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한 강연에서 국내 의료체계를 강하게 비판하며 “조선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 놈들이 해 먹는 나라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고질적인 필수의료 기피 현상과 의료계 갈등, 대형 병원의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는 과정에서였죠. 그가 강연에서 언급한 고 윤한덕 교수(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는 만성적인 응급의료 인력 부족으로 주 129시간을 일하다 2019년 설 연휴 근무 중 자신의 사무실 책상 앞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외상외과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 병원장이 이날 쏟아낸 거친 발언은 수십 년간 바뀌지 않는 의료계에 대한 절망감이 가득 찬 처절한 외침으로 들립니다. 맥락을 보면 이 병원장이 언급한 ‘입만 터는 문과 놈들’은 아마도 의대 증원 확대만으로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정책 결정자들을 지칭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현 정부는 의료계와의 대화나 타협 없이 의대 모집 증원만 강행하다 결국 이마저도 매듭을 짓지 못한 채 1년 만에 원점으로 되돌리고 말았죠.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 밀어붙이기식 추진이 만들어낸 정책 참사라 할 수 있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입만 터는 문과 놈들’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부류 중 하나가 한국사회의 최상위층에 포진한 엘리트들입니다. 대통령의 계엄 국무회의에 불려가고도 불법 계엄을 막아내지 못한 국무위원들, 계엄을 옹호하고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온갖 ‘법꾸라지’ 같은 궤변을 쏟아낸 국민의힘 의원들과 변호인단, 대선 관리를 책임져야 할 자리에서 대선에 나올지 말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나 하는 대통령 권한대행, 환율 방어와 외환시장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포트폴리오 추천”을 받았다며 30년 만기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민첩함을 과시한 경제수장 등의 얼굴이 저는 생각났습니다. 계엄은 한국사회의 괴물이 돼버린 엘리트층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새 정부 출범이라는 정치 일정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의 소프트파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표를 남겼다고 봅니다.
이번 주 주간경향은 조기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승패의 키를 쥐고 있는 중도층의 표심을 분석해봅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진보와 보수 양쪽을 아우르는 중도층 내에서 유력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에 대한 비토 정서가 어떤 방향으로 정리될지를 진단해봤습니다. 또 광장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가운데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서 정작 복지 확대나 증세, 차별금지법 같은 진보 의제들이 자취를 감춘 원인을 짚어보고,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내놓은 대통령 집무실 세종시 이전 공약의 실현 가능성도 따져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밀어붙인 관세정책 등으로 미국 주가와 국채 가격, 달러화 가치가 트리플 약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지는 미국 국채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도 살펴봤습니다.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