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목: 아마추어(The Amateur)
제작연도: 2025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22분
장르: 액션, 스릴러
감독: 제임스 하위스
출연: 라미 말렉, 레이첼 브로스나한, 로렌스 피시번, 카이트리오나 발페
개봉: 2025년 4월 9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리뷰를 쓰기 전 2018년 썼던 <보헤미안 랩소디> 리뷰를 다시 찾아 읽었다. 그때도 라미 말렉이 ‘후덕하게 느끼한 중년의’ 프레디 머큐리 역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살짝 우려했다는 이야기를 썼다. 당시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마이클 잭슨의 일대기나 자신의 노래 ‘Let’s Go Crazy’의 가사처럼 약에 절어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에서 최후를 맞이한 프린스 이야기가 영화화된다면 주연으로 딱 맞을 듯싶다는. 그런데 배우 역시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으니 그 기회의 가능성은 사그라드는 듯싶다.
추리소설 바탕으로 44년 만의 리메이크
<보헤미안 랩소디>는 라미 말렉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이번에 개봉하는 <아마추어>는 사실상 라미 말렉 원톱 영화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로렌스 피시번이 그를 훈련하고 쫓는 CIA 베테랑으로 나오지만, 존재감이 두드러지진 않는다. 영화의 시놉시스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총 한 방 제대로 쏴본 적 없는 암호해독 전문가’ CIA 요원이 테러 사건에 휩쓸려 죽은 아내의 복수에 나선 이야기.” 더 길게 갈 것도 없다. 영화는 냉전 시대 기자 출신 추리소설가로 명성을 크게 얻은 로버트 리텔의 1981년작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데 국내에 번역 출간되진 않은 듯하다.
대신 영화화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영화가 국내에선 1988년 TV로 방영된 존 새비지 주연의 영화 <격정의 프라하>(원제는 소설과 똑같이 아마추어(The Amateur)로 소설이 세상에 나온 해인 1981년작 영화다)다. 기자 출신 작가라 원작은 냉전 시대의 동서독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테러리스트들도 나름의 정치적인 이유(반제·반미)로 납치된 사람 중 콕 찍어 주인공 찰리 헬러의 부인을 단지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테러 현장 생중계 TV 카메라 앞에 세운 뒤 살해한다. 그런데 44년 만의 리메이크다. 정치 상황도 달라졌다. 냉전이 끝났다. 동서독도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래 헬러의 직업은 암호해독전문가인데 CIA 지하 5층에서 일하는 라미 말렉은 그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을지 몰라도 네트워크 해킹에 능숙한 너드(nerd) 정도? 아, 이 2025년판 헬러가 상부의 비밀을 탐사 기자들에게 폭로하겠다는 ‘협박’으로 얻은 특수훈련 기회를 통해 발견한 능력이 하나 더 있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사건 후 전 세계가 골치를 앓고 있는 IED(임시제조 폭발물) 제조 능력이다. 특수훈련을 통해 헬러는 자신이 맥가이버급의 IED 제조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실전경험은 전혀 없는 이 네트워크 해킹 전문가가 몰래 침입한 아파트 문을 따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참조한다는 것도 당연히 원작 소설이나 영화에는 없는 설정일 것이다(영상을 참조해 문을 따는 데 성공한 뒤 휴대전화에서 울려 퍼지는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요청 멘트가 관객들의 실소를 가져온다).
“주인공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치밀한 두뇌게임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기택의 톤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 헬러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와 같은 감탄 말이다. 그런데 뭔가 어설프고 엉성하다. 신박하다기보다 요행이다. 아직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이 있어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그의 복수계획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그를 뒤쫓는 CIA 본부 측의 정보가 비록 반쪽짜리지만 더 사실에 가깝다. 아내를 잃은 뒤 그의 복수전을 돕는 중년 과부 캐릭터도 뭔가 엉성하다. 한 명 한 명 자신의 아내를 죽인 테러범에게 복수에 나서지만, 헬러의 마지막 선택은 얼마나 관객들에게 호소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공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경단으로 나선 주인공의 선택 너머 첩보조직 내의 정치적 암투를 영화는 배경에 깔고 있지만 깊이가 얇다. 그동안 과거의 <007> 시리즈가 만든 ‘멋쟁이이자 바람둥이’ 제임스 본드 캐릭터로 대표되는 첩보물의 전형을 깬 고퀄리티 영화들에 관객의 눈이 익숙해져서일까. 좀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배우 라미 말렉과 가수 브루노 마스

라미 말렉(왼쪽)과 브루노 마스 / 핀터레스트
라미 말렉은 1981년 미국 LA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전형적인 백인이 아닌 아랍 또는 인도계 외모를 지녔다. 본명은 ‘라미 사이드 말렉’으로, 아랍 이름(رامي سعيد مالك)도 있다. 이집트 콥트교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연기한 프레디 머큐리는 영화에서 묘사됐듯, 역시 유럽계 백인이 아닌 파르시(국적은 인도지만 이란계로 조로아스터교 신도) 출신이었으니, 전혀 안 닮은 외모임에도 연기에 몰입할 만한 공통점이 없다고 할 순 없겠다.
라미 말렉과 닮은 꼴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는 블랙핑크 로제와 함께 ‘아파트’를 부른 가수로 유명한 브루노 마스다.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한 라미 말렉이 자신과 브루노 마스를 혼동한 어린 여성 팬이 사인을 요구하자 자신이 브루노 마스라는 이름으로 사인해줬다는 일화까지 나오는 걸 보면 라미 말렉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어디선가 라미 말렉이 자신이 브루노 마스와 친척이라고 거론한 모양인데, 브루노 마스의 공식 프로필을 확인해보면 아버지는 동유럽에서 건너온 푸에르토리코계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필리핀 출신의 하와이 이민자다. 브루노 마스 본인은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고. 라미 말렉이 태어난 LA와 뉴욕은 북미 대륙의 정반대에 위치하는데 혈통이나 지역적 연고가 서로 다른데 어떻게 친척으로 엮일 수 있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하와이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브루노 마스는 2003년 음악 경력을 쌓기 위해 LA로 이주했다).
앞서 리뷰에서 마이클 잭슨 일대기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라미 말렉이 마이클 역으로 딱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브루노 마스도 유력 후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브루노 마스의 영화 경력을 보면 <허니문 인 베가스>(1992)에 여섯 살의 나이로 깜짝 출연한 적 있고, 도시 앵무새의 아마존 적응기 <리오 2>(2014)에서 주엘의 소꿉친구 앵무새 로베르토 역 성우를 맡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