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읽는다. 나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먹고 산다. 책의 성분 요소인 질료들과 날짜와 속도들을 먹고 산다. 그렇게 함으로써 책이라는 다양체를 내화(內化)한다. 나는 하나의 이성,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이성, 여러 개의 주체다. 차라리 흩뿌려진 점들, 차이의 유목민들이다. 책은 하나의 점이며, 점들로 이루어진 선이다. 나는 그 점과 점들을 잇는다. 유목민은 오아시스라는 사막에 찍힌 점들을 찾아 움직이지만 실은 움직이지 않는 자다. 정주민들은 정착하기 위해서 이동하지만 유목민들은 떠도는 도중에 멈춘다. 유목민의 길은 정주민들이 만든 길과는 근본에서 다르다. 정주민의 길은 고속도로와 같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며 사회 공간과 접속하는 길이다. 유목민의 길은 실존의 경로들이고, 불확정적이고 무규정적인 영역을 가로지르며 개체와 집단 들을 잘게 쪼갠다. 정주민들의 길은 울타리와 울타리 간의 경로이고 홈이 패인 도로인 까닭에 경로를 벗어날 ...
798호2008.11.0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