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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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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 아리랑]된바람 차가운 눈보라 헤쳐온 늙은 공산주의자 홍덕유
    된바람 차가운 눈보라 헤쳐온 늙은 공산주의자 홍덕유

    제2차 조선공산당의 핵심요원"21년 전 일입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이 늙은 몸에 열혈이 끓어오르는 듯합니다. 지금 반도호텔 옆에 있는 아서원(雅?園)에 각 도당 대표들이 극비밀리에 참집하여 역사적인 조선공산당 제1차 대회가 열리었든 것입니다. 오늘날을 당하야 그 대회에 참가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김재봉(金在鳳)·주종건(朱鍾建)·진병기(陣秉基) 세 동무를 생각하면 강개함을 금할 수 없읍니다.” 1946년 4월 17일치 조선공산당 창립 21주년 기념 특집 기사이다. ‘장안 복판에 뜻깊은 거사’ ‘당 창립식에 참석한 홍덕유씨 담’“그때 그 대회에 참집한 사람은 일생을 조선민족 해방운동에 바치겠다는 강철 같은 의지의 혁명가들이었읍니다. 그 대회가 서울서 개최되었든 것은 김재봉·박헌영 동무들의 피눈물나는 노력과 희생적 투쟁의 결정입니다. 표면으로는 4월 15, 16 양일에 전조선기자대회를 소집하고 기자대회를 이용하여 지방당원들을 상경케 하고 4월 19일에는 전...

    833호2009.07.14 00:00

  • [현대사 아리랑]해방된 조국에서 하방된 해방일보 사장 권오직
    해방된 조국에서 하방된 해방일보 사장 권오직

    ‘위조지폐사건’ 연루 3·8선 넘다3천만 동포에게 소(訴)함1946년 5월 15일 공보국 특별발표로서 조선경찰 제1관구 경찰청장 장택상씨는 우리 두 사람을 300만원 이상의 지폐를 위조하야 ‘남조선 일대를 교란’한 사건에 관련되였다 발표하는 동시 우리 두 사람에게 ‘이미 체포장이 발포되여 있는 중’이라 발표하였고 동 발표는 다시 우리 ‘조선공산당’의 ‘간부’라고 지칭하였음으로 조선공산당의 위신을 위하야 또한 해방조선의 책임을 맛터보는 조선경찰의 명예를 위하야 이 성명을 발표하는 바이다. 1. 우리는 이 사건이 전면적으로 허구임을 단연히 지적한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 두 사람이 이러한 범행에 관련하였다 하나 우리 두 사람은 전연 이러한 범행을 한 일이 없다. 그럼으로 우리가 이 사건에 관련되였다 함은 이 시건이 전연 허위적 날조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둘째 범인이라 지칭된 박락종 이하 대부분의 동지는 그 평소의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하야 조선의 경제부흥을 위...

    832호2009.07.07 00:00

  • [현대사 아리랑]6·10만세운동 앞장 볼세비키 혁명가 권오설 (하)
    6·10만세운동 앞장 볼세비키 혁명가 권오설 (하)

    1930년 서대문형무소 독방서 숨져 서울운동장으로모히자6월 1일!! 이날은 우리민족이 통일하야 왜적에 육박하든 날이다. 어떤계급 어떤당파를 물론하고 이날을 기념하야 모혀라!! 뭉처라!! 우리의 민주정부를 수립하자!! 반동분자의 남조선단독정부수립 음모를 분쇄하자!!노동자여!! 농민이여!! 시민이여!!오라!! 서울운동장으로!! 들으라!! 우리 자주독립의길을!!6·10투쟁기념시민대회 1946년 6월 9일치 ‘사고’이다.3·1운동에 놀란 일제가 내놓은 사탕발림이 ‘문화통치’라는 야바위짓이었다. 조선인민이 바라는 것을 어느만큼 들어주는 듯한 탈박을 썼지만 그 속내는 식민지 꼭뒤누름을 더욱 다지르는 것이었다. 이런 셈평에서 일어난 것이 6·10운동이었다. 긴한목마다 박혀 있는 주의자들이 채잡는 가운데 여러 전문학교와 고보생들 미좇아 가며 노동자·농민·도시빈민 같은 아랫도리사람들이 외쳐대는 독립만세 소리에 경성시내 안이 온통 물끓듯 하였으니, 3·1운동 때에...

    831호2009.06.30 00:00

  • [현대사 아리랑]6·10만세운동 앞장 볼세비키 혁명가 권오설 (상)
    6·10만세운동 앞장 볼세비키 혁명가 권오설 (상)

    동맹휴업 주도 중학교 퇴학 당해 공산당원 150명 피검권오설씨는 옥사 다수 민중은 학살드디어 그날은 왔다. 이날 신문사 기빨을 단 자동차 수십 대에 지도부대가 논아 타고 삐라는 청년과 학생들이 난우어 가지고 행열의 양쪽에 대기하였다. 오전 10시 행열이 창덕궁을 떠나자마자 파조교(罷朝橋)에서 삐라는 산포되고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짖는 시위가 벌어졌다. 군중과 경찰 사이에는 각처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학생 수십 명은 그 자리에서 검거되였다. 제2차 시위는 관수교(觀水橋) 건너서 제3차 시위는 황금정 3정목에서 제4차는 훈련원에서 제5차는 동대문에서 제6차는 안감천(안암동)에서 연달아 일어나는 시위대의 지축을 흔드는 만세소리는 행열과 같이 끝일줄 모르고 일제의 가슴을 서늘케 하였든 것이다. 장의 이튿날부터는 검거선풍이 온 장안을 휩쓸어 운동 지도부 이외의 군중 200여 명이 피검되였고 선풍은 전국적으로 파급되여 6월 말까지에 수천 명의 근노인민이 투옥당하고 검속된 공산당...

    830호2009.06.23 00:00

  • [현대사 아리랑]얼빠져 죽어버린 갓맑은 혁명가 강달영
    얼빠져 죽어버린 갓맑은 혁명가 강달영

    해방 3년 앞두고 감옥에서 숨져강달영 동지1887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 6세부터 한학 수업. 한일합병 후 비분하야 동지규합에 힘씀.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농민과 청년의 선두에 서서 지도하다가 피검. 1년 6개월의 일제 철쇄구속을 버서나자(1921) 곳 노동공제회 창립에 힘써 그 간부에 피선되야 활동하고 이어 1923년에 조선노동총동맹을 발기결성하야 그 간부로 피선되며 표면으로는 경제투쟁을 지도하여 이면으로는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다. 1924년에 공산당 내 지부의 당원이 되야 지하운동을 계속하다가 1925년에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야 당세 확장에 노력하든 중 조공 제1차 검거가 있자 그후 수습대책에 진력하야 동무는 제2차 책임비서가 되다. 동무는 간악한 일경의 눈을 가리우기 위하야 나제는 가두에서 ‘아이스크림’과 ‘바나나’ 장사를 하고 밤이면 산중에서 동무들과 연락회의를 거듭하야 당세만회에 초인적 노력을 하다가 드디어 일경의게 피검되야 6년 징역을 받고 기간 옥...

    828호2009.06.09 00:00

  • [현대사 아리랑]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

    민중의 혁명적 교양사업 힘쓰다 1890년 유생 김문섭(金文燮)씨의 장남으로 경북 안동군 풍산면 오미동에서 출생하였다. 7세시 재종조인 운재공(雲齋公) 문하에서 한자를 배우고 19세에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이어 경성공업강습소를 졸업한 후 귀성하야 농업에 종사하는 일방 신구 학술을 연습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농민을 지도하야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악독한 일경의 추구를 피하야 경향 각처로 망명생활을 하여가면서 꾸준히 반제운동을 계속하다가 검거를 당하고 6개월간의 옥중생활을 하였다. 출옥한 후 1922년 상해 만주를 거쳐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였든 원동민족대회에 참가하고 다음 노령 ‘일크쓰크’에서 개최된 혁명대회에 참석한 후 그곳 공산당에 입당하야 활동하였다. 이것이 김재봉 동지가 민족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 전환한 것이니 실로 조선인으로서 공산주의자가 된 최초의 일인이었다. 니시파(尼市派)와 상해파(上海派) 합동에 전력을 다하였으나 성공을 보지 못하고 니시파의 ...

    827호2009.06.02 00:00

  • [현대사 아리랑]‘태항산 호랑이’ 김두봉 (하)
    ‘태항산 호랑이’ 김두봉 (하)

    ‘종파분자’로 몰려 초라한 말년“책임지도원 동무이십니까?”“네, 그렇습니다만…”키는 중키이고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대머리 할아범이었다. “나는 김두봉이라고 합니다.”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김두봉 약력 줄임) 나는 이내 차분해져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소문과는 달리 그는 탐욕스럽게 생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맘씨 순한 시골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 내 아내는 평생 밥두 못 짓구 곱게만 지내다가 갑자기 농사두 하구 살림살이를 하려니까 너무 힘들어서 지금 치마끈두 바로 매지 못할 지경입니다. … 지도원 동무… 제발 목장 안에 있는 유치원 교양원이라도 자리가 있으면 배치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발 부탁합니다.”목이 메어 애원하듯이 말하는 그는 실주름 그어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가련하기까지 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가 태항산을 찌렁찌렁 호령하며 내달리던 연안파 호랑이였다는 사실, 국민군이 김두봉...

    826호2009.05.26 00:00

  • [현대사 아리랑]‘태항산 호랑이’ 김두봉 (상)
    ‘태항산 호랑이’ 김두봉 (상)

    민족해방 최전선서 불굴의 투지김두봉씨는 전투적 정열의 지도자라기보다도 오히려 학자형의 냉정한 의지의 지도자이다. 금일 조선의 지도자들 중에서 민주주의자나 사회주의자를 막론하고 다같이 존경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분이 있다. 그분은 김두봉씨를 제일로 칠 것이다. 임시정부 대신 자리도 거절김두봉씨는 원래 유명한 한글학자로 일찍이 3·1운동 당시에 해외로 망명하여 30년 가까이 해외의 유랑생활 속에서 백절불굴의 굳은 의지로 민족해방 전선에서 시종일관하게 꾸준히 끊임없이 힘있게 싸운 분이다. 한때는 김원봉씨들과 더불어 민족혁명당에서 같이 일하며 민족연합전선의 형성에 대분투하시고 그후 중일전쟁 기간 중 장개석의 국민정부가 인민의 항일대중운동을 두려워 탄압하기 시작하자 해방구인 팔로군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사랑하는 따님 해엽양을 데리고 도보로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며 한때는 벙어리노릇을 하면서 국민당군 지역을 돌파하여 연안에 들어가 군정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동지 최창익...

    825호2009.05.19 00:00

  • [현대사 아리랑]‘효용을 위한 문학’ 임화 (하)
    ‘효용을 위한 문학’ 임화 (하)

    ‘문맹’ 결성 조선문학 헤게모니 잡다천지를 뒤덮을 듯한 ‘해방조선’의 만세! 지축을 진동할 듯한 ‘일본제국의 타도’의 보무! 그리고 ‘조선공산당재건만세!’의 함성과 연합군 환영의 흥분! 지난 9월 11일 정오경부터 ‘건준’ 주최로 경성운동장에는 부내와 영등포의 공업지대에서 화학, 금속, 기계, 철도, 체신, 토목, 출판, 섬유 등 각 산업별 남녀 노동조합 회원을 비롯하여 청년, 학도, 시민 등 기외 근로인민대중 1만수천 명이 참집하여 각각 대 기와 ‘스로-간’의 깃발을 때마침 비내리는 하늘 높이 휘날리면서 광화문을 거쳐 총독부를 휘돌아 동 오후 4시경에 해산하였다. 이날 근로대중들의 불타는 듯한 투혼과 강철 같은 단결의 힘은 여실히 발휘되어 일찍이 볼 수 없던 대성과를 거두었으며 일반 시민과 연합군에게도 우리들의 위력이 깊이 인식되었다. 또 이날 야수와 같은 일본제국주의 경관의 흉탄에 맞아 건국의 초석으로 사라진 연전 학도 두 동지의 유해를 모신 학도대의 엄숙한 장렬도 합류...

    824호2009.05.12 00:00

  • [현대사 아리랑]‘효용을 위한 문학’ 임화 (상)
    ‘효용을 위한 문학’ 임화 (상)

    시문학계 샛별로 떠오른 ‘네거리의 순이’감이 붉은 시골 가을이 아득히 푸른 하늘에 놀 같은미결사의 가을 해가 밤보다도 길다.갔다가 오고, 왔다가 가고,한간 좁은 방 벽은 두터워,높은 들창 갓에하늘은 어린애처럼 찰락어리는 바다.나의 생각고 궁리하던 이것저것을,다 너의 물결 위에 실어,구름이 흐르는 곳으로 뛰어볼가!동해바다 가에 작은 촌은,어머니가 있는 내 고향이고,한강 물이 숭얼대는영등포 붉은 언덕은, 목숨을 바쳤던 나의 전장.오늘도 연기는구름보다 높고,누구이고 청년이 몇,너무나 좁은 하늘을넓은 희망의 눈동자 속 깊이호수처럼 담으리라.벌리는 팔이 아무리 좁아도,오오! 하늘보다 너른 나의 바다. 임화(林和)가 1936년 8월호에 선보인 ‘하늘’이다. 정지용(鄭芝溶)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기렸다는 작품으로 임화 두 번째 아내인 작가 지하련이 즐겨 읊조렸다고 한다. 일제 억누름...

    823호2009.05.0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