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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기사 41
  • [현대사 아리랑]카프작가 아니면서 월북한 이태준 (하)
    카프작가 아니면서 월북한 이태준 (하)

    30년대 ‘순문학의 길’ 홀로 걷다“게쇼.”굵은 목소리였다. “예.”“이거 땜질 좀 해주슈.”“예에, 해드리죠. 잠깐만 기다리세요.”노인은 키가 훤칠하고 나이에 비해서 건강한 체구였다. 젊었을 때는 꽤 미남일 성싶은 얼굴이었다. 척 보기에 범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남한말을 써서 궁금증이 더했다. 나는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실례지만 뭐 하시는 분이시죠?”“…”그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어디서 본 얼굴 같기도 했다. 땜질하면서 나는 그의 얼굴을 곰곰이 뜯어보았다. 한참 동안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나는 물어나 보자 하고 다시 말을 걸었다. “혹시, 글 쓰시는 분 아니십니까?”“…”해방되면서 ‘현대일보’ 주간 맡아에 나오는 대문이다. ‘남파공작원’ 김진계 선생이 불러주는 것을 보고문학가 김응교가 간추린 것으로, 8·15부터 70년대 첫무렵까지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채기들이 서리서리 담겨 있는 값진 적바...

    822호2009.04.28 00:00

  • [현대사 아리랑]카프작가 아니면서 월북한 이태준 (상)
    카프작가 아니면서 월북한 이태준 (상)

    ‘구인회’ 얽어 순수예술 파고들다지난 7월 상순경 소개해 갔던 3·8이북 안협(安峽)에 정리할 것이 있다고 서울을 떠난 문학가동맹 부위원장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씨는 그동안 소식이 묘연하여 일반의 궁금의 대상이 되어 오던 중 지난달 막부(莫府)통신으로는 씨가 북조선 문화사절단으로 소련에 가 있는 것이 알려져서 그 귀환이 기대되던 바 요즘 동씨가 동사절단 일행과 함께 평양에 들어와서 체류 중이라는 기별이 왔다. 최초의 씨의 소식은 문학가동맹원에게 보내는 멧세지로서 씨의 소련관은 과거가 과거이니만큼 퍽 흥미를 끄는 것인데 동동맹이 공개한 서간은 다음과 같다. 1946년 11월 8일치 기사이다. ‘악수할 날도 불원, 동지여! 영웅적으로 싸우라’는 제목 밑에 실려 있는 ‘평양서 이태준씨 멧세지’여러분의 비분한 얼굴들이 눈에 선합니다. 어떤 난관이던 돌파하실 줄 압니다. 쏘베트는 무엇보다도 인간들이 부러웠습니다. 그전 문학에서 보던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자연...

    821호2009.04.21 00:00

  • [현대사 아리랑]광복 전 ‘경향문학’ 거목 한설야 (하)
    광복 전 ‘경향문학’ 거목 한설야 (하)

    45년 11월 문화예술인 중 맨 처음 월북“1962년에 파문을 일으켰던 작가 한설야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일제시대에 ‘과도기’라는 작품을 써서 문단에 나온 작가인데, 나는 그의 작품을 평률리(평북 안주군) 리 민주선전 실장을 하면서 도서실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간도에서 이민을 갔다가 되돌아 온 주인공 가족의 눈을 통해서 한 어촌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쓰면서 식민지 사회의 허구성을 폭로한 이 소설과, 자본가의 생태를 노동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묘사한 노동장편소설 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내가 있던 평양 초대소에서 한설야의 집이 가까워서 그에 대해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남파 공작원 김진계 이야기를 보고 문학가 김응교가 쓴 에 나오는 대문이다. 에는 한설야만 아니라 이기영·이태준 같은 작가며 김두봉 같은 독립투사, 그리고 정순덕 같은 지리산 항미빨치산들 이야기가 담겨 있어 여간 값진 적바림이 아니다. 김진계가 들었던 한설야 이야기이다. 이기영,...

    820호2009.04.14 00:00

  • [현대사 아리랑](28) 광복 전 ‘경향문학’ 거목 한설야 (상)
    (28) 광복 전 ‘경향문학’ 거목 한설야 (상)

    장편 ‘황혼’은 노동문학의 정점당신과 단 한 번 서신 왕복을 한 것이 아마도 벌써 6년 전이다지상으로 보내는 이 한 편의 단시를 당신은 고소(苦笑)하라 나의 악수로!당신과 민촌은 좋은 ‘콤비’다민촌은 당신의 작가적 형님이고당신은 민촌의 이론적 형님이다당신의 이론을 당신의 창작에 소화시켜라당신의 휴매니즘 부정론을 들을 만하나너무도 원칙에만 구니(拘泥)치 말지어다부정과 긍정을 혼혈치는 말지나리알적 입장으로서 사회성을 탐구하여라한 번 체한 요리는 냄새도 싫다는 격은문학적 영양의 섭취법을 그릇한다즐겨 쓰는 ‘생리적 역학’이다당신은 지금 ‘과도기’를 지나서당신의 문학적 건설기에 있으리라가작 ‘씨름’과 새 씨름을 역박(力搏)하라잡동사니는 ‘홍수’와 함께 청산하여라북국의 ‘임금(林檎)’은 맛있는 과실이니굶주린 무리에게 식량을 오력치 말고리알리즘의 선로로 달음질하라김용제(金龍濟)가 1937년 9...

    819호2009.04.07 00:00

  • [현대사 아리랑]카프 대표작가  이기영(하)
    카프 대표작가 이기영(하)

    장편소설 ‘고향’ 베스트셀러 오르다주인공 이름을 ‘공산’이라고 한 것부터 맑스주의자를 색골로 그린 이광수(李光洙) 장편소설명색 를 꾸짖고자 쓴 것이 였다. 에 연재하기로 하였으나 1회분만 실리고 원고를 빼앗긴다. ‘카프작가’들에게 더욱 모지락스런 일제 검열을 뚫고 발표한 것이 중편 였는데, 3·1운동을 앞뒤로 한 농민들 삶을 속속들이 현실 속에서 그렸을 뿐 아니라 농민들이 두루 지니고 있는 소소유자로서의 두길보기를 거짓없이 보여준 작품으로 높은 값을 받았다. 1933년 7월 17일부터 8월 말까지 한 40일 동안 고향 성불사(成佛寺)에서 쓴 것이 이었다. 한 2000장 되는 애벌글로 생각이 잘 풀리는 날에는 100장 위를 쓴 적도 있을 만큼 검님(신명)이 올랐던 민촌이었다. 1933년 11월 15일치부터 이듬해 9월 21일까지 에 연재되어 독자들한테 커다란 손뼉을 받은 은 검열로 꺾자당한 곳이 적지 않았음에도 2500장을 넘는 부피였다. 그런데 을 연재 중이던...

    818호2009.03.31 00:00

  • [현대사 아리랑]카프 대표작가 민촌  이기영(상)
    카프 대표작가 민촌 이기영(상)

    “춘원이여, 연애소설이나 쓰시라”당신이 현 문단의 인기적 작가임에 아마도 누구나 이의가 없으리라그러나 대가엔 부주(腐柱)가 위험하다이광수의 옛날의 지위는 당신 차지다그런 것이 역사적 필연성이니당신은 반드시 역사에 감사하여서다시 더 참다운 역사성에 충실하여라소극적 만네리즘에 자경자숙하여라당신의 문학적 본령은 ‘고향’이 대표한다그러나 판은 번역이 표열하여 원작의 향기를 석사(惜死)하고 있는 듯하다‘고향’이 만부나 팔렸다 하니조선적 인세의 박수(薄酬)를 위안하여라 당신이 어른된 문학적 ‘고향’이어길 수 없는 카프의 요람이어든그 시대의 정신을 새롭게 발휘시켜라당신의 ‘서화’를 낭화(狼火)로 연소시켜라시절은 이제야 맥추(麥秋)를 엿보는데당신의 ‘맥추’를 수확하여라당신의 ‘어머니’는 아직도 소녀기니무어라 비평할 시기가 상조이나흥미를 노리는 통속적 자장가를 경고하라고리끼의 ‘어머니’를 숙독하여 배우라...

    817호2009.03.24 00:00

  • [현대사 아리랑]잊혀진 시조시인  조운
    잊혀진 시조시인 조운

    봄볕에 빨가장히 핀 ‘인민의 채송화’봄볕이 호도독호독내려쬐는 담머리에한올기 채송화 발돋움하고 서서드높은 하늘을 우러러빨가장히 피었다조운이 쓴 라는 시조이다. ‘채송화’는 시조거리가 아니었다. 양반 사대부들이 읊조렸던 시조는 거지반 매화·난초·국화 같은 폼나는 꽃 아니면 소나무·대나무같이 끼끗한 나무들이었다. 채송화 따위는 하찮은 들꽃 나부랭이였던 것이다. 조운(曹雲)은 1900년 전남 영광(靈光)에서 태어났다. 본이름은 주현(柱絃)이고 자는 중빈(重彬)이다. 1940년 필명이었던 ‘운(雲)’을 본이름으로 고쳤다. 조운 아버지는 아전이었고 어머니는 해어화(解語花), 곧 ‘말을 알아듣는 꽃’인 기생이었다. 어머니 광산(光山) 김씨가 고마(소실)로 들어와 낳은 칠남매 가운데 외아들이었으니, 그때 형편으로 보자면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는 ‘천출(賤出)’이었다. 문학동아리 만들어 시조부흥운동3·1운동에 들었다가 만주로 도망갔는데...

    816호2009.03.17 00:00

  • ‘볼셰비키 작가’ 포석 조명희

    넘쳐 넘쳐 흘러 ‘돌아오지 않는 낙동강’(서울통신) 조선문학계에 불멸의 공적을 남긴 포석 조명희씨는 단편집 을 남기고 17년 전 표연히 고국을 등진 후 소식을 끊고 안부조차 막연하였는데 해방과 더불어 죽은 줄만 알았던 씨가 소련 하바롭스끄대학 조선문학과 교수로 활약하여 이역에 있어서도 조선문학 발전의 전위로서 활약하여 조선사람으로서 단 하나인 쓰따린문학상까지 받고 그 명성을 전로에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쓰따린상까지 받은 포석 조명희씨란 어떠한 분인가. 시인이며 또 씨의 당질인 조벽암씨에게 포석의 이모저모를 들어보기로 하자. 1946년 4월 29일치 기사이다. ‘이역에 찬란한 조선문학’이라는 제목 아래 ‘조명희씨 소련서 활약’ ‘쓰따린문학상 수상자’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기사는 이어진다. 포석 조명희씨는 충북 청주 출생으로 당년 55세. 동양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는데 재동경시 처녀작으로 조선 최초의 희곡집 를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와 상연하였는데 ...

    815호2009.03.10 00:00

  • [현대사 아리랑]진보적 민족주의 언론인 고경흠
    진보적 민족주의 언론인 고경흠

    “우리 민족의 봄은 언제 오려나” 고경흠(高景欽)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946년 5월 를 창간하여 주필로 있으며 자주독립을 바탕으로 한 겨레의 오롯한 통일을 위하여 애썼던 언론인이다. 10대 뒤판에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고학을 하면서 과 을 찍어내었고, 같은 잡지를 펴낸 문필가이기도 하였던 그가 쓴 글 가운데 한 편이다. 1947년 3월 26일치에 실려 있다.“해방 후 유쾌할 것이라고는 그리 찾아볼 수 없는 우리네 살림살이와 국제적으로 몇 번이고 약속되었던 조선독립은 미소의 의견 불합으로 여지껏 공위가 열리지 않고 국내의 모든 공장은 모리배와 원료 부족 등으로 파손 내지 정지 상태에 있고 쌀값과 모든 물건값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듯 선량한 인민과 월급쟁이들을 울리고 있으며 광목 고무신이 우리네 살림에 가장 긴요한 것인데도 거리에서 광목 한 자 볼 수 없고 고무신이라고는 노인네 뱃가죽 같은 한번 신으면 찢어져 없어지는 것이다. 해방이 됐다고 고국에 ...

    814호2009.03.03 00:00

  • [현대사 아리랑]조선부녀총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원숙
    조선부녀총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원숙

    근우회 야체이카 맡아 지하투쟁 개천을 끼고 삼청동 막바지가 거진 끝나도록 올라가다가 호젓한 골목으로 열 걸음쯤 구부러지면 좁직한 ‘산파’간판이 붙은 양옥에 조원숙 여사가 묵고 있었다. ‘여성동우회’ ‘근우회’ ‘6·10만세사건’ ‘제2차조선공산당사건’을 거쳐 상해에서 망명생활을 한 것까지를 알고 있는 기자는 “상해에서의 결혼생활과 그 후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십시오”하고 물었다. 상해 망명중 만난 남편 모스크바로“상해에서 양명이라는 남성동지와 만나 극히 자연스럽게 결혼생활을 시작했죠. 그때 난 서른 살이었드랬는데, 안온한 가정생활이 그리운 적도 없지 않아 있었지마는 그인 밤낮을 가림이 없이 연락사업에 바빴고 때로는 소련 연안 등지로 장기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동거생활 3개년에 한 달을 함께 살아본 일이 없어요. 그땐 나두 열심히 공부는 했댔어요.”“그 다음 그분은 어데로 가셨습니까?”“모르죠. 폭풍전야에 모스크바로 간다고 가버렸는데 어데 소식이 있어요.”...

    813호2009.02.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