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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리랑
  • 전체 기사 41
  • [현대사 아리랑]조선부녀총동맹 부위원장 정칠성
    조선부녀총동맹 부위원장 정칠성

    고통받는 여성들 ‘말을 알아듣는 꽃’“11월혁명 기념일을 이렇게 초라하게 맞는 것은 정말 쓸쓸합니다. ‘짜르’왕조의 철쇄를 끊은 이 빛나는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당시 러시아 여성들이 바친 피와 노력은 참으로 위대하였지요. 우리도 그 무섭고 악착한 지하운동시대에도 이날이 닥쳐오면 어떻게 하던지 동무들끼리 서로 만나서 축하하고 힘을 얻고 하던 것이었는데 해방이 되었다는 이 땅에서도 옛날과 똑같은 마음으로밖엔 이날을 맞이할 수밖엔 없군요.”찾아간 날이 11월혁명 기념일이라 여사는 세련된 경상도 어조로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주 웃는 얼굴이나 이마에 감출 수 없는 주름살은 한없이 험한 풍상을 이야기하는 낡은 나무같이 그러나 튼튼하고 어디까지나 미루나무같이 외로우면서도 자신 있는 인상을 준다. “북조선에서는 성대하게 이날을 기념할 겁니다. 필수과업의 한 가지로 남녀동등권 법안이 실시된 거기서는 몇천 년을 두고 잃어버렸던 여성들의 권리를 도로 찾을 수가 있잖았어요...

    812호2009.02.17 00:00

  • [현대사 아리랑]여맹위원장 유영준
    여맹위원장 유영준

    “여남평등 이룩하여 평등조선 건설하자!”먼지투성이 전차길에서 겨우 몇 걸음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까 호젓이 가을맛을 느낄 수 있는 종묘 앞. 먼저 ‘유영준의원’의 현판이 너무 좁고 나지막한데 놀랐다. 미닫이를 여니 여사는 햇빛이 포근히 내려쪼이는 진찰대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다가 기자가 방문한 뜻을 말하니 “내가 무슨 혁명가나 된다구. 그렇지만 하구 싶은 말은 많우. 글쎄 지난 번에 김규식 박사의 부인을 찾아갔더니 떡이랑 밥 깍두기를 만들어서 인민봉기 진압하는 사람들을 먹이기에 한참 바빴다고 하겠지요. 소요를 진압하는 사람이란 북에서 쫓겨온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 폭동이래도 좋고 소동이래도 좋지만 정당히 살려고 사는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강도나 절도같이 생각할 수야 있어요? 그리고 그들은 말끝마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말하는데 ‘방직’과 ‘양잠’을 해가지고 미국에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겠다고 하겠지요. 농촌에 가 보면 태반의 여성이 앞을 가릴 치마 하...

    811호2009.02.10 00:00

  • [현대사 아리랑]조선 국문학계의 큰별 김태준
    조선 국문학계의 큰별 김태준

    문화조선을 꿈꾸던 ‘문화공작대장’‘3·8 이북서 찾아온 친구 하나가 백만장자의 아들로 몸집이 뚱뚱하고 큰소리 너털웃음 하고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 없다고 하더니 토지개혁 이후 수일 전에 그를 만나보니 얼굴이 몰라 보게 야위고 약간 가지고 온 돈냥은 모두 소비하고 가여운 ‘거지’가 되어 도로에 방황하는 것을 볼 때에 이 걸인이 작일까지 호걸웃음 하던 밑천은 전혀 인민의 피땀을 긁어모은 토지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막살이에 사는 가난뱅이와 한길가의 거지들은 늘 저열한 것 같고 배뚱뚱이 모리배 팟쇼분자 관료 자본가 등 외래 반동세력의 주구들은 언제든지 자기네가 선천적으로 잘나서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8·15 이후 해방은 되었다고 하나 이 남조선은 ‘친일 팟쇼분자 모리배의 낙원’이라는 말을 들을 적에 비상한 불쾌를 느낄 뿐 아니라 친일파 팟쇼분자 모리배의 도량(跳粱)으로 인해서 혼란을 결과한 남조선의 대비극에 대하여 해방의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810호2009.02.03 00:00

  • [현대사 아리랑]혁명전사가 된 문학소녀 박진홍
    혁명전사가 된 문학소녀 박진홍

    “조선여성이 깨어나야 참다운 독립”‘1944년 10월 9일 합계 10년의 마지막 감옥살이가 끝나고 김태준씨와의 뜨거운 사랑이 맺어졌으나 보금자리를 구해서 옥창의 피로를 쉬일 수 있는 것은 혁명가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걸어서 연안 가는 길을 떠났고 해방이 되자 다시 걸어서 그 먼길을 돌아온 부총 서울시 위원장 박진홍 여사는 아직도 얼굴이 몹시 파리하고 끊임없이 가슴이 결린 증세가 있다고 한다. 건강 상태를 물어보았더니“연안서 떠날 때 임신 만삭이었더랬어요. 나는 말을 타고 남편은 걸어서 오는데 열하성 란핀이라는 데서 오후 7시에 해산을 했지요. 그리고 그날 밤 1시에 담가에 매여서 숭덕까지 왔는데 그때 무리한 것이 아직도 속에 남아 있군요.”1934년 이재유씨와 함께 지하운동을 하면서 동거생활로 들어가 옥중에서 아들 아기를 낳았으나 불행히 죽고 이번 노상에서 낳은 아드님은 잘 자란다고 한다.“그러나 부부가 이러고 다니느라고 가정적인 단란한 맛은 통 없어요. ...

    809호2009.01.20 00:00

  • [현대사 아리랑]인민의 바다에 뜬 외로운 배 이주하
    인민의 바다에 뜬 외로운 배 이주하

    원산 무대로 부두노동자 의식화“나는 서울과 평양을 다니며 여러 유명한 공산주의자를 보았지만 이주하같이 맹렬한 공산주의자를 본 일이 없는 것 같다.”박갑동이 놀랐던 이주하는 불꽃이 튀는 듯한 눈매에 칼날이 선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여서 조용히 말을 하고 있어도 금새 벼락이 떨어질 것 같은 무서움을 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제는 갑작스레 열이 나서…”하고 정치부 기자인 박갑동이 결근한 것을 변명하는데, 권오직(權五稷 1906~?) 사장과 같이 있던 이주하한테서 벼락이 떨어졌다고 한다. “공산당원이 감기 때문에 결근을 했다구. 전쟁 마당에서 나는 감기 들어 쉬겠으니 봐주십시오 하면 상대방이 같이 쉬자고 하겠소? 그런 정신으로 당 기관지에서 어떻게 일한단 말이오!”이주하 말은 마디마디에 칼날을 품고 있는 듯 매섭게 느껴졌고 눈에서는 붉은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 뒤로는 아무리 몸이 아파도 이주하 생각만 하면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는 박...

    808호2009.01.13 00:00

  • [현대사 아리랑]인민대중의 영원한 동무 김삼룡
    인민대중의 영원한 동무 김삼룡

    일곱 개의 얼굴을 가진 변장의 명수“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가져오게 할 역사적으로 의의 깊은 이 회합의 석상에서 축사를 드리게 된 것을 우리 당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 탄압 밑에 있어서나 현재에 있어서나 한결같이 과감하게 조선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경의를 바치는 바이다.”하룻밤에 야체이카 하나씩 만들다연사는 잠깐 말을 끊었다. 그리고 천도교 대강당을 가득 메운 600여 명의 청중을 둘러보았다.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한 인민대표들은 일곱 개 얼굴을 가졌다는 사나이를 향하여 우레 같은 손뼉을 쳤다. 하룻밤이면 야체이카 하나씩을 만들고 이틀이면 노동조합을 띄워서 사흘이면 스트라이크에 사보타주를 거쳐 총파업 투쟁에 들어가게 만든다는 전설적 조직 귀재라고 하였다. 색안경을 일곱 개씩 지니고 다니는 변장의 명수라고 하였다. 김삼룡. 1945년 11월 20일 하오 1시. 조선공산당을 대표해서 나온 조직부장 김...

    807호2009.01.06 00:00

  • [현대사 아리랑]조선 제일의 작곡가 김순남 下
    조선 제일의 작곡가 김순남 下

    노동자·농민 함께 부른 ‘빨치산 노래’“애국가 혁신운동.가장 절실한 문제의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그 보수적인 태도에서 혁신이 못 되고 있다. 적어도 일국의 애국가가 타국의 가요로써 대용될 수 없을 것이며 더욱 보수적인 민족주의자들이 이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음악에 무지한가를 폭로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가요가 아닌 안익태씨 작곡도 역시 8·15 이전 것이며 야소찬미가조로 된 것이어서 그 멜로디나 리듬에 있어 예컨대 마르세즈 같은 애국적인 감격이 표현되지 못한 작품이라는 것은 시위행렬시에 애국부인들이 겨울밤에 부르고 다니는 처량한 소리 같은 것임을 들어 알 것이다.” ‘인민항쟁가’ ‘해방의 노래’ 등 100여 곡 1947년 판에서 박영근(朴榮根)이 말하는 ‘음악계’ 진단이다. “본래 이 곡이 ‘그리운 옛날’을 추억하는 노래였는데 일제시대에는 송별가로 졸업식에서 부르는 노래였음은 다 알 것인데 선배가 우연한 기회에 음악에 대한 상식부족으로...

    806호2008.12.30 00:00

  • [현대사 아리랑] 조선 제일의 작곡가 김순남 上
    조선 제일의 작곡가 김순남 上

    애국가처럼 불렸던 ‘인민항쟁가’“우리의 해방이 만일 진정한 것이었더라면 금년이라는 해는 자유로웁고 원대한 기획이 실제화되는 도정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정치적 혼란과 갈등은 여지없이 그러한 기획성을 파괴하여 왔고 몇몇의 실천은 반동적 정치성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발전이 저해되었을 뿐더러 그의 방향은 비밀주의이며 제국주의적인 역사의 역행을 하고 있기까지에 이르렀다. 남조선의 이러한 현상은 곧 문화의 발전을 억제하여 왔으며 따라서 우리 악단은 이러한 파문 속에서 헤매이고 있다.”라는 예술전문 잡지 1947년 2월호에 조선음악가동맹 작곡부장 김순남이 쓴 ‘악단 회고기’ 첫 대문이다. 악단을 억누르고 있는 여러 비민주적·비음악적 짓거리와 프롤레타리아음악동맹을 헐뜯는 우익 쪽 음악인들의 반음악적 짓거리를 안타까워 하면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창작면은 현실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활발히 발표되지 못하였다. 다만 성의 있는 방송음악 편집이 몇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

    805호2008.12.23 00:00

  • [현대사 아리랑]남부군 사령관 이현상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

    반란군 이끌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다 “소련 군정 치하의 평양에서는 ‘소련에서 공부하고 와야 고위직에 등용될 수 있다’는 말이 상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때문에 북로당 선전부장 김창만과 간부부장 이상조 같은 노른자위 당 간부들, 남로당의 핵심 간부인 이현상과 김삼룡이 소련 유학을 위해 강동정치학원에서 러시아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인 1948년 7월 말 경이었습니다.”박병률이 한 말이다. 박병률은 강동정치학원 원장을 설립 때부터 끝까지 지냈던 사람이다. 김국후 기자가 엮어낸 에 나온다. 박병률은 말한다. “평양에 있지 말고 남으로 내려가라” “이들은 술자리에서 북조선의 최고지도자 문제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습니다. 김창만이 ‘곧 수립될 공화국에서 김일성 장군이 북조선의 최고지도자를 맡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현상이 ‘김일성은 인민무력부장 정도가 적당하고 최고지도자는 박헌영 선생이 맡는 것이 남북 인민들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반박했...

    804호2008.12.16 00:00

  • [현대사 아리랑]‘끝없는 도주’ 일생 이관술
    ‘끝없는 도주’ 일생 이관술

    땅불쑥하였던 수더분한 혁명가"나의 과거 생활 중 가장 유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체포되었을 때 박헌영 동지와 동생 순금의 주소를 말하라고 무서운 고문을 당할 때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 기로에 처했는데 나는 죽기로 맹세하고 13일간을 단식하다가 전에 함남 지방에서 일하던 것을 이용하여 허구를 꾸며서 그들을 감쪽같이 속인 일이다. 그리고 3일간을 단식한 후 쓰러진 체하여 의사를 부른 사이에 미리 병에 받아 놓았던 커피를 머금고 있다가 의무실에 가서 각혈을 하는 것같이 토하여 보석을 하게 만든 것 등이다.”서울 소공동에 있는 근택빌딩 2층 조선공산당 사무실이었다. 기자와 마주 앉은 조선공산당 총무부장 겸 재정부장 이관술(李觀述)은 여간 쑥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었다. 1946년 4월 16일. “이관술씨는 그의 피로 쓴 지하운동의 과거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중동고보·동경고등사범 나와다음날 실린 인터뷰 기사 머릿글이다. 김태준(金台俊)이 쓴 ...

    803호2008.12.0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