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오늘을 생각한다
  • 전체 기사 169
  • [오늘을 생각한다] 대미 외교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
    대미 외교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

    지난 8월 말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성과’로 포장하는 논리가 많다. 회담을 몇 시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우리는 그곳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극우세력의 가짜뉴스 로비에서 기인한 듯한 이 메시지는 정상회담 직전 한국에 혼선을 불러왔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메시지의 진위와 의도를 긴급 검토했다.회담이 시작된 후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이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의 인테리어나 미국 경제 상황 등을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말뚝”으로 전락했다. 자율적인 공간을 잃고, 미국 패권의 하위 파트너 지위가 심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아시아 차원의 평화 구상이나 지역 협력의 상상력은 더더욱 배제될 수밖에 없다. 치켜세우며 대화 물꼬를 트는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언론은 찬양 일색이고, 지식인들마저 안도의 숨을 내쉰다. 모두가 ‘국가’의 관...

    1645호2025.09.05 15:24

  • [오늘을 생각한다] 족쇄가 된 고교학점제
    족쇄가 된 고교학점제

    올해 3월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 전국 44만명의 고등학교 신입생이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 1호 고교학점제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을 구현하고,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됐다. 2017년 11월 김상곤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 및 연구학교 운영계획’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학생의 창의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더욱 절실함에도 입시와 수능에 종속된 획일적 교육과정 운영과 줄 세우기식 상대평가가 이루어지는 고교교육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며, 모든 학생의 성장과 진로 개척을 돕고 수평적 고교체제 안에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종합적인 제도 개선을 선언했다. 즉 고교교육 혁신을 위해 고교체제 개편(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등), 고교학점제, 대입제도 개선(수능 절대평가 등) 이 세 가지 정책을 패키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홍어삼합을 주문했더니 묵은지만 나왔...

    1644호2025.08.29 14:57

  • [오늘을 생각한다]아들의 목숨값, 800만원
    아들의 목숨값, 800만원

    “우리 아들 목숨값이 X값만 못합니까?”지난 7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항소부 법정에서 한 어머니가 절규했다. 어머니의 항의를 들은 합의부 판사 세 명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휴정도 하지 않고 다음 재판을 내버려 둔 채 황급히 일어나 법정을 빠져나갔다. 위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법정에 뛰어든 것도 아니며, 그저 울분을 토했을 뿐인데 그랬다. 스스로도 부끄러운 판결이라 생각했던 것일까.이날 법원은 2016년 군의 부실 진료와 치료 지연으로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 유가족의 국가배상 사건 항소심 판결을 선고했다. 반복된 증상 호소에도 피부병약, 두통약만 처방하던 군의관, 훈련을 이유로 민간병원 내원을 미룬 간부들, 뒤늦게 찾은 민간병원 의사가 혈액암 의심 소견을 내고 즉시 큰 병원에 가라 했지만 무시했던 지휘관 사이에서 한 달간 방치돼 있다가 병원 가는 버스에서 의식을 잃은 홍 일병은 숨을 거둔 뒤에야 급성 백혈병에 ...

    1643호2025.08.22 14:31

  • [오늘을 생각한다] 조국에 속한 사람들
    조국에 속한 사람들

    지난해 6월 독일 함부르크지방법원은 95세 우르줄라 하퍼베크에게 국민선동죄로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했다. 하퍼베크는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학살에 대해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등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발언을 해 기소됐다. 2004년부터 같은 죄목으로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았던 그는 지난해 11월 사망했다. 하퍼베크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극우 세력이 집결해 마지막까지 나치의 명예회복을 위해 살다 간 동지를 기렸다.박근혜 정부 초기 집권 세력은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미화한 내용을 담은 ‘올바른 역사교과서’ 도입을 추진했다. 보수 진영에 불리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발상으로 제작돼 친일·독재를 미화한 이 교과서는 전국에서 단 1개 학교에서만 채택되는 데 그쳤다.역사의 재검토는 새로운 증거가 드러났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역사수정주의는 대개 진실과 무관하게 자신이 속한 세계를 곤경에서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지난주...

    1642호2025.08.15 14:42

  • [오늘을 생각한다] 물건은 젖어도 사람은 젖으면 안 된다
    물건은 젖어도 사람은 젖으면 안 된다

    해가 졌는데도, 찜통에 들어앉은 것처럼 텁텁한 밤공기였다. 분리수거장에 나갔다가 서둘러 들어가려는데 버려진 에어컨 박스가 보였다. 불현듯, 가전제품 박스를 버리지 않고 종류별로 보관한다던 두 남자가 떠올랐다. 그들은 가전제품을 배달·설치하는 일을 하고,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주한 연구를 수행 중이던 나에게 기후변화가 그들의 일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들려주었다.“사람은 젖어도 물건은 젖으면 안 되거든요.”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국지성 호우가 잦아져 박스가 젖을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 제품 포장을 다시 해야 하는데, 시간 맞춰 배달해야 하는 가전제품의 특성상 그때 가서 박스를 다시 구하면 지체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둔다고 했다. 특수고용직인 이들은 배달 중 발생한 문제에 대해 개인이 전부 책임을 져야 하다 보니, 자신의 안전뿐 아니라 물건의 안위를 위해서도 폭우일 수가 늘어나는 것이 영 괴롭다.폭염은 나을까? 물류센터는 냉방시설은커녕 그늘이 없는 ...

    1641호2025.08.08 14:31

  • [오늘을 생각한다] 벼랑 끝 내몰면서 그물망 설치하기
    벼랑 끝 내몰면서 그물망 설치하기

    2010년 한 해, 애플 제품을 생산하던 중국 내 폭스콘 공장에서는 무려 14명의 노동자가 연쇄 자살했다. 당시 이 공장의 대만인 창업주가 내린 대책은 10대 노동자들의 자살을 “의지가 약하기 때문”으로 치부하고, 공장 기숙사 건물 아래에 그물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대 사망 원인의 42.3%, 20대 사망 원인의 50.6%는 자살이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살률 통계 연보’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1.4명으로 세계 3위(2022년 기준)다.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거의 2배가 됐다. 2016년 7.8명(10만명당)이었던 자살률이 극심한 경쟁 문화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급증하고 있다.뭐가 문제일까? 통계청 자료를 보면, 청소년들은 “학교 성적이나 진학 스트레스”(32.9%)를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강남 학원가에 횡행한다는 ‘7세 고시’와 광기에 가까운 의대 열풍...

    1640호2025.08.01 14:21

  • [오늘을 생각한다] 가까스로 살아갈 미래
    가까스로 살아갈 미래

    여름마다 바닷물이 미지근하다. 40년 전, 30년 전, 20년 전 그리고 2015년 딸이 태어나기 직전의 제주 바다를 전부 기억하는 나에게 바닷물이 따뜻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닷속 한가득 일렁이며, 어린 다리를 휘감던 무성한 해조숲은 벌써 사라졌다. 시커먼 현무암 바위 위에 짙푸른 해조숲이 펼쳐져 있고, 전복이며 소라며 어린 물살이가 우글우글 살아 숨 쉬던 풍경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았다. 엽상바닷말(다시마·미역 등 잎과 줄기가 구분되는 해조류)이 사라진 자리에 칙칙한 잿빛 물질(무절석회조류)이 바위에 들러붙어, 현(玄)무암은 회(灰)무암 꼴이 됐다. 사막이 된 바다, 이를 백화현상 또는 갯녹음현상이라 한다. 갯녹음의 원인은 크게 수온 상승과 환경 오염이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은 최근 40년간(1971~2010) 수온이 1.14℃ 상승해 전 세계 평균에 비해 약 3배 이상의 상승 속도를 보인다. 지구온...

    1639호2025.07.25 14:16

  • [오늘을 생각한다] 재발 방지, ‘제도 개선’이란 착시
    재발 방지, ‘제도 개선’이란 착시

    7월 19일은 2023년 경북 예천에서 무리한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의 2주기 기일이다. 지난해 1주기 기일엔 곳곳에 차려진 분향소와 추모제에 채 상병 사망 책임 규명을 위한 특검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의 발길이 줄을 지었다. 기일을 열흘 앞둔 7월 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여파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은 파면됐고, 특검이 출범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제기된 의혹은 하나둘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인 만큼 2주기를 맞아 특집 기사를 준비하는 언론인들이 문의를 해온다. 어이없고 안타까운 참사였던 만큼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어떤 규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지, 또는 사건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을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접근법을 조금 달리해야 하지 않을지 조심스레 의견을 건넨다.군에는 복잡다단한 규정과 지침이 매우 많다. 규...

    1638호2025.07.18 14:35

  • [오늘을 생각한다] ‘이대남’ 난감
    ‘이대남’ 난감

    지난 대선 이후 20대 남성들이 사회적 규명 대상으로 지목됐다. 많은 매체와 연구자가 경쟁적으로 ‘이대남’ 해석에 뛰어들었는데 저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세대 남성에게 발견되는 돌출된 특징(극우적 경향)에 주목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나타나는 복잡성에 주목한다. 말이 무성해질수록 실체가 흐릿해진다. 쫓는 자는 많은데 잡은 자는 없다.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우선 분석의 주요 도구로 활용되는 ‘극우’라는 개념의 문제다. 기존에 대략적인 합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단이란 말은 어디까지나 정도를 설명하는 말이다. 어디까지가 보수이고 어디서부터 극우인가 하는 문제는, 언제까지가 올챙이이고 언제부터가 개구리인가 하는 문제에 가깝다. 질문이 엄격해질수록 설명력이 떨어진다. 개념으로 대상을 설명하지 못하니 거꾸로 대상으로 개념을 설명하려는 전복적 설명 방식이 등장했다. ‘이대남’의 특성을 바탕으로 ‘극우란 이런 것이다’ 하고 설명한다. 자로 ...

    1637호2025.07.11 14:03

  • [오늘을 생각한다] 나만의 이야기를 가졌는가
    나만의 이야기를 가졌는가

    “○○학회에 오셨어요?” 서울의 한 대학 작은 강의실에서 오랫동안 소통이 없던 지인의 문자를 받았다. 그는 몇 년 전 유학길에 오른 터라 한국에서 그를 보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한 차에 몇 년 후 박사학위를 따게 되면 아마도 참여하게 될 학회 행사에 답사차 왔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전혀 무관한 두 학회의 세미나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일 관계로 서로를 알 뿐이었으나, 우연이 겹치자 친근한 마음이 절로 생겨 커피를 마주 두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결국 남는 것은 ‘이야기’다. 삶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발생하는 일들은 선택할 수 없지만, 서사는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좋은 이야기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다.그는 관심 분야가 분명하고 공익적 지향이 뚜렷한 사람으로, 꽤 전도유망한 경력을 쌓기도 했으나, 어느 날 변호사로서의 일을 내던지고 전혀 다...

    1636호2025.07.04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