전 눈에 들어왔다.이 세상 몇십 년 살아도내 세상 같지 않다는 얼굴로나이...

    1216호2017.02.27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