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이후 20대 남성들이 사회적 규명 대상으로 지목됐다. 많은 매체와 연구자가 경쟁적으로 ‘이대남’ 해석에 뛰어들었는데 저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세대 남성에게 발견되는 돌출된 특징(극우적 경향)에 주목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나타나는 복잡성에 주목한다. 말이 무성해질수록 실체가 흐릿해진다. 쫓는 자는 많은데 잡은 자는 없다.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우선 분석의 주요 도구로 활용되는 ‘극우’라는 개념의 문제다. 기존에 대략적인 합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단이란 말은 어디까지나 정도를 설명하는 말이다. 어디까지가 보수이고 어디서부터 극우인가 하는 문제는, 언제까지가 올챙이이고 언제부터가 개구리인가 하는 문제에 가깝다. 질문이 엄격해질수록 설명력이 떨어진다. 개념으로 대상을 설명하지 못하니 거꾸로 대상으로 개념을 설명하려는 전복적 설명 방식이 등장했다. ‘이대남’의 특성을 바탕으로 ‘극우란 이런 것이다’ 하고 설명한다. 자로 ...
1637호2025.07.11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