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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일기](85) 정주민이 아니라 유목민으로 살아라!
    (85) 정주민이 아니라 유목민으로 살아라!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읽는다. 나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먹고 산다. 책의 성분 요소인 질료들과 날짜와 속도들을 먹고 산다. 그렇게 함으로써 책이라는 다양체를 내화(內化)한다. 나는 하나의 이성,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이성, 여러 개의 주체다. 차라리 흩뿌려진 점들, 차이의 유목민들이다. 책은 하나의 점이며, 점들로 이루어진 선이다. 나는 그 점과 점들을 잇는다. 유목민은 오아시스라는 사막에 찍힌 점들을 찾아 움직이지만 실은 움직이지 않는 자다. 정주민들은 정착하기 위해서 이동하지만 유목민들은 떠도는 도중에 멈춘다. 유목민의 길은 정주민들이 만든 길과는 근본에서 다르다. 정주민의 길은 고속도로와 같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며 사회 공간과 접속하는 길이다. 유목민의 길은 실존의 경로들이고, 불확정적이고 무규정적인 영역을 가로지르며 개체와 집단 들을 잘게 쪼갠다. 정주민들의 길은 울타리와 울타리 간의 경로이고 홈이 패인 도로인 까닭에 경로를 벗어날 ...

    798호2008.11.04 00:00

  • [독서일기](84) 내가 살던, 내 삶의 자취가 서린 곳, 골목길
    (84) 내가 살던, 내 삶의 자취가 서린 곳, 골목길

    산다는 것은 장소와 더불어 일어나는 일이다. 장소는 삶과 영혼을 세우는 기초적 토대다. 자기 집, 태어난 고장, 병역의무와 납세의무를 지우는 고국 따위의 장소는 추상적인 것으로 부유하는 삶을 구체적 현존으로 거듭나게 한다. 삶은 내적 공간과 외적 공간의 교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내적 공간은 자아나 영혼이고, 외적 공간은 신체가 위치하는 장소다. 장소는 실존의 기반이면서 자기 정립의 조건이다. 존재함의 순간들은 장소와 함께 실존의 중심을 꿰뚫고 지나가는 현상이다. 내 몸이 있고 나날의 일상 활동을 품은 여기란 지각 공간이고, 그 지각 공간에는 하나의 중심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여기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사는 동네와 도시는 지각된 장소이며 우리의 사고, 지각, 의미가 투영된 공간이다. 있음이란 늘 장소와 결부되어 나타나고, 거주의 안정성과 친밀감은 이 장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에서 비롯한다. 어떤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머물고자 하는 것은 우리 본성의 일부다. ...

    797호2008.10.28 00:00

  • [독서일기](83) 춤으로 세상 위에 군림한 여자, 최승희
    (83) 춤으로 세상 위에 군림한 여자, 최승희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자아라고 부르는 그것, 선택, 고투(苦鬪), 우연, 시대가 비벼져서 한 사람의 실존이 빚는 풍경이 출현한다. 그 풍경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른다. 한편으로 삶은 행위함인데, 그 실존적 기투(企投)의 본질은 먹고살기 위해, 혹은 자기실현을 위한 모든 수고를 함축한다. 행위와 수고는 등이 맞붙은 샴쌍둥이다. 수고는 현재를 가로지르는 주체를 익명들로 붕붕거리는 잡음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유일한 주체로 나타나게 하며 현재에 닻을 내려 그것을 고정시킨다. 수고는 자아와 세계가 연루되는 사건이다. 사람은 수고를 통해 그 존재를 세계에 등록한다. 그런 맥락에서 행위함은 “정복이자 속박”(레비나스)이며, 현재라는 짐을 짊어지고 시대 속으로 뛰어듦이다. 아니 시대의 인력 속으로 빨려 들어감이다. 시대는 자아의 의지와 관련해서, 때로는 그것과 무관하게 수고를 부과하고 피로를 분출하게 한다. 사람들이 피로를 피처럼 내뿜고 있을 때 도약은 멈춰진다. 피로는 자기 자신과...

    796호2008.10.21 00:00

  • [독서일기](82) 사라지는 생명, 그 존엄성을 노래하다
    (82) 사라지는 생명, 그 존엄성을 노래하다

    이 책은 작은 외침들의 책이다. 불교와 시와 환경과 야성 정신들에 대한 외침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의 선시(禪詩)와 중국의 시인들, 그리고 불교와 동양의 고대 신화들을 아우르며 생태적 사유를 펼쳐내는 게리 스나이더의 산문집이다. “지구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명판(銘板)으로서 현재와 과거의 소용돌이치는 힘들이 수없이 겹쳐진 자취”(『야성의 삶』)를 담고 있다. 스나이더의 글은 이 자취들을 선적 직관의 힘으로 관통하며 나아간다. 그의 선적 직관은 생명의 있음, 생태와 영성(靈性), 그리고 자연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과 죽음의 본질을 하나로 아우른다. 그의 사유는 지극히 동양적이고 끊임없이 불성(佛性)을 강조한다. 중국 시가 “시의 중심을 인간성과 영혼과 자연의 삼각대 안에서 발견했을 때”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고, 모든 살아 있는 것에서 불성(佛性)을 보고, 현존재의 삶이 이루어지는 이 세계를 “이 복잡하고 기품 있는 윤회의 극장”으로 볼 때 그 점은 단적으로 드러난다.게...

    795호2008.10.14 00:00

  • [독서일기](81) 삶 따로 공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81) 삶 따로 공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김우창과 문광훈의 대담집이다. 말로 된 것과 글로 씌어진 것에는 차이가 있다. 충분히 숙고한 후에 신중하게 쓰고 거듭 되풀이해서 읽고 수정하여 고정되는 글에 견주어 말은 자의성, 즉흥성, 일회성, 돌이킬 수 없이 내뱉는 특징 때문에 논리적 정밀성이 성길 수밖에 없다. 가끔 동어반복도 있고, 논리적 비약과 지루하게 이어지는 사설도 없지 않지만 마음과 내면성에 대한 숙고와 원숙한 성찰에서 빚어지는 김우창의 말은 글로 씌어진 것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논리적 정밀성과 견고함을 보여준다. 김우창은 ‘경험적 집적을 넘어가는 전체로서의 보편성’에 비추어 삶과 자연, 일상생활, 마음과 내면 도덕, 행복과 쾌락, 이데아와 지각,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 이를테면 표절을 일삼는 것에 대한 무자각적인 태도, 교수 사회의 도덕적 해이, 잦은 이사, 공중 질서, 타인에 대한 존중감과 배려의 결핍, 정치와 관료 사회를 잠식한 부패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거의 800...

    794호2008.10.07 00:00

  • [독서일기](80) “섬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속도를 늦추라고”
    (80) “섬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속도를 늦추라고”

    바쁘게 사는 것의 단점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 그리고 생명의 충일감을 느낄 여유를 잃는다는 것 따위다. 물론 삶이 요구하는 합당한 필요에 대한 반응으로 바빠지는 것이겠지만 몸과 마음이 두루 바쁜 사람은 삶의 깊이와 넓이를 잃고 평면화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직장 일, 집안 일, 심부름, 쇼핑, 빨래, 청구서 계산 따위의 잡다한 일에 영혼이 분주해지면 대자연과 교감을 나눌 시간은 사라지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내밀한 영혼의 에너지는 고갈되며 내면에는 피로가 쌓인다. 사는 일에서 말랑말랑한 기쁨은 오래된 귤처럼 말라비틀어지고, 자연과 사물들에 대한 신선한 느낌은 증발해버리며, 그 대신 삶은 한낱 걱정, 초조, 스트레스에 눌린 삭막한 의무의 덩어리로 전락한다. 웃고 쉬고 즐길 수 없는 사람은 이미 반쯤 죽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웃고 쉬고 즐기는데, 왜 어떤 사람은 일에 파묻혀 소중한 시간들을 덧없이 흘려보낼까? 삶에 대한 비관주의는 세상의 짐을 혼자...

    793호2008.09.30 00:00

  • [독서일기](79) 처칠, 나폴레옹, 고흐도 불면증을 앓았다
    (79) 처칠, 나폴레옹, 고흐도 불면증을 앓았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낮의 생물이다. 낮에 생계와 의미를 위한 노동을 하고, 밤에는 잠을 통해 낮에 소진한 기력을 충전한다. 밤이 사라지고 낮만 있다면 누구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밤은 아늑한 잠의 시간이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밤이 깊어지면 우리 몸의 송과선(松果腺)은 멜라토닌을 분비하고, 육체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잠잘 준비를 갖춘다. 밤은 생리적으로, 윤리적으로 건강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에게 축복이다. 그러나 매일 잠을 설치는 사람들에게 밤은 끔찍한 악몽이다. 기면 발작,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아프리카 수면병, 치명성 가계 불면증 따위의 기괴하고 위험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잠들기 위하여 자신과 싸워야 한다. 불면증이란 실로 다양한 원인을 가진 복합적인 장애다. 불면증의 고통과 싸우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성인의 반 정도가 단기 불면증을 겪고, 10%는 급성 불면증을 겪는다는 보고가 있다. 윈스턴 처칠이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등이 불면증을 앓았고, 마릴린 먼로나 빈센트 반 ...

    792호2008.09.23 00:00

  • [독서일기](78) 기묘한, 매우 기묘한, 믿을 수 없는 하룻밤
    (78) 기묘한, 매우 기묘한, 믿을 수 없는 하룻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익명의 서술자 목소리와 만난다. 인칭 대명사가 지시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것은 작가 자신의 것도 아니고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목소리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따라간다. 판독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따라간다. 알 수 없는 서술자의 목소리가 뱉어놓는 말들의 한 묶음. 그것이 우리를 이끈다. “독서는 이해가 아니다. 그저 따라간다. 이 놀라운 무지(無知).”(모리스 블랑쇼) 이 의심 없음, 이 무방비라니! 우리의 따라감은 그렇다.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아무 방비도 없다. 그저 무지한 어린애같이 목소리의 울림을 따라간다. 이 목소리는 소멸을 향하여 다가간다. 목소리는 문득 침묵에 도달한다.“언제나 놓치는 무엇인가를 되짚으려고 열망하면서, 말하려는 것의 결여로 존재하는 것을 애써 찾”고자(블랑쇼) 했던 우리도 그 서술자의 목소리가 그친 지점에서 서술자와 동시에 침묵으로 빠져나온다. 서술자의 목소리는 공중에서 소멸한다. 서술자의 목소리가 강력하게 암시하던,...

    791호2008.09.09 00:00

  • [독서일기](77)  남자를 모질게 착취하는 ‘친절한 복희씨’
    (77) 남자를 모질게 착취하는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의 소설은 단숨에 읽힌다. 그토록 잘 읽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박완서의 작품들은 이야기의 생동성, 문체의 날렵함, 자연주의적 관찰의 탄탄함으로 이룩한 독자적인 스타일이 어우러져 사실적 실감이 넘치는 소설로 잘 빚어진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 속내를 후벼 그 안에 숨은 끈질긴 욕망과 위선과 이중성을 파헤치는 그 직정적인 문체는 읽는 이의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준 듯 상쾌함을 넘어서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사람의 변덕스러운 욕망과 그것을 넓은 테두리로 감싸는 시대, 그리고 개개의 욕망과 시대가 만나 빚어내는 풍속에 대한 통찰은 뭉툭한 법이 없다. 퍼렇게 벼린 칼로 정확하게 그 핵심을 파고든다. 노년에 접어든 박완서의 필력은 더욱 원숙해지고, 사람살이에 대한 통찰은 소름끼칠 정도로 더욱 적확해졌다.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든 인간관계 속엔 위선이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돼 있어, 꼭 필요한 윤활유야.”(‘마흔아홉 살’)라는 발언도 우리 ...

    790호2008.09.02 00:00

  • [독서일기]뽐므는 정말로 ‘흔해 빠진 여자’일까?
    뽐므는 정말로 ‘흔해 빠진 여자’일까?

    프랑스 낭테르 대학에서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을 막는 데 따른 불만에서 촉발한 시위는 5월 한 달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대학생 시위와 1000만 노동자의 대규모 파업으로 번진다. 불이 산소를 만나 타오르듯 냉전과 베트남전과 같은 시대의 화두를 끌어안으며 젊은이들을 저항과 해방의 열망으로 타오르게 했다. 그러나 ‘68혁명’은 하나의 이념과 기획으로 묶을 수 없다. 모든 금지에 대한 저항, 구속 없이 즐기는 삶에 대한 열망이 그 이념과 기획을 대체했다. 궁극적으로 낡은 정치체제와 신체에 가하는 낡은 도덕 관습들에 대한 전면적인 반란이었다. ‘68혁명’의 거센 불길이 지나간 뒤에 남은 것은 마리화나와 히피, 마오주의(Maoism), 그리고 성의 해방이다. 그 중에서 마오주의는 최악의 유산으로 꼽혔다. 젊은이들 사이에 번진 파시즘 독재자에 대한 이상한 열광은 이해할 수 없었다. ‘68혁명’에 대한 평가는 낡은 도덕과 정치체제를 새것으로 바꾸려는 ‘혁명’이거나, 혹은 무질서와 파...

    789호2008.08.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