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경향신문이 보도한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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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0월 7일자 사회면에 톱 기사로 실려

“하루는 너무 좋아하면서 왔더라고. 평화시장 사정을 경향신문이 내줬다고.” 2009년 12월 29일 인터뷰에서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의 말이다. 그는 6시간가량의 인터뷰에서 ‘경향신문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오도엽 시인이 구술을 정리해 책(<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으로 내기 전 경향신문은 140회에 걸쳐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라는 코너를 연재했다. 그걸 말하는가 싶더니 더 오랜 ‘인연’을 꺼냈다.

경향신문사 로비에 경향을 대표하는 보도로 걸려 있는 평화시장 노동실태 기사 / 정용인 기자

경향신문사 로비에 경향을 대표하는 보도로 걸려 있는 평화시장 노동실태 기사 / 정용인 기자

“태일이가 말하길 ‘우리가 노동청에 맨날 가서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들어 달라, 어린 동심이 다 시들어져 가고 있는데 노동청장님, 제발 저 사람 죽기 전에 살려주라고, 여덟 시간만 일하게 해주고 한 달에 한 번씩은 놀게 해주고, 그런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들어달라고 했지만 안 들어줬어. 그런데 경향신문에 그게 나온 거야.” 이소선의 2009년 회고에 따르면 당시 전태일은 그 신문을 사가지고 와서 자신에게 읽어주면서 그렇게 좋아했다는 것이다.

기사는 1970년 10월 7일자 경향신문 사회면에 톱으로 실렸다. “골방서 하루 16時間 노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 기사는 경향을 대표하는 보도로 선정, 신문사 로비에 지금도 걸려 있다. 그러나 당시 신문지면을 보면 기명으로 쓰지 않았다. 작성 기자가 누군지, 어떤 경위로 실리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기사 작성자는 노동청 출입기자 기남도

기사의 작성자와 일부 경위는 지난 2011년 11월 9일 기자협회보의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당시 노동청을 출입했던 고(故) 기남도 기자(2000년 폐암으로 작고)가 작성한 기사라는 것이다. <전태일평전> 등을 보면 기사가 나온다는 걸 알고 있던 전태일과 삼동회 동료들은 신문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300부를 구입, 자신들의 일터 평화시장 일대에 돌렸다고 한다. 전태일과 재단사 친구들이 자신들이 직접 작성한 평화시장 실태보고서를 제보해 기획된 기사일까.

1970년 10월 7일자 경향신문 사회면 톱기사 “골방서 하루 16時間 노동”

1970년 10월 7일자 경향신문 사회면 톱기사 “골방서 하루 16時間 노동”

“내가 그때 노동청 후임기자였다. 당시 상황을 잘 안다.” 11월 2일 통화한 김명수 신아일보 회장(당시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의 말이다. 사전에 기남도 기자를 만나 기획한 것은 아니고, 당시 전태일이 자신들이 실태 설문조사한 자료를 들고 노동청 기자실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타사 기자들은 다 외면했는데, 당시 경향신문 기남도 기자만 그걸 정식으로 기사로 다룬 것이다. 자료를 토대로 내용과 실태를 현장취재해서 사회면 톱으로 나가게 된 거다. 그러니까 우리와 사전에 이야기된 것은 아니었고, 다만 취재를 나와서 만났으니 ‘며칠 자로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 회장은 “당시 찍은 신문의 30~40%가 가판으로 나갔는데 그 가판을 돌리는데 찾아와서 가판대에서 사갔던 걸로 기억한다”며 “돈이 없으니까 전당포에 시계를 맡기고 돈을 마련해 사간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 게재엔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강한필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보도 후 발칵 뒤집혀서 이곳저곳에서 문의가 왔던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고 기남도 기자는 전두환 정권이 몰아붙인 1980년도 언론통폐합 당시 직장에서 쫓겨나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선민 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가 기남도 기자의 자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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