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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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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도오딧세이]간도에는 조선족이 살고 있다
    간도에는 조선족이 살고 있다

    백산학회가 지난 11월1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간도 및 재중국 조선족 문제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북방 문제를 주로 다루는 백산학회에서 간도협약 100주년을 맞아 연 학술대회였다. 발표 내용의 절반은 간도 영토 문제, 나머지 절반은 조선족 문제를 다뤘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이석우 인하대 교수(국제법 전공)는 “간도영유권에 있어 핵심적 문제는 간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흔히 간도영유권을 이야기하면 땅덩어리에만 집중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땅이고, 언제 청나라와 국경회담을 했고, 그 기준에 의하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식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해는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간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우리의 말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중국인이지만 이들의 모국은 한국이다. 이들이 없다면 간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다....

    852호2009.11.25 18:55

  • [간도오딧세이]간도가 살아 숨쉬고 있네!
    간도가 살아 숨쉬고 있네!

    때로는 아마추어의 노력이 빛날 때도 있다. <어! 발해가 살아 숨쉬고 있네?>(아이필드)라는 책을 읽고 난 뒤 느낌이다. 저자인 서울외고 박은선 교사는 사회생활학과를 졸업했고, 역사를 복수 전공했다. 현재 서울외고에서 사회 담당으로 정치와 법·사회 등을 가르치고 있다.박 교사는 2005년 한햇동안 중국 연변의 한국학교에서 초빙교사로 근무했다. 이 기간에 발해와 간도의 현장을 직접 답사한 것을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은 1부에서 발해, 2부에서 간도, 3부에서 용정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 담고 있다. 제목은 발해에 초점이 맞춰 있지만 간도 관련 책으로서는 아주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2부는 현장을 답사해 직접 역사의 미스터리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서술해 현장감이 생생하다. 예를 들면 ‘토문강은 대체 어디?’라는 제목을 통해 토문강의 현재 위치를 추적해 나간다.미션 임파서블- 토문강을 찾아라토문강은 백두산에서 흘러 나가기 때...

    851호2009.11.18 16:40

  • [간도오딧세이]토문은 어디에 있을까
    토문은 어디에 있을까

    토문강은 두만이라는 이름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흙으로 된 문을 의미하는 토문(土門)에서 나온 것일까. 1712년 백두산 정계비에 토문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이후로 이 논쟁은 300년 동안 지속됐다. 중국 측은 ‘토문강=도문강=두만강’으로 모든 이름이 비슷하지만 같은 줄기에서 나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에 한국 측은 토문강은 두만강과 다른 이름으로, 토문강 물줄기는 흙으로 된 문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한국 측 주장대로라면 토문강의 진위는 정계비 인근에서 연결된 물줄기에 토문이 존재하는가 여부로 알 수 있다. 이 토문은 일제가 1907년 간도 용정에 통감부 파출소를 설치한 이후 토문강을 답사하면서 쓴 답사보고서에 나타난다. 당시 파출소장인 사이토 스에지로(齋藤季治郞)가 10월18일 통감공작인 이토 히로부미에게 보낸 토문강 답사보고서는 1975년 국회도서관에서 발행한 ‘간도영유권 관계 발췌문서’에 번역돼 실려 있다.석퇴와 토문 ...

    850호2009.11.12 11:42

  • [간도오딧세이]돌무더기는 어디로 향했을까
    돌무더기는 어디로 향했을까

    홍양호의 <백두산고>에는 정계비 인근에 있는 돌무더기(석퇴)에 대한 생생한 표현들이 나타나 있다.산에 마른 도랑이 있는데 도랑 남쪽 언덕에 돌덩어리들이 쌓여 있다. 혹 10무(1무는 반걸음)에 한 무지가 있거나 혹은 20무에 한 무지씩 있다. 이것이 국경을 정할 때 표식으로 쌓은 돌이라고 한다. 도랑을 따라 서쪽으로 수십무 가고 평지를 따라 꺾어들어 북쪽으로 50~60무 올라가면 도랑이 끝나면서 비석이 있다. (중략)비석에서 뒤로 돌아 수십무 가면 동서에 또 각기 마른 도랑이 있는데 서쪽은 도탄이라 하여 압록강에 들어가고 동쪽은 토문이라 하여 두만강과 더불어 선성에서 모인다. 목극등이 돌아간 후 문서를 띄우기를 “비석을 세운 다음 토문의 원류를 따라 살피건대 수십리를 가도록 물흔적이 보이지 않고 돌을 따라 더듬어 가서 백리쯤 되여 드디여 큰 강이 드러난다. 여기는 물이 없는 곳이니 어찌 남들이 변방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감히 서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

    849호2009.11.04 16:28

  • [간도오딧세이]백두산의 역사적 수수께끼…
    백두산의 역사적 수수께끼…

    백두산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역사적 숙제 2개가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백두산 정계비가 과연 어디로 사라졌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정계비를 세웠던 주춧돌만 남아 있다. 정계비는 1931년 7월28일에 없어졌다. 만주사변(1931년 9월)이 발발하기 직전의 일이다. 시노다 지사쿠가 쓴 <백두산 정계비>의 서문에 이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시노다의 지인이 이때 백두산에 올랐다가 이튿날 아침 그곳에 정계비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는 시노다에게 알린 것이다. 이 지인에 따르면 7월28일 그곳에는 일본 국경수비대 100여 명과 일반 등산인 56명이 있었다. 시노다의 글투로 볼 때 일본 국경수비대가 정계비를 없앴을 가능성이 높다.정계비와 돌무더기는 어디로 갔을까문제는 이 정계비를 어디에 버렸느냐는 점이다. 일제의 의도대로라면 정계비를 들고 내려가는 것보다 그냥 산 속에 버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 어딘가에 정계비가 숨겨져 있다...

    848호2009.10.29 14:36

  • [간도오딧세이]1885년 10월 19일 백두산에서는…
    1885년 10월 19일 백두산에서는…

    1880년대 북간도에는 조선 백성이 대거 정착했다. 대기근으로 고생한 함경도 백성들이 떼를 지어 두만강을 건넜다. 그리고 간도에 농경지를 일궜다. 겨우 살 만해졌을 때 청국은 치발역복을 강요했다. 만주족의 옷과 머리 형태를 갖추기를 요구한 것이다. 만주족으로 귀화하지 않으면 애써 일군 땅을 빼앗길 지경에 처했다.이때 조선에서는 백두산 정계비의 존재를 새롭게 확인했다. 정계비에 나타난 토문강이 두만강과 달리 북쪽으로 흘러 간도 이주민이 살고 있는 땅이 조선 땅이라는 것이었다. 1885년 청국은 조선과 국경회담을 요구했다. 양국의 대표는 9월 말에 만났다. 백두산의 정계비를 확인하기에는 이미 늦은 계절이었다.북한의 <백두산고전작품선집>에 수록된 김우식의 ‘백두산 정계비 탐방록 및 감계수행일기’ 국역본에는 당시 양국에서 백두산 정계비 확인을 꺼렸음을 알 수 있다. 1712년에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것은 5월이다. 당시에는 기온이 올라가고 눈이 녹는 ...

    847호2009.10.22 13:33

  • [간도오딧세이]북한서도 간도문제에 관심?
    북한서도 간도문제에 관심?

    간도 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북한에서도 백두산은 가끔 등장했다. 스스로 민족의 성산이라고 떠받드는 백두산에 대한 자존심 문제 때문으로 해석된다. 1962년 북한과 중국 간에 조중변계조약으로 영토를 확정하는 시기에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백두산 장군봉에 오른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남한에서는 미묘한 해석을 낳았다. 조중변계조약이 맺어진 것이 2000년에 겨우 알려진 만큼 당시로서는 북한과 중국 간에 백두산 천지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짐작만 쏟아져 나왔다.2004년에 북한에서는 <백두산 고전작품선집>이라는 책이 발간됐다. 고려시대 정몽주·이색에서 시작해 남구만·박제가 등 조선 후기 인물에 이르기까지의 시와 산문을 국역해 놓았다. 북한의 사회과학원 주체문학연구소 고대중세문학연구실에서 백두산을 다룬 시와 산문을 알기 쉽게 한글로 풀어 놓은 것이다.이 책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 산문이다. 간도 문제와 얽혀 백두산...

    846호2009.10.15 15:34

  • [간도오딧세이]미스터리한 토문강
    미스터리한 토문강

    백두산 정계비에 기록된 토문강은 중국 지도에서는 오도백하로 나타난다. 이도백하가 천지에서 바로 북쪽으로 흘러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삼도백하, 사도백하, 오도백하 순으로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간다.북한에서는 토문강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1992년 북한은 백두산 총서를 편찬했다. 이 총서의 ‘기상수문’편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어 ‘중국 송화강의 상류 하천’이라는 대목이 나타난다.여기에는 삼도백하와 백두천(사도백하), 그리고 오도백하에 해당하는 얼도강이 조사돼 있다. 삼도백하는 향도역 부근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흐르는데 여러 곳에 깊고 좁은 상자형 곡지들이 형성돼 있으며, 곡지 사면은 절벽으로 돼 있다고 자료집은 보고했다. 길이는 9.2km다.사도백하일까, 오도백하일까사도백하는 대연지봉의 북사면에서 시작해 백두다리를 지나 북쪽으로 흐른다고 나타나 있다. 12.7km의 길이로, 이곳에 물이 흐르는 시기는 6월부터 9월까지다. 사도백하...

    845호2009.10.07 11:03

  • [간도오딧세이]“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신문의 칼럼에서 자주 인용되는 묘비명이 있다. 유명한 극작가인 버너드 쇼의 묘비명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간도협약 100주년을 지나면서 정부가 보인 반응을 본다면 이 묘비명이 정확한 표현이 된다. 정부는 간도협약 100주년을 지나면서 간도영유권이나 협약에 대한 입장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국가 예산을 쓰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 역시 마찬가지다. 100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는 시민단체인 간도되찾기운동본부에서 회원들이 한 푼 두 푼 낸 돈으로 마련됐다. 모든 것이 민간인들이 알아서 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고구려 역사 전문가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가 올해 5월에 펴낸 <백두산국경연구>(여유당 출판사)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 단락의 제목은 ‘한국의 국경문제 의식과 대응전략’이다.우리도 국경문제 용의주도하게 대처해야이런 비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막대한 국가 예산을 쓰고 ...

    844호2009.09.24 13:42

  • [간도오딧세이]간도는 영토분쟁지역
    간도는 영토분쟁지역

    2009년 9월4일 간도협약을 맺은지 100년이 되는 날이 스쳐 지나갔다. 100주년을 보내면서 얻은 성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민간단체인 간도되찾기운동본부가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의 영유권이 한국에 있음을 주장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간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고조됐다는 점이다.간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고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이 알려진 후 동북공정이 간도의 영유권을 공고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간도에 대한 관심이 처음으로 높아졌다. 이때 민간단체인 간도되찾기운동본부가 꾸려졌다. 그러나 이때의 계기가 곧바로 간도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거나 간도 정책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거나 하는 대응책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이번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시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다가 아무런 성과없이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100주년을 맞아 어떤 공식적인 견해도 밝히지 않았...

    843호2009.09.17 1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