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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호

“팔레스타인은 죽어서도 인간성을 증명해야 한다”…‘완벽한 피해자’ 저자의 일침

표지이야기

“팔레스타인은 죽어서도 인간성을 증명해야 한다”…‘완벽한 피해자’ 저자의 일침

2009년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자지구를 급습했을 때 한 남자의 세 딸을 살해했다. 그 아버지는 나중에 <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냈다. 출판사의 책 소개 글은 죽은 딸을 언급하기도 전에 이 아버지가 하버드에서 공부한 의사로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의 화해에 헌신했고 양쪽의 환자를 모두 치료한, 여성 교육을 강조한 인도주의자라고 강조했다.팔레스타인인의 죽음은 피해자가 교양인이거나 인도주의자 혹은 “신만큼 관대한 초인”이 되어야만 공감을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혹은 어마어마하게 폭력적인 죽임을 당해야 중요하게 여겨진다. 피점령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정착자에게 납치·폭행당한 후 억지로 휘발유를 마시고 산채로 불태워진 16세 소년 모하메드 아부 크데이르나 가자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살해당한 후 12일만에 구급대원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된 6살 힌드 라잡이 그 예이다.대부분의 죽음은 통계 수치의 하나로 잡히거나 심지어 죽을만했다고 여겨진다. 이스라엘 측...

  • [취재 후] 노벨문학상보다 비싼 것
    [취재 후] 노벨문학상보다 비싼 것

    “압도적인 성량으로 끊임없이 세계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던 여름이 갔다.”(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사람들이 몰려든 곳은 한강 작가의 책방이었다. 인증샷을 찍고 축하 꽃다발과 쪽지를 남겼다. 그건 책방이 한 작가와 연결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관심은 누군가의 일상을 훼손했다. 한 작가의 책방은 한동안 영업을 쉬어야 했다.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와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이 사안을 어떻게 하면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기사로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인지 고민했다.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사실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찾아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지런히 서촌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서촌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이 골목이 바뀌고 있는지를 들었다. 고즈넉한 인왕산 풍경을 유리창에 품은 서점과 갤러리가 사라지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의점과 카페가 들어온다고 했다. 책...

    2026.07.29 06:00

  • [우정 이야기] 다 쓴 프린터 토너, 이젠 우체국에 맡기세요
    [우정 이야기] 다 쓴 프린터 토너, 이젠 우체국에 맡기세요

    프린터 토너는 재활용이 까다롭다. 겉보기에는 일반 플라스틱 통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토너 카트리지는 플라스틱 외장과 금속 부품, 고무 롤러, 잔여 분말 등이 결합한 복합제품이다. 남아 있는 토너 가루까지 처리해야 해 일반 플라스틱처럼 분리 배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등 프린터 관련 업체들이 폐카트리지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다만 제조사별로 회수 절차를 찾아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제품을 포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한 번에 폐카트리지 최대 4개를 한 박스에 포장해 신청할 수 있고, 신청 횟수는 월 2회로 제한된다. 소량의 토너를 보관하다가 한꺼번에 배출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이처럼 선뜻 버리기 어려웠던 프린터 토너를 가까운 우체국에서 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제조사별 회수 서비스를 별도로 신청하거나 전문 수거업체를 찾지 않고 생활권에 있는 우체국 창구에 직접 맡기는 방식이다.서울지방우정청은 서울지역 198개 우체국에서 ‘폐토너 그...

    2026.07.29 06:00

  • [신간] 오늘도 펴지 못한 책, 정말 내 탓일까
    [신간] 오늘도 펴지 못한 책, 정말 내 탓일까

    책 읽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미야케 가호 지음·서영찬 옮김·동아시아·1만8000원책은 일본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한 장면에서 출발한다. 남자 주인공인 영업사원 무기는 야근 후 게임은 하지만 취직 전 즐겨 읽던 소설은 펼쳐보지도 못한다. 같은 시간을 게임에는 쓰는데 독서에는 못 쓰는 이유가 뭘까. 문예평론가인 저자는 이 모순의 간극을 일본 근대 150년의 노동사와 독서사를 오가며 한 사회의 노동이 어떻게 개인의 독서를 잠식하는지 분석한다.저자는 노동과 책이 양립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책이 노동에 노이즈가 되는 사회”가 출현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노동자들에게 체화된 신자유주의가 책 읽기라는 비효율적인 행위를 밀어내도록 만들었다”며 “신자유주의가 컨트롤 가능한 정보만 읽는 태도를 내면화시켜 독서는 자신과 상관없는 타자의 맥락을 받아들이는 비효율적인 노이즈가 됐다”고 지적한다. 또 인터넷 발달이 가져온 노이즈 없...

    2026.07.29 06:00

  • [시네프리뷰] 어떻게 해야 했을까?-조현병으로 무너진 가족의 잃어버린 20년
    [시네프리뷰] 어떻게 해야 했을까?-조현병으로 무너진 가족의 잃어버린 20년

    제목: 어떻게 해야 했을까?(What Should We Have Done?)제작연도: 2026제작국: 일본상영시간: 101분장르: 다큐멘터리감독: 후지노 토모아키개봉: 2026년 7월 29일등급: 12세 이상 관람가수입·배급: ㈜엣나인필름누나의 병이 발병한 것은 1983년. 누나 마사코씨가 1958년생이니까 만 24세였다. 대학 재학 중이었던 누나는 어느 날 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구급차로 정신과에 실려갔지만 누나는 “전혀 문제없다”는 진단과 함께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답은 영화를 찍은 동생(토모아키 감독)과 누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였다. 부모는 모두 대학교수였고, 그것도 꽤 저명한 의학·약리학 전공 교수였다. 아버지는 후배 의사에게 진단을 의뢰했고, 후배는 “정신병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20년간 치료받지 않은 누나의 기행누나는 조현병 증상이 뚜렷했지만, 부모는 필사적으로 그걸 부인한다. 아예 말을 꺼내는 것도 꺼린다. 늦깎이 영화감독...

    2026.07.29 06:00

  • [정태겸의 풍경] (117) 경기 수원 경기사진센터-시선을 사로잡은 얼굴
    [정태겸의 풍경] (117) 경기 수원 경기사진센터-시선을 사로잡은 얼굴

    우연히 마주한 것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다. 얼마 전 SNS에서 본 사진전 소식도 그랬다. 사진 속 인물은 법정 스님이었다. 수없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속 파도를 잠재워 주었던 책들을 쓴 인물. 입적한 지 몇년이 지났지만, 사진 속에서 스님은 살아 숨 쉬며 여전히 맑은 얼굴로 귀 기울일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았다.수원의 경기상상캠퍼스를 찾아간 건 그래서였다. 지난 3월에 개관했다는 경기사진센터가 상상캠퍼스 안에 있었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참 잘 지었다 싶었다. 마치 대학의 교정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건물들이 공원을 이웃해서 한데 모여 있는 곳이었다. 산책하기 좋은 곳이구나, 한 번씩 쉬러 와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경기사진센터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익숙한 또 하나의 얼굴이 보였다. 고 안성기 배우의 젊은 시절의 얼굴이었다. 마치 이 사진전에서도 그의 얼굴이 대표작인 듯, 한국 영화를 대표하던 그가 맑게 웃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세상과 작별하기 직전...

    2026.07.29 06:00

  • [독자의 소리] 1688호를 읽고
    [독자의 소리] 1688호를 읽고

    “한강, ‘안 나가면 고소’에 충격”…책방 건물, 기업 손에 넘어갔다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를 배출한 서점인데,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가지 못하는 현실. 돈이 문화를 잠식하고, 문화가 돈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현실._경향닷컴 kjm****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운영하는 서점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폐업했다는 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인 듯._네이버 snsn****선진 외국에서 이 사실을 알면 한국은 부동산과 돈에 미친 나라여서, 예술인들이나 문학인들도 대우받지 못하는 일본보다 훨씬 못한 노벨상 보유 국가라고 비웃겠네._다음 가****‘증시 도박판’ 만든 레버리지 뒷북 규제, 3000만원 벽 세웠다저딴 것으로는 이 도박장을 막을 수 없다. 이 레버리지 ETF가 얼마나 영향력이 큰데, 저런 걸 대책이라고 내놓냐. 턱도 없다._네이버 andr****변동성이 너무 심하다. 어질어질하다._네이버 ggil****이 모든 건 레버지리 ETF ...

    2026.07.29 06:00

  • [편집실에서] 밑줄 친 문장, 멈춰버린 팔레스타인의 시간
    [편집실에서] 밑줄 친 문장, 멈춰버린 팔레스타인의 시간

    ‘전쟁은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이다.’ 꽤 오래전에 읽은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이라는 책의 부제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문장이기도 하다. 뒷날 알았지만 이 부제는 아마도 미국 작가 수전 손택이 저서 <타인의 고통>의 문장에서 착안한 듯하다.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전쟁의 이미지만 볼 뿐, 전쟁을 직접 겪는 이들의 고통을 모른다.” 손택은 이런 문장도 썼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벌어진 전쟁 중에서도 고작 몇개만이 추려내질 뿐이니.” TV 뉴스화면 속 ‘타인의 고통’이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소비됐다가 이내 잊히는 현실을 짚어냈다고 생각한다.기자 출신 국제분쟁 전문가 김재명씨가 쓴 이 책이 특별했던 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약자의 시선에서 다뤘다는 것이다. 저자는 가자지구 현장취재를 통해 무단 점거 논란을 빚는 유대인 정착촌 문제, 가자지구를 가로지른 거대한 분리장벽 문제, 이 사태를 방조해온 미국의 이중적 행태 등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고발했다. 팔...

    2026.07.29 06:00

  • [렌즈로 본 세상] 반 고흐가 사랑한, 타는 동안 피는 꽃
    [렌즈로 본 세상] 반 고흐가 사랑한, 타는 동안 피는 꽃

    가까이 다가가 찍은 해바라기는 꽃이라기보다 두꺼운 물감 같았습니다. 꽃잎 끝은 열기에 말라 뒤틀려 있었고, 그 위로 얹힌 빛은 유화의 붓 자국처럼 뭉쳐 있었습니다. 노랑은 한 가지 색이 아니었습니다. 태양 가까운 자리는 거의 흰빛으로 타들어 갔고, 그늘진 안쪽은 짙은 갈색으로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뷰파인더 속, 정지된 꽃들은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해바라기 연작을 떠올리게 했습니다.반 고흐는 유독 해바라기에 깊은 애정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그림이 고통의 부르짖음에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소박한 해바라기 속에 감사를 담고 있다고 그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습니다. 타들어 가면서도 피어 있는 꽃, 그것이 그가 오래 바라본 해바라기 이미지였습니다.이 여름, 한반도는 타는 날과 잠기는 날을 번갈아 겪고 있습니다. 볕이 살을 익힐 듯 내리쬐던 다음 날엔 어김없이 굵은 비가 대지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폭염에도, 폭우에도 해바라기는 고개를 떨구지 않고 그저 다음 해가 뜨는 쪽을 향해 ...

    2026.07.28 06:00

  • 코인 넣고 베팅했을 뿐인데… 폴리마켓 이용자는 왜 하루 아침에 피의자가 됐나
    코인 넣고 베팅했을 뿐인데… 폴리마켓 이용자는 왜 하루 아침에 피의자가 됐나

    지난 5월 말, 국내 가상자산 이용자들을 겨냥한 경찰의 소환 통보가 시작됐다. 글로벌 예측시장에 돈을 넣고 지분을 거래해온 이들이 형법상 도박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 입건된 것이다. 예측시장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 이야기다.작동 방식은 이렇다. 폴리마켓에는 ‘이번 선거에서 A후보가 당선될까’처럼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사건마다 시장이 열린다. 이용자는 ‘예’와 ‘아니오’ 중 한쪽을 골라 표를 산다. 표 1장은 예측이 맞으면 1달러를 주고 틀리면 한푼도 주지 않는다. ‘예’ 1장을 0.7달러에 샀다면,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질 때 1달러를 받아 0.3달러를 벌고 빗나가면 0.7달러를 통째로 잃는 식이다. 그래서 ‘예’ 표의 값 70센트는 시장이 그 사건을 70% 확률로 본다는 뜻으로 읽힌다.문제는 이 표를 사는 데 현금이 아니라 가상자산이 쓰인다는 점이다. 이용자는 국내 원화 거래소에서 코인을 산 뒤 해외 거래소를 거쳐 스테이블코인(달러 등에 가치를 고정한 코인...

    2026.07.28 06:00

  • [주간 舌전] “고통 너무 커…상처 치유에 오래 걸릴 듯”
    [주간 舌전] “고통 너무 커…상처 치유에 오래 걸릴 듯”

    “고통이 너무 크며, 이 상처가 치유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9)는 7월 20일(현지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썼다. 전날 아르헨티나가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0-1로 패배하며 2회 연속 우승의 꿈이 무산된 소회를 밝힌 것이다. 메시는 자신의 6번째 월드컵이자 3번째 결승전 무대를 씁쓸하게 떠날 수밖에 없었다.메시는 “지금 당장은 우리가 이뤄낸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대표팀은 2회 연속 월드컵 결승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 뒤집은 경기들,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경기들, 그리고 전 국민의 응원이 이 선수단의 노고와 노력과 더해져 우리를 다시 한번 세계 최고 수준에 올려놓았다”고 덧붙였다.실제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서 매 경기 접전을 펼치면서 결승까지 진출했다. 카보베르데(32강전)와 스위스(8강전)를 상대로 연장까지 치렀고, 이집트(16강전)와 잉글랜드(4강전)와의 대...

    2026.07.27 06:00

  • ‘왜 여교사야?’ 의문에서 시작된 K팝 최초 젠더리스 아이돌…‘엑스러브’ 대탐구
    ‘왜 여교사야?’ 의문에서 시작된 K팝 최초 젠더리스 아이돌…‘엑스러브’ 대탐구

    데뷔한 지 이제 막 1년 6개월 된 아이돌그룹 ‘엑스러브(XLOV)’가 심상치 않다. 엑스러브는 K팝 최초로 ‘젠더리스’ 콘셉트를 전면에 내걸었다. 젠더리스는 여성과 남성, 오로지 둘로 나뉜 이분법적 성별 구분을 넘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콘셉트에 기반한 파격적인 헤메코(헤어·메이크업·코디), 완성도 있는 노래와 퍼포먼스로 K팝 리스너들의 주목을 한껏 받고 있다. 미니앨범 2집 <I, God>은 발매 일주일간 판매량이 22만장을 넘겼다. 유럽 투어, 북미 팬미팅에 이어 최근 아시아 투어를 시작했다.젠더리스 콘셉트를 표방한 아이돌이 활발히 활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 K팝의 지평을 넓히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이 그룹의 인기는 성 정체성, 성적 지향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회변화의 증거이기도 하다. 엑스러브의 한 팬은 “엑스러브가 판도를 바꾼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5년, 10년 전에 나왔으면 이렇게까...

    2026.07.27 06:00

  • [IT 칼럼] 읽씹의 사회학, 답장 강박과 온라인 관계의 피로
    [IT 칼럼] 읽씹의 사회학, 답장 강박과 온라인 관계의 피로

    스마트폰 화면이 켜지고, 날카로운 진동이 고요를 깬다. 무심코 화면을 쓸어올려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지만, 당장 답장할 정신적 여력은 없다. 그저 문자를 읽었을 뿐인데, 상대방의 화면에서는 카카오톡의 노란색 ‘1’이 사라지거나 메신저의 ‘읽음’이라는 선명한 표식이 남는다. 이 찰나의 순간,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사람 사이에 심리적 전쟁이 시작된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답장이 오지 않는 분과 초를 세며 불안의 늪에 빠져든다. 메시지를 받은 이는 적절한 답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바야흐로 ‘읽씹’(메시지를 읽고 무시하는 행위)이 우리의 일상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과거 우편으로 편지를 주고받거나 하루에 한두 번 e메일을 확인하던 시절, 기다림은 낭만이자 당연한 미덕이었다. 상대가 내 소식을 언제 접했는지 알 길이 없었기에, 우리는 기꺼이 타인의 시공간을 존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메신저 앱에 도입된 혁신적인 ‘수신 확인 기능’은 기다림의 본질을 낭만에서 불안...

    2026.07.25 06:00

  • [오늘을 생각한다] 대한민국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오늘을 생각한다] 대한민국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지난 7월 15일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복지법 개정 등을 촉구했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 백승아·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과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이 참가해 교원 3단체의 주장에 동조했다. 교사를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보호해야 하지만, 제헌절을 앞두고 헌법에 반하는 입법을 요구하는 교사들과 그걸 받아주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첫째, 아동복지법상 ‘교육활동 면책권’ 신설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막을 수 없다. 이미 교권 5법 개정으로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이 아동학대처벌법과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에 각각 신설됐지만(2023년 하반기), 아동학대 관련 교원 입건 건수는 2022년 329건, 2023년 358건, 2024년 310건, 2025년 369건으로 전혀 줄지 않았다. 즉 아동복지법을 개정해도 수사기관과 법원...

    2026.07.25 06:00

  • [김정호의 생명과 환경] (16) 모기로 모기를 잡는다? ‘불임 수컷’ 수백만마리 풀어 번식 차단 성공할까
    [김정호의 생명과 환경] (16) 모기로 모기를 잡는다? ‘불임 수컷’ 수백만마리 풀어 번식 차단 성공할까

    한여름 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모기 한마리가 방안을 맴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귓가에서 들려오는 특유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공포와 불쾌감을 동시에 자극한다. 손으로 잡으려 해도 좀처럼 잡히지 않고, 겨우 잠이 들 무렵이면 다시 얼굴 주변을 맴돈다.우리는 오랫동안 이 작은 곤충과 전쟁을 벌여왔다. 살충제를 뿌리고, 모기장을 설치하고, 물웅덩이를 없애며, 더 강력한 화학물질을 개발해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연구자들은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모기를 힘들게 죽이는 대신 아예 태어나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이 질문은 얼핏 화려한 수사에 기대는 허황한 생각처럼 보이지만, 생명과학 기술을 응용해 만들어낸 실현 가능한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지금 여러 나라에서는 실제로 수백만마리의 모기를 의도적으로 자연에 풀어놓고 있다.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모기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모기를 방사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이 모기들은 특...

    2026.07.25 0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82) 지표가 삼킨 지식…논문은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어지기 위해 쓰인다
    [김우재의 플라이룸] (82) 지표가 삼킨 지식…논문은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어지기 위해 쓰인다

    정보와 혁신을 오래 연구해온 경영학자 스튜어트 맥도널드(Stuart Macdonald)는 최근 자신의 시선을 과학출판이라는 아수라장으로 돌렸다. 그가 내린 진단은 냉혹하다. 과학출판에는 논문을 만드는 자와 논문을 파는 자 사이에 근원적인 분단선이 있고, 권력은 전적으로 후자에 있다. 이 체제는 2개의 신화 위에 서 있다. 하나는 과학자가 중요한 문제를 연구하고 그 발견을 기다리는 세상에 논문으로 알려 지식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심사가 출판물의 질을 보증한다는 신화다. 현실에서 이 둘은 대체로 허구다. 과학자는 지식의 최전선을 방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리를 얻고 지키기 위해 논문을 낸다. 그리고 맥도널드가 인용하는 비아지올리의 서늘한 문장처럼, 오늘날 논문은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어지기 위해” 쓰인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맥스웰과 가필드, 두 사람이 판 우물맥도널드는 전후 과학출판의 궤적을 두 인물에 응축시킨다. 로...

    2026.07.25 06:00

  • [꼬다리] ‘호프’, 이상해서 왁자지껄하다
    [꼬다리] ‘호프’, 이상해서 왁자지껄하다

    근래 생긴 취미가 있다. 영화 <호프>에 관한 주변인 반응을 수집하는 거다. 대화하다가 뜬금없이 “<호프> 보셨어요?” 하루에 다섯 번 이상은 묻게 되니, 이건 취미라고 할 만하다.관계자도 아닌데 <호프>를 입에 붙여두고 다니는 건, 이어질 대화가 재미있을 걸 알아서다. “잔인하지는 않아? <곡성>은 진짜 무서웠잖아”, “평이 갈리던데”, “주말에 예매해뒀어.”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은 ‘그래서 너는 어떻게 봤냐’고 되묻고, 나는 성의껏 대답하다가 “보고 나면 어떻게 봤는지 꼭 알려달라”고 당부한다.지난 5월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출장에서 <호프>를 처음 본 순간부터 스포일러 걱정 없이 모두와 <호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다렸던 것 같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의 얼떨떨함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이제 많이들 알다시피, 여러 의미로 이상하고 ‘미쳐 있는’ 영화지 않나. 전...

    2026.07.24 15: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 (77) 무대에서 다시 만난 부모
    [이주영의 연뮤덕질기] (77) 무대에서 다시 만난 부모

    가족 단위 관객으로 북적이는 공연장 풍경이 묘하다. 한편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자식의 고통이,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늦게 어머니를 이해한 자식의 참회가 이어진다. 신탁을 피하려던 오이디푸스는 결국 아버지를 죽였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직간접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했고, 샤일록의 딸 제시카는 개종을 택해 아버지에게 죽음과 같은 상실을 안겼다.죽음과 병마를 겪으며 모성의 무게를 깨달은 자식들의 사모곡과 대비되는 풍경이다. 연극 <오이디푸스>·<베니스의 상인>·<눈이 부시게>,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신과 함께> 등은 모두 같은 질문을 한다. 인간은 왜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늦게 이해하는가.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셰익스피어의 희곡까지 ‘아버지를 죽이는 자식’은 서양 서사의 가장 오래된 원형 가운데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공연들이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과거 해석이 권위에...

    2026.07.24 14:59

  • 골도 도움도 없지만…패스로 경기 지배한 로드리 ‘별 중의 별’
    골도 도움도 없지만…패스로 경기 지배한 로드리 ‘별 중의 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은 ‘골의 시대’가 아니라 ‘패스의 시대’를 증명한 대회였다. 대회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은 득점왕도, 결승골 주인공도 아닌 스페인 주장 겸 수비형 미드필더 로드리(30·맨체스터 시티)에게 돌아갔다.득점은 하나도 없었고, 도움도 기록하지 못했다. 공격포인트만 놓고 보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FIFA는 이번 대회를 가장 잘한 선수로 로드리를 선택했다. 그는 골을 넣는 선수가 아니라 경기 자체를 지배한 선수였기 때문이다.로드리는 이번 대회 8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6경기를 풀타임 소화했고, 다른 2경기도 막판까지 뛰었다. 모든 경기를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에 섰다. 그는 공격보다 빌드업, 수비보다 경기 운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포르투갈과 16강전이 끝난 뒤 “상대가 강하게 압박했지만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경기를 잘 풀어갔다. 선수들이 함께 뛰면서 상대의 패스 길...

    2026.07.24 14:59

  • [이완의 흙 한줌] (2) 우리는 논 밖에 있지 않다
    [이완의 흙 한줌] (2) 우리는 논 밖에 있지 않다

    논에 새우가 산다면 믿을까. 장맛비가 마을을 훑고 지나간 다음 날, 나는 그 새우를 보러 논으로 나간다. 고비는 넘긴 걸까. 장화 끝에 닿는 진흙이 질척인다. 하늘은 여전히 무겁다. 언제 다시 비가 쏟아질지, 이제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빗물을 머금은 논두렁을 따라 걷는다. 흙냄새가 젖은 공기를 타고 올라온다. 아직 있다. 벼 포기 사이로 풍년새우가 헤엄친다. 얕은 논물에는 물벼룩이 와글거리고, 논둑의 수크령은 잎마다 물방울을 달고 반짝인다. 초록빛 벼가 바람에 일렁이는, 오래 보아온 풍경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벼만 보지 않게 됐다. 기후위기는 계절의 리듬만 흔든 것이 아니었다. 논을 읽는 법까지 바꿔놓았다.농부에게 논은 생산의 공간이다. 벼를 심고, 풀을 베고, 병해충을 막아 수확을 얻는다. 농사가 생계인 이상 그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논생물 조사를 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벼만 잘 자라면, 논은 정말 건강한 걸까. 그 물음은 내가 무엇을 돌보며 농...

    2026.07.24 14:55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3) ‘가부장제와 기계’ 괴물에 파괴된 여성의 고통을 기록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3) ‘가부장제와 기계’ 괴물에 파괴된 여성의 고통을 기록

    1934년 8월부터 1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강경애의 장편소설 <인간문제>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계급적·민족적·성적 억압을 총체적으로 조망한 리얼리즘 작품이다. 특히 이 소설은 식민지 근대화의 폭력성을 남성 노동자 중심의 단일한 계급 투쟁 서사로 환원하지 않고, 하층 계급 여성이 겪는 다층적인 억압의 구조를 통해 입체적으로 고발했다는 점에서 근대문학사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강경애는 식민지 자본주의와 봉건적 가부장제가 교차하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여성의 경로를 통해, 여성의 몸이 고통과 착취의 무대가 된 잔인한 상황을 통해 보여준다.소설의 전반부 공간인 황해도 용연마을은 일제와 야합한 조선인 지주 정덕호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억압적 공간이다. 정덕호는 근대적 통치 기제인 법을 무기로 농민들의 토지를 압류하며 생존권을 박탈할 뿐만 아니라 하층민 여성을 첩으로 삼거나 성적 폭력을 행사한다. 부모를 여의...

    2026.07.24 14:54

  • [박성진의 국방 B컷] (62) ‘유료화 시대’로 가는 세계 바다와 대한민국 해군의 과제
    [박성진의 국방 B컷] (62) ‘유료화 시대’로 가는 세계 바다와 대한민국 해군의 과제

    전 세계 바다가 봉쇄라는 위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는 대한민국 경제의 젖줄인 국제 해상교통로(SLOC)가 더 이상 국제 공공재가 아닌 세상으로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누가 바다를 지배하는가’를 넘어 ‘누가 바다를 통한 물류비용을 결정하는가’가 국제적 관심사다. 세계 각국은 바다의 규칙이 바뀌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주요 해협 통행료를 청구하는 시대를 우려하고 있다. 현행 국제법은 어떤 국가도 국제수로에서 통행료나 수수료를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이 계속 지켜질지는 의문이다.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해협 봉쇄와 글로벌 해상 통제가 ‘돈이 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렸다. 호르무즈 해협이 대표적이다. 이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통과한다. 해협을 실제로 봉쇄하지 않아도 봉쇄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도 해상 보험료는 오르고, 유가는 흔들리며 시장은 불안해지고 있다.“바다는 공짜가 아니다”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난 7월 19일(현...

    2026.07.24 14:54

  • [구정은의 수상한 GPS] (34) 세계 유가 뜻밖의 쿠션이 된 중국…지갑 열었다 닫았다 ‘교묘한 밀당’
    [구정은의 수상한 GPS] (34) 세계 유가 뜻밖의 쿠션이 된 중국…지갑 열었다 닫았다 ‘교묘한 밀당’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는 하루 약 40만배럴의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중국 민영 정유회사 중 최대 규모라는 헝리석화(恒力石化)의 정유 시설이 있다. 모기업인 헝리그룹은 1994년 장쑤성 쑤저우에서 여성 기업가 판훙웨이(范紅衛)가 창립했다. 석유화학 전반에서 사업을 확장했고, 2018년 다롄 앞바다 창싱 섬 경제기술개발구역에 정유플랜트를 지었다. 2023년부터 이란산 원유를 대량 수입, 정제해 내다 파는 사업을 하고 있다.산둥성 일대에는 이런 민영 정유 시설이 몰려 있다. 국영 기업들에 비하면 소규모지만 중국 전체 정유 능력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이런 회사들을 찻주전자 정유공장(茶壺煉廠)이라고 부른다. 이란이나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국제 제재를 받는 나라들로부터 원유를 헐값에 사서 정제하는 찻주전자들은 2010년대 중반 중국의 원유 ...

    2026.07.24 1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