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되는 윤석열·이준석·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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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폴터링(paltering)이란 적극적으로 일부 사실만 진술함으로써 총체적 진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잘못된 기억을 심어주는 것을 가리킨다. A라는 사람이 B에게 폴터링 진술을 통해 기만했다고 했을 때, A의 말만 듣고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가 예상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닥뜨린 B는 A에게 항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때 A가 보일 반응은 빤하다. 그가 비겁한 사람이라면 “나는 진실을 말했어!”라고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 다수는 폴터링을 습관화한 듯하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기자 질문에 “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수사관계자나 향후 재판을 담당할 관계자들도 모두 저나 우리 국민과 똑같이 채 상병 가족과 똑같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열심히 진상규명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답했다. 유족들과 시민들이 궁금했던 것은 그가 해병대수사단 조사 결과에 격노했는지, 혐의 내용을 빼라고 지시한 적이 있는지 등이지만 이에 대한 답을 회피하고 중요하지 않은 얘기만 한 것이다. 2022년 9월 26일 출근길 문답에서도 그는 방미 시기 “바이든 날리면”이라고 말해 논란이 된 것에 대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남 얘기하듯 둘러댔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 그가 보이는 태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폴터링이란 적극적으로 일부 사실만 진술함으로써 총체적 진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잘못된 기억을 심어주는 것을 가리킨다. 한국 정치의 위기가 단순히 민주-반민주 전선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을 폴터링으로 하나 되는 윤석열, 이준석, 이재명 등을 보며 깨닫게 된다.

한데 이는 윤석열만의 특성이 아니다. 지난 2월 2일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며 “반지성과의 전면전을 벌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반지성주의 포퓰리즘이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의원이 할 말은 아닌 듯하다. 지난 2월 3일 밤 그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동덕여대 사태의 본질은 (…) 반지성·반문명적 행위로 본인들의 의견을 표출한 ‘야만적 폭력’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의 총체 중 의도적으로 일부를 생략하고 ‘선택된 특정 사실’을 침소봉대한 전형적인 폴터링이다. 동덕여대 재학생 절대다수가 몇 번이고 총회를 성사시키고 점거 농성을 이어갔던 이유는 학교 당국이 일방적이고 반민주적으로 남녀 공학을 추진하면서 학생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갈등 원인은 이야기하지 않고 표면적 사실 중 일부만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이다.

지지율 정체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우클릭 행보를 보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반도체 특별법에 담긴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에 갑자기 힘을 실어주면서 “몰아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재계가 요구)하니 할 말이 없더라”고 했는데, 과로 때문에 죽어가는 노동자들은 할 말이 많다. 몰아서 일하기는 뇌졸중, 심장질환, 수면장애, 정신질환 위험 등을 초래해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노사 양측이 조금씩 양보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이재명의 진술은 진실 왜곡이자,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민주주의 파괴를 극복하길 바라는 광장의 요구에 대한 부정이다. 한국 정치의 위기가 단순히 민주-반민주 전선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을 폴터링으로 하나 되는 윤석열, 이준석, 이재명 등을 보며 깨닫게 된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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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