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이후 독자 여러분은 일상 회복이 좀 되셨나요? 광장의 혼돈,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의 기괴한 탄핵 반대 논리, 혹시라도 그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봄이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닙니다.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무너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복원하고, ‘제2의 윤석열’이 또다시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지지자들만 쳐다보는 양극단의 정치, 상대편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기는커녕 악마화하는 문화, ‘잘하는 놈’보다 ‘덜 나쁜 놈’ 뽑기를 유도하는 선거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이 같은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극우 포퓰리스트를 4년 만에 다시 백악관으로 들여보내 전 세계를 초토화하고 있는 미국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윤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20대 대선 투표율은 77.1%에 달합니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최고 권력자가 집권 후 독재와 파시즘적 본색을 드러낼 때, 우리는 또다시 광장에 나가고 탄핵이란 합법적 절차로 직을 박탈하는 지난한 과정을 견딜 수는 있겠지만, 그에 수반되는 고통과 비용은 너무나도 큽니다.
조기 대선과 함께 5년 단임제 대통령제를 바꾸는 권력구조 개편을 추진하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개헌은 필요하지만 내란 종식이 먼저”라고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우 의장의 개헌 제안을 비판하는 측은 12·3 비상계엄 사태는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윤석열 개인의 문제라며 현시점에서의 개헌 논의는 자칫 내란 사태를 덮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대선과 함께 개헌을 추진하기엔 시간적으로 빠듯하다는 현실론도 듭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란 종식과 개헌이 별개의 문제인가 싶어요. 초유의 사태를 겪고 난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헌법에 대해, 대통령제에 대해, 민주주의의 대해 이렇게 온 국민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생각해보게 될까 싶습니다. 내란 동조 세력인 국민의힘과 어떻게 개헌 논의를 함께할 수 있느냐는 말도 나오지만, 그런 논리라면 원내 제2당인 국민의힘과 국정운영에 대한 어떤 논의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가는 양당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속되는 한 극단주의가 판을 치고 이를 자양분 삼아 세력화를 도모하는 제2의 윤석열을 막기 어렵다고 봅니다. 정치를 혁신하고, 선거제도를 고치고, 권력을 분산하는 논의를 미룰 이유는 없습니다. 관세 폭풍이 몰아쳐도 할 건 해야 합니다. 불과 50일 뒤 조기 대선이 열려도 바꿀 건 바꿔야 합니다. 지난 123일간의 비극을 미래세대가 다시 겪게 하고 싶진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주간경향은 대통령 탄핵 이후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바삐 돌아가는 정치권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헌정질서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지금, 한국 정치의 혁신을 위한 이 소중한 시간을 정치권이 허송세월하지 않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짚어봤습니다.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